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7화
2. 첫키스(1)
반야식경과의 합방으로 구독자 수가 크게 늘었다.
대형 채널이기도 하고 방송 도중 주지승이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홍보를 해주어서 어느 정도 기대하긴 했지만.
하루 만에 약 13,000명이나 늘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증가폭은 줄었어도 이틀이 지난 지금도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유입되고 있다.
더 기쁜 일은 영상 조회 수가 눈에 띌 정도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라이브 방송 시청자 수도 늘었다는 점이다.
“물이 들어오면 노를 저어야지.”
당뇨병 판정을 받은 이후로 줄곧 힘들었는데 모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놓칠 순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러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직업이 이제는 정말 눈앞에 다가온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 것 같다.
전업 유튜버로 활동할 최소 기준으로 잡았던 10만 구독자도 넘겼으니 이제 짐꾼, 우지니어스, 반야식경을 제외한 다른 채널 외주를 받지 않고 반찬가게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겠다.
그러려면 아직 한 가지 과제가 남았는데 바로 콘텐츠다.
지금의 추세는 합방 효과라고 봐야 한다.
유입된 사람들을 붙들고 아울러 더 많은 사람에게 어필되려면 나만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어쩐다.”
본래 음식 먹는 영상을 주로 올렸지만 현재는 건강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며 고통받는 영상이 메인이다.
반응은 나쁘지 않은데 이것만으로는 더 큰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뭐가 좋을까.
확실한 콘텐츠 없이 전업으로 뛰어들긴 아직 부담스럽다.
“……배고파.”
고민을 오래 하다 보니 허기가 진다.
예전이라면 배달 어플리케이션을 켜 단골집이나 새로 생긴 매장을 살펴볼 테지만 이제는 직접 차려 먹어야 한다.
힘 없이 대강 밥상을 차렸는데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주지승이 알려준 대로 밥은 흰쌀과 현미를 5:5 비율로 섞어 짓고.
그마저도 혈당이 꽤 올라서 평소 먹는 양의 삼분의 일만 먹으니 양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름기 없이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산 닭가슴살은 퍽퍽함이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밑반찬으로 연명 중이지만 이런 식단을 계속할 순 없다.
밥은 맛있어야 하니까.
주지승만큼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음식을 늘려나가야만 한다.
닭가슴살을 찢어 입에 넣었다.
튀겨도 맛없는 부위를 삶았으니 맛있을 리가 없다.
치킨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다리나 날개처럼 맛있는 부위라도 마음 편히 먹고 싶다.
“운동하면 좀 더 먹을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당장 요리 실력이 좋아지긴 힘드니 맛있는 걸 먹으려면 운동을 하는 쪽이 빠르다.
“뭐부터 해야 하지?”
허벅지 운동이 좋다고 듣긴 했지만 검색해 보니 스쿼트만 해도 와이드 스쿼트, 싱글 레그 스쿼트, 스모 스쿼트, 점프 스쿼트 등등 종류가 너무 많다.
부우웅- 부우웅-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확인해 보니 오늘 3시에 약속된 미팅 알람이 와 있다.
‘짐(GYM)꾼’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가지는 자리다.
* * *
차지찬에게 짐꾼의 이번 달 콘텐츠 방향성을 듣고 정리했다.
“진짜 안 할 거냐?”
“응.”
차지찬은 아직 내가 편집을 그만두는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그래. ……어휴. 편집자 구할 생각하니 벌써 막막하다.”
“엄살은. 짐꾼에서 편집자 찾는다고 하면 안 찾아갈 사람이 어딨어?”
“너만한 사람이 없으니 문제지.”
차지찬이 잔을 빙빙 돌리다 말했다.
“반찬. 너 지승이 형 방송 나갔더라?”
“봤어?”
“왜 내 방송엔 안 나와. 전에 한번 물어봤었잖아.”
예전에 차지찬이 자기 방송에 출연할 생각 없냐고 물었었다.
“형은 운동시키고 지승이 형은 밥 주니까.”
“운동하면 기분 좋잖아.”
“프핳핫하!”
차지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웃겼어. 방금.”
운동이 좋다니 역시 200만 유튜버의 개그센스는 남다른다.
“그러지 말고 너 우리 헬스장 나와라.”
“싫어.”
“내가 봐줄게.”
“응. 안 해.”
“하는 김에 영상도 뽑자. 어차피 너 콘텐츠 필요하잖아. 나도 요새 새 콘텐츠 필요했는데 잘됐네.”
