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3화
1. 하늘이 무너져도 먹을 순 있다(2)
“당뇨는 초기 대응이 중요해요. 일단 약 처방해 드릴 테니 꾸준히 드시고 살부터 빼죠.”1)
다음 날 병원을 찾았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소변이 자주 마려웠던 일.
어지럽고 자주 피곤했던 점이나 갑작스레 살이 빠진 증상 모두 당뇨 때문이었다고 한다.
의사에게 설명을 들으니 그동안 내 몸에 너무 무심했단 생각이 들었다.
“젊으니까 잘 관리하면 금방 좋아질 거예요. 운동도 시작하시고요. 밖에 나가시면 식단 설명해 드릴 겁니다.”
이미 어느 정도 각오를 했기에 생각보다 담담했다.
밖으로 나서자 간호사가 안내를 해주었다.
“설탕 같은 단순당은 드시면 안 되시고요. 염분하고 콜레스테롤도 조심하셔야 해요. 식이섬유 많이 드시고요. 책자 보시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요.”
받아든 책자에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주의해야 할 음식이 소개되어 있었다.
주스,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은 이해하지만.
밥, 빵, 국수 같은 탄수화물과 삼겹살처럼 기름이 많은 음식마저 조심해야 한다니 예상보다 훨씬 가혹하다.
“평생 이렇게 해야 해요?”
간호사에게 물었다.
“환자분에게 달렸지만 관리는 계속하셔야 해요. 선생님께 설명 들으신 대로 합병증도 조심하셔야 하고요.”
“네. 감사합니다.”
병원에서 나와서 집 근처 마트로 가는 버스에 탔다.
자리에 앉아 병원에서 받아온 책자와 약국에서 사온 물건을 살폈다.
혈당 체크기와 혈당을 기록할 작은 노트, 매일 아침 식전에 먹는 약 그리고 식단 관리 매뉴얼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당장 배달 음식부터 끊고 직접 해 먹을 생각이기에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매뉴얼을 펼쳐 보니 혈당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 이유가 적혀 있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당이 오르는지, 얼마나 오르는지, 언제 오르는지 파악해야 혈당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페이지를 넘기자 무엇을 먹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표로 정리되어 있다.2)
“…….”
봐도 봐도 기가 찬다.
과일, 생선, 두부, 밥, 면류, 우유 같은 음식마저 마음껏 먹으면 안 된다니 대체 뭘 먹고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
배추, 상추, 오이 같은 거만 먹고 산다면 사람이 아니라 토끼로 사는 거나 다름없다.
버스에서 내려서 마트 앞에 도착했지만 막상 무엇을 해먹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요리 잘하는 주지승에게 물어보려 스마트폰을 꺼냈는데 마침 방송 시간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마트로 들어서서 신선 제품 코너로 향하는데 버섯이 눈에 들어왔다.
구워서 소금장에 찍어 먹으면 괜찮을 것 같다.
다른 요리가 있나 싶어 버섯 요리를 검색해 보니 버섯볶음이 있다.
“버섯, 마늘, 굴소스. 굴소스는 넣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빼고. 참기름하고 소금만 있으면 되네?”
참기름과 소금은 집에 있으니 버섯하고 야채만 조금 사면 될 것 같은데, 이것만으로 한 끼를 해결하기엔 너무나 억울하다.
평소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반찬이다.
“…….”
항상 들렀던 고기 코너로 눈을 돌리니 직원이 무엇을 굽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얼굴로 손짓한다.
지나치려 했지만 그윽한 향기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고기 코너로 향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이거 먹어 봐요. 어찌나 야물딱진지 입에서 녹아. 녹아.”
확실히 입에서 녹아내릴 만큼 야들야들해 보이는 차돌박이다.
탱고 댄서의 빨간 드레스처럼 얇게 저민 빠알간 육질이 불판 위에서 춤을 춘다.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기름이 마치 내 마음 같다.
먹고 싶다.
파채와 함께 버무려서 입 안 한가득 저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먹어 봐요. 응?”
“아.”
직원이 차돌박이 한 점을 집어서 입 앞에 대자 은은하게 풍기던 육향이 비강을 훅 하고 쳤다.
진하다.
내가 소다. 내가 바로 소고기다.
본인이 소고기임을 강력히 주장하는 육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게 한 점 받아 먹었다.
“어.”
고지대 초목지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건강한 한우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 차돌박이는 분명 강원도 횡성의 마음씨 좋은 아저씨에게 사랑받으며 자란 한우가 분명하다.
“미국산인데 너무 맛있죠?”
불판 옆에 미국산 소고기라고 적혀 있다.
“잘 먹었습니다. 근데 저 다이어트 중이라서 다음에 올게요.”
간신히 거절하고 먹을 만한 것을 찾아 주변을 도는데 콩고기가 눈에 띄었다.
“불고기용?”
요즘은 불고기용 콩고기도 나오나 보다.
콩고기라면 왠지 건강에 좋을 것 같고 불고기는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요리다.
