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판데모니움(Pandemonium).
과거, 마계 대침공으로 인해 인류는 종말의 벼랑까지 몰려 있었다.
그러나 13인의 영웅에 의해 마왕이 쓰러지고, 평화가 찾아온 어느 시점.
판데모니움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약육강식.
그들은 오로지 힘만이 정의일 뿐이라 말하며 온갖 범죄 행위를 자행했다.
그야말로 개새끼들이 미쳐 날뛰듯.
그들의 행동에는 단 일말의 인간성조차 보이지 않았다.
판데모니움은 순식간에 전 세계 암흑가의 패권을 장악했다.
어떻게 그리고 무슨 이유로.
또한 그렇게 빨리 판데모니움이 성장할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판데모니움은 전 세계 범죄 조직의 패권을 장악하여 명실상부 최악의 범죄 단체로 부상했을 뿐이었다.
모든 국가의 안보 단체에서 척살 1순위로 손꼽히는 범죄 조직.
인류의 공적.
판데모니움이란 인류 최악의 범죄 단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래, 범죄 단체.
“판데모니움이라는 놈…이요?”
결코 놈이라 지칭할 수 있는 개별적인 주체가 아니었다.
어째서 헤라클레스의 입에서 판데모니움이란 단어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판데모니움에는 ‘놈’이라는 단어가 붙어서는 안 되었다.
설마하니 헤라클레스의 말이 잘못 전달된 걸까?
‘그럴 리가.’
시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갓튜브의 의사소통은 언어가 아닌 의지로서 행해지는 방식.
시덥잖은 개그마저 완벽하게 전달하는 의지가 잘못 전달되었을 리가 없었다.
“그 말씀은, 판데모니움이라는 게 사람…. 아니, 갓튜브의 인물이라는 말씀이란 뜻이에요?”
[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헤라클레스가 난감한 듯 말을 이었다.
[다만, 하데스 님이 말하기를. 판데모니움이라는 놈이 찾아와 케르베로스를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하더라고.]
말을 마친 헤라클레스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물론 터질 듯한 이두근에 긁는 척만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음….’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되면 어느 쪽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갓튜브의 의지는 잘못 전달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그렇게 잘못 알고 있을 수는 있었다.
해서 판데모니움이 단체인지, 갓튜브의 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판데모니움은 갓튜브에서 시작된 거란 말인데.’
생각해 보면 판데모니움(Pandemonium)의 뜻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판데모니움은 실낙원(失樂園)에 등장하는 악마의 전당이자 지옥의 공간.
그리스 언어로 ‘모든 영혼들이 모이는 곳’이란 뜻으로 타르타로스(Tartaros)를 의미했다.
지하의 명계 중 가장 최하층에 있는 나락(奈落), 타르타로스(Tartaros).
이 말은 즉.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판데모니움이 존재했다.
더하여 온갖 서양 문화권에 판데모니움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서양 문화권에만 존재하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만마전(萬魔殿)이라는 공간으로서 인도 신화에서도 존재한다.
악신(惡神), 아수라와 선신(善神), 제석천.
이 둘이 전쟁을 벌인 지옥의 공간이 바로 판데모니움이었다.
불교 문화권에서 말하는 ‘아수라장(阿修羅場)’ 또한 바로 여기, 판데모니움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악마들이 모이는 공간, 판데모니움(Pandemonium).
‘음….’
생각이 조금 깊어졌다.
일단은 더 알아내야 할 정보가 있었다.
“어쨌든, 케르베로스가 저희 집에 있는 걸 보면 하데스 님은 케르베로스를 빌려줬다는 뜻이겠죠?”
[맞아.]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한 번 주억거렸다.
“어째서죠?”
케르베로스는 평범한 강아지가 아니었다.
지옥의 문지기.
하데스에게 케르베로스는 상당히 중요한 강아지였다.
그런 케르베로스를 아무런 이유 없이 빌려주지는 않았을 터.
[명계의 주민을 지금보다 더 늘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하더라고.]
“명계의 주민을 더 늘려줘요?”
[맞아. 너도 알다시피 큰아버지가 갓튜브 채널을 운영하지 않잖아.]
헤라클레스가 말한 큰아버지는 역시나 하데스.
그리고 시우는 하데스가 갓튜브를 운영하지 않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큰아버지는 갓튜브 채널을 굳이 운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들려온 헤라클레스의 말은 어딘가 의미심장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음…. 내가 저번에 갓튜브의 구독자는 신격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었지?]
“네.”
그리고 갓튜브에서 지구로 넘어올 수 있는 방법은 그 신격을 포기하는 것.