대화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인간 운동 루틴을 따라가려면 혈당 잡기 전에 사람 먼저 잡을 거다.
“아니야. 괜찮아.”
“야, 너랑 나 사이에 뭘 부담스러워 해. 나와.”
“계약 관계.”
“뭐?”
“아주 건조한 사이니까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야, 인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사람 서운하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5년.”
“그 정도면 오래되지 않았나?”
“적어도 10년은 돼야지.”
차지찬이 눈을 깜빡이다가 화를 냈다.
“그럼 너 왜 나한테 반말해. 계약 관계에 내가 너보다 3살이나 많고 네 말대로 친하지도 않고 5년밖에 안 봤는데.”
치사하게 나온다.
“앞으로 깍듯이 대하겠습니다.”
“야!”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니 차지찬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앙탈을 부렸다.
잘 발달한 삼각근과 승모근, 대흉근을 좌우로 흔드니 몹시 위협적이다.
“그만해. 징그러워.”
“하자고. 잘해 준다니까? 어디 가서 나같은 트레이너 만나기 힘들다?”
“……그런가?”
어디 대회 나가서 1등도 했고 2년 전에 차린 헬스장도 잘 운영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그래. 나처럼 뚱뚱했다가 건강해진 사람한테 배워야지 말랐던 사람이 네 몸 상태를 알 것 같아?”
묘하게 설득력 있다.
차지찬은 100만 구독자 기념 Q&A 영상에서 본인이 고등학생 때 사진을 보여주며, 키가 168㎝ 몸무게는 98㎏까지 나갔었음을 공개했었다.
비만을 경험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반찬, 잘 생각해라. 이런 거 먹고 싶은 거 아니었어?”
차지찬이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흔들었다.
음료를 빨아들이면 잘게 조각난 얼음과 함께 모카 프라푸치노가 입 안 가득 채워지는데.
비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달큰한 향을 즐기며 자바칩과 얼음조각을 함께 씹는 식감이 예술이다.
한때 내 성수였다.
“이제 그런 거 먹으면 큰일 나.”
“운동 열심히 하면 이런 거 먹을 수 있다니까?”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나도 당뇨 있다니까? 봐.”
차지찬이 내게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일자별로 기록한 혈당이다.
공복 혈당을 90에서 100사이로 유지 중이고 식후 혈당도 180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일반인이나 다름 없는 수준이다.
“매일 나랑 딱 2시간만 운동하면 나처럼 될 수 있어. 장담할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달콤한 말.
그리고 그보다도 달콤한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그란데 사이즈로 마시는 당당함.
어차피 운동을 해야 한다면 잘 아는 사람한테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어쩌면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마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순간 이성을 놓을 뻔했다.
그러나 벤치프레스로 120㎏이나 드는 인간 흉기와 매일 2시간씩 운동하면 된다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안 해. 못 해.”
“왜!”
차지찬이 소리쳤다.
“형 운동 어떻게 하는지 뻔히 아는데 내가 하겠어?”
지난 5년 동안 짐꾼에 올라오는 영상 대부분을 내가 편집하거나 검수했다.
밥 먹고 싶어서 이 인간 따라하다간 제삿밥 먹게 될 거다.
“뭔 소리야. 당연히 네 상태 봐가면서 시키지.”
“……정말?”
“그래. 무리한 거 안 시켜.”
차지찬이 날 쓱 훑었다.
“원래 살 빼는 데는 뛰는 게 좋은데 넌 지금 무리하면 관절 나간단 말이야.”
정확히 알고 있다.
의사도 내게 당장 무리한 운동을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니까 수영장 가서 딱 2시간만 걸어. 물 속에서 하면 관절에도 무리 안 가고 저항 때문에 운동 강도도 챙길 수 있어.”
“안 돼. 못 해.”
“못 한다는 말이 입에 붙었네. 뭐가 또 문제야? 뭐. 누가 네 뱃살 볼까 봐?”
“응.”
“아. 내가 반찬 잘못 봤네.”
“무슨 소리야?”
“그딴 게 자바칩 프라푸치노보다 중요해?”
차지찬이 잔을 들어보였다.
“마실 수 있다니까? 이거 말고도 너 좋아하는 피자, 짬뽕 그런 거 가끔 먹을 수 있다니까?”
“형이 의사야? 나도 형처럼 되리란 보장이 어디 있어.”
잠시 흔들릴 뻔했다.
