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184화 (184/250)

183화.

백선제는 눈앞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

백선제는 그 의문에 대해 쉽사리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솔직히 답을 내린 상태였다.

그러나 그 답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이나 압도적인 힘이었다.

시우가 선보인 힘은 말이다.

아니,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그 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었다.

초월(超越).

시우가 보인 힘은 인간을 초월(超越)했다.

보다 정확히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

그래서일까.

그 힘을 사용한 대가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크하학!”

시우가 피를 토하며 털썩, 바닥에 기절하듯이 쓰러졌다.

쓰러진 시우는 움직임이 없었다.

“자네, 괜찮은가…!”

백선제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끄윽!”

그러나 전신을 찌르는 격통에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우의 치료로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건 사실이었다.

목숨에 지장이 없는 수준까지 회복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백선제는 여전히 위독한 상태였다.

비록 심장이 완전히 꿰뚫리지는 않았다고는 하나 어느 정도 관통된 건 사실이었다.

관통된 심장을 되살려 놓은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 순간.

“하악…! 하악…!”

쓰러진 시우에게서 격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죽은 건 아닌 것 같았다.

“하아….”

백선제는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안도할 수는 없었다.

지금 쓰려져 있는 시우의 모습은 정말이지 위태로웠으니까.

“잠깐만, 기다리게…!”

백선제는 억지로 몸을 움직여 쓰러진 시우에게 다가갔다.

기어가듯이 움직인 탓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시우는 그때까지 아무런 답도, 반응도 없었다.

“어서, 내 몸에 박혀 있는 침을 쓰게.”

백선제는 몸에 박혀 있는 침을 빼내었다.

그러나 텁.

시우의 손에 붙잡혀 박힌 침을 빼낼 수가 없었다.

“그러면… 국장님이 위험해집니다.”

들려온 시우의 목소리.

시우는 끄으윽!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은 괜찮다는 의미를 내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철푸덕.

시우는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에 백선제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이네. 그러니 어서 침을 가져가 쓰게.”

백선제는 다시 몸에 박힌 침을 빼내었다.

이 침은 죽어 가던 백선제를 살린 침이다.

어떤 방식으로 치료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로 기적과도 같은 치료술임은 분명했다.

가히 성녀, 루도레아만이 선보일 수 있었던 기적.

이 침을 사용하면 시우는 분명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면 국장님이… 죽을 겁니다.”

시우는 끝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다 죽어 가는 모습으로 백선제가 침을 빼내는 행동을 막았다.

그러나 백선제도 이번엔 뜻을 꺾지 않았다.

“자네가 내게 말하지 않았나! 희생만이 사람을 지키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백선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보다는 자네가 살아야 하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우를 살려야 한다.

백선제가 본 시우의 잠재력은 도무지 상상이 불가했다.

S+급 헌터를 넘어 영웅급 헌터.

나아가 새로운 시대의 영웅이 될 수 있는 인재였다.

그러니.

“어서 내 몸에 박힌 침을 빼내게!”

살려야 한다.

설령 백선제가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시우를 살려야 한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희생도 감안해야 한다.

이번 서울의 사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우만큼은 꼭 살려야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는 동등하지 않다는 오주원의 말.

그토록 혐오하던 생각이었지만 맞는 말이다.

시우는 수많은 사람들보다 더 가치 있는 인재다.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시우만은 살려야 한다.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람들을 지키는 시찰국장이 할 만한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백선제는 그 뜻을 꺾지 않았다.

이미 스스로가 모순적인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살아나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나게.”

백선제는 스스로의 몸에 박힌 침을 빼내려 했고.

“괜찮…습니다.”

시우는 그런 백선제를 끝까지 붙잡았다.

“왜 이리 어리석게 구는가!”

백선제는 끝내 소리치고 말았다.

답답하게 구는 시우의 모습에 일순간 화가 일었다.

그 순간.

“그러는 국장님은….”

시우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장님은 왜 스스로를… 희생하려 하셨습니까.”

시우의 두 눈이 백선제에게 향했다.

“이곳이 죽을 자리임을 알면서도 왜 도망치지 않으셨습니까. 도망치고자 했다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마주 보는 시선.

