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영상 시작과 동시에 왼쪽 화면 위로 떠오른 ‘유료 광고 포함’이라는 글귀.
[세하! 세공남 구독자 여러분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안녕히 지내셨는지요.]
이윽고 영상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하린은 이어지는 영상을 말없이 시청했다.
화면 앞으로 보이는 맹한 분위기의 사내.
이하린은 저 사내가 세공남 채널의 주인이자 세계 유일의 S+급 헌터, 맹시우 헌터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영상 속 시우는 확실히 괜찮아 보였다.
힘차게 인사하는 얼굴엔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일단 영상 업로드가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여러모로 바쁜 일이 있어서 신경을 못 썼네요. 하하.]
바빴다기보다는 한 번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하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영상을 시청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지루한 인트로 부분은 바로 스킵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죠!]
[자, 오늘 영상은 여러분들께 한 가지 물건을 소개해 드리고자 찍은 영상입니다.]
‘물건?’
[혹시 구독자분들 중에서 새로운 무기를 장만하시려는 분 계신가요?]
[아니면 사용하던 무기가 박살이 난 분이 있으신가요?]
뜨끔.
이하린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그것도 아니면 애지중지하던 무기가 망가진 분은 또 없으신가요?]
S+급 헌터는 속마음이라도 들춰 볼 수 있는 걸까.
당시 시우가 보여 준 놀라운 힘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거, 녹화된 영상 아니었나?
[하지만 마음에 드는 무기를 찾지 못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정말 녹화된 영상이 맞는 건가?
이하린은 진지하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제가 그런 분들을 위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것을 준비했습니다!]
따단!
영상의 효과음과 함께 화면 속, 시우가 한 자루의 검을 꺼내 들었다.
[바로 ‘뭐든지 싹둑싹둑 썰어!’ 검입니다!]
무슨 이름이 저따위인 걸까.
“......”
이하린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네이밍 센스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실력은 S+급이지만, 네이밍 센스는 F-급이었다.
하지만 처참한 네이밍 센스와는 달리 화면으로 보이는 검은 굉장히 심상치가 않았다.
[이 검은 이름 그대로 뭐든지 싹둑싹둑 썰어 버립니다!]
시우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이하린은 이 부분에서 앞선 ‘유료 광고 포함’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 검을 광고하려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광고가 으레 그러하듯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못 믿으시겠다고요?]
솔직히 그러했다.
뭐든지 싹둑싹둑! 검이라니.
이름이야 누구나 그렇게 붙일 수 있지 않은가.
처참한 네이밍 센스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당연한 일이겠죠. 이렇게 보여 주기만 해서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듣는 게 더 나은 법!]
[…아, 그 반댄가?]
반대였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낫다.
이게 옳은 말이었다.
[어째, 저도 누구한테 물들어 버렸나 봅니다. 하하핫!]
영상 속, 시우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이하린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누구한테 물들었길래 저런 걸 틀린단 말인가.
모르긴 몰라도 뇌까지 근육으로 차 있지 않은 이상 틀릴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뇌까지 근육으로 차 있다니.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
바로 그때.
크워어어어어─!
크나큰 괴성이 화면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윽고 화면이 바뀌며 수십 마리의 거북이가 모여 있는 장면이 비춰졌다.
거대한 덩치.
흉악한 뿔이 우수수, 나 있는 등껍질.
‘터틀 드래곤…?’
B+등급의 몬스터, 터틀 드래곤.
이하린은 그때서야 영상 속, 시우가 있는 곳이 던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터틀 드래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터틀 드래곤의 등껍질은 어마어마한 방어력으로 유명하죠.]
[해서 터틀 드래곤의 등껍질은 건설, 선박 등. 그야말로 사용되지 않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각광받는 몬스터입니다.]
[그만큼 인기가 좋으며 헌터분들의 주된 수익원이기도 합니다.]
[아마 S급 헌터분들도 터틀 드래곤은 사냥한다고 하죠?]
이하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그러했으니까.
터틀 드래곤은 B+등급의 몬스터였지만 그 값어치는 B+등급 이상이었다.
물론 S등급 던전에서 얻는 수익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들어가는 노력 대비 얻는 수익은 역으로 비교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터틀 드래곤은 가성비가 미쳐 날뛰었다.
