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239화 (239/250)

238화.

울면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 한채린.

흑돌이에 이어 한채린까지 울어 버린 상황.

굳어진 시우의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 왔다.

한채린이… 울다니?

한채린과 눈물.

이 두 가지는 절대로 조합될 수 없는 개념이었다.

따뜻한 얼음이라는 말과 똑같은 의미였다.

모순(矛盾).

그도 그럴 것이 한채린이 누구란 말인가.

차갑다 못한 얼음덩어리.

감정 하나 없는 로봇.

그런 여자가 눈물을 흘린다?

감정 하나 없던 로봇이 감정을 깨우치기라도 했다고?

‘설마.’

그런 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한채린이 정말로 로봇이란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착각했나?

혹시 내가 잘못 본 건가?

자연스레 생각의 방향이 이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건 더욱 말이 안 되었다.

다름 아닌 시우의 무력[武力](SSR).

헤라클레스의 괴력[怪力](SS)을 기반으로 진화한 힘.

이 힘으로 단련된 신체는 전보다 날카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그러니 잘못 봤을 가능성은 없었다.

착각했을 가능성 또한 없었다.

무력[武力](SSR)의 감각에 혼란이 왔다.

이 말은 성립될 수가 없었다.

이 또한 모순과 같은 말이었으니까.

차라리 한채린이 눈물을 흘렸다.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었다.

그럼 정말로 한채린이 눈물을 흘렸다고?

“…….”

시우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싶었다.

아니, 설령 그렇다 치자.

한채린이 눈물을 흘렸다고 치자.

‘대체 왜?’

그럼 그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한채린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친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형님, 한채린 누님한테 무슨 잘못을 하셨습니까?”

시우와 같은 의문을 담은 김이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아하니 김이준도 한채린의 눈물을 본 것 같았다.

뭐, 저래 보여도 김이준은 A+급의 헌터였다.

카메라맨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그렇지 헌터 업계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우에게 구르고 구른 탓에 실력만 본다면 S-급과도 견줄 수 있었다.

“딱히 잘못한 건 없는데.”

시우는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한채린에게 한 잘못이라면….

‘병실에서 몸을 살핀 것 때문에 그러는 건가?’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이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을 살핀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채린한테 손을 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 물론 손을 대기는 했었다.

그러나 중요 부위를 만진다거나 혹은 이상한 짓을 한다거나.

불쾌감을 줄 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한채린의 몸, 천무지체(天武肢體)를 관찰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당시 한채린도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형님, 이럴 게 아니라 쫓아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윽고 김이준이 다시 말해 왔다.

시우 역시 동의하는바, 한채린이 떠나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멈칫.

내딛던 발걸음을 그대로 멈추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매혹[魅惑](SR).

‘또 한채린이랑 단둘이 있게 된다면….’

이 매혹[魅惑](SR)의 힘이 한채린한테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공자의 군자심[君子心](SSS)이 있기는 했다만….

‘버티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원.’

그마저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미친 여우와의 결전에서 SR등급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매혹[魅惑](SR)의 발동 메커니즘을 알아낸 건 아니었다.

매혹[魅惑](SR)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왜 한채린한테만 특별하게 작동되는지.

아직도 시우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간의 경험상, 한채린과 단둘이 있게 되면 매혹[魅惑](SR)의 힘이 작동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정말 어떤 짓을 저지를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행여 이상한 짓이라도 해 봐라.

그것도 울고 있는 여자한테 말이다.

한채린이 왜 울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이 상황에서 매혹[魅惑](SR)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

‘뺨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정말 뺨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최악의 경우 애써 부어 놓은 연금이 산산조각 날 수도 있었다.

잠깐의 고민.

“…문자만 남겨 둬야겠다.”

시우는 결국 한채린을 따라가려던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으로 한채린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순간.

“형님.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김이준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해 왔다.

“형님이 왜 지금까지 여자 친구가 없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갑자기 여자 친구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김이준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넘어 어이가 출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뭐라 한마디 하려는 걸까.

김이준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휴, 됐습니다.”

김이준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 * *

『<병원 관계자의 만류에도 막무가내. SH병원 테러 CCTV 영상.>』

유투브에 올라온 하나의 영상.

한국에서 일어난 병원 테러의 내용을 담은 이 영상은 ‘헌터 범죄의 위험성’, ‘각성자 억제 관련 법안 촉구’ 등.

여러 사회적인 이슈들을 덧붙이며 전 세계로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지금.

커다란 스크린에 떠오른 영상.

[꺄아아아아아악!]

영상에선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콰직, 하는 섬뜩한 파육음과 더불어 콰아앙!

그야말로 테러가 난 듯한 풍경이 재생되고 있었다.

너구리 가면을 쓴 사내, 인색한 너구리는 어느 정도 영상을 지켜보다 뚝.

“눈이 있다면 알 거라 생각한다.”

영상을 일시 중지시키며 말했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하얀 토끼의 가면을 쓴 천박한 토끼.

졸린 원숭이 가면을 쓴 게으른 원숭이.

검은 소 가면을 쓴 우직한 소.

그리고 비어 있는 한 자리.

“미친 여우의 소행이다.”

인색한 너구리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천박한 토끼가 물었다.

“미친 여우는?”

“행방이 묘연하다.”

인색한 너구리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툭.

“높은 가능성으로 소멸되었을 거라 추측하고 있다.”

“......!!”

