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206화 (206/250)

205화.

크나큰 충격과 함께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저택 안에 있는 사람 중 두 눈을 부릅, 뜨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장 먼저 정적을 깬 건 다름 아닌 한관국이었다.

한관국의 표정은 경악과 충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민아가… 민아가 회장이라니요? 그,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직 경영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찌…!”

“경영 싸움은 끝났다.”

한태산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설령 끝나지 않았더라도, 이 이상의 싸움은 내가 허락하지 않겠다.”

“이,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 와 그게 무슨!”

한관국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제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아십니까! 여기까지 오기 위해 제가 얼마나…!”

“안다.”

“아니요! 아버지는 모르십니다! 알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

“아니, 잘 알고 있다.

한관국을 바라보는 한태산의 표정은 어딘가 씁쓸해져 있었다.

“알기에 이런 결정을 한 것이다.”

단호한 한태산의 답에 한관국이 이를 까득, 씹었다.

이윽고 한태산에게 반기를 들며 소리쳤다.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순순히 물러날 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관국아.”

“웃기지 마십시오! 저는…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윽고 한관국이 도망치듯 저택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한민아가 그런 한관국을 황급히 잡으려 움직였다.

그러나 한태산이 그런 한민아를 막아섰다.

“아버지…?”

그 순간.

“고, 고 실장?”

밖에서 당황하는 한관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창문.

저택 정문 앞엔 회장, 한태산의 직속 비서 고석훈이 한관국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한관국 이사님.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이사님을 모시겠습니다.”

고석훈은 뒤쪽으로 슬쩍, 뒤로 눈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대기 중이던 검은 복장의 경호원들이 한관국을 양옆으로 붙잡았다.

“무, 무슨 짓이야! 이거 놔! 고 실장 네가 감히 나를…!”

한관국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붙잡힌 몸을 발버둥 쳤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이윽고 고석훈과 함께 한관국이 정문 밖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찰국의 가더시라고.”

그리고 들려온 한태산의 말.

어느샌가 한태산이 이민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네. 그렇습니다.”

이민정은 그때서야 멍한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서울 지부 시찰국 가더 4팀장, 이민정이라고 합니다.”

한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관국이를 부탁해도 되겠소?”

“하지만….”

이민정은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민정의 모습에 한태산이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리 못난 아들놈이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라오. 아비로서 모질게 대할 수가 없더구려.”

“......”

“허튼짓을 한다면 무력으로라도 제압해 주시길 부탁드리오.”

이민정은 한태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진심을 이민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민정은 그렇게 저택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저택에는 한태산과 한민아, 둘만이 남게 되었다.

“......”

그리고 한민아는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냥, 그냥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미안하구나, 민아야. 이렇게밖에 해 줄 것이 없는 못난 애비라서.”

이윽고 한태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민아는 멍하니 한태산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유가… 무엇이에요?”

“민아, 네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이유 말이더냐.”

한민아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한태산이 직접 나서 한관국을 체포한 것은 의외였다.

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기 회장이 왜 한민아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태산이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의문이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병이 든 것도 아니고, 총기를 잃은 것도 아니었다.

한태산은 정정했다.

죄가 있다고 하기엔 이번 서울의 재앙 사태에 관여한 건 오로지 한관국뿐.

해서 한민아는 물었고.

“오래 전, 내가 다짐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한태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다. 그러나 젊은 나는 그런 힘이 없었지.”

한태산이라고 처음부터 권력자였던 건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 한태산의 시작 또한 힘없고 미약했다.

“나는 다른 힘 있는 이들을 시기했단다.”

젊은 한태산은 가지고 있지 않은 힘 있는 이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힘을 의미하지 않았다.

태생이라는 힘.

재능이라는 힘.

노력이라는 힘.

한태산은 일종의 질투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 질투라는 감정을 그리 나쁘게 여기지 않았단다. 질투는 기본적으로 내가 저 사람보다 대단해지고 싶다는 감정의 일환이니 말이다.”

“......”

“그러니 내가 더 성장해서, 내가 더 대단해져서. 그 위에 서고 싶다는 긍정적인 동기로 받아들였지.”

그렇게 한태산은 악착같이 노력했다.

질투를 원동력 삼아 위에 있는 자들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히게 되는 때가 오더구나.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못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더구나. 그때 내가 행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었다.”

더 올라가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거나.

“나보다 위에 있는 이들을 끌어내리거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태산은 그러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 위에 있는 상대방을 끌어내리고자 했다.

썩은 뿌리를 도려내는 것이라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위에 있는 이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어내렸다.

나아가 치고 올라오는 이들을 올라오지 못하게 짓밟았다.

“이 자리는 그렇게 올라온 게야.”

한태산은 정상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자신은 추악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젊었을 때의 꿈과 신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세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는 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게 되었지.”

질투라는 감정을 부끄러워하게 된 것은 말이다.

꿈을 꾸는 젊은이들을 질투했다.

그들을 볼 적이면 젊은 날의 자신이 떠올라 스스로를 괴롭혔다.

질투는 어느샌가 성장 동기가 아니라 추악한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있었다.

“질투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방향이 어긋남을 부끄러워 했어야했거늘….”

그리고 얼마 전, 백선평과의 대화.

