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5화
1. 하늘이 무너져도 먹을 순 있다(4)
토요일.
주지승과 합방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집을 나서서 부천에 있는 반야식경 채널 스튜디오를 찾았다.
예전에 쓰던 사무실은 종종 다녔지만 이사한 뒤로는 한 번도 찾아오질 못해서 길을 좀 헤맸다.
“여긴가 본데.”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드니 신축 건물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57만 명이나 구독한 채널답게 꽤 넓은 오피스텔을 스튜디오로 사용한다.
1층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민머리에 선이 굵은 남자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주지승이다.
옷 위로도 딱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흉근이 도드라지는데, 코도 크고 눈매도 부리부리해서 처음 봤을 때는 조폭인 줄 알았다.
“형.”
“빨리 왔네?”
“너무 배고파. 살려줘.”
“끄흐흫. 가자. 다 준비해 놨어.”
잘생긴 조폭 말이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밥은 좀 먹었어? 방송 보니까 영 아니던데.”
“내 말이. 뭐만 먹으면 혈당이 튀어서 뭘 먹질 못하겠어. 고기 먹으면 혈당은 안 오르는데 먹지 말라고 하니까.”
“목살 같은 건 괜찮아. 기름기 없는 걸로 구워 먹어.”
“그래?”
주지승이 고개를 끄덕이니 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7층이다.
“찬용 씨.”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짧은 머리에 무테 안경을 쓴 남자가 선한 미소로 반겼다.
반야식경의 PD 최미카엘이다.
주지승과 최미카엘이라니 종교 화합마저 이룩한 대단한 채널이다.
“안녕하세요.”
“들어 오세요. 식사 아직이시죠?”
“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왜요?”
“얻어 먹으려고요. 제발 맛있는 것 좀 주세요.”
“흐흣. 그러지 않아도 지승이 형이 간식 준비하라 했어요.”
“간식이요?”
최미카엘이 싱긋 웃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주지승과 함께 자리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멋있다.”
“그치? 돈 많이 들었어.”
“그럴 것 같아. 형 성공했네.”
“성공은 무슨. 다 네 덕이지.”
주지승이 낯간지러운 말을 했다.
“내 공이 없진 않지.”
주지승도 나도 작게 웃었다.
처음 주지승이 운영하던 채널은 요리고수란 채널로 구독자가 1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나름 재밌게 보는 채널인데 성장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오지랖 넓은 짓을 했다.
편집 스타일, 썸네일 뽑는 방법 등 노하우를 알려주다가 나중에는 일주일 한두 개씩 영상을 편집해 줬는데.
거기에 최미카엘이 반야식경, 주지승, 대머리, 궁예 콘셉트를 잡아주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입에 맞으시면 좋겠네요.”
“아, 감사합니다.”
최미카엘이 내 앞에 접시를 내려놓아서 인사하다가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케이크다.
당뇨병 환자 앞에 케이크를 놓다니 믿을 수가 없다.
“형, 이거.”
“저당 케이크야.”
“저당?”
“밀가루 대신 아몬드가루를 써서 탄수화물 함량이 낮아. 설탕 대신 에리스리톨이라는 대체당이 들어갔고.”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주지승은 뿌듯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100g에 당류는 0.6g밖에 안 돼. 마음껏 먹으면…… 좀 곤란하지만 한 조각 정도는 괜찮아.”
“진짜?”
주지승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리불인가?1)
“하나 더 사 두었으니 돌아가실 때 가지고 가세요.”
최미카엘이 말했다.
“……천사세요?”
“네.”
“네?”
최미카엘이 찜기에서 막 꺼낸 찐빵 같은 포근한 미소를 짓고 돌아섰다.
“먹어 봐.”
주지승이 케이크를 권했다.
“나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거 처음이야.”
“끄흐흫. 유난은.”
유난 떠는 게 아니다.
지난 며칠은 정말 악몽 같았다.