차지찬이 운동을 통해서 혈당 관리를 잘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순 없다.
“나 당뇨 10년 차야. 웬만한 의사보다 낫지.”1)
차지찬이 보란 듯이 성수, 아니,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빨아마시고는 테이블에 팔을 올렸다.
“어차피 할 거잖아. 근육 만들어서 혈당도 조절하고 콘텐츠도 챙기고 얼마나 좋아.”
“형이랑 하는 게 문제야. 그냥 혼자 할래.”
“못 해.”
“왜 못 해. 운동 영상 보고 따라하면 되지.”
“내 영상?”
“아니. 피지컬 하우스.”
차치찬이 눈을 도끼처럼 떴다.
구독자 30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 대표 건강 채널 피지컬 하우스는 짐꾼의 라이벌이다.
그쪽에선 별 신경 안 쓰는 것 같지만 말이다.
“짐꾼에는 이상한 것만 있잖아. 형 영상 편집하면서 제대로 된 운동 정보 다룬 기억이 없는데.”
그런 게 있었다면 운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지도 않았을 거다.
편집하면서 지겨울 만큼 봤을 테니 말이다.
짐꾼은 전문적인 영상보다는 ‘문어랑 잠수 대결’이나 ‘나무늘보보다 철봉에서 오래 버티기’, ‘근육 자랑하는 방법 둔근편’ 같은 영상을 다뤘다.
차지찬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야, 내가 뭐 아무것도 모르면서 트레이너하는 줄 아냐?”
“응.”
“이 자식이.”
차지찬이 발끈했다.
놀리는 재미가 쏠쏠한 형이다.
“잘 들어. 당뇨병 환자는 운동할 때 무조건 보조자가 있어야 해.”
“왜?”
“공복 혈당이 300㎎/dL 이상인 경우엔 운동이 오히려 독이 돼. 오히려 혈당이 올라갈 수도 있거든. 알고 있었어?”2)
“몰랐어.”
운동하라는 말만 들었지 자세한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거 봐. 넌 모르는 거 난 알잖아.”
“…….”
“공복 혈당 300 이상이면 운동을 해도 별 효과를 못 봐. 운동을 해도 섭취 포도당을 활용할 수 없거든.”
당이 너무 많은 상태라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당뇨 있으면 운동하기 전에 혈당 체크해야 해. 혈당이 올라가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몸을 쓰면 쓰러질 수 있고. 반대로 공복에도 운동하면 안 돼. 저혈당 증상이 올 수 있으니까.”
저혈당이 오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들었다.
주지승도 저혈당이 오면 라면이든 콜라든 당을 빠르게 섭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뇨 환자들은 무조건 옆에 사람 두고 운동해야 한다고.”
“음.”
“아직도 혼자 하고 싶냐?”
“응.”
“왜. 헬스장 가면 누가 흉볼까 봐? 겉으로는 친절해도 뒤돌아서는 비웃을까 봐?”
정답이라 할 말이 없는데 차지찬이 씩 웃었다.
“나도 그랬어, 인마. 근데 건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 비웃는 것들 적어도 우리 헬스장엔 없다. 있어도 내가 다 내쫓을게.”
믿음직한 얼굴이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려니 막상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늘 공복 혈당 몇인데.”
“210.”
“그래. 식단 관리 잘하고 약 잘 먹어서 거기까지 낮췄잖아. 이제 운동해도 되는 단계까지 온 거야. 잘했어.”
갑자기 칭찬이다.
“물론 지금처럼만 해도 혈당은 떨어질 거야. 그럼 정상 수치 근접하게 내려가겠지.”
“그럼 됐잖아.”
“아니지. 조절해도 이런 거 마시면 혈당이 또 튀어. 너 평생 아메리카노만 마실 거야?”
“…….”
“자바칩 프라푸치노 안 마실 거냐고.”
“마실 거야.”
“그럼 운동해야지.”
“……그런가?”
“그래, 인마. 운동 끝나면 내가 맛있는 것도 사 줄게.”
“진짜?”
“그럼. 그럼.”
“속이는 거 아니지?”
“야, 속고만 살았냐?”
“응.”
“그거 안 됐네. 근데 난 믿어도 돼. 너 저번에 나한테 소고기 얻어 먹었지.”
“응.”
“너한테 소고기 사 주는 사람 나 말고 있었어?”
“없었어. 그치. 소고기 사 주는데 나쁜 사람일 리가 없지.”
“그렇지. 이제야 말이 통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