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우우우우웅!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게이트 앞.
S급 헌터, 이하린이 움켜쥔 세검에 마력을 집중했다.
스파아아앗!
날카로운 세검이 마력을 머금으며 새파란 빛을 발했다.
이하린은 세검을 앞으로 내리 찔렀다.
그 뒤를 이어 청록색의 마력이 휘몰아쳤다.
마오타오의 장 웨이.
이하린과 장 웨이의 검이 휘둘러졌다.
콰아앙!
콰자자자작─!
박살 난 힘의 잔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자욱한 먼지 안개가 피어나며 시야를 가려 왔다.
그리고 잠시 뒤.
우우우우웅!
흩어진 먼지 안개 사이로 멀쩡한 게이트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보다 정확히는 게이트를 감싸고 있는 어둠의 장막.
“흠집도 나지 않았어….”
이하린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하린의 개성, 증폭[增幅[(S).
이하린은 자그마한 힘으로도 크나큰 위력을 뿜어낼 수 있었다.
이하린은 그 증폭[增幅[(S)의 힘을 세검에 집중시켰다.
한 점 끝에 집중시켜 돌파력과 파괴력을 강화했다.
거기에 장 웨이의 힘 또한 더해져 그 위력을 높였다.
그런데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게이트를 감싼 어둠의 장막은 여전히 불길한 어둠을 품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가능한 일이던가?
“대체 누가 이런….”
이하린의 얼굴로 어떤 공포심마저 새겨졌다.
바로 그때.
“모두 비켜요!”
한쪽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유한나의 진홍빛 머리가 몰아치는 바람에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이윽고 콰르르르르─!!
상공에서 거대한 화염 소환체가 생성되었다.
폴 플레임(Fall Flame).
화염 원소계의 거대한 화염을 소환해 낙하시키는 마법.
화염계 최고이자 궁극의 마법, 메테오 스트라이크(Meteor Strike)의 열화 버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이 열화 버전일 뿐이다.
저 위력을 직접 보면, 결코 열화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유한나의 개성인 염화[炎火](S)로 그 힘이 한 번 더 증폭된 상황.
콰아아아아아아앙!!
낙하한 거대한 화염 소환체가 어둠의 장막과 충돌하여 폭발했다.
천지간을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에 사람들이 잠시 균형을 잃었다.
그러나.
“멀쩡…해?”
어둠의 장막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얼굴에 크나큰 당혹이 떠올랐다.
마법사의 마법만큼 위력이 뛰어난 건 많지 않았다.
쉽게 말해 방금 유한나의 화염 마법보다 더 강한 위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는 여기에 없었다.
그럼에도 어둠의 장막이 멀쩡하다는 것.
그렇다는 건 즉.
“어떻게 이런 수준의 결계가….”
이 어둠의 장막을 뚫어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이시윤 헌터. 자네의 마법으로도 파훼가 불가능한가?”
헌터 관리국의 협회장, 금천규가 물었다.
이시윤은 달리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진정한 의미의 마법사.
그는 유한나와는 다른 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마법사였다.
이 S등급 던전이 현 사태의 원인이라는 것도 밝혀내지 않았는가.
하지만.
“불가…합니다.”
이시윤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이 장막의 결계를 둘러싸고 있는 마력이 상정치를 초과했습니다. 결계를 파훼하려면 회로를 분석하여 접근해야 하는데, 이 정도 마력은… 제가 접근조차 불가합니다.”
답을 하는 이시윤은 왜인지 두려운 기색이 만연해 있었다.
이시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장막의 파훼가 불가하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키에에에에엑─!!
크워어어어─!
서울 상공에서는 계속해서 마물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쏟아진 마물들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가더들과 동원된 헌터들이 어찌저찌 막고는 있었다.
“모두 이쪽으로! 이쪽으로 대피─. 끄아악!”
“선배님! 야 이 마물 새끼들아!”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쏟아지는 마물들은 강력했고 또 끝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게이트를 없애야만 한다.
이 게이트를 없애야만 지금의 끔찍한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콰아앙! 쾅!
“부서져! 좀 부서지라고!”
“소용없어. 하린아, 이 장막은 그 정도로는….”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이시윤! 너도 뭐라도 좀 해야 할 거 아니야!”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이 게이트를 감싼 어둠의 장막을 부술 수가 없었다.
사실… 부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어둠의 장막은 어디까지나 결계였다.
현재 서울의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 하려면 이 던전을 클리어해야만 했다.
끔찍한 마력을 발산하는 던전 안의 존재를 없애야만 했다.
