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SH병원 옥상.
테라스처럼 꾸며진 병원의 옥상엔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바람을 쐬고 있었다.
시우는 슬쩍, 눈치를 살핀 뒤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한적하다기보다는 사람이 올 수 없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시야 아래로 펼쳐진 아찔한 낭떠러지.
20층이 넘는 옥상의 높이는 발을 삐끗했다간 그대로 갓튜브행 열차로 직행이었다.
시우는 차분히 균형을 잡으며 자세를 안정시켰다.
그 순간.
[꺼내 줘!]
품속에서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공간 주머니에 넣기엔 번거로워 환자복 안주머니에 넣어 놓았더니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진짜 갇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단지 스마트폰 화면만 안 보일 뿐인데 왜─.
[찌찌밖에 안 보이잖아!]
…어째, 카메라 각도가 절묘했던 모양이었다.
시우는 가슴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갓튜브의 스마트폰을 꺼내었다.
[후아!]
그제야 헤라클레스가 살겠다는 숨을 내뱉었다.
[내 한평생 남자 찌찌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줄은…!]
헤라클레스는 소름이 끼치는지 전신의 근육을 파르르, 떨어 댔다.
시우가 생각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긴 했다.
그런데 뭘 하면 저렇게 전신의 근육을 파르르, 떨어 댈 수 있는 걸까.
시우는 괜시리 감탄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뭐야?]
이윽고 헤라클레스가 물어 왔다.
충격이 남아 있는지 헤라클레스의 인상은 와락, 일그러져 있었다.
[왜 갑자기 번거롭게 이런 데까지 와서 연락을 받는 건데? 너 옷차림은 또 왜 그래?]
“그게 좀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요.”
[복잡한 사정?]
“병실에서는 받을 수가 없고, 밖에서 받자니 사람들이 저만 보면 자꾸 쫓아와서 말이에요.”
[사람들이 너만 보면 쫓아와? 너 설마…!]
헤라클레스가 퍼뜩, 생각났다는 듯 소리쳤다.
[드디어 빚쟁이들한테 쫓기는 거냐? 도망치다가 끝내 두들겨 맞고 병원에 입원한 거고?]
“그런 거 아닙니다.”
시우는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리고 왜 ‘드디어’인 건데?
[그럼 왜?]
이어진 헤라클레스의 물음.
시우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해 주었다.
던전에서 케르베로스와 조우했던 것.
릴리트와의 혈전.
마지막으로 붉은 그림자와의 싸움까지.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음….]
헤라클레스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그리고 옴뇸뇸.
헤라클레스가 입안의 무언가를 씹어 먹었다.
“...아까부터 뭘 자꾸 드시는 거예요?”
이야기 중간쯤부터 자꾸 뭘 먹고 있었다.
팝콘을 먹듯이 헤라클레스는 무언가를 먹으며 시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웅? 아, 이겅?]
옴뇸뇸.
[프로틴 바. 운동하고 바로 너한테 연락한 거라 아직 단백질 보충을 못 해 줬거든.]
꿀꺽.
[시간 지나기 전에 빨리 단백질 채워 줘야 근 손실이 나지 않는단 말씀!]
그러더니 헤라클레스가 다시 주섬주섬.
뿔피리처럼 생긴 고동 안쪽에서 프로틴 바를 더 꺼내었다.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
원하는 것을 무한정 꺼낼 수 있는 일명 돈 복사 버그.
다름 아닌 하데스에게서 감사 선물로 받은 개사기 아이템이었다.
“그거 원래 제 거 아닌가요?”
또한 원래 시우의 것이어야 할 아이템이었다.
[어차피 네가 못 쓰잖아.]
우르르르르.
헤라클레스는 코르누코피아에서 프로틴 바를 왕창 쏟아 내었다.
그리고는 옴뇸뇸.
입 안으로 프로틴 바를 마구잡이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래, 저건 먹는 게 아니라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마치 고래가 크릴새우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근육 고래가 프로틴 바를 빨아 들이고 있었다.
얼마나 운동을 해야 저 많은 단백질을 필요로 하는 걸까.
‘데드리프트로 34메가톤을 치는 양반이긴 하다만.’
그러니까 3,400만 톤의 TNT 환산 폭발 위력을 데드리프트로 발생시키는 괴물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저 정도의 단백질은 응당 보충해 줘야 했다.
또한 코르누코피아에서 꺼낸 음식은 완벽한 영양 균형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 덕분인지 전보다 더욱 벌크업 된 헤라클레스였다.
