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답장이 늦었네요. 던전 레이드를 한다고 메시지를 지금 봤습니다.
오후 8:54
시우에게서 온 메시지.
무려 4시간 하고도 30분이 지나서야 돌아온 답장이었다.
“…아.”
채린의 자그마한 입이 약간 벌어지며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모든 오해가 풀리며 초조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던전 안에서는 통화권이 연결되지 않아 문자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말은 즉.
시우가 일부러 채린의 연락을 피한 건 아니란 뜻이리라.
철렁, 내려앉았던 심장이 다시금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띠링!
채린 씨는 괜찮으신 건가요? 혹시 제가 실수를 했던 건 아닌지….
오후 8:55
시우에게서 다시금 메시지가 도착했다.
채린은 괜시리 마음이 들떠 바로 답장을 작성했다.
<그때는 제가 죄송했어요. 그랬으면 안 되었는데…. 정말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던전 레이드는 다 끝나신 건가요?>
답장을 작성하고 바로 보내지는 않았다.
행여나 무례하게 생각될 내용이 있을까 몇 번이고 검토를 했다.
그렇게 몇 번을 확인하고서야 채린은 비로소 전송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띠링!
네. 던전 레이드 끝내고 이제 장비 제작하려고 공방에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오후 8:55
시우에게서 답장이 되돌아왔다.
채린은 시우가 보내온 답장의 내용을 여러 번 곱씹었다.
정확히는 ‘장비 제작’이라는 것을 되뇌었다.
얼마 전, 시우의 유투브 채널에 업로드된 광고 영상.
비록 채린의 고모, 한민아가 먼저 선수를 쳤지만 주문 제작은 남아 있었다.
마침 이야기가 먼저 나왔겠다.
대화를 이어 나가기에 시기적절한 내용이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저도 장비 제작을 하나 의뢰드려도 될까요?
오후 8:56
그거야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채린 씨는 오렐리안 님께서 만들어 주신 장비가 있지 않으신가요?
오후 8:56
금방 되돌아온 답장.
채린은 잠시 손가락을 멈추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으니까.
그 순간 다시 띠링!
그럼에도 주문 제작을 맡기신다면 가능합니다. 다만, 한나 씨 장비를 먼저 만들어 드려야 해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오후 8:57
시우에게서 답장이 되돌아왔다.
그런데 한나 씨?
생소한 이름에 채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곧 시우가 말한 한나 씨가 S급 헌터, 유한나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진홍빛 머리가 인상적인 미녀, 유한나.
“…….”
기분이 이상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에서 휘몰아쳤다.
그래서였던 것 같았다.
제가 1,500억에 살게요.
오후 8:57
억지와 같은 가격을 말한 것은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기다리면 되었다.
보다 정확히는 500억이나 비싼 값을 부를 정도로 급한 사안이 아니었다.
말마따나 채린은 오렐리안이 만든 검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사실 시우의 장비를 구매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500억이나 비싼 값을 부른 이유는….
“…….”
채린도 알지 못했다.
시우는 한동안 답장이 없었다.
500억이라는 비싼 값에 꽤나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은 채린의 장비를 먼저 만들어 주리라는 것을 채린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500억은 그러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시우에게서 답장이 돌아왔다.
죄송하지만 한나 씨 장비가 우선이라서요. 채린 씨 장비는 한나 씨 다음에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오후 9:00
한나 씨 다음.
……서운했다.
왜 서운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나 씨 다음’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서운했다.
아, 혹시 오리할콘을 가져다주시면 채린 씨 장비를 먼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오후 9:00
추가로 시우의 답장이 돌아왔다.
하지만 의미 없는 내용이었다.
결국 자신은 유한나 다음이라는 뜻이었으니까.
또한 오리할콘은 돈만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진짜로 서운했다.
시우가 돈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서운했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다 못해 미쳐 버리는 시우이지 않은가.
그런 시우가 500억이라는 돈을 거절했다.
그 말은 즉.
그만큼이나 유한나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돈보다 소중한 유한나라는 뜻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나한테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
제 자리를 찾았던 심장이 다시금 덜컹! 명치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가슴 한쪽이 꽈악! 짓눌리듯이 아파 왔다.
채린은 통증을 참고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끼잉?
흑돌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채린을 바라봤다.
채린은 애써 괜찮은 척, 흑돌이를 한번 쓰다듬었다.
채린의 손길이 기분 좋은지 흑돌이가 채린에게 부비적거려왔다.
