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2화
1. 하늘이 무너져도 먹을 순 있다(1)
└와 소리 봐.
└미치겠다
└나도 치킨 먹을래
└돌겠네 나 저녁 방금 먹었는데
└방송 좀 꾸준히 해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오니 채팅창에 여러 말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 방송 주기에 대한 불만이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내년부턴 방송 자주 하려고. 전업할 거거든.”
└오
└그러고 보니 10만 거의 다 되어 가네
└돈 많이 벌어?
└원래는 무슨 일 하는데?
“말 안 했었나? 영상 편집 해요. 여기저기서 외주 받는데 일 진짜 많아. 나도 방송 자주 하고 싶은데 전업하기 전까지는 힘들어.”
프리랜서라고 하면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 않다.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들어오는 일은 무리를 하더라도 꼭 처리하게 된다.
└아 그래서 영상이 깔끔했구나
└어디 채널 편집하는데?
└지금 수입으로 괜찮음?
“지금 당장은 힘들죠. 유튜브만 따지면 한 달에 120만 원? 100만 원 조금 더 벌어요.”
시청자들이 걱정한다.
“괜찮아요. 저 돈 많이 모아놨어요.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드는 거 아닙니다.”
수많은 유튜버와 함께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노력했고 또 좌절했는지 직접 목격했다.
구독자 1,000명을 모으지 못한 사람이 넘쳐나고, 간신히 10만 구독자를 모아도 이내 조회 수가 나오지 않으며 채널을 접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100만 명이 넘는 대형 채널조차 한순간에 잊히기 십상이니 유튜브 생태계는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환경이다.
“으음.”
흰 쌀 밥을 크게 한 술 떠 먹고 치킨을 뜯으니 풍요롭기 그지없다.
태양의 은혜로 잉태된 쌀알과 논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노니던 닭이 내 입 안에서 이렇듯 가슴 벅찬 재회를 가지니 감격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봐. 치킨에는 밥이라니까?”
└먹긴 잘 먹네
└그만 먹어;;
└ㅋㅋㅋㅋ먹방 하는 사람한테 적당히 좀 먹으라는 곳은 여기뿐인 듯.
“내 말이. 아니, 먹는 거 보러 들어온 거 아니에요? 왜 자꾸 먹지 말래. 나 건강하다니까?”
이 사람들이 밥맛 떨어지게 왜 이리 초를 치는지 모르겠다.
└건강검진 결과 나왔다며
└ㅇㅇ 그거 보고 말해
└결과에 이상 없으면 안 말릴게
“진짜죠? 여기서 아무 문제 없다고 하면 이제 먹는 걸로 뭐라 안 하는 거예요.”
책자를 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봐요. 여기 검진받은 날짜 2022년 11월 20일, 이름 반찬용. 만 33세. 저 맞죠?”
└어떻게 사람 이름이 반찬용ㅋㅋ
└반찬용이 실명이었어?
└ㅋㅋㅋㅋㅋㅋㅋ
└밥은 어딨음?
“우리 엄마가 지어준 이름인데.”
정색하는 척하니 시청자들이 호들갑을 떨며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어쩐지 어감이 좋더라.
└너무 멋져서 예명인 줄 알았지~
벌써 2년 가까이 함께한 사람들인지라 반응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데 생각대로 태세전환이 잽싸다.
이런 식으로 서로 편하게 웃고 떠드는 관계가 좋다.
“아무튼 볼게요. 같이 보려고 나도 아직 안 봤는데……. 어?”
아무 생각 없이 펼친 첫 장에 보여서는 안 될 정보가 적혀 있었다.
키와 몸무게다.
└138㎏?????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 키 크네. 184㎝?
└아니 적당히 먹으라고!
└와 미쳤다 나 저런 숫자 처음 봄. 사람 몸무게 맞음?
“아, 이거 지금은 아니야. 138㎏ 진짜 아니야.”
건강 검진 받을 때 간호사가 138㎏이라고 알려줬지만 2주 동안 신경을 썼기 때문에 138㎏까지 나가진 않을 거다.
“나 계속 몸무게 신경 쓰고 있었어요. 이 정도까진 아닐걸? 보여줘?”
체중계를 가지고 와서 캠 각도를 맞출 때까지도 채팅창엔 키읔이 도배되고 있었다.
