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백선제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생각해 보라.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백선평의 지도 가르침이다.
13인의 영웅.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3명 중 한 명.
세계 각지에서 모든 이들이 가르침 받고 싶어 하는 꿈!
그런 존재의 가르침을 거절한다니…?
물론 시우가 검(劍)을 사용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무투술을 사용하는 헌터임은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그딴 문제가 아니었다.
보다 정확히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무투술이든, 도끼든.
창이든, 나발이든, 염병이든!
당장이라도 때려 치고 2차 전직을 해야 하는 문제였다.
한국의 6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S급 헌터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물어도 똑같은 답을 할 터였다.
2차 전직할 테니 백선평이 가르쳐만 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뭔….
“자네, 진짜 미친 겐가?”
백선제의 입에서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진짜로….
진짜 왜일까.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시우의 의지는 확고했다.
아니, 확고한 정도가 아니었다.
굳이? 혹은 내가 왜?
“지금 수련하는 것도 워낙 버거워서….”
시우의 표정은 정말로 그러했다.
조금 과장을 섞으면 잡상인의 제안 정도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시우는 그러한 심정이었다.
혹시 헤라클레스랑 싸워서 이길 수 있으십니까?
이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꾸역꾸역, 눌러 삼켰다.
물론 시우도 알고 있다.
백선평의 가르침은 쉬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헤라클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헤라클레스와 비교할 것은 못 되었다.
‘실압구독 때문에 시간도 안 나고.’
여러모로 백선평의 가르침은 필요 없었다.
그런 시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도레아, 그 할망구가 남긴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백선평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해 왔고.
“아, 아니…? 아아??”
백선제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릴 뿐이었다.
* * *
잠깐의 해프닝이 지나간 이후.
“내가 해 줄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백선평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병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십니까, 아버지?”
“정리를 해야 할 일이 있다. 네가 퇴원하기 전까지는 돌아올 것이니 선제, 너는 퇴원하는 즉시 본가로 오거라.”
이윽고 백선평이 다시 시우를 바라봤다.
“정말 나의 가르침이 필요 없느냐?”
그리고 다시금 물어오는 백선평이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설마하니 거절당할 줄은 몰랐던 것 모양인 듯 싶었다.
그런데 정말로 시우에게는 백선평의 가르침이 필요 없었다.
“제안은 감사드리나 저는 정말로 괜─.”
그러다 뚝.
시우는 내뱉던 말을 끊었다.
‘생각해 보니….’
그와 동시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생각.
여전히 시우에게는 백선평의 가르침이 필요 없었다.
‘채린 씨한테는 필요하려나?’
하지만 한채린한테는 백선평의 가르침이 상당히 유효할 것 같았다.
현재 한채린은 시우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시우가 검(劍)으로 가르치는 것에 한계가 있던 차였다.
‘검 쪽은 내가 영….’
시우는 무투 쪽에 특화되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한채린은 스스로의 태극(太極)을 얼추 완성시킨 상태였다.
그 때문에 릴리트의 지배에 저항할 수 있지 않았는가.
아무리 약화되고 봉인되어 있었다지만 릴리트는 갓튜브의 인물.
신(神)의 힘을 저항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채린의 태극(太極)은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다.
본인만의 태극(太極)을 검(劍)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이 부분은 내가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시우도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하지만 백선평이라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시우가 채워 주지 못한 부분을 가르칠 수 있었다.
‘다시 또 채린 씨가 표적이 될 수 있기도 하고.’
자세한 건 시우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던전에서 릴리트는 한채린의 몸을 지배하려 했었다.
붉은 그림자는 한채린을 두고 ‘제물’이라 했었다.
이를 미루어 보면 갓튜브와 판데모니움.
그 둘에게 있어 한채린은 중요한 존재다.
언제 또 한채린을 향한 위협이 다가올지 알 수 없다.
그때마다 시우가 한채린을 지켜줄 수는 없었다.
한채린 또한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길러야 했다.
무엇보다 한채린이 백선평에게 가르치면 시우에게도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시우와 한채린,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이거 대리 과외인가…?’
말이 좀 그랬지만 크흠.
조,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백선평이 허락할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잠시만요, 검선님.”
생각을 마친 시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말씀하신 지도 가르침 말입니다.”
“생각이 바뀐 것이냐?”
