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양혈제(陽血劑).
양기(陽氣)의 힘을 품은 혈액이라는 뜻의 이 치료제는 서아에게 맞춤형으로 제작된 치료제였다.
그리고 뜻 그대로 양기(陽氣), 생명력을 품고 있다는 것일까.
손바닥 위에 놓인 양혈제(陽血劑)에서 따뜻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고생했네.]
이윽고 들려온 화타의 목소리.
바라본 화면 위로 보이는 주름진 화타의 두 눈은 퀭하다 못해 박살이 나 있었다.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문자 그대로 한숨조차 자지 않았다.
시우 역시 졸음이 몰려올 때면 특제 팬티… 아니, 특제 탕약을 물처럼 들이켜며 버텨 내었다.
손에 들린 양혈제(陽血劑)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렇기에 시우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신의술의 숙련도가 오르지 않았단 말이지.’
이 양혈제(陽血劑)를 만들기 위해서 화타의 의학 지식이 총동원되었다.
당연하게도 시우는 자연스레 그런 화타의 의학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화타의 신의술[神醫術](S+)을 완벽하게 배운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숙련도가 오르지 않았다라….’
의문이 들었지만 금방 털어 버렸다.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아무래도 이 부분은 제갈공명과 이야기를 해 봐야 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화타 님.”
시우는 화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지난 일주일 간의 강행군.
시우야 서아 때문에라도 그 강행군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화타는 아니었다.
순수한 호의로써 시우를 도와준 화타였다.
[아닐세. 나야말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공부가 되었다네.]
화타는 선선한 미소와 함께 손사래를 쳐 보일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자네가 내 복수를 해 주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 대가라기보다는… 이독제독. 이열치열. 뭐, 그런 셈이지.]
그러면서 껄껄, 웃는 화타였다.
시우는 작은 미소로 그 웃음에 화답을 해 보였다.
이로써.
서아의 혈사병을 치료할 치료제는 무사히 완성될 수 있었다.
이제 이 치료제를 서아에게 투여하기만 하면 되었다.
“…….”
하지만 시우는 선뜻 이 약을 서아에게 투여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런 시우의 모습 때문일까.
화면 너머, 화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의 심정을 이해하네. 양혈제(陽血劑)는 불완전하니 말이네.]
불완전하다기보다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말함이 정확했다.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네.]
허용 범위를 넘어선 양기(陽氣) 투여의 부작용.
서아의 상태를 미루어 그 부작용은 혈액암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 부작용을 없애고자 화타와 일주일이란 시간을 보냈다.
동시에 유한나 또한 거진 시우의 집에 살다시피 했다.
가능성의 여부만 따지면 부작용이 없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러나 완전히 없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서아에게 혈액암이 발생한다면?
혈액은 액체로서 전신으로 퍼져 있었다.
그렇기에 혈액암은 일반적인 암과는 달리 특정한 종양이 존재하지 않는다.
‘혈액암은 내가 치료할 수가 없어.’
시우가 어찌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당연히 현대 의학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단순한 혈액암이 아니라 혈사병이 포함된 혈액암이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죽음이었다.
행여 부작용이 발생하면, 서아는 그대로 목숨을 잃게 된다.
그렇기에 시우는 심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화타의 신의술[神醫術](S+) 숙련도가 오르지 않았다는 것 역시 하나의 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결국 이 양혈제(陽血劑)는 신의술[神醫術](S+)의 숙련도 100%를 뚫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니까.
100%를 넘어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방증이기도 했으니까.
[정 불안하면, 시간을 두어 천천히 약을 발전시켜 보는 것도 방법이네. 내가 계속 도와주겠네.]
화타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강요를 하지 않았다.
되려 더 도와주겠다는 말을 해 올 뿐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으로 연구를 해 봤자 의미가 없었으니까.
시간을 더 투자한다고 하여 이보다 더 발전시킬 수는 없었다.
고작해야 들어가는 재료를 줄일 수 있을 뿐이었다.
“아뇨. 하겠습니다.”
시우의 결정에 화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시우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그리고 서아의 방 앞으로 가 똑똑.