그때서야 한태산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자 다짐했던 그 날의 약속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만일 내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아닌,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려 한다면.”

애써 외면했던 젊은 날의 다짐.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나의 한계이자, 그때가 바로 꿈을 접어야 할 시기라는 것을.”

그렇게 한태산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그리고 한민아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나긴 정적이 이어졌다.

그 긴 침묵 속에서 두 부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왜… 저인 거예요?”

한민아가 다시 한태산에게 물었다.

“민아, 너는 나와 닮지 않았으니까.”

한태산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불리한 환경과 싸움 속에서도 민아, 너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다.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 네 가치를 증명하려 했지.”

“......”

“너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더구나.”

한태산은 한민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흐려진 두 눈 사이로 옛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젊었을 적, 세상을 바꾸고자 악착같이 노력했던 한태산.

그러나 한 개인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었다.

되려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한태산도 변해 버릴 뿐이었다.

그렇기에 불가능하다.

세상을 바꾼다는 일 따위는 동화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도 보라.

한태산은 실패했다.

백선평 또한 실패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태산, 개인의 실패일 뿐이다.

한태산이 품었던 뜻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니 그 뜻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그 뜻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무한히 이어 나간다면.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세상 또한, 끝내 바뀌지 않을까.

우공이산(愚公移山).

90에 닿은 어리석은 노인이 거대한 산을 옮긴 것처럼 말이다.

바위를 뚫는 건 쏟아지는 폭포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꾸준히 떨어지는 물방울.

“민아, 너라면 내가 뚫어 내지 못한 바위를 뚫어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구나.”

한태산은 말했고.

“......”

한민아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꽤나 기나긴 정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간의 정적이 이어졌을까.

“관국이가 행한 사실이 드러나면 SH그룹은 크게 휘청거릴 것이다. 세상의 질타가 이어질 테지.”

한태산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민아는 긍정도, 부정도 해 보이지 않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나의 은퇴는 그 일에 대한 책임으로 발표가 될 것이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SH그룹을 향한 질타가 사그라들 것이다.”

한태산은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은 밝지 못했다.

그의 말마따나 ‘조금이나마’에 지나지 않음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네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구나. 미안하다 민아야.”

말을 내뱉는 한태산의 표정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처지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부끄럽다만, 한 가지만 더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그리고 이어진 한태산의 말.

한민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윽고 한태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민이와 정진이를 내치지 말고 적당히 먹고살게끔만 해 줄 수 있겠느냐.”

한태산의 다른 두 아들이자 한민아의 오빠, 한재민과 한정진.

“그 둘은 이번 서울의 재앙 사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더구나. 물론 그 전에 관국이에게 휩쓸려 네게 못된 짓을 하긴 했다만… 혈육의 정을 빌어 일말의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있겠느냐.”

“......”

한민아는 차마 그러겠다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한태산이 말한 혈육의 정.

둘에 대한 혈육의 정이 한민아에게는 없었으니까.

재벌가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한민아가 혈육의 정을 느끼는 존재는 고작 셋뿐이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채린의 아버지, 한도준.

한도준의 딸이자 한민아의 조카, 한채린.

“모두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다. 네게는 염치없지만 이 애비의 얼굴을 봐서라도 내치지만 말아 주면 안 되겠느냐.”

그리고 눈앞의 아버지, 한태산.

한태산은 간곡히 한민아에게 청했다.

솔직히… 그냥 명령을 내리면 그만이긴 했다.

아니면 회장직을 물려주는 조건으로 달아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한태산은 그러지 않았다.

명령과 조건이 아닌 부탁을 해 왔다.

SH그룹의 회장이 아닌, 아버지 한태산으로서 말이다.

그 때문일까.

“...그럴게요.”

한민아는 결국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구나.”

한태산은 한민아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등을 돌려 저택을 떠나갔다.

대한민국 정계와 재계를 움켜쥐고 있던 거물의 은퇴.

이는 새로운 세대의 도래일지.

아니면 몰락하는 세대의 발악일지.

그 반향이 어떠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 * *

미납된 구독료로 인한 어질어질한 정신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방법을 생각해야 해.”

시우는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러고 있는다고 달라질 현실이 아니다.

한숨만 푹푹, 내쉰다고 해서 없던 돈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시우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떠올렸다.

하여, 제갈공명의 통찰력(S+).

기이한 힘이 마주한 현상의 본질을 꿰뚫기는 개뿔이 무슨!

“하아….”

저 많은 돈을 지금 당장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아무리 통찰력(S+)이라고 없던 돈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그것이 가능한 건 오로지 돈 복사 버그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시우가 사용할 수 없었다.

재앙의 땡강은 차치하고서라도 시우가 있는 곳으로 가져올 수가 없었다.

또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하데스에게 돌려줘야만 했다.

“이러면….”

방법이 없었다.

한두 푼이라면 모를까.

미납된 480억.

클레오파트라 채널의 구독료 640억.

도합 1,120억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없었─.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네만….”

일순간 한쪽에서 노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건 익숙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목소리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시야.

그곳엔 역시나 익숙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얼굴이 보였다.

“회장님…?”

다름 아닌 SH그룹의 회장, 한태산.

그가 시우의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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