채린은 아픈 마음을 억누르며 메시지를 작성했다.
<어쩔 수 없네요.>
이윽고 전송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채린은 가만히 작성한 내용을 바라봤다.
잠깐의 고민.
토토토톡.
채린은 작성한 내용을 모두 지우고는 새로운 내용을 작성했다.
저번에 말씀하신 검선께는 언제 같이 가실 건가요?
오후 9:02
검선의 가르침을 받을 생각이 있냐는 시우의 물음.
이에 채린은 그 답을 보류한 바가 있었다.
시우와 함께 검선을 직접 찾아가기로 약속한 바가 있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채린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채린 씨 몸이 회복되는 대로 가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오후 9:02
이윽고 되돌아온 시우의 답장.
채린은 이번엔 고민도 않고 메시지를 보내었다.
* * *
그럼 내일은 어떠세요?
오후 9:02
한채린에게서 금방 되돌아온 답장.
“내일?”
시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 많이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가슴이 짓눌린 것만 같은 통증.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 지금까지 퇴원을 못 하고 있지 않았는가.
또한 이번에 이예준과 싸우며 적잖은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물론 위중할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었다.
금방 회복이 되는 경상에 지나지 않았다.
“내일은 좀 무리지 않나?”
하지만 그게 하루 만에 회복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말만 내일이지 지금 시각이 밤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내일도 아니었다.
김이준이라면 또 모를까.
한채린은 그 정도의 회복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음….”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얘를 직접 만나기엔 부담스러운데.”
솔직히 한채린과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매혹[魅惑](SR).
이 매혹[魅惑](SR)의 힘이 한채린에게 어떤 지랄을 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해서 매혹[魅惑](SR)의 메커니즘을 알기 전까지 한채린을 직접 만나는 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일이 안 되시면, 내일모레도 괜찮아요.
오후 9:03
한채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뭐, 당연한 일이긴 했다.
한채린은 매혹[魅惑](SR)의 힘을 알지 못하니까.
“그런데 저번엔 검선님께 배우는 게 싫다더니. 몸이 아프더니 생각이 바뀐 건가?”
정확히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어쩔 수 없나….”
한채린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거절하는 것도 이상했다.
정확히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만일 한채린이 ‘왜요?’라고 물어본다 치자.
거기다 대고 ‘실은 저도 모르게 채린 씨를 덮칠 것 같아서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뺨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정말 뺨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아가 애써 부어 놓은 연금이 박살 날 수도 있었다.
어차피 검선, 백선평한테 데려다만 주는 일.
클레오파트라한테서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것도 썩 좋지 않았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언젠가는 부딪혀야 했다.
시우는 끝내 그럼 내일 병원에 찾아가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는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그렇다고 한나 씨 스태프를 미룰 수도 없으니, 오늘은 밤을 새야겠네.”
단순히 전용 용광로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서아의 혈사병을 치료해 준 은인.
다른 누가 오리할콘을 가져와도 유한나의 스태프는 최우선적으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우는 서씨 공방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아니, 향하려던 찰나였다.
띠링!
갑자기 품속에서 스마트폰 알림음이 들려왔다.
“음?”
한채린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알림음이 들려온 건 현실의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림음과 동시에 시우의 망막 위로 하나의 알림창이 떠올랐으니까.
4D 입체 서라운드 화질로 업그레이드된 갓튜브.
<클레오파트라 님께서 영상 통화를 신청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타이밍 기가 막힌 클레오파트라의 DM메시지가 시우의 망막 위로 떠올라 있었다.
* * *
4D 입체 서라운드 화질.
삼순이의 양육비 명목으로 하데스가 선물해 준 갓튜브 프리미엄 혜택 중 하나.
그간 시우는 갓튜브의 영상을 2D로서만 접해왔다.
보다 정확히는 2D라는 화면 속, 3D의 인물들을 접해왔다.
그리고 4D 입체 서라운드로 업그레이드된 화질.
이는 단순히 ‘화질’이라는 측면에 국한되지 않았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환경 효과가 첨가됨은 물론.
대상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하여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 주었다.
더하여 시우에게 한정하여 약간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지금.
[어머.]
실사화된 클레오파트라가 시우의 눈앞에 서 있었다.
오똑한 코. 큼지막한 눈.
조각처럼 다듬어진 듯한 얼굴형과 미(美)로 빚은 듯한 몸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 거죠?]
당황한 듯 어리둥절한 모습은 약간의 백치미(美)까지 더해 주고 있었다.