“서아야, 안에 있어?”
-응, 들어와!
활기찬 서아의 답에 시우는 서아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안으로 들어간 서아의 방은 각종 그림 도구가 펼쳐져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모양.
아니나 다를까 서아가 캔버스에 연필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오빠?”
왈!
서아의 물음과 함께 흑돌이가 같이 짖어 왔다.
웬만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흑돌이는 서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삼순이가 집을 지키는 문지기라면, 흑돌이는 서아를 지키는 경호원이라 할 수 있었다.
시우는 반갑게 다가오는 흑돌이를 쓰다듬고는 서아에게 말했다.
“그림 그리고 있었어?”
“응. 한번 볼래? 오빠랑 흑돌이랑 삼순이.”
그러면서 서아가 캔버스에 그리고 있던 스케치를 보여 주었다.
확실히 손재주가 있는 것일까.
제법 잘 그린 그림이었다.
“아윤이가 그러는데 있지. 나 검정고시만 합격하면 특채 합격은 문제없을 거래.”
“그래? 아윤이가 그런 말을 했었어?”
“응! 잘하면 아윤이랑 같은 학교도 갈 수 있다고 그랬어.”
전 주인집 아주머니의 딸이자 서아의 동갑내기 여고생, 정아윤.
시우가 알기로 아윤이는 전교 1등이었다.
그런 아윤이와 같은 학교라면 평범한 학교는 아닐 터.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지!”
서아가 힘차게 소리쳤다.
그 때문일까.
시우는 다시 한번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서아야,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뭔데?”
시우는 손에 쥐고 있던 양혈제(陽血劑)를 보여 주었다.
“그게 뭐야?”
“양혈제라는 약인데….”
시우는 서아에게 양혈제(陽血劑)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해 주었다.
딱히 알 필요 없는 지식이었다.
그럼에도 시우는 자세히 알려 주었다.
“음기와 양기가 독립하여 개(改)치 않고, 주행하여 태(殆)치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물론 복잡한 신의술[神醫術](S+)의 지식을 서아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시우는 차분히 예시를 들어가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자석의 N극과 S극이라고 이해하면 돼. 자석의 가운데를 자른다고 한들, 잘린 자석에 N극과 S극이 새로이 생기지? 이처럼 음과 양도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개념인 것이지.”
“우움….”
서아 역시 시우의 말을 끝까지 경청했다.
그렇게 긴 설명이 끝나고.
“그러니까….”
서아가 시우의 말을 정리하며 말했다.
“내가 양기?를 받아들이는 그릇이 작아서 이 약을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지?”
“맞아.”
“하지만 내 혈사병이 치료될 수도 있는 거고.”
“그것도 맞아.”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서아의 결정을 기다렸다.
만일 서아가 싫다고 한다면 시우는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일주일 간의 노력을 기꺼이 쓰레기통에 버릴 의향이 있었─.
“먹을래.”
서아가 고민도 않고 답을 해 왔다.
“서아야, 이건 그리 단순하게 답할 문제가 아니야.”
“단순하게 답한 거 아니야. 예전부터 늘 생각하고 있던 거야.”
서아는 결연한 표정으로 시우에게 말했다.
“더 이상 오빠 발목을 붙잡고 싶지 않아.”
“너 아직도 그런 생각을─.”
“알아. 오빠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
서아는 고개를 살며시 저어 보였다.
시우는 그런 서아를 보며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에야 형편이 많이 나아졌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1년 전만 하더라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1년도 아니라 불과 몇 개월만 하더라도 꿈도 꾸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서아의 약값.
그리고 없는 형편.
서아는 바보가 아니다.
시우만큼이나 현실이라는 냉혹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짐이 되는지 알고 있었다.
시우가 결코 아니라고 해도, 서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만 없다면 시우가 이런 현실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자신의 존재는 시우의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
차라리 자신이 없었다면 하는, 생각.
무조건적인 도움을 받는 이의 심정.
가족이라는 것은 결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오빠가 만들어 준 탕약 덕분에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야. 얼마 전에 만들어 준 특제 탕약으로 보다 훨씬 좋아지기도 했고.”
