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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데이-1화 (1/120)

치팅데이 1화

본 소설에 등장하는 기업, 단체, 식당, 제품에 관련한 묘사는 어떠한 형태의 대가 없이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프롤로그

애타는 기다림 끝에 노릇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을 입에 넣었다.

불판 위에서 자글자글 녹아내린 지방이 고소한 풍미를 자랑한다.

“여기 삼겹살 괜찮다.”

바닥은 바삭하고 윗부분은 탱글탱글한 계란찜도 일품이다.

“반찬용 덕에 모이네.”

“그러게. 이렇게 보는 게 얼마 만이야? 짠 한번 하자.”

소주잔을 기울였다.

술은 좋아하지 않아 맛만 봤는데, 역시나 입맛만 버렸다.

얼른 삼겹살을 집어 먹었다.

“형 할 말 있다 하지 않았어?”

백우진이 고기를 뒤집으며 물었다.

“응.”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을 둘러 봤다.

구독자 57만 명을 확보한 요리 유튜브 채널 ‘반야식경’의 주지승.

구독자 200만 명의 ‘짐꾼(GYM꾼)’ 채널을 운영하는 차지찬.

최근에 100만 명을 달성한 지식 채널 ‘우지니어스’의 백우진 모두 방송 초기부터 편집을 도맡아 주며 친해진 사람들이다.

지금은 각자 편집자를 직원으로 두고 있기에 예전처럼 모든 일을 다 맡진 않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개 정도는 처리해 주고 있다.

“이제 편집 그만하려고.”

“뭐?”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시끌벅적한 고깃집 안에서도 이목을 모았다.

“이유가 뭔데?”

“서운한 거 있어?”

“진정하고. 찬용이 얘기 들어보자.”

차지찬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따지는 반면 백우진은 걱정스레 물었고 주지승은 두 사람을 달래며 내가 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내 채널 키우고 싶어.”

반찬가게.

내 이름 반찬용을 따서 이름 붙인 먹방 채널 ‘반찬가게’는 현재 구독자 8만 7,000명을 확보하고 있다.

처음에는 혼자 밥 먹기 적적해서 방송을 시작했고, 영상 편집 연습도 할 겸 채널을 개설했는데 어느덧 10만 구독자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밥 먹으며 소통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직업이라 구독자 10만 명을 달성하면 반드시 전업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잠깐만.”

차지찬이 끼어들었다.

“반찬, 솔직히 말해 봐. 네 방송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대우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대우?”

“섭섭했냐고.”

“아니. 전혀.”

반야식경, 짐꾼, 우지니어스 세 곳 모두 내게 업계 최고 대우를 해주었다.

“그렇다니까 다행이긴 한데, 그럼 나도 제안 하나 하자.”

차지찬이 팔짱을 꼈다.

키 169㎝, 몸무게 82㎏의 보디빌더가 팔짱을 끼니 전완근이 폭력적으로 두드러진다.

“인센티브로 네가 작업한 영상 수익 30% 줄게.”

차지찬의 말에 우리 모두 깜짝 놀랐다.

차지찬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짐꾼(GYM꾼)은 올해에만 조회 수 3억을 기록한 대형 채널이다.

유튜브 광고 수익만으로도 연간 10억 원이 발생하는 거대 채널의 수익 일부를 나눠 준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신 지금처럼 다른 일 하지 말고 아예 내 회사 들어와.”

“웃기지 마!”

하얗고 포동포동한 볼이 꼭 조랭이떡 같은 녀석이 빽 소리쳤다.

백우진이라고 얼마 전에 구독자 100만 명을 확보한 유튜버면서 오랜 친구다.

“형, 듣지 마. 돈 보고 입사했다가 후회할걸? 결국 인센티브잖아. 지찬이 형 망하면 못 받는 거야.”

“이 자식이 못 하는 말이 없어.”

차지찬이 백우진의 볼을 꼬집었지만 신경도 안 쓰며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출퇴근 얼마나 귀찮아. 안 그래?”

“그건 그래.”

“그치? 그니까 우리 회사 들어와라. 재택근무 무조건 보장할게.”

“오.”

백우진이 솔깃한 제안을 꺼냈다.