이윽고 클레오파트라의 손이 시우의 어깨로 향했다.
[시우 님이 만져지기까지 해요?!]
놀라 떠지는 클레오파트라의 두 눈은 마치 흑요석을 박아 넣은 것만 같았다.
‘미치겠네.’
그 때문에 시우는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헤라클레스야 자세 교정을 잡아 주는 등의 상당한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아니었다.
[우리… 이제 할 수 있게 되었네요?]
클레오파트라가 농염한 눈빛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구미호가 먹잇감을 서서히 홀리듯이 시우에게 다가왔다.
그로써 느껴지는 진정한 매혹[魅惑](SR)의 마력.
띠링!
<군자심[君子心] - 인의예지[仁義禮知](SSS) 숙련도 61.83%[+3.3%]>
망막 위로 떠오르는 알림창과 함께 시우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시우는 한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뭘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안 합니다.”
[여전히 단호박이시네요.]
그러자 클레오파트라가 아쉬운 듯 입을 비죽였다.
살짝 삐지는 듯한 표정은 그 자체로서 미(美)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입체 영상에 불과합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하고 싶어도…? 그럼 하실 의향은 있으시다는 건가요?]
클레오파트라의 눈빛이 다시금 빛났다.
시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왜 자꾸 급발진을 해 오는지 원.
‘뭐, 처음엔 마냥 헤프게 보이긴 했다만.’
그러나 SR등급이 무엇인지는 직접 겪어 온바.
클레오파트라의 대단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가진 바 능력의 한계를 초월한 클레오파트라.
그로써 갓튜브 내에서도 저명한 여신(女神)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았는가.
대단한 여자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동안 바쁘셨던 것 같습니다.”
[네.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들이 있어서요.]
클레오파트라는 입을 비죽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사교계의 일로 바빴던 것 같았다.
아프로디테와 페르세포네를 상대로 치열한 혈전을 벌였던─.
[NTR당하지 않으려고도 엄청 노력했고요.]
그러더니 자기 기특하지 않냐는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봤다.
칭찬과 더불어 위로해 달라는 눈치 또한 보내 왔다.
[참느라 어찌나 힘들었던지….]
클레오파트라에게서 독수공방하는 여인의 기색이 물씬 느껴졌다.
이에 시우가 뭐라 한 마디 하려던 것도 잠시.
[그런데 이상하네요?]
클레오파트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왜 시우 님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는 거죠?]
익숙한 기운?
“아.”
시우는 익숙한 기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야, 제가 클레오파트라 님의 채널을 구독했지 않습니까.”
[시우 님이 제 채널을 구독한 것과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죠?]
클레오파트라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우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클레오파트라한테는 이야기 안 했었나?’
생각해 보니….
‘이야기 안 했었구나.’
클레오파트라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신비스럽고 비밀이 많은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걸까.
당연히 클레오파트라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뭐, 굳이 숨길 이유도 없는 일이겠다.
“저는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시우는 클레오파트라에게 관련한 사실들을 말해 주었다.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야기가 끝나고.
[그 말씀은….]
클레오파트라가 놀란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제 매혹의 힘을 시우 님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온 김에 그에 관해서 여쭐 것이 있습니다. 매혹의 발동 메커니즘이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자 클레오파트라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요염한 눈빛과 더불어 한 손으로 입을 살포시, 막았다.
그로써 보이는 각선미는 정말로 미(美)로 빚은 듯해 보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
띠링!
<군자심[君子心] - 인의예지[仁義禮知](SSS) 숙련도 63.93%[+2.1%]>
시우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제 매혹의 힘은 결단코 사용자의 의지에 반하여 발동되지 않아요.]
그리고 들려온 클레오파트라의 목소리.
시우는 애써 정신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런 거치고는 제 의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만.”
한채린만 보면 어김없이 매혹[魅惑](SR)의 힘이 발동되지 않았는가.
그 과정에서 시우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냥 제 멋대로일 뿐이었다.
[제가 말씀드린 의지의 범주는 넓어요.]
“의지의 범주라 하심은?”
[시우 님의 무의식까지도 포함해요.]
“무의식….”
상당히 애매한 표현이자 범주였다.
무엇보다 무의식이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상태를 의미했다.
결국 시우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건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시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이윽고 클레오파트라가 새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쉽게 말하면, 시우 님이 성욕을 갖는 대상에게만 매혹의 힘이 발동된답니다.]
성… 뭐?
시우의 생각이 일시 정지되었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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