그 때문에 하데스를 의심하고 있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말이, 신격을 얻는 방법이 갓튜브가 유일하다는 뜻은 아니야. 신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해.]
그러면서 헤라클레스는 뭐라 뭐라, 설명을 이어 나갔다.
미래시[未來視](SR)로 바뀐 힘조차 머리 아픈 설명들.
그래도 진화된 힘인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는 있었다.
“요악하자면… 일종의 믿음이 신격 형성의 핵심이라는 거죠?”
[맞아.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신격은 높아지지.]
갓튜브는 이 중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리고 갓튜브를 운영하지 않는 하데스가 선택한 방법은 이것.
“명계의 주민들이 많아지면, 하데스 님의 신격도 자연스레 높아지는 말씀이신 거죠?”
[정확해.]
헤라클레스가 바로 맞혔다는 듯 박수를 꽈앙!
아까보다 더한 2메가톤의 TNT 환산 폭발 위력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무력[武力](SSR)으로 진화하며 괴력[怪力](SS)을 넘어섰다 생각했건만.
‘보면 볼수록 경이롭네.’
헤라클레스를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환골탈태를 해야 얼추 비교할 수준은 될 것 같았다.
문제는 환골탈태까지 역시 까마득하다는 것.
‘한채린의 천무지체를 연구하면 좋겠지만.’
이 역시 매혹[魅惑](SR)의 힘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뭐, 아무튼.
‘이러면….’
하데스가 갓튜브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가 설명이 되었다.
시우도 직접 유투브를 운영해 본바.
유투브를 운영하는 게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유료 광고와 같은 돈을 벌 수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터였다.
한마디로 돈을 벌 다른 방법이 있다면 굳이 골머리 싸매 가며 채널을 운영할 이유는 없었다.
하데스 역시 이와 마찬가지.
“하지만 케르베로스를 빌려 간 판데모니움은 사람들을 죽여서 명계의 주민들을 늘려 줄 생각이었던 거고요.”
명계란, 곧 죽은 자들의 공간을 지칭했다.
따라서 명계의 주민이라 함은 망자들을 일컬었다.
그렇기에 죽은 자를 많이 만들면 자연스레 명계의 주민들은 많아진다.
그리고 지구에서 판데모니움이 자행하고 있는 온갖 범죄 행각들.
학살(虐殺, Genocide).
지구의 판데모니움과 갓튜브의 판데모니움.
이 둘이 같은 단체 혹은 존재라면, 지구의 인간들을 학살하여 명계의 주민을 늘려 줄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그거에 대해서 말씀드렸어.]
“그랬더니요?”
[그런 건 줄 몰랐대. 정말 화들짝, 놀라시더라고.]
헤라클레스는 하데스가 놀란 모습을 처음 봤다며 약간의 호들갑을 떨어 보였다.
명계의 제왕이 놀라는 모습이라니.
그 모습이 조금 궁금한 한편.
“결국, 하데스 님도 어떻게 지구로 넘어올 수 있는지는 모른다는 말씀이네요.”
[그렇다고 하시더라.]
헤라클레스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신격 관련한 일은 아도니스 쪽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의미로 짠!]
갑자기 헤라클레스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다름 아닌 뿔피리같이 생긴 무엇.
[코르누코피아를 다시 돌려받았지!]
헤라클레스가 근육 뿜뿜한 자세로 소리쳤다.
아무래도 속 시원한 답을 해 주지 못한 것과 더불어 사죄의 의미도 포함하여 다시 돌려준 것 같았다.
어쩐지.
스트레스성 탈근이 완벽하게 완치되었다 싶었다.
그리고 뭐.
질문에 대한 답변도 대충 들었겠다.
다시 받은 코르누코피아를 돌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 때문일까.
꽈득, 꽈드득!
헤라클레스의 근육들이 울끈불끈, 세상 기쁨을 표출하고 있었다.
시우는 반쯤 빠진 정신으로 기뻐하는 헤라클레스의 근육을 감상했다.
“아, 참.”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시우는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혹시 이 녀석. 누구인지 알아보실 수 있으시겠어요?”
판데모니움의 상처급 간부, 미친 여우.
정확히는 미친 여우였던 흉물이었다.
[촉수 괴물?]
헤라클레스의 말과 동시에 울끈불끈, 기쁨을 표출하던 근육들이 물음표 모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확실히….
‘촉수 괴물처럼 생기긴 했네.’
헤라클레스의 표현에 적극 동의하는 바였다.
그렇기에 이 촉수 괴물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이미 촉수 괴물이라 정체를 파악한 것이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달라진 나의 모습을 순식간에 알아챘었으니까.’