“연봉은 쪼잔하게 인센티브 없이 딱 본봉으로 1억. 인센티브는 말 그대로 인센티브로 줄게. 어때?”

“뭐, 쪼잔?”

차지찬과 백우진이 서로 노려본다.

이러다 싸움 날 것 같다.

“일단 우진이 채널은 안 할 거야.”

“어?”

백우진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대체 왜?”

“말이 너무 많아.”

백우진이 운영하는 ‘우지니어스’는 잡다스러운 지식을 전달하거나 현상에 대한 팩트를 체크하는 콘셉트다.

다만 이 녀석이 설명하기를 워낙 좋아해서 피카소를 설명한다고 치면 앙리 마티스, 조르주 브라크와 같은 동시대 미술가는 물론, 툴루즈 로트렉이나 반 고흐 같은 전 시대 인물을 지나, 마네, 모네, 르누아르까지 다루기 때문에 영상 하나가 10시간에 이르는 경우도 왕왕 있다.

편집하는 입장에서 정말 소화하기 벅찬 유튜버다.

“힝.”

백우진이 눈썹을 모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지찬이 형 것도 안 해.”

“왜!”

“너무 시끄러워.”

보디빌더이기도 한 차지찬이 운영하는 짐꾼 채널은 영상마다 파이팅이 넘친다.

근육 빵빵한 남정네들이 흐아, 우아, 후아 해대는 영상을 몇 시간이고 반복해 듣다 보면 현기증이 난다.

“5년 동안 잘만 했잖아!”

“5년이나 잘 참은 거지. 아무튼 이제 못 해. 안 해.”

선을 그으니 차지찬과 백우진 모두 시무룩해졌다.

“나도 알아. 좋은 편집자 구하기 쉽지 않지. 근데 지금 일하는 분들도 익숙해졌잖아. 나 없어도 잘 돌아갈 거야.”

좋은 편집자는 단순히 기술만 좋다고 다가 아니다.

해당 채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만 채널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구독자들이 원하는 방향, 그들끼리 향유하는 밈을 활용하여 양질의 콘텐츠를 뽑아낼 수 있다.

차지찬의 경우에는 유튜브 개설조차 내가 해주었고, 백우진은 10시간짜리 영상을 통째로 올리던 것을 내가 손 봐주면서 성장하게 된 것을 감안하면 짐꾼과 우지니어스 모두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짐꾼과 우지니어스 모두 1년 이상 근무한 전문 편집자가 있으니 내가 없더라도 잘 돌아갈 거다.

“언제까지 하려고?”

주지승이 물었다.

“올해까지는 하려고.”

“한 달밖에 안 남았잖아!”

백우진이 우는소리를 했다.

“한 달이나 남았으니 미리 말해주는 거야. 갑자기 안 한다고 하면 문제 생길 수 있으니까.”

“계속하면 안 돼?”

“미안. 안 돼.”

차지찬이 잔을 채웠다.

“그래. 자기 일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말리냐. 잘해 봐. 어려운 거 있으면 얘기하고.”

“고마워.”

다 함께 다시 한번 잔을 부딪쳤다.

“그럼 먹방 계속하는 거야?”

주지승이 물었다.

나 걱정해 주는 사람은 이 형뿐이다.

85년생으로 나보다 4살 많고 차지찬보다는 1살 많은데, 우리 중에 가장 어른스럽다.

탈모가 와서 머리를 밀고 난 뒤, 궁예 콘셉트를 시작하면서 채널이 급성장하게 되었는데, 창피해하면서도 꿋꿋이 콘셉트를 유지하는 신기한 형이다.

“그치? 지금까지 먹방으로 컸으니까 아무래도 계속해야지. 먹는 거 좋아하고.”

“그만 좀 먹어. 너 그러다 큰일 난다.”

차지찬이 구박한다.

“괜찮아. 재작년에 건강검진 받았을 때도 지방간 조금 있는 거 빼곤 괜찮대.”

“…….”

다들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다들 날 빤히 보다가 눈이 마주치니 고개를 돌린다.

“왜?”

“아니야. 아니야.”

“먹어. 먹어.”

* * *

“어우.”