그러자 천박한 토끼의 천박함이 놀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천박한 토끼만의 일이 아니었다.

“미친 여우가 소멸되었다고?”

게으른 원숭이의 게으름 역시 놀람의 감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소행. 누가. 소멸. 미친 여우.”

우직한 소의 무덤덤함 역시 놀람의 감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우직한 소의 말이 맞아. 대체 누가? 누가 미친 여우를 소멸시켰는데? 설마 붉은 그림자가─.”

“맹시우다.”

인색한 너구리가 천박한 토끼의 말을 끊으며 답했다.

그런 인색한 너구리의 답에 천박한 토끼는 입을 꾹, 다물었다.

게으른 원숭이와 우직한 소 역시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미친 여우가 기어코 일을 저질렀구나.

그런 생각만을 할 뿐이었다.

다만 한 가지.

“맹시우가 미친 여우를 소멸시킬 정도라고?”

놀람은 더욱 그 크기를 키워 나가고 있었다.

“일단 영상을 계속 보도록 하지.”

인색한 너구리는 일시 정지시킨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끄아아아아악!]

영상 재생과 동시에 다시 한번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크르르르르!]

영상 속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자그마한 흑색 새끼 강아지가 화면 한쪽에서 뛰어나왔다.

“잠깐, 저거 설마….”

천박한 토끼가 그럴 리가 없다는 눈치로 소리쳤다.

“…펜리르?”

“그렇다.”

인색한 너구리는 다시 영상을 일시 정지시키며 답했다.

“그, 그게 무슨….”

천박한 토끼의 천박함은 놀람을 넘어 경악으로 변질되었다.

“자, 잠깐. 펜리르가 여기 차원에 있다고?”

게으른 원숭이의 게으름 역시 경악으로 바뀌어 있었다.

“불가능. 펜리르. 마땅. 죽었어야.”

무덤덤함 속에 깃들어 있는 경악.

“이 또한 맹시우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다.”

인색한 너구리는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또한 사교계 내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느껴지고 있다. 하데스 역시 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 밝혀 왔다. 해서 더 이상 일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체할 수 없다는 말은….”

“너희들은 돌아가는 즉시, 관할하는 판데모니움을 모두 소집해라.”

인색한 너구리의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떠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모인 이들은 판데모니움의 상처급 간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각 대륙을 관리하는 판데모니움의 수뇌부들이었다.

하여, 인색한 너구리의 말은 즉.

“전면전을 하겠다고?”

전 세계를 상대로 전면전을 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색한 너구리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을 앞당긴다.”

그리고 이어진 인색한 너구리의 말.

이에 게으른 원숭이, 천박한 토끼, 우직한 소가 차례로 소리쳤다.

“뭐라고?”

“계획을 앞당긴다니?”

“제물. 어찌.”

인색한 너구리는 긍정도, 부정도 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천박한 토끼가 재차 물었다.

“무엇보다 붉은 그림자는 어쩌게? 붉은 그림자가 이 일을 가만 보고 있겠어? 아니, 저번에 붉은 그림자가 사라진 배신자와 접촉을 한 것 같다며. 일단 그것부터 해결….”

“그 또한 계획을 앞당기려는 이유 중 하나다.”

인색한 너구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붉은 그림자는 우리의 통제를 완벽히 벗어났다. 보다 정확히는 더 이상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지.”

“그게 무슨….”

“그러나 아직은 우리가 붉은 그림자를 억제할 수는 있다. 아직은, 말이다.”

잠깐의 정적.

“붉은 그림자가 신격(神格)을 획득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인색한 너구리의 말이 나지막히 울려 퍼졌다.

* * *

김이준의 한숨을 뒤로 한 채.

시우는 한채린에게 꽤 긴 장문의 문자를 남겼다.

그렇게 얼마간 답장을 기다렸을까.

“…답장이 없네.”

한채린에게서 그 어떠한 답장이 오지 않고 있었다.

물론 답장이 오지 않는 거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읽었다는 표시는 뜨는데….”

그러나 문자를 읽은 상황에서 답장이 오지 않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정말로 화가 난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대체 뭐 때문에?”

그러나 그 이유를 시우는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설마하니 정말로 몸을 만진… 아니, 살펴 본 것 때문에?

이럴 게 아니라 김이준의 말처럼 쫓아가 봤어야 했던 걸까.

지금이라도 쫓아간다면….

“…마음 추스르면 연락 주겠지.”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나 매혹[魅惑](SR)이 한채린한테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기에 차마 한채린한테 갈 수가 없었다.

“매혹의 메커니즘만 알면 문제가 없긴 한데.”

문제는 클레오파트라도 연락이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다시 연락을 해 보았지만 사교계 일이 바쁜 것인지 여전히 연락을 받지 않았다.

왜인지 두 여자 모두 시우를 피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상황.

“에이, 모르겠다.”

시우는 대충 생각을 흩어 버리고는 스마트폰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띠링!

스마트폰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설마 한채린이?

시우는 벼락같은 손놀림으로 집어넣었던 스마트폰을 다시 꺼내 들었다.

“…아무런 알림창이 없는데.”

그러나 그 어떠한 알림창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착각했나?

싶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즉.

시우는 다시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갓튜브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 위로 떠오른 알림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알림창의 주인.

<헤라클레스 님께서 영상 통화를 신청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

정말이지, 양반은 못 되는 헤라클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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