그런데 할 수 있을까?
그 존재를 감히 어찌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이대로 던전 폭발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이 정도의 마력이 깃든 던전이 폭발하면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최소 서울 전체.
어쩌면 경기도의 절반 정도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금천규는 그게 차라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만일.
던전 쇼크가 일어나 이 안의 존재가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과연 그 존재를 막을 수 있을까.
과연 우리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재앙.
“이제 우리는….”
금천규는 차마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 * *
사아아아아아아─!
사방으로 드리우는 어둠.
릴리트는 한채린의 존재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한채린은 어둠으로 물들어 의식이 사라져 있었다.
은발과 흑발.
두 색이 기묘하게 어우러지며 신비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한채린은 릴리트의 지배에 끝까지 저항하고 있었다.
시우에게 시간을 벌어 주고 있었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시간을.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 제자라니까.”
시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헤라클레스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내 신투술은 식(式)과 형(形)으로 구성되어 있어.]
현재 시우가 배운 신투술은 총 2식(式).
그리고 아직 형(形)에 대한 기술은 배우지 못했다.
정확히는 배울 수가 없었다.
[기존에 배우던 식(式)보다는 형(形)이 여러모로 배우기가 까다롭지.]
너무도 까다로웠으니까.
까다로운 정도가 아니라 범접조차 불가했다.
식(式)의 묘리를 한데 섞은 형(形).
해서 융합의 힘으로 형(形)을 배우고자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
실압구독을 통해 융합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시우만의 힘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써 시우는 형(形)의 힘을 조금이나마 흉내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너, 행여나 형(形)의 힘을 사용하지 마라.]
헤라클레스가 단단히 경고해 왔다.
시우는 그 이유를 물었고.
[네가 죽어.]
헤라클레스는 고민도 않고 답했다.
[아직 네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야.]
[그러니 내가 사용하라고 할 때까지 절대! 절대 사용하지 마.]
떠올린 헤라클레스와의 경고.
그것이 짙은 망설임을 일으킨다.
늪처럼 시우의 발목을 끈덕지게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지워 낸다.
망설임을 지워낸다.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불안감이 인다.
그러니 이 또한 지워 낸다.
잡념을 지워 낸다.
‘이겨 낼 수 있을까.’
끊어낸 잡념 사이로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러니 생각 자체를 지워 낸다.
그리하여 시우가 모든 번뇌를 지워 냈을 때.
꽈앙!
세상을 담는 공간이 깨진다.
산산이 깨져 버린 공간은 그 자체가 대적(大敵)이 되어 다가온다.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공간은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
그렇기에 공간을 부순다는 것은 세계의 법칙을 부순다는 것과 같았다.
나아가 지금.
꽈꽈꽈꽝!
부서진 공간이 끝내 소멸해 사라진다.
태초 이전의 개념으로 환원된다.
이는 신(神)조차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신(神)이라 할지라도 태초 이후의 존재다.
태초의 이전의 세계에는 간섭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것이 가능한 경우는 단 하나.
신(神)을 뛰어넘는 무엇.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엇의 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콰아아아아아아─!!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공간 전체에 드리웠다.
세계의 간섭.
존재해서는 안 되는 모순적인 힘에 세계가 이를 부정하는 것이리라.
세계의 간섭은 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태초의 힘.
그러나.
꽈꽈꽝!!
그 또한 산산이 부서져 소멸한다.
그와 동시에 화아아아악!
세상의 모든 것들이 푸른색으로 화한다.
청색편이 현상.
강력한 힘의 왜곡장에 빛의 파장이 짧아져 모든 것들이 푸르게 변한다.
현존하는 모든 물리 법칙이 파괴된다.
세계의 간섭조차 감히 어찌하지 못한다.
이 현상은, 존재가 발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초월했다.
그렇기에 이것은 이상하리만치 괴(怪)이했으며.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력(力)했고.
엉뚱하리만치 난(亂)해했으며.
기묘할 정도로 신(神)비했으니.
세상의 그 어떠한 개념으로도 설명이 불가한 무엇.
세상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는 무엇.
군자불어 괴력난신.
(君子不語 怪力亂神).
군자는 괴력난신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하여, 공자(孔子)께서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헤라클레스 신투술(神鬪術).
제 1형(第 一形).
괴력난신(怪力亂神).
* * *
분명.
릴리트는 인간 여자의 몸을 지배했다.
발악하는 행세가 애처롭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같잖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곧 있으면 제물의 몸을 차지하고 온전한 각성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뭐, 뭐야….】
릴리트는 어느샌가 밖으로 튕겨져 나가 있었다.