되려 사랑하는 가족의 발목을 붙잡는 것만큼,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가만히 앉아서 받기만 하는 건 싫어. 나도 뭔가 할래.”
“……”
“무엇보다 오빠가 나를 위해서 만들어 준 거잖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빠를 위해서라도 먹을래.”
서아는 답지 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먹을래. 아니, 먹을 거야.”
그런 서아의 모습에 시우는 정말이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서아보다 시우가 더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우가 망설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우의 생각을 알기라도 한 걸까.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씩씩하게 이겨 낼 수 있어!”
서아가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내가 누군데. 새로운 시대의 영웅이자 세계 최초 S+급 헌터, 맹시우의 여동생인걸!”
그러자 왈왈!
가만히 있던 흑돌이가 응원한다는 듯 짖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터벅터벅.
서아의 방문 밖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밖에서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문을 지키던 삼순이가 서아의 방문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지금은 서아의 방문을 지키겠다는 듯, 서아의 방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쟤는 왜 이렇게 문을 좋아하나 몰라.”
서아가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그래도 내심 좋은지 밝은 표정의 서아였다.
시우는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먹는 거야?”
“아쉽게도 먹는 건 아니야.”
정맥 주사로 혈액에 흘려보내면 되었다.
그러면 양혈제(陽血劑)에 담긴 양기(陽氣)가 혈액에 자연스레 스며들며 순환하는 방식이었다.
“이건 오빠가 놔 줄게. 괜찮지?”
“응.”
서아가 왼쪽 소매를 걷어 시우에게 내밀었다.
시우는 양혈제(陽血劑)의 앞부분을 뽁, 뽑았다.
길게 심호흡을 내뱉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푹.
서아의 왼팔 혈맥에 양혈제(陽血劑)를 꽂아 넣었다.
“으윽!”
따끔한 고통에 서아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이윽고 양기의 힘이 흘러 들어가자 고통을 참으려는지 서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는 뜨거운 물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고통과 비슷했다.
“하윽!”
당연하게도 평범한 여고생이 참을 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아는 꿋꿋이 참아 내었다.
그렇게 모든 양혈제(陽血劑)가 서아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순간 휘청.
서아가 균형을 잃으며 의자에서 넘어졌다.
시우는 황급히 서아의 몸을 붙잡았다.
“오, 오빠…!”
내뱉는 서아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붙잡은 서아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그 세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보그르르르….
서아의 입가로 게거품이 끓어올랐다.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서아야?”
서아는 답이 없었다.
서아의 까뒤집힌 두 눈으로 의식이 엿보이지 않는다.
파르르, 떨리는 몸은 이내 뭍에 나온 활어처럼 팔딱팔딱, 발작을 일으켰다.
와, 왈!
흑돌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리저리 날뛰었다.
컹, 커컹!
방문 앞을 지키던 삼순이 또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썩들썩!
서아의 발작이 점점 심해졌다.
시우는 다급히 서아가 그리고 있던 그림을 구겨 서아의 입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와 동시에 서아의 몸을 꽉, 붙잡았다.
그럼에도 서아의 몸은 들썩들썩, 시우의 통제를 벗어났다.
양기(陽氣)의 힘이리라.
그리고 본래라면 이렇게 외부로 발산되면 안 되었다.
서아의 내부에만 순환하며 혈액의 생명력을 끌어올린 뒤, 사멸했어야 할 힘이었다.
‘양기가 폭주하고 있어.’
우려했던 부작용이다.
붙잡은 서아의 몸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양기를 빼내야 해.’
시우는 다급히 아공간 주머니에서 목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침을 들어 혈맥을 찌르려던 순간.
뚝.
서아의 발작이 멈추었다.
들썩거리던 서아의 몸은 역시 축, 늘어졌다.
그리고 시우의 움직임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서아…야?”
답이 없었다.
방안이 너무도 고요했다.
미약한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자그마한 심장 박동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서아에게서…, 서아에게서….
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땡끄렁.
시우의 손에 들린 침이,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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