혈당을 덜 높이는 음식을 찾다 보니 두부와 배추, 미역, 버섯을 주식으로 먹게 되었는데 한두 끼는 참을 만해도 5일 내내 먹기엔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런 내게 케이크가 주어진 것이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쉬어 정신을 가다듬고 케이크를 잘랐다.
문득 이 고귀한 행위, 아니, 의식 전에 기도나 염불이라도 외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다만 종교가 없으니 경건한 자세로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차갑고 촉촉하다.
일반적인 케이크의 부드러운 식감은 아니나 시폰 케이크와 파운드 케이크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식감이다.
중간중간 씹히는 당근이 식감에 재미를 더해주고 케이크 사이마다 층층이 발린 크림치즈가 풍미를 더하는데.
일주일 만에 느끼는 단맛에 혀와 뇌가 녹아내릴 것 같다.
대체 얼마 만에 먹는 맛있는 음식이지?
“맛있지?”
주지승이 물었다.
입 안에 음식이 없었다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도 외고 싶은 심정이다.
“진짜. 진짜 맛있어.”
“끄흐흫. 그래. 지금 네가 뭔들 맛이 없겠냐.”
주지승이 턱을 괴었다.
“나도 식단 빡빡하게 하다가 그런 거 먹었을 때 이게 뭔가 싶더라. 분명 먹어본 음식인데 훨씬 다채롭게 느껴지잖아.”
“어. 맞아. 크림치즈가 이렇게 고소했나 싶고. 아몬드로 만들어서 그런가? 빵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어.”
“맛있긴 그냥 밀로 만든 게 맛있지. 그동안 자극적인 걸 못 느끼다가 먹으니까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거야.”
마음 같아서는 한 입에 털어넣고 싶지만 케이크가 조금씩 사라지는 게 아쉬워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나도 당뇨 판정받고 힘들었어.”
주지승이 나를 위로했다.
“형은 지금 당화혈색소 몇이야?”
“6.0”
“어?”
깜짝 놀랐다.
당화혈색소란 약 3개월 동안의 평균 혈당 수치를 나타내는 척도인데, 장기간 혈당 조절 정도를 확인하기에 정확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당화혈색소가 4~6%일 때는 정상으로 판정하고 그보다 높으면 당뇨병 환자로 본다.
내가 처음 당뇨 판정을 받았을 때 당화혈색소 수치는 10.9%로 매우 심각한 상태였고.
의사는 이 수치를 6.5~7% 수준으로 낮추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주지승은 이미 정상인 수준의 혈당을 유지하고 있단 말이다.
“어떻게? 6.0이면 완전 일반인 아니야?”
“약도 먹고 식단도 하고 운동도 했지. 지찬이한테 운동 배워. 혈당 관리는 무조건 근육 키워야 해.”
죽기보다 싫은 운동을 결국 하게 될 모양이다.
* * *
케이크를 먹은 뒤 방송을 준비했다.
얻어 먹기만 할 순 없어서 오늘 반야식경 방송에 출연하기로 했는데 규모가 커서 부담이 없지 않다.
방송 준비를 하러 옆방으로 갔던 주지승이 방송실로 들어 고개를 돌렸는데 깜짝 놀랐다.
황금색 승복을 입은 주지승이 같은색 안대를 찬 채 목에는 큰 염주를 두르고 손에는 긴 법봉을 들고 있다.
영상으로만 보다가 직접 보니 더 충격이다.
“왜?”
“무섭다 정말. 식당에서 반찬 더 달라는 말도 못 하는 형이 이렇게까지 변하네.”
“많이 봤잖아.”
“실제로 보는 것하고 달라.”
주지승이 끄흐흫 하고 웃었다.
“먹고 살려면 뭔들 못 하겠냐. 근데 이상해? 오늘 특별히 안대도 썼는데. 안 웃겨?”
“음.”
주지승을 모르는 사람은 웃을 수도 있겠는데 내 눈에는 안쓰럽다.