지금의 헤라클레스라면 100메가톤도 어찌 가능하지 않을까.
이제는 근육 고래라는 말도 옳지 않았다.
근육 괴생명체.
더 이상 ‘저것’을 정의 내릴 개념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콰아아.
헤라클레스가 프로틴 바를 열심히 빨아들이며 말했다.
[그 붉은 그림자란 머시기가 여기, 갓튜브의 인물일 것 같다는 말이지?]
“네, 제 생각에는 그래요. 아니, 확신해요.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세요?”
[음….]
헤라클레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다 정확히는 프로틴 바를 열심히 빨아들였다.
[그 붉은 그림자라는 놈의 전투 방식을 자세히 설명해 봐.]
뜬금없다 생각되는 질문이었으나 시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갓튜브의 인물들은 본인만의 신(神)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신(神)의 힘은 해당 인물을 대표하는 고유성.
하여, 붉은 그림자가 갓튜브의 인물이라면 붉은 그림자 역시 본인만의 고유성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전투에서 그 고유성은 반드시라고 할 만큼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붉은 그림자 역시 시우가 사용하는 힘의 정체를 파악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역으로도 고유성을 파악해 붉은 그림자의 정체 또한 알 수 있었다.
“그게 말이죠….”
시우는 붉은 그림자와의 전투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언령과 더불어 특징이 될 만한 것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설명해 주었다.
[음….]
헤라클레스는 오른손을 턱으로 가져다 대었다.
이번엔 진짜로 생각에 잠긴 것인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이젠 팔이 꺾이는 것조차 안 되네.’
한껏 벌크업 된 근육 괴생명체의 이두근은 그야말로 미쳐 있었다.
이제는 정말 근육이 말만 하는 것만 남아 있었다.
[모르겠다.]
이윽고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물어본 걸까.
사실 뭐, 별 기대도 안 하긴 했다.
그리고 마냥 정보를 얻지 못한 건 아니었다.
헤라클레스의 ‘모르겠다’라는 답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적어도 헤라클레스가 알고 있는 인물은 아닌 모양이네.’
그러니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은 아니란 뜻과도 같았다.
붉은 그림자가 그리스 로마 신화 인물이었다면 헤라클레스가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북유럽 신화 인물까지도 배제할 수 있으려나.’
시우는 붉은 그림자의 정체에 대한 범주를 좁힐 수 있었다.
물론 붉은 그림자가 갓튜브의 인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두 번째 가능성.
13인의 영웅, 사두즈가 갓튜브와 ‘접촉’한 것이라면 애시당초 붉은 그림자는 갓튜브의 인물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그러면 헤라클레스가 붉은 그림자를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너. 괴력난신을 사용하고 용케 살아 있네?]
이윽고 헤라클레스가 다시 물어 왔다.
시우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답했다.
“아, 그게.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아…? 내 괴력난신이 운이 좋다는 말로 설명이 되는 거였나?]
헤라클레스는 ‘뭐, 이딴 녀석이 다 있나’ 싶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어쩌랴.
정말로 운이 좋았던 것을.
[그럼 너 숙련도 엄청 많이 올랐겠는데? 얼마나 올랐어?]
“어… 그거 아직 확인을 안 해 봤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깨어나자마자 워낙에 정신이 없었다.
숙련도 확인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었다.
[한번 확인해 봐.]
헤라클레스가 기대된다는 어투로 말했다.
헤라클레스가 저렇게 말하니 내심 시우도 기대가 되었다.
“잠시만요….”
시우는 화면 속, 헤라클레스의 몸을 이곳저곳 터치했다.
그러니까 갓튜브의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꾹, 꾸꾹.
<통찰력(S+) 숙련도 100%[+10.2%]>
<괴력[怪力](SS) 숙련도 94.35%[+13.6%]>
<신의술[神醫術](S+) 숙련도 92.755%[+11.7%]>
<신[神]의 야금술(SS) 숙련도 76.73%[+1.1%]>
<헤라클레스 신투술[神鬪術](SSS) 숙련도 55.61%[+21.89%]>
<군자심[君子心] - 인의예지[仁義禮知](SSS) 숙련도 55.23%[+12.21%]>
<태극[太極](SS) 숙련도 76.6%[+34.5%]>
<초신속[超迅速](SS+) 숙련도 51.78%[+24.3%]>
<현실조작[現實操作](SSS) 숙련도 36.55%[+10.7%]>
<맹독[猛毒](SS+) 숙련도 44.3%[+7.5%]>
<뇌령[雷領](SS+) 숙련도 37.4%[+24.2%]>
<용마혼[龍魔魂](SS) 숙련도 41%[+26.8%]>
“미친!”
