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SH병원의 보호자 대기실.
시우는 초조하게 자리에 앉아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함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몸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안 좋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만일… 만일 서아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꽈드득!
시우는 두 주먹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떠오른 생각을 쥐어 짜내 없애 버리기라도 하듯 온 힘을 다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때문일까.
“…….”
“…….”
“…….”
보호자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침묵했다.
시우의 험악한 기세에 모두가 눈치를 살폈다.
시우 주변으로는 누구도 다가가 있지 않았다.
모두 구석에 몸을 피하고 있었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 속.
“맹시우 헌터님.”
누군가 시우를 나지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우가 고개를 홱, 돌리자 흠칫.
다가오던 중년의 사내가 몸을 떨었다.
시우에게도 익숙한 인물.
이곳, SH병원의 병원장이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병원장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시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그 맹렬한 기세에 병원장이 다시 한번 몸을 흠칫, 떨었다.
“서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괜찮은 겁니까?”
“아, 그게….”
더욱 거세지는 시우의 기세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서아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이걸…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병원장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 병원장의 모습에 시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아가… 잘못된 겁니까?”
딱히 밝은 표정의 병원장이 아니었다.
과연 서아가 괜찮았다면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과연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 수가 있을까.
시우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
“아뇨.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병원장이 오해라는 듯 작게 손사래를 쳐 보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그리고는 오해를 풀기 위해 말을 골랐다.
하지만 앞선 이야기처럼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른다는 걸까.
“제 방에 가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 *
SH병원의 정밀 검사실.
정밀 검사실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모여 있었다.
“세, 세상에나….”
“지금…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게 진짜...야?”
그리고 그들 모두가 입을 쩌억, 벌리며 경악하고 있었다.
비단 의사들뿐만이 아니었다.
간호사들은 물론 분야가 다른 의사들까지 전부 모여 있었다.
SH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저기….”
“저게, 저게 진짜 사실이라고?”
그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담이 약한 이들은 입까지 틀어막으며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는 광경.
그것은 어떤 검사 결과의 기록이라 할 수 있었다.
<맹 서아 환자의 정밀 검사 결과 기록>
간단한 제목으로 시작된 보고서였다.
그러나 이후로 선보이는 내용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촤라락.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각종 의학 용어들이 난무하며 스크린으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검사 기록의 마지막.
『해당 환자에게서 마력 피폭 증후군으로 볼 수 있는 그 어떠한 증상도 발견되지 않았음.』
“마, 말도 안 돼….”
“혈사병만이 아니라… 마력 피폭 증후군 자체가 완치되었다고?”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 * *
SH병원 내 병원장실.
“그 말씀은….”
시우는 병원장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서아가 혈사병만이 아닌, 마력 피폭 증후군 자체가 완치되었다는 말씀이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병원장은 정확히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병원장의 말에 시우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마찬가지로 병원장의 표정 역시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이 만연해 있었다.
“맹시우 헌터님도 아시다시피 혈사병은 마력 피폭 증후군에 속하는 하나의 질병입니다.”
시우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모르지 않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혈사병이 완치되었다는 것.
그것은 곧 마력 피폭 증후군이 완치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하지만.
“정밀 검사 결과, 맹서아 환자…. 그러니까 헌터님의 동생 분께는 마력 피폭 증후군과 관련한 그 어떠한 증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시우는 병원장의 말을 한 번 곱씹었다.
그리고 곧 그 의미를 이해하고는 다시 물었다.
“그 말씀은. 혈사병이 아니라, 마력 피폭 증후군이 치료가 된 거란 말씀이신 겁니까?”
병원장은 본인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우 역시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말은 즉.
“저희 의료진은 혈사병뿐만 아니라, 다른 마력 피폭 증후군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마력 피폭 증후군은 혈사병 이외에도 수많은 질병이 존재했다.
그리고 혈사병과 마찬가지로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이었다.
원인조차 파악할 수가 없었다.
신체가 마력에 피폭되어 특정 기능에 이상을 일으켰다.
그 정도만 연구되었을 뿐이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
‘이게 왜….’
시우 역시 떨떠름한 심정이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일에 정신이 멍했다.
하지만 곧,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 서아에게 양기의 힘이 폭주한 게 아니었던 건가?’
