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이민정과 한민아가 떠나가고 난 VVIP의 병실.
홀로 남은 채린은 몸을 뒤척거렸다.
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눈을 감을 때면 아까 전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맹시우… 헌터님….’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이민정의 모습.
관심이 있는 남자가 있냐는 물음에 대한 이민정의 답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렇기에 채린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저 말이 신경 쓰이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뿐인 일이지 않은가.
채린이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
채린은 머릿속을 헤집는 생각에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아파 왔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혹시 몸에 어디가 잘못 되기라도 한 걸까.
어쩌면 릴리트의 지배를 저항하는 과정에서 잘못되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 아마 그런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불가했다.
아무래도 정밀 검사를 다시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채린은 천천히 침실에서 일어났다.
자꾸만 뒤척거린 탓인지 환자복의 단추가 몇 개 풀어헤쳐져 있었다.
채린은 풀어진 단추를 단정히 맺고는 신발을 신었다.
그 순간.
“어머, 벌써 소식을 들으신 거예요?”
병실 안으로 들어오던 간호사가 채린을 보고 말했다.
채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소식이요?”
“회장님께서 맹시우 헌터님 병실에 있다는 소식이요.”
“할아버지가 시우 씨 병실에 계신다고요?”
“네. 그래서 지금 회장님 만나러 가시려던 거 아니셨어요?”
간호사가 나갈 채비를 하는 채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아요.”
채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실 밖을 나섰다.
나서는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정밀 검사실이 아니었다.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벌써 잊어버렸다.
심장이 짓눌리는 것만 같았던 통증 또한 싹 사라져 있었다.
묘한 설렘만이 가득했다.
채린은 순식간에 시우의 병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할아버지, 한태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우와 같은 병실을 쓰는 백선제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어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우만이 병실에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여기에 계신다고 들어서.”
채린은 그렇게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시우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
왜인지 시우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시우의 눈을 바라볼 때면 몸이 달아오르며 숨이 가빠졌다.
어질한 정신.
머리가 너무나도 뜨거웠다.
아니, 머리뿐만이 아니었다.
목, 어깨, 팔, 다리, 가슴.
온몸을 불길로 지진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건만….
“하윽…!”
채린은 끝내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거칠어진 호흡에는 입김이 같이 뿜어져 나왔다.
“하아…! 하아…!”
가빠진 호흡으로 뜨거운 입김이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채린은 알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채린 씨?”
시우가 화들짝 놀라 한채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왜일까.
“하윽…!”
시우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채린의 상태는 더욱 이상해져 갔다.
달아오른 몸의 열기로 혈관이 익어 버릴 것만 같았다.
폭발하듯 방망이질 치는 심장의 고동에 몸 전체가 들썩 거렸다.
“가, 가까이… 오지…. 하윽!”
채린은 말을 끝까지 내뱉을 수가 없었다.
몸이…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이건 마치… 그래.
릴리트에게 몸의 지배권을 빼앗겼을 때와 그 느낌이 비슷했다.
“채린 씨 괜찮으세요?”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시우가 채린의 상태를 살폈다.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요?”
채린의 상태를 확인한 시우가 놀라 소리쳤다.
“기다리세요. 제가 지금 의사를 불러올게요.”
시우는 다급히 몸을 돌렸지만 채린이 시우의 소매를 꼭, 붙잡았다.
“잠깐… 잠깐만요….”
이성의 끈이 끊어질 듯이 아려왔다.
이러는 이유를 채린도 알 수가 없었다.
“채린 씨…?”
“가만히…, 가만히…, 있어… 주세요.”
채린은 붙잡은 시우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강인한 시우의 힘에 채린이 되려 시우 쪽으로 끌려갔다.
채린은 얼떨결에 시우의 품에 안겨 버렸다.
툭.
채린이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채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시우를 바라봤다.
이성이 끊어진 몸은 오로지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심장이… 귓가에 있는 것처럼 시끄럽다.
채린은 시우의 목을 휘감듯이 감싸 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얼굴을 시우와 포개었다.
끊어진 이성이 대체 무슨 짓이냐며 소리쳐 왔다.
당장이라도 그만두라며 난리를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끊어져 버린 탓에 채린은 이성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채린은 두 눈을 감았다.
감싸 안은 시우의 목을 더욱 강하게 끌어 당겼다.
그리하여 채린과 시우의 입술이 맞닿으려던 찰나.
달칵.
“헛.”
갑자기 병실의 문이 열리며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뜬 두 눈.
고개를 돌려 바라본 병실 문 앞엔 시찰국장, 백선제가 서 있었다.
백선제는 문 앞에서 서서 굳어져 있었다.
석화 마법을 맞은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하던 거 계속하게나.”
백선제가 황급히 병실 문을 닫았다.
* * *
“...핫!”
품에 안긴 한채린이 소리쳤다.
정확히는 품에 안겨 있는 한채린이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흐리멍텅하던 한채린의 눈빛에 초점이 바로 잡혔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입술이 맞닿는 거리.
뜨거운 한채린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시우와 한채린의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화악!
한채린이 황급히 시우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타타닥.
한채린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시우가 붙잡을 틈도 없었다.
한채린은 헤르메스의 초신속[超迅速](SS+)에 버금갈 정도로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어…, 어어?”
시우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몸은 불길로 지진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윽고 달칵.
다시 병실 문이 열리며 백선제가 멋쩍게 들어왔다.
“...미안하네.”
백선제가 석고대죄를 하듯 사과를 건넸다.
평소라면 뭐가 미안하냐며 고개를 저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왜일까.
“......”
시우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굉장한 어색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런 시우의 모습 때문일까.