해서 S급 헌터인 이하린도 터틀 드래곤 던전이 있으면 종종 레이드하곤 했다.
[하지만 검을 사용하시는 헌터분들은 좀처럼 사냥하기 어려운 몬스터이기도 합니다.]
이하린은 이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단단한 터틀 드래곤의 등껍질은 날붙이로는 쉽게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죠.]
시우의 말처럼 터틀 드래곤의 등껍질은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그 강도는 드래곤 스킨(Skin)과 비견될 정도다.
터틀 드래곤이라 이름 붙여진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물론 진짜 드래곤 스킨(Skin)에 비하면 뒤떨어졌다.
그래도 비견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의 방어력을 자랑한다는 의미였다.
[해서 둔기로 부수는 것이 정석적인 공략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하린도 터틀 드래곤을 레이드 할 때면 세검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뭐든지 싹둑싹둑 썰어!’ 검만 있다면 이제 그 공략법을 새로 쓸 수 있답니다!]
그러면서 시우는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다시 한번 선보였다.
그리고 그런 시우의 크나큰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크워어어어어!!
모여 있던 수십 마리의 터틀 드래곤이 시우에게 맹렬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영역에 침범해 시끄럽게 구는 것이 언짢았던 걸까.
크워, 크워어어어!
화면 너머로 끝없는 살기가 느껴졌다.
이하린조차 약간 긴장을 해 보였다.
다굴 앞에 장사 없다고 하던가.
고작 B+등급이라고는 하나 수십 마리가 모이면 쉽지 않다.
하물며 그 대상이 터틀 드래곤이라면 이하린도 긴장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정작 시우는 태연했다.
[터틀 드래곤을 사냥하고 싶은데 상대할 자신이 없다고요?]
[터틀 드래곤 상대할 때마다 무기를 바꾸는 게 귀찮으시다고요?]
그러더니 영상 속, 시우가 터틀 드래곤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이 ‘뭐든지 싹둑싹둑 썰어!’ 검과 함께라면 그런 걱정은 뚝!]
그와 동시에 들고 있던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말 그대로 ‘가볍게’ 휘둘렀다.
당연히 휘둘러진 검에는 오러도, 내공도, 마력도 담겨 있지 않았다.
…미친놈인가?
이하린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유한나를 용광로로 쓰는 것부터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었다.
‘뭐 하자는 거야?’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번엔 진짜 뭐 하는 건가 싶었다.
터틀 드래곤의 등껍질은 검으로 베어 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건 이하린조차 할 수 없었다.
하물며 검에 오러도, 내공도, 마력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저건 ‘그냥 나 죽여줍쇼’ 하고 광고하는─ 서걱.
“…어?”
이하린의 생각이 일순간 정지했다.
아니, 지, 지금…?
부릅 뜬, 두 눈으로 터틀 드래곤이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과장된 표현이…. 결코 아니었다.
서걱서걱.
정말로 터틀 드래곤의 등껍질이 두부처럼 썰려 버렸다!
[단단한 터틀 드래곤 껍질도 이처럼 싹둑싹둑~!]
시우는 수십 마리의 터틀 드래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며 검을 휘둘렀다.
역시나 그 어떠한 힘도 담겨 있지 않는 ‘단순한’ 휘두름에 불과했다.
그런데 서걱.
“아, 아니….”
터틀 드래곤이 두부처럼 가볍게 썰려 나갔다!
[여기서 옛날이야기를 하나 말씀드려 볼까요.]
[제가 한석봉 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한석봉 님의 어머니가 불 끄고 떡을 썰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뭐든지 싹둑싹둑 썰어!’ 검 때문이었답니다.]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아도 떡이 싹둑싹둑!]
서걱, 서걱.
[혼자 불 꺼 두고 얼마나 쉽고 즐거운 시간이었을까요!]
시덥잖은 개소리… 아니, 말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하린은 듣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어, 어어?”
저게 대체 뭐란 말인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혼돈이 이하린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유투브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하물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라라? 터틀 드래곤을 단순히 써는 것만 가능하냐고요?]
[그런 걱정은 댓츠 노노!]