화면 너머의 일임에도 헤라클레스는 시우의 달라진 힘을 확고하게 인지했다.
그렇다는 건 즉.
외형은 촉수처럼 생겨도 헤라클레스는 이 안에 깃든 힘.
존재의 고유성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음….]
아니나 다를까 헤라클레스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접히지도 않는 이두근과 함께 좌우로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잠시.
[잘 모르겠는데.]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높은 확률로 모를 거라 생각하긴 했다만, 막상 답을 들으니 꽤나 맥이 빠졌다.
‘그래도 그리스 로마 신화 인물은 아니라는 뜻이네.’
넓게는 북유럽 신화 인물까지도 배제할 수 있었다.
‘그럼 붉은 그림자와 같은 문화권의 존재인 건가.’
같은 판데모니움의 일원이라는 점을 미루어 같은 문화권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렇다면 이 촉수….
아니, 흉물의 정체를 알 수 있다면 붉은 그림자의 정체 또한 같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붉은 그림자가 어느 문화권에 속하는 갓튜브의 인물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붉은 그림자가 갓튜브의 인물이 맞다면 말이다.
‘없애지 말고 계속 가지고 다녀야겠네.’
어차피 아공간 주머니에 수납도 되겠다.
시우는 흉물을 다시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 * *
SH병원의 VVIP실.
채린은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촉촉한 눈망울은 어느덧 메말라 건조해져 있었다.
…분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게 너무 분했다.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데 달라지지 않았다.
릴리트에게 대항조차 하지 못했다.
이예준에게 꺾여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계속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만 하고 있었다.
반면에 시우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S+급 헌터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질투?
아니, 그러한 감정이 아니었다.
분함.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건 질투가 아닌 분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우가 아닌 채린, 스스로에게 향하는 감정이었다.
같이 걸어가고 싶었다.
언제고 함께 하고, 언젠가 그 곁에 서고 싶었다.
처음엔 이렇지 않았다.
조금 특이하고 이상한 남자.
돈에 미쳐 있는 욕심 많은 남자.
채린은 시우를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이 가고 싶었다.
언제고 함께하고 싶었다.
나아가 그 곁에 서서 그와 함께 서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은 계속해서 뒤처지고 있었다.
시우는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는데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시우를 도와주기는커녕 항상 도움만 받고 있었다.
시우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어딜 봐서 세기의 천재라는 걸까.
짐 덩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채린은 깨문 입술을 더욱 강하게 깨물었다.
그 순간 띠링!
『<맹시우>: 채린 씨, 혹시 제가 실수한 것이 있나요…?』
문자인데도 맹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그렇기에 참으로 시우답다는 생각이 드는 문자 내용이었다.
그래서일까.
채린은 가슴 속에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느껴졌다.
야속함, 애틋함, 허전함, 다정함.
그리고 서운함.
“…바보.”
저도 모르게 툭, 내뱉어진 말.
채린은 이 바보라는 말이 채린, 스스로에게 향하는 말인지 아니면 시우에게 향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 * *
시우는 앞선 헤라클레스의 말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그렇게 얼추 생각을 정리하자 옴뇸뇸.
화면 너머로 다람쥐가 도토리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바라본 화면.
헤라클레스가 그새를 못 참고 프로틴 바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데스가 돌려줬다는데 그걸 굳이 다시 돌려주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딱히 문제가 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음….
‘왜인지 얄밉네.’
보다 정확히는 시우만 손해 본 기분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하데스 님이 제가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있는 건 알고 계세요?”
[앙, 그겅동 내가 말씅 드령엉.]
꿀꺽.
[곧 다시 데려올 방법을 찾아볼 테니, 그때까지 잘 데리고 있어 달라 부탁하시더라고.]
삼순이 밥값이 한 달에 5억 원인 건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걸까.
괜시리 심술이 났다.
솔직히 너무하지 않은가.
헤라클레스한테만 코르누코피아를 주고, 정작 시우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은 이 상황이 말이다.
진짜 누가 가슴 옹졸한 그리스 로마 신 아니랄까─.
[그때 동안 양육비? 보호비? 아무튼 잘 좀 돌봐 달라고 너한테 선물을 따로 주시긴 했어.]
“양육비, 보호비요?”
[잠시만….]
헤라클레스가 빨아들이던 프로틴 바를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성큼, 시우에게 다가오더니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잠시.
띠링!
<하데스 님께서 ‘갓튜브 프리미엄(GodTube Premium) 이용권’을 선물하셨습니다.>
화면 가득히 떠오르는 하나의 알림창.
“갓튜브 프리미엄…?”
시우의 정신이 순간 멍해졌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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