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8화 (8/120)

치팅데이 8화

2. 첫키스(2)

좋은 사람은 개뿔.

허벅지가 타들어간다.

“자, 자세 바로 하고. 말했지? 자세 잘못 잡으면 다쳐. 발끝 살짝 벌리고. 올라올 때 엉덩이 넣고. 허리 너무 세우지 마.”

자세를 생각할 여력이 없다.

“하나, 두이, 서이, 너이, 다섯. 여서엇. 여서엇. 일고옵. 일고옵. 여덟, 여덟, 아호옵. 아홉. 아홉.”

“뭐 해!”

성질이 나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허벅지에 힘이 안 들어가서 그럴 수 없었다.

일어나기는커녕 쓰러져 올려다 보니 차지찬이 히죽거리고 있다.

슬쩍 속이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농락하는데, 시청자들 때문에 더욱 분하다.

└아홉 개임

└ㅋㅋㅋㅋㅋㅋㅋㅋ빨리 하나 더해

└얘 왤케 웃기냨ㅋㅋㅋㅋ

└빨리 하나 더 해!

└발작하다가 힘없이 쓰러지는 거 개웃기넼ㅋㅋㅋ

└물리 엔진 버그 생김ㅋㅋㅋㅋㅋ

“봐. 시청자들도 아홉 개라고 하잖아.”

차지찬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맛있는 걸 사 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짐꾼 스튜디오를 찾았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카메라 앞에서 스쿼트를 하고 있었다.

“아홉 개는 무슨! 70개는 했겠다!”

“이야, 우리 찬용이 체력 좋네. 그런 거 셀 정신도 있고.”

“어?”

“더 할 수 있지? 5개만 더 하자.”

“아, 형. 나 진짜 못 하겠어.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에이. 할 수 있어.”

“없어! 먹고 죽으라고 해도 없어!”

“진짜?”

차지찬이 가증스럽게도 입을 크게 벌리며 놀란 척했다.

“한우 먹을 건데?”

한우?

차지찬이 내 어깨를 감았다.

“찬용아, 형이 너 괴롭히려고 이러겠어? 운동 열심히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는 거잖아.”

“…….”

“운동 마저 하고 이따 한우 먹자.”

“…….”

“그동안 식단 하느라, 약 먹느라 고생했으니까 너한테 상 준다고 생각하고. 응?”

“당 안 올라?”

“괜찮아. 괜찮아.”

“정말이지?”

“그럼. 그러니까 열정 잡고 딱 30개만 더 하자.”

“아깐 5개라며.”

“한우잖아. 한우 공짜로 얻어먹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그치. 이 정도는 해야지.”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세전환 보솤ㅋㅋㅋㅋ

└뭐 저리 빨리 설득됔ㅋㅋㅋㅋ

└먹고 죽으라고 해도 힘 없다몈ㅋㅋㅋㅋㅋ

└우리 형 천사네. 동생 운동도 시켜주고 한우도 사주고

생각해 보면 운동도 가르쳐 주고 채널 홍보도 해주고 한우도 사 주는 사람이 또 있겠나 싶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힘들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스쿼트 100개에 한우면 완전 이득이다.

“하나! 둘! 그렇지! 그렇지! 잘한다! 열정 잡고! 엉덩이 집어 넣고! 일어날 때 엉덩이 꽉!”

“꽉!”

“스꽉!”

“흐읍!”

“셋! 넷! 넷!”

“아! 형 진짜 그만 좀 해!”

“미안. 미안. 내가 문과라서 숫자를 못 세.”

“뭔 소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송합니다

└그치. 문과면 숫자 못 셀 수도 있지.

└미친놈들아 그만햌ㅋㅋㅋ

“스물 하나. 둘. 열정 잡고! 그렇지!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그놈의 열정.

대체 뭘 어떻게 잡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넷! 다섯! 좋아! 뜨겁다!”

이젠 진짜 허벅지가 내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숨이 차서 대꾸할 힘도 없다.

“세 개 남았다! 세 개!”

세 개 더 하면 죽지 않을까.

그래도 한우는 먹어야지.

어차피 맛없는 것만 먹고 살 바에야 한우 먹고 죽는 게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

“두 개! 두 개!”

바닥을 짚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고 그러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다.

발바닥과 손바닥으로 지면을 밀면서 일어나려는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이니 뒤에서 차지찬이 잡아주었다.

“라스트! 하나 남았어. 딱 하나.”

힘이 풀려 쓰러지듯 무릎을 굽히니 힘내라고 소리치는 차지찬, 방송 스탭들 그리고 채팅창이 눈에 들어 왔다.

너무 빨라서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알아볼 수 없다.

응원도 한우도 방송도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한참 전부터 없었다.

오직 일어서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끄으으응!”