영상 속 시우가 혼자 남은 터틀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파파파팍.
[보다시피 채썰기도 가능하답니다!]
터틀 드래곤을 채썰기 시작했다!
그 단단하기로 유명한 터틀 드래곤의 등껍질이 말이다!
채 썰린 터틀 드래곤이 가지런히 정렬되었다.
만화와도 같은 연출이 눈앞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아, 아니 이게….”
[이 놀라운 성능의 검이지만, 아쉽게도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이어진 시우의 말.
이하린은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성능이 그냥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사용자에게 저주를 내린다던가.
아니면 사용자의 생명력을 빨아먹는다던가.
그런 종류의 마검(魔劍)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쉽게도 낭만이 없습니다. 낭만이.]
낭만?
[그 왜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쓰던 검이 망가져서 쓰러진 적의 검을 주워 싸우는 검사의 낭만 말입니다.]
[아쉽게도 이 ‘뭐든지 싹둑싹둑 썰어!’ 검은 그런 낭만이 없습니다….]
영상 속, 시우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날이 상하지 않는 기능이 부여되어 버렸거든요.]
[한마디로 내구도 무한!]
[뭐든지 썰어 버리다 못해 낭만도 같이 썰어 버렸지 뭡니까.]
지금 뭐라는 걸까.
아니, 저게 단점이라고?
쟤는 단점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건가?
“무, 무슨…!”
이하린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걸 보고 정신을 차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이거 편집 주작 영상 아닌가?
[네? 편집 주작 영상 아니냐고요?]
이하린의 속마음을 읽은 것만 같은 말이 들려왔다.
괜시리 찔린 것처럼 이하린은 몸을 움찔, 떨었다.
[그것은 서울 시민들의 말씀!]
[어… 그러니까, 천만의 말씀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하핫.
시우가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영상 제목을 보다시피 이 검은 ‘내돈 내만’ 무기입니다.]
[즉, ‘내 돈 주고 내가 만든’ 무기라는 뜻이죠.]
[주작 따위는 없는 솔직 후기!]
이하린은 이때서야 내돈 내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영상 제목이 오타가 아님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잠깐만.
‘그러니까 저걸 맹시우 헌터가 만들었다고…?’
[어라라? 그렇다면 혹시 다른 무기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답! 대정답입니다!]
시우가 검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척,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비단 검뿐만 아니라 할버드, 도끼, 바스타드 소드, 대도는 물론.]
[힐러 및 마법 직종 헌터분들을 위한 스태프, 완드, 오브, 마도서 등!]
[다양한 무기들도 주문 제작하고 있으니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그런 시우의 말을 뒤이어 화면 아래.
‘자세한 주문 제작 방법은 고정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그 옆으로 ‘주문 폭주!’, ‘마감 임박!’이라는 자막도 같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때서야 이하린은 처음 ‘유료 광고 포함’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홈쇼핑도 아니고 뭔….
[터틀 드래곤을 채 썰고 싶으시다고요?]
[한석봉의 어머님처럼 되고 싶으시다고요?]
[그렇다면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야, 너도 터틀 드래곤 채 썰 수 있어.
마지막 시우의 말이 흐릿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멍한 정신.
“…엣?”
내가 대체 뭘 본 거지…?
이하린은 정신이 멍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양한 무기들도 주문 제작하고 있으니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시우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니까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는 말.
“어, 얼마지?”
이하린은 홀린 듯이 영상의 고정 링크를 확인했다.
* * *
띠링! 띠링! 띠리링!
요란하게 울리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스마트폰 화면 위로 폭주하는 DM 메시지.
└<불마녀>: 지난 번에 약속하신 합방 대신 스태프 주문 제작 가능한가요!
└<이하린>: 혹시… 세검도 주문 제작 가능할까? 가능하면 채찍도 가능한지 묻고 싶은데.
└<금천규>: 창 제작을 맡기고 싶네만. 돈은 얼마든지 지불하겠네.
└<이시윤>: 마도서랑 오브 제작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백선제>: 영상에 나온 검 말이네. 뭐든지 싹둑싹둑… 뭐시기라고 했었나? 그거 혹시, 얼마인지만 알 수 있겠나…?
“오.”
유료 광고의 효과는 굉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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