“그런데 자네, 한채린 양이랑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백선제가 묘한 표정으로 지으며 물어 왔다.
시우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오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런데 방금 내가 본 건 누가 봐도 오해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하기엔, 이번엔 충분히 저항할 수 있지 않았나.”
시우는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긴 했으니까.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를 않아서….”
마치 몸의 통제권을 빼앗긴 것만 같았다.
꼭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잠깐.
‘이거 설마, 매혹의 힘인 건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한채린의 행동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얼음 덩어리 같은 애가 저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아마 백선제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그걸 넘어서….
크흠.
시우는 헛기침과 함께 고개를 거세게 흔들었다.
역시나 클레오파트라의 매혹[魅惑](SR)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한테도 적용되면 어쩌자는 거야?’
이거 설마 대상을 가리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 실로 위험한 힘이었다.
아니, 끔찍한 힘이었다.
시우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 백선제에게 물었다.
“그런데 국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음? 내가 안 좋을 게 뭐가 있겠나. 달달해서 이가 썩을 것 같은 것만 빼면 괜찮다만.”
백선제는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보아하니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모를 일.
“저를 보면 가슴이 떨린다던가. 몸이 달아오른다던가 하지는 않으신 거죠?”
“자네, 제정신인가?”
그러자 백선제가 정색을 하며 답했다.
일견 살기마저 느껴지는 것이 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대상을 가리기는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한테는 적용이 되었단 말이지.’
이 말은 즉.
시우의 정신력인 공자의 군자심[君子心](SSS)을 뚫어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하여, SR등급이라는 처음 보는 등급.
‘뭐가 어떻게 된 힘인 건지 원.’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 힘의 주인인 클레오파트라처럼 말이다.
‘...에이, 모르겠다.’
시우는 금방 생각을 털어 내었다.
메커니즘을 알아낼 필요는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어떻게 급한 불을 끄기는 했네.’
시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납된 구독료.
클레오파트라 채널의 구독.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급한 불을 끈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 구독료 결제일이 언제더라….’
조만간 구독료 결제일이 또 다가올 테니까!
그래도 다행이라면 여유가 없지는 않았다.
한태산에게 받은 2,000억이 있었으니까.
과한 지출이 있긴 했지만 남은 돈 역시 많았다.
시우는 남은 잔고를 확인했다.
[계좌 잔고] - 88,034,552,452₩
무려 880억 하고도 3,400만 원.
‘다음 달에 내야 하는 멤버십 구독료가 얼마였지.’
제갈공명, 헤라클레스, 헤파이스토스, 헤르메스.
이 넷은 구독권을 쓰는 터라 구독료가 들지 않았다.
그동안 구독료가 필요했던 채널은 화타, 공자, 장삼봉, 이시스, 히드라, 토르, 청룡 채널.
여기까지 더한 금액이 631억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추가된 클레오파트라 구독료 640억을 더하면….
‘1,271억….’
정신이 나가다 못해 미쳐 버린 구독료였다.
아니, 미쳤다는 말로도 온전히 표현이 불가했다.
그리고 이 말은 즉.
‘모자라…?’
현재 남은 잔고가 모자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런데 이 무슨 염병할 소릴까.
아니, 염병할은 무슨 염병할.
염병도 저런 소리는 안 한다.
그러니까 염병이 뜻하는 의미인 장티푸스균.
장티푸스균도 저런 소리는 안 한다!
“진짜 지랄하지 마!!”
시우는 저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가, 갑자기 왜 소리치는가.”
그러자 백선제가 흠칫! 몸을 떨어 보였다.
“한채린 양과의 좋은 시간을 방해한 건 내 정말 사죄하네. 난 정말 몰랐어.”
그리고는 대역죄인처럼 사죄하기 시작했다.
“정 뭐하면 내가 한채린 양과 병실을 바꿔 줄 수…. 아, 아니! 오해 말게! 내가 민아 씨랑 같은 병실을 쓰고 싶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네!”
이윽고 백선제가 저 혼자 뭐라 뭐라 소리쳤다.
하지만 시우는 듣지 않았다.
그 어떠한 소리도 시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이런 개─!’
치가 떨리는 분노가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후우…!’
하지만 시우는 심호흡을 내뱉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벌지 않았는가.
‘...돈을 벌어야 해.’
한태산의 2,000억은 급한 불을 끈 것에 지나지 않다.
결국은 매달 구독료를 감당할 돈을 벌어야만 했다.
시우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실압구독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구독을 압축하는 헤라클레스의 운동법.
이는 빠져나가는 구독료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었다.
그리고 현재로서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어찌할 수는 없어.’
헤라클레스의 기강을 잡는 문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지금 당장 실압구독을 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한두 달 내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실압구독에만 집중하다가 구독료가 밀려 버리기라도 해 봐라.
그럼 멤버십 혜택이 주르륵, 일시 정지될 터.
그야말로 낭패였다.
그러니 실압구독은 패스.
지금은 최소 몇 달은 버틸 금액을 저축해 놔야 했다.
‘유투브 수익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채린의 과외비 역시 마찬가지다.
200억이란 거금이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마오타오 기업의 수수료는….
‘가불을 받아 버렸고.’
또 가불해 달라 하기엔 좀 그랬다.
‘무엇보다 연간 5,400억도 12개월로 쪼개면 450억밖에 되지도 않고.’
한마디로 매달 1,271억에 달하는 구독료를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매달 1,271억을 감당할 수 있는 수익 창출은 오직 이것.
‘장비를 만들어 팔자.’
헤파이스토스의 비법, 초월[超越]의 야금술.
그 비법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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