“왜 지금도… 스스로를 희생하려 하시는 겁니까.”

백선제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뭐라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멍하디 멍한 정신.

시우는 끄으윽!

격통을 참으며 꾸역꾸역,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어디를… 가려는 겐가.”

백선제는 물었고.

시우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울 상공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지금… 그 몸으로 사람들을 도우러 가겠다는 건가?”

백선제는 다시 물었고.

시우는 역시나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시우의 모습 때문일까.

“왜…? 대체 왜…?”

백선제는 시우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시우의 상태는 정말이지 처참했다.

솔직히 말할까.

지금 백선제의 상태보다 더욱 심각했다.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조차 경이로웠다.

살아있는 것마저도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우의 행동은 과했다.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걸까.

대체 무엇이 시우를 저렇게 움직이게 하는 걸까.

백선제는 물었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번엔 그에 따른 답이 들려왔다.

약속…?

그러나 백선제는 그 답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누구와의 약속을 말하는 걸까.

그리고 어떤 약속을 말하는 걸까.

“뒤를… 부탁드립니다. 국장님.”

백선제는 시우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채린을 내려다보던 여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각또각.

여인은 길쭉한 다리를 뻗어 단상 아래의 계단을 내려왔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여인에게서 억눌려진 포악한 힘이 엿보인다.

그것은 어떠한 촉발제만 있다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여인이 채린의 앞에 서 보였을 때.

채린은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양이 앞의 쥐.

뱀 앞에 선 포식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온다.

여인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채린의 얼굴을 훑어 내렸다.

손가락이 얼굴을 훑을 때마다 채린은 수천 마리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채린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끝없는 사념(死念).

이 사념(死念)에 얽매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있잖아, 내가 여기에 갇혀서 나갈 수가 없어.】

여인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네 몸을 빌리면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아아아악─.

흉측한 악의(惡意)가 채린을 뒤덮는다.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서 쥐어짜 낸 듯한 광기에 정신이 아려 온다.

채린은 이를 까득!

안쪽의 볼살을 씹었다.

비릿한 혈향에 정신이 번쩍인다.

굳어 있는 몸이 조금씩 풀어짐에 채린은 검을 크게 휘둘렀다.

여인은 눈을 크게 떠 보이며 뒤로 물러났다.

쐐애액!

채린의 검이 애먹은 허공만을 갈랐다.

그러나 경직되었던 몸은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내 사념에 저항했다고…?】

여인이 상당히 놀란 눈을 떠 보였다.

붉은색으로 가득한 동공이 오롯이 채린에게도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딱히 의미는 없다만, 놀랍긴 하네.】

여인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쩌──────엉!

휘저은 손으로 소름 끼치는 광기의 마력이 터져 나왔다.

피어나는 광기의 마력은 주변의 공간을 삽시간에 잠식시켰다.

그 순간.

사아아….

산들거리는 바람이 불어왔다.

불어오는 바람은 드리운 어둠의 장막을 걷어 내었다.

【......!】

여인의 두 눈이 다시 한 번 크게 떠졌다.

그리고 이번엔 방금 전과는 달랐다.

크게 떠진 여인의 두 눈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이 힘은…!】

콰아아아아아─!!

산들거리며 불어오던 바람은 어느덧 태풍이 되어 주변을 휩쓸어 버렸다.

사념의 어둠은 태풍에 휩쓸려 사라지고 있었다.

대자연의 기운을 품은 태극(太極)의 힘.

【인간이 어떻게 신(神)의 힘을…?】

여인의 두 눈은 끝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붉은색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 온전한 신(神)의 힘이 아니야?】

악마는 드리운 힘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신(神)의 힘처럼 보이나 신(神)의 힘은 아니다.

보다 정확히는 신(神)의 힘을 열화한 인간의 힘이다.

【인간이 어떻게 신의 힘을 열화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나 그마저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콰아아아아아─!

대자연의 힘을 품은 폭풍이 더욱 거세어져 있었다.

이 힘은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여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실체.

대자연 앞에서는 악(惡)의 존재 또한 한낱 미물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건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무시해서도 안 되었다.