└이 아저씬 뭐 맨날 보여준댘ㅋㅋ
└더 쪘으면 쪘지 빠졌겠냐? 어제도 친구들이랑 삼겹살 먹었다며.
└어제 삼겹살 먹고 오늘 치킨 2마리 먹는데 살이 빠지길 바란다고? 양심이?
└이걸 방송각을 잡네. 140㎏ 찍은 거 보여줄려는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체 뭔 자신감으로 보여준다는 거얔ㅋㅋ
└엌ㅋㅋㅋㅋㅋㅋ
“가만있어 봐! 진짜 억울하다니까? 나 일주일 동안 아침 안 먹었어!”
억울해서 곧장 체중계 위에 섰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배에 힘을 주어 집어넣으니 시청자들이 또 웃기 시작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다고 몸무게가 줄어?
└아저씨 숨 참고 배 집어넣는다고 몸무게 안 줄어욬ㅋㅋㅋㅋ
└진짜 개웃기넼ㅋㅋㅋ멍청ㅋㅋㅋ
“내가 바보야? 그냥 있으면 안 보여요! 체중계 숫자가 안 보인다고! 몸무게는 봐야 할 거 아니야!”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그래섴ㅋㅋㅋ
└상상도 못했닼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뱃살 때문에 몸무게가 안 보이는구낰ㅋㅋ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 어떻게 하면 체중계 숫자가 안 보이는뎈ㅋㅋㅋ
“봐요! 133㎏잖아! 내 말 맞잖아! 나도 나름대로 몸 신경 쓴다니까?”
체중계를 들어서 보여주었다.
일주일 동안 체중에 신경 썼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으니 다들 할 말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반응이 이상하다.
└일주일 만에 5㎏가 빠졌다고?
└아저씨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그러게 너무 많이 빠졌는데
└밥을 그렇게 먹는데 어떻게 5㎏가 빠져. 진짜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문제는 무슨. 말했잖아요. 아침 안 먹었다고. 이 정도는 빠져야지.”
별걱정을 다 한다는 생각으로 건강검진표를 한 장 넘긴 순간 나도 채팅창도 얼어붙고 말았다.
믿기지 않아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마침 채팅 하나가 올라왔다.
└아저씨 당뇨야?
잘못 본 게 아니다.
내가 당뇨라니.
이제껏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 너무나 갑작스레 찾아왔다.
10만 구독자를 눈앞에 둔 이 중요한 시기에 말이다.
“이게 말이 돼?”
전업 유튜버가 된다면 최소한 구독자 10만 명은 달성하고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는데.
먹방을 못 하게 되면 앞으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떡하냐.
└내일 병원부터 가야 할 듯.
└요즘 몸 이상하지 않았음?
한 시청자가 최근 몸상태에 관해 물었다.
“그냥 자주 피곤하고. ……갈증이 좀 많이 났어.”
└아;;
└그거 당뇨 증상임. 다음 다뇨.
└물 아무리 마셔도 갈증 계속 나잖아. 당뇨 맞음.
└우리 큰아버지 당뇨로 쓰러졌는데 합병증 진짜 무서워.
└아저씨…….
키읔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던 채팅창이 웃음기 하나 없는 글로 채워졌다.
모두 날 걱정하는 내용이었지만 무엇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찬가게는 먹방 채널이다.
푸드파이터급의 유튜버만큼은 아니지만,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는 콘셉트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그런 내게 당뇨는 그 어떤 질환보다 치명적이다.
“…….”
채널에는 정체성이 있다.
반찬가게를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먹방이나 음식 이름을 검색해서 유입되었다.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먹거나 취향에 맞는 유튜버를 찾기 마련인데.
내가 갑자기 먹방을 하지 않게 되면, 다시 말해 그들이 바라는 영상을 올리지 못하게 되면 이탈해 버릴 가능성이 있다.
“안 돼.”
어떻게 키운 채널인데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내게 남은 유일한 취미이자 세상과의 소통창구가 사라지게 내버려 둘 순 없다.
└진짜 충격받았나 보네.
└그럴 만하지. 아직 34살밖에 안 됐는데.
└그러게 몸 관리 좀 하지.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저렇게 꼭 탓하는 놈 있더라. 위로는 못 할망정.