양혈제(陽血劑)를 서아에게 투여한 직후.
서아의 몸은 양기의 힘에 의해 발작을 일으켰다.
해서 시우는 당연히 양기가 폭주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양기의 폭주라고 하기엔 이상하긴 했어.’
양기가 폭주한다면 그 결과는 발작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온몸이 불타오르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뿐.
물론 당연하게도 양혈제(陽血劑)에는 그 정도의 양기가 들어 있지 않았다.
온몸이 불타오를 정도의 양기는 없었다.
그 양을 조절하고자 화타와의 밤샘 연구를 했으니까.
유한나와 거의 살다시피 하며 연구를 했으니까.
양혈제(陽血劑)에 담긴 양기로는 몸이 타오르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해서 서아아게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 높은 부작용은 혈액암이었다.
그런데 혈액암이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지 않은가.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긴 했네.’
그러나 당시 워낙에 경황이 없던 탓에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아 있었다.
서아는 왜 발작을 일으켰나.
시우는 금방 그 답을 알아낼 수 있었다.
‘양기의 힘이 서아의 몸을 탈바꿈시킨 건가?’
이 역시 양기의 힘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양기는 생명력을 지닌 힘.
즉, 넘치는 생명력이 혈액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을 넘어 서아의 몸을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재탄생 되는 과정에서 이상이 일어난 신체의 기능이 복원된 것.
어느 부분이, 어떤 이상이 복원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신체 자체가 초기화가 될 뿐이었으니까.
열화된 환골탈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 거라면 혈사병만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긴 하지.’
마력 피폭 증후군이라는 불치병 자체를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럼 마력 피폭 증후군 이외의 다른 불치병도 치료할 수 있는가.
‘그건 아니겠지.’
시우는 단번에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열화된 환골탈태라고는 했지만 진짜 환골탈태는 아니었으니까.
어디까지나 마력 피폭 증후군에 의해 손상된 기능 한정일 터였다.
그럼에도 엄청난 효과임은 분명했다.
마력 피폭 증후군을 완치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이는 시우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화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었다.
부작용(副作用, Side Effect).
의도했던 치료 효과 이외에 부수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
이런 의미로 양혈제의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한없이 좋은 쪽으로 발현되었다 뿐이지만 말이다.
‘서아가 죽은 것처럼 보였던 것도….’
잠을 잘 때 신체의 회복력이 극대화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즉, 탈바꿈된 신체를 회복하고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결과.
그 과정에서 모든 신진대사가 극소화된 것이었다.
“서아는 그럼….”
“며칠 지나면 건강히 깨어나실 겁니다.”
병원장의 대답에 시우는 앞선 가설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이건 혁명입니다.”
이윽고 병원장이 시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이 치료제를 맹시우 헌터님께서 만드신 겁니까?”
병원장은 손에 들린 양혈제(陽血劑)를 내밀었다.
정밀 검사에서 서아의 상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려면 필요하다 생각해 시우가 병원장에게 준 것이었다.
시우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시우가 보여 준 모습만 봐도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을….”
병원장이 경악 어린 표정으로 재차 소리쳤다.
“혹시 학회에 발표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이는 노벨 의학상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아니, 의학상 따위가 대수랍니까.”
병원장은 나이에 맞지 않게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 세계에서 이 치료제를 어떻게든 구하고자 난리가 날 것입니다. 돈도 얼마든지 지불할 것이고요.”
그럴 것이다.
마력 피폭 증후군은 서아만 앓고 있는 병이 아니었으니까.
전 세계적으로 마력 피폭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이는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거대한 혁명이나 다름없습니다!”
병원장의 얼굴은 굉장히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중력 이론을 발견한 뉴턴이 꼭 저러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노벨 의학상이니 인류 역사이니 뭐니.
시우는 그러한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딱 하나.
‘돈을 얼마든지 지불해…?’
시우의 두 눈이 일시에 번뜩였다.
* * *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SH그룹 본사 사옥.
말끔하게 복원된 본사 사옥은 전보다 더욱 세련되고 깔끔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본사 사옥 최상층에 위치한 회장실.
“마력 피폭 증후군의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니….”