“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불고기용 콩고기 500g 한 봉지를 카트에 넣었다.
* * *
정말 오랜만에 직접 밥상을 차렸다.
표고버섯과 양파를 함께 볶았고 불고기용 콩고기를 간장, 다진 마늘, 후추에 버무려 익혔다.
밥도 혈당이 많이 오른다는 흰쌀밥 대신 현미 즉석밥으로 준비했다.
완벽한 밥상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방송을 켜니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하
└몸 좀 괜찮음?
└병원에서 뭐래?
“예상대로 안 좋대요. 공복혈당이 380이고 당화혈색소는 10.9인데 이게 엄청 높은 수치래. 그래서 앞으로 배달 음식이나 바깥음식 안 먹고 이렇게 차려서 먹으려고. 봐요.”
직접 만든 버섯볶음과 불고기를 보여주었다.
└오
└왤케 맛없어 보임
└진짜 딱 요리 안 해본 사람이 한 것 같넼ㅋㅋㅋㅋ
└표고버섯 맛있지.
└불고기 아님? 먹어도 돼?
“당 들어간 건 최대한 안 넣었고 고기도 콩고기예요. 마트 갔는데 있더라고. 요샌 콩고기가 불고기용으로도 나오더라.”
정말 바람직한 세상이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현미밥을 입에 문 채 버섯볶음을 집었다.
은은히 풍기는 표고버섯향이 나쁘지 않다.
입에 넣으니 미끄덩한 표면 아래 쫄깃한 식감이 느껴진다. 씹을수록 향이 올라오는데.
맛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봨ㅋㅋㅋㅋ
└똥 먹음?
└버섯 맛있는데
“그. 어…….”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많은 버섯볶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막막한데, 그보다 절망적인 건 평생 이런 음식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막함이다.
“아니지. 아니야.”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뭐든 생각하기에 달렸어. 이건 맛없지 않아. 맛있어.”
걱정해 줄 때는 언제고 키득키득 웃고 있는 시청자들을 향해 말했다.
└응. 맛없어~
└추울 때 따뜻하다고 생각하면 따뜻해지냐?
└ㅋㅋㅋㅋㅋㅋ자기최면
“튀기고 볶은 건 무조건 맛있잖아. 버섯볶음도 실체는 볶음이야. 난 지금 아주 맛있는 볶음요리를 먹는 거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다시 한번 버섯볶음을 입에 넣었다.
“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 내 눈!
└어떻게 만들었길래 뱉을 정도얔ㅋㅋㅋ
└최면 실퍀ㅋㅋㅋㅋ
└고기랑 먹을 땐 버섯 잘 먹었잖아. 왜 그랰ㅋㅋ
“진짜 개떡 같아. 왜 이러지? 소금 때문인가?”
└무슨 소금 썼는뎈ㅋㅋㅋ
└맛소금 쓴 거 아님?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나?
“허브맛 솔트라고 맛있을 것 같아서 샀는데. 어우 역해. 버섯향만 나면 먹겠는데 이게 허브향이랑 섞이니까 진짜 이상해요.”
└허브가 입에 안 맞는갑네ㅋㅋㅋ
└애초에 왜 허브향 소금을 넣었엌ㅋㅋ
└진짜 레시피대로만 하면 절반은 가는데
└멍청ㅋㅋㅋㅋ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이것들은 어떻게든 놀리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을 기대하기도 했다.
요리 실력이야 앞으로 천천히 나아질 거고 문제는 ‘반찬가게’가 방송을 지속할 수 있는지다.
이런 분위기라면 기존 콘텐츠가 아니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안 될 것 같아요. 불고기 먹어볼게. 여러분 콩고기 먹어 봤어요? 난 처음인데.”
앞으로 고기를 못 먹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걱정이 컸는데 이렇게라도 먹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시청자들은 여전히 날 놀리고 있지만 방송에는 반전도 있어야 하는 법.
이 불고기만큼은 자신 있다.
냄새가 장난 아니다.
└그래도 불고기면 맛있겠지
└그치 저건 어지간하면 맛없기 힘들지
└콩고기 의외로 맛있음.
“……콩고기가 맛있다고?”
난생 처음 맛보는 퍼석함이다.
“이건 고기라 할 수 없어. 이런 것에 고기란 이름을 붙이는 건 고기에 대한 모독이야.”
중세였으면 종교재판에 회부되었을 일이다.
“뭐가 문제지? 넣으라고 한 거 다 넣었는데?”
버섯볶음이야 허브맛 소금 때문에 향이 이상해졌다고 쳐도 콩불고기는 재료를 제대로 넣었다.
“콩고기가 원래 이렇게 퍼석해요?”
└몰?루
└콩고기 먹어봤을걸? 왕뚜껑이나 짜장범벅에 들어가는 게 콩고기임.
└고기랑 식감이 다르긴 하지
└진짜 고기랑 다르긴 한데 그렇게까지 노맛은 아닌데
라면에 들어가 있는 고기가 콩고기라면 이렇게 맛이 없을 리 없다.