비록 열화된 힘이나 그 근원은 신(神)의 것.

하지만.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지옥의 이명처럼 길게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진다.

소름 끼치는 귀곡성(鬼哭聲)에 대자연의 폭풍이 일시에 흩어졌다.

【진짜 신의 힘에 비하면 너무도 미약해.】

여인의 붉디 붉은 눈동자가 좌우로 길게 찢어진다.

【어째서 인간이 신(神)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히죽.

【네 존재를 빼앗으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사아아아아!

여인의 사념이 폭사했다.

사방으로 어둠이 피어나며 드리운 공간 전체를 잠식한다.

채린은 다시 한 번 태극(太極)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하윽…!”

이번엔 대항할 수가 없었다.

이 끔찍한 악(惡)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하으윽!”

꺾이는 몸.

채린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여인은… 인외의 마물이다.

도저히 채린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다.

아니,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악(惡)이다.

그래서일까.

채린은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채린은 움켜쥔 검의 손잡이를 꽈득, 말아 쥐었다.

그리고.

【어머, 자결이라도 하게?】

여인의 속삭임이 다시 한번 들려왔다.

그리고 채린은 뭐라 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이었으니까.

여인은 분명 여기서 나갈 수 없다 말했다.

여기서 나가기 위해서는 채린의 몸이 필요하다 말했다.

그 말은 즉.

【네가 죽어 버리면, 나도 여기서 나갈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이 여인이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째서 채린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 말이 사실이라면….

“흐으윽…!”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여인을 던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방법.

그리하여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채린은 사념에 저항하며 몸을 움직였다.

【한번 해 봐.】

여인이 히죽거리며 말해 왔다.

채린을 바라보는 여인의 두 눈은 즐거움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유희를 담고 있었다.

【네가 목숨을 끊는 게 빠를까. 아니면 내가 네 존재를 빼앗는게 빠를까?】

여인은 게임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어머나.】

히죽.

【내가 이겼네?】

여인은 채린의 존재를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

털썩.

채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몸에 힘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다른 누군가에게 몸의 통제권을 빼앗긴 것만 같았다.

아무리 용을 써도.

아무리 발악을 해도.

빼앗긴 몸의 통제권이 돌아오질 않았다.

되려 의식이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악(惡).

【잘 가렴.】

여인의 이죽거림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정신이 서서히 멀어졌다.

한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절망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끝…이다.

채린은 죽음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채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태극(太極)의 힘을 끌어올려 저항했다.

【귀찮게 굴긴!】

여인이 인상을 와락, 찡그리며 소리쳤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단다.】

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딱히 삶에 대한 미련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그냥.

더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겨 버렸다.

조금은 더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겨 버렸다.

하지만….

“끄으윽…!”

욕심이었던 모양이다.

결국은 모두가 떠나갈 운명이었나 보다.

결국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부모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유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주방 아주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채린이 떠나갈 때가 된 모양이다.

채린의 두 눈이 서서히 감겼다.

암전된 시야.

죽음 이후의 세계는 너무나도 어두웠다.

너무나도 외롭고 차가웠─.

꽈지직─!

괴악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덥썩─!

무언가 붙잡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채린은 감았던 눈을 떠 보였다.

천천히 뜬 두 눈.

공간이 찢겨져 있었다.

찢어진 공간 사이로 하나의 손이 튀어나와 여인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붙잡힌 여인은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여인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경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채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채린 또한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찢어진 공간 너머.

“약속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채린에게 하나의 기억을 일깨웠다.

오래 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외면한다 하여도.”

언제였을까.

기억조차 희미한 어느 날의 약속이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너를 떠나간다 할지라도.”

그렇기에 흘려들었던.

지켜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설령 한채린. 네 스스로조차 너를 외면한다 하여도.”

콰아아앙!

튀어나온 손이 여인을 땅에 쳐 박으며, 찢어진 공간 너머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흔들리는 풍경 속.

태산과도 같은 커다란 등이, 채린의 앞을 막아선다.

언제였을까.

“나만큼은 네 옆에 있어 주겠노라고.”

기억조차 바래진

어느 날의 약속이었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