백선평은 대수롭지 않게 답해 왔다.
옆에 있던 백선제는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시우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괜찮으시면 저 말고, 채린 씨를 가르쳐 주시면 안 됩니까?”
그러자 뚝.
병실 안의 분위기가 기묘하게 흘러갔다.
백선평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선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시우를 보고 있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다른 이에게 양보한다고…?”
백선제는 시우를 정말 미친 사람 대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
“한태산의 손녀를 말하는 게냐?”
백선평의 말이 들려왔다.
“어라? SH그룹의 회장님을 아십니까?”
시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국에서 SH그룹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백선평이 13인의 영웅일지라도 일단은 한국인이다.
SH그룹의 회장, 한태산을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호칭을 SH그룹의 회장이 아닌 한태산이라 말하는 모습.
어째, 둘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스쳐 간 작은 인연이 있다.”
백선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드러나지 않은 선한 이들 중 침묵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이였지.”
시우는 한태산과 백선평.
둘의 인연이 어떠한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더하여 그런 한태산의 손녀인 한채린 또한 모르지 않는 것일까.
“...생각은 해 보겠다.”
백선평은 나지막히 답을 해 왔다.
동시에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은 해 보겠다’는 말.
“그 말씀은…?”
“네가 직접 그 아이를 내게 데려오거라.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
백선평은 그 말과 함께 휙.
등을 돌려 병실을 떠나갔다.
무언가 한차례 태풍이 휩쓸고 간 듯한 분위기가 병실에 내려앉았다.
“자네, 한채린 양이랑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 이미 부부 사이였던 건가?”
그 순간 들려온 백선제의 목소리.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의 지도 가르침을 한채린 양에게 양도하다니. 아무리 연인 사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러니 부부 사이가 아니고 뭐겠는가.”
“채린 씨랑 저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부부가 사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시우는 뭐라 한마디 하려다 에휴.
“그저 스승된 도리를 한 것뿐입니다.”
“스승?”
“제자한테 좋은 기회를 준 것 뿐이란 말씀입니다.”
“제자…?”
백선제가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한껏 망상하는 듯하더니.
“설마 키잡이었나?”
시우는 이걸 진짜 뭐라….
아니, 키잡은 뭔 놈의 키잡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나이 40 넘은 아저씨가 저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워 오는 건데?
“아니지, 이런 경우는 역키잡이라고 봐야하나? 으음….”
백선제는 뭐라 뭐라 혼자 중얼거렸다.
시우는 거기에 한마디 하려다 역시나 에휴.
그냥 내버려 두었다.
뭐라 말해 봤자 괜한 망상만 더 해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무튼.
시우는 가만히 생각에 잠기며 백선평의 이야기를 한 번 되뇌었다.
‘붉은 그림자가 13인의 영웅 중 한 명이었다라….’
이로써 붉은 그림자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해소되었냐.
그리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는 시우에게만은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었다.
백선평은 물론 다른 이들은 알 수 없는 의문.
‘붉은 그림자는 분명 갓튜브의 인물이었단 말이지….’
시우는 차분히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붉은 그림자가 갓튜브의 인물이라는 것.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붉은 그림자는 시우가 사용하는 신(神)의 힘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까.
모든 힘의 정체를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라도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갓튜브에 대해 모른다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붉은 그림자는 갓튜브의 인물이 확실하다.
적어도 갓튜브를 알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럼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일단 첫 번째.
‘붉은 그림자는 13인의 영웅이기 전에 갓튜브의 인물이었던가?’
투신(鬪神), 사두즈.
사두즈는 13인의 영웅이기 전에 갓튜브의 인물이었다.
한 마디로 갓튜브의 인물이 13인의 영웅이 된 것.
아니면 두 번째.
‘붉은 그림자가 된 이후에 갓튜브와 접촉한 것인가?’
사두즈일 때는 지구의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모종의 일로 갓튜브와 접촉했다.
그리고 갓튜브의 인물이 된 것.
어쩌면.
‘갓튜브와 접촉하고 난 뒤에 타락을 했다거나.’
그도 그럴 것이 백선평은 사람들의 배신이 사두즈를 광기로 이끈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말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사두즈의 타락이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 말을 생각하면….
갓튜브로 인해 사두즈가 타락했을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음….’
고민에 고민이 이어졌다.