잠에서 깨어나 보니 속이 말이 아니다.

고작 두 잔 마시고도 이렇게 힘든데 뭐가 그리 좋다고 소주를 마시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화장실을 들렀다가 가득 찬 종량제 봉투가 눈에 띄어 밖에다 버리고 오는데 우편함에 뭔가 꽂혀 있다.

“아.”

2주 전에 받았던 검진에 대한 결과를 우편으로 보내준 모양이다.

집에 들어와 뜯어 보니 만 33세 반찬용이라고 내 나이와 이름이 적혀 있다.

마침 오늘 방송에서 할 얘기도 없으니 밥 먹으면서 건강검진표나 같이 봐야겠다.

“어디.”

외주 받은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오늘 방송에서 먹을 치킨 2마리를 주문해 놓고 샤워를 하고 나와 유튜브 채널 관리 페이지에 접속했다.

반찬가게

@banchan2

구독자 8.71만 명

꾸준히 늘어나는 구독자와 조회 수를 보니 뿌듯하다.

지금 추세대로 늘어난다면 내년 2월쯤엔 10만 구독자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거기에 조회 수가 뒷받침 되어 준다면 전업 유튜버로 활동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드디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단 바람이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땐 일하는 시간이 워낙 들쭉날쭉해서 친구 만날 여유가 없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겨도 얇은 지갑 때문에 마음을 접어야 했고.

취미 생활은 엄두도 못 낸 채 그저 포기와 체념을 반복했는데 ‘반찬가게’를 시작하며 위안을 얻었다.

밥 먹는 시간만이라도 즐기고자 맛집을 찾아다녔고, 비록 식탁에는 혼자 앉아도 스마트폰 너머 시청자들과 소통하면서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소소하지만 내겐 소중한 그 시간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편집하다 보니 어느덧 ‘반찬가게’를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나만의 힘으로 이뤄낸 곳이라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방송을 켜니 사람들이 한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하

└웬일로 이틀 연속 방송임?

└제목 뭐임? 건강 검진?

└그래 건강 좀 신경 써야겠더라.

└치킨 치킨

└집이네?

└무슨 치킨임?

“크크크치킨. 바삭하다고 광고하길래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보려고 주문했어요.”

치킨 박스를 열었다.

치킨 겉면에 크럼블과 김가루, 깨소금 같은 게 붙어 있어 확실히 먹음직스럽다.

다리부터 뜯으니 확실히 바삭한 식감을 강점으로 홍보할 만큼 식감이 좋기도 한데.

그보다 바삭한 튀김옷 아래 야들야들하고 탱글한 속살이 더욱 일품이다.

“맛있다. 이거. 진짜 바삭한데? 밥이랑 먹으면 계속 들어가겠다.”

└계속 먹지 말라고

└두 마리 다 먹는 거야?

└아조씨 관리 좀 해. 그러다 진짜 큰일 나.

└밥도 먹게?

└돼지.

“알아요. 알아. 내가 돼지인 것도 알고 건강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아는데. 봐? 치킨 이거 뭐야. 고기잖아요. 단백질이잖아. 지방도 있고. 그럼 뭐가 부족해? 그렇죠. 탄수화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치밥은 탄단지가 완벽한 조합이다. 이 말입니다.”

└또 개똥 같은 소리 하네.

└ㅋㅋㅋㅋㅋㅋㅋ핑계

└몸 생각 좀 해라. 어떻게 볼 때마다 고기만 먹냐. 야채 좀 먹어.

“그래. 내 말이. 야채도 먹어야 하잖아. 그러니까 밥 좀 가져오겠다고요.”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반복해 올렸다.

“밥이 뭐야. 쌀이잖아. 쌀이 뭔데. 식물이잖아. 그러니까 엄연히 야채다. 채식이다. 살이 안 찐다.”

└뭔 말이야 이건 또

└님 돌으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신 나갈 것 같네ㅋㅋㅋ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죠?

채팅창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무슨 말을 해도 먹을 거니까 말리지 마요. 나 평생을 어떻게 하면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맛있게 먹을까 고민하며 살았어.”

두 번째 닭다리를 뜯었다.

“이게 행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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