└안타까워서 그러지.
└니 기분 때문에 아픈 사람한테 상처 주는 게 말이 되냐?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시청자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소규모 방송은 시청자끼리 싸우면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서로를 보지 않으려고 내 방송에 접속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아도 채널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의 콘텐츠는 어느 방향으로 준비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데 시청자마저 이탈하게 둘 순 없다.
다른 건 모두 포기해도 반찬가게만은 잃을 수 없다.
책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히려 좋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누른 채 씩 웃으니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주었다.
└?????
└뭔 말이야?
└이 와중에 뭔 소리야?
└아저씨 진짜 정신 차려요. 당뇨 진짜 무서운 병이에요.
└멘탈 나간 듯
사태의 심각성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앞으로 평생에 걸쳐 식단 관리를 해야 하고 죽기보다 싫은 운동도 겸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음식을 상당수, 아니, 대부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반찬가게만큼은 지켜낼 것이다.
“어차피 전업하려면 영상도 많이 올려야 하는데 콘텐츠 필요하잖아? 이번 기회에 먹방뿐만 아니라 음식 가지고 썰도 풀고, 쿡 방송도 해보고 하면 되겠네. 안 그래요?”
└멘탈 ㄷㄷ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좋네
└썰은 잘 푸니까 괜찮을지도
└먹방은 아예 접는 거야?
“에이. 어떻게 접어. 아예 굶어야 하는 건 아닐 거야. 먹을 수 있는 게 있겠지.”
└맛없는 걸 텐데
└우리 아버지 당뇨신데 식단 관리 진짜 철저하게 하심. 완전 건강식인데 그걸로 유튜브 각이 나오나?
└오늘은 건강에 좋은 산채비빔밥을 먹어볼게요~
“피자, 삼겹살, 라면만 음식이야? 건강에 좋은 요리도 있잖아. 그래. 비빔밥 괜찮네.”
긍정적으로 생각하곤 있지만 사실 시청자들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유튜브 조회 수에는 썸네일이 큰 영향을 미친다.
자극적인 색상 조합이라거나 일반적으로는 절대 먹기 힘든 양 혹은 특이한 음식이 잘 먹힌다.
“또 133㎏ 초고도비만인 내가 살 빼서 날씬해지는 과정도 보여주고. 크. 콘텐츠 막 나온다.”
└ㅋㅋㅋㅋㅋㅋㅋ날씬해진댘ㅋㅋ
└진짜 빼면 만 원 준다
└아저씨가 다이어트 성공하면 나 내년 공시 합격할 듯.
└그럼 이제 다이어트 방송하는 거임?
“음식 관련해서는 뭐든 해보려고요. 말했잖아요. 저 편집 많이 해봐서 어깨너머로 배운 거 되게 많아요.”
구독자 57만 명의 요리 채널 반야식경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왔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무려 3년이나 요리 채널 영상을 편집해 왔으니 나도 요리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그게 쉬우면 다들 성공했지
└이제 좀 자리 잡아가는데.
└힘내
“그럼. 난 엄청 힘낼 거니까 걱정들 말아요. 이 정도는 위기도 아니야. 나 첫 회사 다닐 때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 이 이야기는 끝. 하지 마.”
사실 누군가에게 좀 기대고 싶다.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만 앞으로 내가 해낼 수 있을지 막막하다.
그러나 여기서 칭얼거리면 잠시 동정은 받을 수 있어도 내 불행을 끝까지 함께할 사람은 없다.
아무도 나를 책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반찬가게가 우울해지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반찬가게를 운영하면서 위로받았듯이, 이 방송을 보는 사람들도 밥 먹으며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채널이길 바란다.
쓰러져 있을 수만은 없다.
“말했잖아? 오히려 좋다고.”
단순히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는 채널이 아니라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고 싶다.
어차피 조회 수를 챙기려면 업로드 주기를 좁혀야 하는데, 먹방만으로는 힘들 거라 생각하던 차였다.
어쩌면 지금이 반찬가게의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만들 거다.
“앞으로 방송이 좀 달라질 것 같아. 그래도 나 알죠? 내가 음식, 요리 이런 거는 진심이거든.”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아마 요리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요리 채널 하나 오래 편집했는데 보고 배운 게 있잖아. 다음엔 아예 쿡방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