사고가 이해할 수 없는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통찰력(S+).
기이한 힘이, 마주한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다.
‘...모르겠다.’
그러나 끝내 답을 도출할 수가 없었다.
일단 정보가 너무도 제한적이었다.
진실과 진실이 이어지는 정보의 공백이 너무나도 컸고 많았다.
이는 갓튜브를 알아야만 알 수 있는 정보.
백선평의 이야기로는 해소될 수 없는 정보였다.
‘아무래도 물어봐야겠는데.’
그렇기에 이건 갓튜브의 인물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음….
‘보나 마나 모르겠다고 하겠지.’
이건 안 봐도 비디오….
아니, 안 봐도 근육이었다.
따라서 시우가 물어볼 갓튜브의 인물은 헤라클레스가 아니었다.
‘지금쯤이면 사교계를 휘어잡았으려나.’
아도니스(Adonis).
아프로디테와 페르세포네의 치마폭에서 시우가 구해 준 갓튜브의 인물.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미남이자, 시우가 풀어 놓은 갓튜브의 정보원.
‘저번에 아도니스의 연락처를 저장했었던가….’
시우는 아도니스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 순간.
“자네, 무얼 하는 겐가?”
옆 침대에 있는 백선제가 물어 왔다.
백선제는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을 뭘 그리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는 겐가.”
“아, 그게… 잠깐, 생각 좀 하고 있었습니다.”
시우는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갓튜브의 영상과 소리는 오로지 시우만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이가 보기엔 검은 화면만 쳐다보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대놓고 갓튜브 영상을 보는 건 큰 상관은 없었다.
지금처럼 명상하고 있다, 생각 좀 하고 있다.
이렇게 대충 얼버무리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시우는 아도니스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야만 했다.
물론 아도니스의 말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우의 말은 아니지 않은가.
진짜…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 분명했다.
‘나가서 해야겠다.’
번거롭긴 했지만 괜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었다.
시우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음?”
그러자 백선제의 고개가 좌로 기울어졌다.
시우는 주섬주섬, 갓튜브의 스마트폰을 챙기며 말했다.
“잠시 산책 좀 하려고요.”
“그 몸으로… 말인가?”
백선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어왔다.
하기사, 말이 안 되긴 했다.
깨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산책을 한단 말인가.
실제로도 여기저기 몸이 들쑤셨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었다.
“누워만 있는 것보다 조금씩 움직이는 게 전 더 좋아서요.”
아도니스랑 대화하려면 말이다.
“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네만.”
“무리하지 않고 움직이면 괜찮을 겁니다.”
“아니, 아니. 몸 상태 때문에 말하는 게 아니네. 물론 몸 상태도 그렇긴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백선제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사람들이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거거든.”
“...예?”
시우는 저게 뭔 소린가 싶었다.
그런 시우의 모습에 백선제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자네는 자네가 한 일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겐가?”
“제가 한 일이요?”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백선제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한편 선선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기, 창문 밖을 한 번 봐 보게.”
백선제는 손을 들어 병실의 창문을 가리켰다.
특특실 병실에 걸맞게 한쪽 벽면이 통으로 된 창문.
시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보인 것은 무수한 인파였다.
“응?”
시우는 뭔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SH병원을 빼곡히 채운 무수한 인파.
그리고 시찰국의 가더들이 인파를 통제하고 있었다.
“무슨…?”
하는 생각도 잠시.
“어?! 저기! 맹시우 헌터다!”
“응? 어디, 어디?”
사람들 사이로 크나큰 동요가 일었다.
이윽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시우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비치는 시우를 바라봄에.
“진짜 맹시우 헌터다!”
“헌터님! 여기 한 번만 봐 주세요!”
“YBN 기자 정민지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찰칵 찰칵 찰칵!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시우를 향해 터져 나왔다.
거리가 상당히 멀었음에도 카메라 플래시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뭐죠?”
시우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그런 시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뭐긴 뭐겠는가.”
백선제는 선선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S+급 헌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인 것이지.”
“S+급 헌터…?
찰칵찰칵!
“검선께서 공인한 세계 최초 S+급 헌터가 되신 소감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검선님을 움직인 것이 맹시우 헌터님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멍한 정신 사이로 들려오는 수많은 외침들.
“어…라?”
시우는 정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싶었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