컵라면 국물을 쭉 들이켠 뒤 입 안에 남아 있는 작은 콩고기는 쫄깃하니 별미였다.
그런데 내가 만든 콩불고기는 식감이 퍽퍽함을 넘어서 부스러진다.
└어떻게 만들었는데?
└또 재료 이상하게 넣은 거 아님?
“아니야. 딱 넣으라는 것만 넣었어. 간장하고 다진 마늘, 후추 제대로 넣었는데?”
요리에 사용한 재료를 가져와 보여주었다.
└국간장을 쓰면 어떡해 멍청아.
└저것만 넣으면 맛없을 만한데?
└설탕은 못 넣는다 쳐도 생강이나 맛술 같은 건 넣어야지.
└간장도 문제긴 한데 그거 불리긴 했음?
“그럼 무슨 간장 써?”
채팅을 기다리니 다들 진간장을 써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불려야 한다고? 이거 불려서 먹는 거예요?”
└와.
└할 말이 없다.
└그걸 그럼 그대로 양념 버무려서 구웠다고??
└그러니까 맛이 없짘ㅋㅋㅋㅋㅋ 물에 넣고 불린 뒤에 물기 닦아내고 먹는 거임
“아니, 다들 왜 이렇게 잘 알아? 나만 몰랐어?”
└ㅇㅇ
└님만 모름
└나도 몰랐음ㅋㅋㅋㅋ
└포장지에 적혀 있을 텐데?
└ㅋㅋㅋㅋㅋ요리 못 하는 사람 특. 시키는 대로 안 함.
└ㄹㅇ 하라는 대로 안 하고 꼭 자기 맘대로 대체품 넣음
└어떻게 먹는지 적어놔도 안 봄.
└먹을 줄만 알았지 아무것도 모르네ㅋㅋㅋ
“아니, 뭐라 하지 좀 마. 먹방 유튜버가 잘 먹으면 됐지 요리까지 잘해야 해? 그랬으면 요리 유튜버 했지!”
└엌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ㅈ
└그치 먹방인데 먹는 것만 잘하면 됐짘ㅋㅋㅋㅋㅋ
└어젠 편집하면서 본 게 있어서 잘한다몈ㅋㅋㅋㅋ
“안 그래도 예민한데 나 건들지 마. 알았어?”
어제와 오늘 내몰릴 대로 내몰린 탓에 마음에 여유가 없다.
성질대로 화를 냈는데 때마침 식기세척기가 다 돌아갔다는 알람이 울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근데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기다려 봐. 내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줄게요.”
요리를 어떻게 했는지 정확히 보여주려고 휴대용 카메라로 화면을 전환했다.
부엌으로 가니 식기세척기가 다시 한번 알림을 울렸다. 그대로 두면 계속 시끄럽게 할 테니 수증기도 뺄 겸 문을 열었다.
“어?”
식기세척기 안을 살피는데 도마가 이상하다.
“이게 왜…….”
도마가 반으로 똑 쪼개져 있다.
너무 황당해서 카메라로 식기세척기 내부를 비추며 도마를 꺼내 식탁에 내려놓았다.
“여러분, 이거 원래 이렇게 쪼개져요?”
└이건 또 뭐얔ㅋㅋㅋㅋㅋ
└뭔 짓을 했길래 도마가 동강이 낰ㅋㅋㅋㅋ
└웃기려고 도마 잘라서 넣어놨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멀쩡한 도마를 왜 잘라? 자르려고 해도 무슨 수로 이렇게 깔끔하게 자르냐고.”
└그러겤ㅋㅋㅋ 단면이 너무 깔끔한뎈ㅋㅋㅋ
└나무로 된 걸 왜 식기세척기에 넣엌ㅋㅋㅋㅋ
└뜨거운 물로 조지니까 쪼개지지
“와. 나 진짜 올해 무슨 마가 꼈나? 뭐 하는 것마다 이래?”
시청자들이 남의 속도 모르고 웃어댄다.
어이가 없어 채팅창을 지켜보다가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리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좋아. 인트로로 쓰면 되겠네.”
└?
└미치겠닼ㅋㅋㅋㅋ 이 아저씨 오늘 왜 이럼ㅋㅋㅋㅋㅋ
└방송 천재 ㄷㄷㄷ
└도마가 방송을 아네
└아저씨 집안일 좀 배워야겠다. 그대로 가면 집안 살림 다 날리고 굶어 죽을 듯.
└그래. 요리 영상 많잖아. 보고 좀 배워.
└편집하면서 많이 봤다며. 이 아저씨는 따라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개못하는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럴까?”
확실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도마야 다시 사면 되지만 밥을 맛없게 먹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먹는 일이야말로 이 혹독한 세상에 남은 마지막 즐거움이다.
“안 되겠어. 치트키 써야겠다.”
└??
└무슨 치트키?
요리 경력 8년, 구독자 57만 명의 요리 유튜버 주지승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