시우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너무도 큰소리에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들렸을까?
슬쩍, 확인해 봤지만 다행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시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인했다.
융합의 힘을 다루고 괴력난신(怪力亂神)까지 사용했기 때문일까.
죽을 고비를 넘긴 효과인 것일까.
숙련도가 가히 폭발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평균 16.5% 가량의 숙련도가 말이 된단 말인가!
무엇보다 통찰력(S+)의 숙련도는 무려 100%를 달성해 있었다!
[왜 왜? 어떤데? 나도 보여 줘.]
화면 너머의 근육 괴생명체가 꿈틀거렸다.
시우는 화면 공유를 통해 보고 있는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와!!]
헤라클레스 또한 두 눈을 부릅, 뜨며 놀라 보였다.
[내 괴력은 94%에 신투술은 무려 55%?]
보다 정확히는 믿을 수 없다는 경악을 떠올리고 있었다.
종말마저 찢어발긴 이가 저런 표정을 지으니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올라 있는 숙련도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
“미친!!”
[...와!!]
번갈아 들려오는 시우와 헤라클레스의 감탄.
“미친!!”
[...와!!]
그 돌림 노래와도 같은 감탄은 한동안 이어졌다.
* * *
한동안 이어진 돌림 노래와도 같은 감탄.
[그건 그렇고….]
먼저 정신을 차린 헤라클레스가 크흠, 큼 헛기침을 해 보이며 물었다.
[걔는 어떻게 되었어?]
“...걔요?”
[케르베로스 말이야. 네 차원에 있었다며.]
“아, 개요.”
그 아이가 줄어든 말인 ‘걔’가 아니라 멍멍이 ‘개’를 말한 모양이었다.
걔와 개의 차이.
갓튜브에서는 이 미묘한 언어적 유희도 알맞게 소통이 된다는 건가.
하긴, 그러니까 클레오파트라가 시덥잖은 개그에 자지러지겠지.
지금 생각하면 갓튜브의 의사소통 방식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글쎄요. 아마 집에 있지 않을까요?”
[집? 누구 집? 하데스 님의 집?]
헤라클레스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금방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하핫! 너도 케르베로스를 두들겨 패서 지하 세계로 돌려보낸 거야?]
헤라클레스는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지하 세계의 문지기, 케르베로스.
헤라클레스의 12 과업 중 마지막 12번째 과업이 바로 케르베로스를 생포해 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가히 불가능한 과업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지하 세계로 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지하 세계는 오로지 죽은 자들만 출입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제우스조차 명계 출입은 자유롭지 않았다.
어찌저찌 지하 세계로 입장한다 해도 문제가 남아 있었다.
케르베로스는 티폰의 자식임과 동시에 네메아의 사자와 히드라의 남매.
생포는 커녕 맞상대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순수한 강함으로 따지면 네메아의 사자보다 케르베로스가 더 강했지 아마?]
그런데 헤라클레스는 그런 케르베로스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하데스는 정말 어처구니 없어 했다고….
뭐, 아무튼.
앞선 11가지의 과업을 수행하며 강해질 대로 강해진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는 케르베로스를 그야말로 개패 듯이 팬 다음 지하 세계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그리고 이때가 유일했다.
케르베로스의 생애를 통틀어 지상으로 올라온 때가 바로 이때가 유일했다.
그렇게 12 과업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된 헤라클레스.
[하데스 님을 내세우며 하도 살려달라 빌길래, 불쌍해서 그냥 돌려보내 주었지.]
하데스는 헤라클레스의 큰아버지 격인 존재였다.
그런 하데스의 애완견을 함부로 죽일 수는 없는 노릇.
해서 케르베로스가 유일했다.
티폰의 자식들 중 살아남은 존재는 케르베로스가 유일했다.
뭐, 어쨌든.
[너도 케르베로스를 두들겨 패서 지하 세계로 돌려보냈구나? 내 힘을 사용하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 암!]
그러면서 헤라클레스가 근육 뿜뿜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꽈드드드득!!
역시.
저 근육 괴생명체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시우는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러자 멈칫.
근육 괴생명체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헤라클레스의 모습.
“하데스 님의 집이 아니라, 지금 저희 집에 있을걸요.”
[......??]
뿜뿜하던 헤라클레스의 근육들이 물음표 모양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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