해서 한민아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지금 새로 지어진 회장실에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다고 함이 정확하겠다.
그러나 SH병원의 병원장으로부터 직접 확인한 사실이었다.
보다 정확히는 SH병원의 병원장이 온갖 호들갑을 떤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그 치료제를 개발한 당사자.
그 당사자가 시우라는 사실에 한민아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얘는 도대체가….”
한민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무력은 검선(劍仙)도 인정한 S+급 헌터.
장비 제작은 마스터 오렐리안도 한 수 접는 수준.
이젠 하다 하다 못해 의학 수준까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었다.
까도 까도 끝이 없었다.
양파도 이 정도면 전부 베껴져 사라질 지경이었다.
다음 번엔 뭐로 세상을 뒤집어 놓을까.
“정말이지….”
한민아는 헛웃음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회장님. 맹시우 헌터님께서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인터폰에서 시우가 도착했다는 비서의 말이 들려왔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한민아는 그리 답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달칵, 회장실 문이 열리며 시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전히 맹한 분위기의 시우.
역시나 S+급 헌터는 커녕 치료제를 개발한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고모님.”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생각해 보니 오랜만이긴 하네.”
한민아는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한민아는 회장실 소파에 앉으며 시우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윽고 시우가 한민아 맞은 편에 앉으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는데, 흔쾌히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얘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시우, 네가 만나자고 하는 건데. 국회의원 선약이라도 바로 취소해야지.”
실제로도 그러했고 말이다.
물론 시우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병원장님께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어. 시우, 네가 마력 피폭 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시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에게 연락을 줬다는 건, 그 치료제를 우리 SH의약에 공급할 의향이 있다는 뜻이겠지?”
시우는 이 역시나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간의 목적이 확실한 바.
“그럼 빙빙 돌려 말하지 않을게. 나는 당연히 이 기회를 붙잡고 싶어.”
멍청이가 아닌 이상 당연한 일이었다.
마력 피폭 증후군의 치료제.
이 안에 들어있는 이익은 가히 추정 불가다.
그렇기에 이건 말 그대로 제안이 아닌, 시우가 주는 기회라 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맞출게. 일단… 공급하는 방식은 어떻게? 네가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아니면 제조법을 알려 줘서 그에 따른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장단점이 있었다.
시우가 직접 공급한다면 제조에 수고가 들어간다.
대신 그에 따른 이익은 극대화된다.
반대로 제조법을 알려준다면 제조에 들어가는 수고가 덜어진다.
그러나 그에 따른 이익이 감소된다.
무엇보다 제조법이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비법을 알려드리는 것에 딱히 거부감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시우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이 치료제는 저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한민아는 그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자세한 건 몰라도 평범한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일은 아닐 터.
시우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그건 그러한 것이었다.
“그럼 시우, 네가 만든 약을 우리가 구매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네.”
한민아는 그렇게 결론을 지을 수 있었다.
시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만든 치료제를 SH의약에 독점으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독점.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는 권리였다.
“그 대신.”
한민아가 아닌 시우가 가진 권리로서 말이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한민아는 가만히 시우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떤 조건이든 맞춰 줄 의향 또한 있었다.
“치료제의 가격에 대한 조건입니다.”
금방 시우의 답이 들려왔다.
한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시우의 모습을 미루어 예상한 조건이었으니까.
또한 얼마를 부르든 간에 응해 줄 의향도 있었다.
치료제 한 개당 1억?
한민아는 흔쾌히 수락할 생각이 있었다.
마력 피폭 증후군의 치료제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으니까.
치료가 자체 불가능한 불치병.
마력 피폭 증후군은 그저 목숨을 연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치료하고 싶어도 그 방법이 없어 고통만 받을 수밖에 없던 병이었다.
그런 치료제가 개발되었다?
1억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 10배인 10억이어도 살 사람은 반드시 살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병을 앓고 있는 건 비단 시우의 여동생, 서아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마력 피폭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편하게 말해. 얼마를 원하든 맞춰 줄게.”
한민아는 시우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정말 왜일까.
이내 들려온 시우의 말.
“천 원.”
그건 한민아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제가 치료제를 SH의약에 독점으로 그리고 무료로 제공해 드리는 대신. 가격은 천 원으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민아는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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