“어디 봐요.”
최미카엘이 주지승을 위아래로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웃겨요.”
“그래?”
“네. 아주 우스워요.”
“뭐?”
발끈한 주지승을 등진 최미카엘이 내게 철퇴를 건넸다.
“만져 보세요. 말랑말랑하죠?”
“네.”
“방송 들어가면 지승이 형이 오버 좀 할 거예요. 상황 맞춰서 이걸로 책상 내려칠 건데 놀라지 마시라고요.”
내가 그동안 방송을 너무 편하게 했나?
반야식경 편집을 드문드문하긴 했는데 방송 스타일이 언제 이렇게 꽁트식으로 바뀐지 모르겠다.
“시작할게. 찬용이는 내가 부르면 나와 주고.”
“응.”
주지승이 카메라 앞 세팅된 공간에 섰고 최미카엘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켰어요. 준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아직 마이크와 카메라는 켜지 않고 대기화면만 올려두었다.
정면에 세로로 설치된 32인치 모니터 가득 채팅창을 띄워놓아 멀리서도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옴마니반메홈
└옴마니반메홈
└주하
└반찬용이 누구임?
└방장! 문 열어!
└브금 뭐지?
└태조 왕건 브금
드라마 <태조 왕건>의 오프닝 BGM이 재생되고 있다.
이건 반야식경이 오랫동안 이어온 일이라 익숙하다.
최미카엘이 손을 들어 보이니 주지승이 턱을 들고 근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안대까지 썼넼ㅋㅋㅋ
└요리하는데 방해 안 됨?
└진짜 세상에 저게 어떻게 일반인이야.
주지승이 법봉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는가? 이 신성한 방송 시간에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느냔 말이야.”
“큽.”
그동안 연기가 많이 늘었다.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 주지승이 눈을 부라리며 날 노려보았다.
“참으로 딱하다. 짐이 지금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거늘 어찌 웃을 수 있느냔 말이다.”
뭔가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카메라 앞에 나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죽여주십시오!”
원래 주지승이 부르면 나가서 인사하려 했지만 방송 흐름상 이게 맞을 것 같다.
어쩌면 이게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런. 음탕한 것을 봤나.”
“음탕이요?”
고개를 들었다.
“내가 보니 네놈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 차 있구나. 여봐라, 최 부장.”
“예, 폐하.”
최미카엘이 답했다.
“이놈을 쳐 죽여라.”
“네!”
최미카엘이 폭신폭신한 철퇴를 들고 다가와 내 머리를 내려쳤다.
새기 고양이의 냥냥펀치보다 못한 타격에 쓰러져야 해서 연기가 쉽지 않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죽옄ㅋㅋㅋㅋㅋㅋ
└쟨 또 누구얔ㅋㅋㅋㅋㅋ
└게스트 아님? 뭔 게스트가 소개도 하기 전에 죽엌ㅋㅋㅋㅋ
“끄흐흫흫. 일어나, 찬용아.”
주지승이 웃음을 흘리며 다가와 날 일으켜 주었다.
“오늘 게스트 모신다고 말씀드렸죠? 먹방 채널 반찬가게 운영하시는 반찬용 님 모셨습니다. 찬용아, 소개.”
채팅창을 확인했다.
채팅이 너무 빨리 올라와서 읽을 수가 없는데 키읔이 많이 보인다.
미리 준비도 못한 꽁트에 휩쓸렸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
그보다 방송을 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청자가 4,100명이나 되다니 역시 상승세 채널이다.
“안녕하세요. 반찬용입니다. 오늘 맛있는 거 먹여준다고 해서 놀러왔어요.”
“찬용이 방송 진짜 재밌으니까 다들 구독 한 번씩 해주세요.”
주지승이 대놓고 구독 요청을 했다.
고개를 돌리니 주지승이 씩 웃는다. 57만 구독자를 확보한 친한 형의 홍보라니.
든든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