더 이상의 지배가 통하질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
소리조차 터져 나오지 못하는 괴이한 현상.
저 괴이한 현상이 지배의 권능을 갈가리 찢겨지고 있었다.
아니, 현상…?
릴리트는 이 개념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본디 현상이란, 본질이나 객체의 외면에 나타나는 상(象)을 의미한다.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 개념.
그것을 통칭하여 ‘현상(現象)’이라 정의한다.
그런데 지금.
───, ─────!
────────!!
설명할 수 없는, 인지할 수 없는 일들이 터지고 반복한다.
현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실로 괴이스러운 현상.
세상을 지배하고 그 안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는 괴현상.
저건… 그렇게밖에 설명이 불가했다.
하여, 괴현상 속.
어떤 한 존재를 마주했을 때.
흠칫.
릴리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엔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공포가 공포를 느끼는 것에 대한 모순을 자각하지 못했다.
【너…. 너…….】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온다.
두 눈으로 담고 있는 한 존재.
그래, 저건 한 존재였다.
모습은 인간이나 인간이 아니었다.
감각은 인간이라 말하나 인간이 아니었다.
악마의 본능조차 자극하는 치명적인 공포.
저건 도무지… 인간이라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 너, 뭐야… 방금 전이랑 다른─.】
말문이 채, 내뱉어지기도 전이었다.
빠아아악!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암전되며 정신이 뚝.
조금의 시간이 지나 시야가 회복된다.
끊어진 정신이 돌아오며 상황이 그제서야 인지된다.
어느샌가 릴리트의 몸은 뒤로 쏘아지고 있었다.
뒤이어 커허헉!
창백한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어, 어떻게···?】
아니, 대체 언제···?
이상하다. 너무도 이상─.
꽈아아앙!
릴리트의 몸이 거칠게 땅으로 쳐박혔다.
보이지가… 않았다.
그 어떠한 순간조차.
릴리트의 생각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시야.
어떤 한 존재가 서 있었다.
인간이되 인간일 수 없는 존재.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니,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였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한낱 인간이었다.
온전한 신(神)의 힘을 사용했으나 그럼에도 인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지금….
【네가… 네가 어떻게….】
감각 전체가 떠오르며, 릴리트의 얼굴로 뚜렷한 공포가 새겨졌다.
───, ─────!
────────!!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계속해서 터지고 반복한다.
그리하여 릴리트가 느끼는 힘.
릴리트의 전신을 짓누르는 존재감.
【아니야… 아니야…! 네가 어떻게… 네가 어떻게…!】
릴리트는 마구잡이로 손을 휘둘렀다.
【절대로 아니야!!】
사아아아아아아─!!
끝없는 어둠이 폭사하며 어둠의 세계가 펼쳐진다.
더욱 강대해진 어둠은 삽시간에 공간을 집어삼켜 갔다.
그리고.
꽈아아아앙─!
어둠의 세계가 일시에 찢겨진다.
단 한 번의 정권.
그 가벼운 동작에 펼쳐진 어둠의 세계가 산산이 깨어져 부서진다.
그리고 다시.
뻐어어어억─!
릴리트의 아래 쪽으로 둔탁한 굉음이 들려왔다.
시선을 내려 바라본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주르륵, 붉은 선혈이 입가를 비집으며 새어나온다.
대체 어느 틈에······?
주춤, 물러서는 발걸음.
생각은 이어지나, 그 끝에 닿을 수가 없다.
철퍼덕.
릴리트가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부조리…하다.
릴리트의 머릿속으로 스친 생각이었다.
이 힘은… 이 현상은….
너무도 부조리하다.
부조리할 정도로 강하다.
강하다…?
이게 강함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힘이던가?
그렇기에 이상하다. 말도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없다.
덥썩.
우악스러운 손길이 릴리트의 목을 움켜쥐었다.
【켁···! 케륵···!】
릴리트는 버둥버둥, 몸을 비틀었다.
손을 마구잡이로 할퀴며 저항했다.
그러나 의미가 없었다.
공포가 감각 사이를 파고들며 죽음을 윽박지른다.
그 어떠한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오직 하나.
【그럴 리가··· 케흑!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케륵!】
그럴 리가 없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나 느껴지는 이 힘.
이 힘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가짜가 아니다. 모조가 아니다.
조작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며.
허구 또한 아니다.
【너, 너는…!】
뻐어어어억─!
생각이 그 이상으로, 이어지질 않는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