없는 힘마저 짜내 일어서려는데 다 일어서기도 전에 몸이 기우뚱하고 말았다.

그러자 차지찬이 내 몸을 받아주었고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잘했다

└오오오오오오오오

└근성 있네

└ㅋㅋㅋㅋㅋ이제 내일 못 걸어다닌다

└130㎏라서 맨몸으로 해도 100개 하기 빡셌을 텐데.

└캬 뜨겁다 뜨거워

└ㄹㅇ 저 정도 몸이면 맨몸으로 해도 중량 스쿼트지.

└멋지다

짐꾼 방송에 처음 얼굴을 비쳤을 때만 해도 ‘극혐이다’, ‘돼지다’, ‘뭐 하는 놈이냐’ 같은 채팅이 간간히 올라왔는데.

스쿼트 100개를 하고 나니 그런 채팅이 하나도 안 보인다.

“봐. 하면 되잖아.”

차지찬이 수건을 주며 씩 웃었다.

땀 닦을 힘도 없어 그대로 헬스장 바닥에 누워버렸다.

“허억. 허억. 허억.”

호흡이 돌아오기까지 20분은 걸린 것 같다.

쓰러진 채로 차지찬이 방송을 마무리하는 걸 보고만 있었다.

채팅창을 비추는 정면 스크린에는 내 뱃살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부풀었다 줄어드는 걸 보면서 좋아들 한다.

조금 전에 받은 감동 물어내라고 하고 싶다.

“수고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이 인사하기 시작하니 정신이 돌아와 겨우 몸을 일으켰다.

“고생했어요, 찬용 씨.”

짐꾼 채널의 PD 안상규가 생수를 건네주며 말을 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하고 호흡 좋더라고요. 계속 나오시는 거 맞죠?”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맛보기가 이 정도인데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고작 먹을 거에 눈이 멀어 이 짓을 한 날 원망하게 된다.

“하하.”

안상규 PD가 웃는다.

농담인 줄 아나 보다.

“오늘 영상 원본 클라우드에 업로드해 드릴게요. 편집은 얼마나 걸리실 것 같아요?”

“네?”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했다.

오늘 촬영분을 편집해서 짐꾼과 반찬가게에 각자 올려야 할 테니 일정 조율을 하자는 말이다.

진짜 정신이 없긴 하다.

“그냥 짐꾼에 올리는 게 낫지 않아요?”

편집을 다르게 가져간다 해도 같은 소재를 두 채널에 나눠 업로드하면 조회 수도 나뉘게 된다.

나야 차지찬이 출연하는 영상을 올리면 이득이지만, 짐꾼에게는 손해일 뿐이다.

“사장님이 그러라고 하셨어요.”

고개를 돌리니 차지찬이 물을 마시고는 땀을 닦고 있다.

“정말요?”

“네. 사장님이 찬용 씨 진짜 좋아하잖아요.”

오늘 스쿼트할 때 숫자 가지고 장난친 건 용서해 줘야겠다.

“그럼 모레쯤 가능할 것 같아요.”

스마트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한 뒤 편집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려주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고 내일 연락드릴게요. 업로드 시간이랑 다음 촬영 일정 같이 조율해요.”

“네. 감사합니다.”

안상규 PD가 엄지를 들어올렸다.

“잠깐, 다음 촬영이요? 한다는 말 안 했는데.”

“파이팅!”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가버린다.

차지찬이 다가왔다.

“힘들지?”

“나 다음에도 한다고 안 했어! 왜 다음 촬영 일정을 잡아!”

“오. 소리치는 거 보니 힘이 남아 있네? 좀 더 할까?”

고개를 저으니 차지찬이 씩 웃었다.

“어때?”

“죽을 것 같아.”

“원래 그래. 그만큼 건강해지는 거고. 씻고 나와. 밥 먹으러 가자.”

“응.”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리를 거의 끌다시피 샤워실로 향하는데 문득 잊은 게 생각났다.

“형.”

차지찬을 불렀다.

“어.”

“고마워.”

차지찬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 * *

자동차 안에서 널브러져 있다 보니 여의도 어느 건물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겨우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4층에서 내렸다.

투명한 유리벽으로 식당 내부가 훤히 보이는데, 모두 룸식인지 밥 먹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서오세요. 예약하셨나요?”

안으로 들어서니 직원이 나와 차지찬을 맞이했다.

“네. 차지찬이요.”

차지찬을 확인한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정중히 안내했다.

요즘에는 TV에도 출연할 정도로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어딜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안내 받은 방에는 4인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문이라든가 의자, 조명, 벽에 걸린 수묵채색화 등 전통적인 인테리어가 고풍스럽다.

차지찬이 메뉴판도 보지 않고 주문했다.

“B 코스 130g 주세요.”

“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방을 나서자마자 물었다.

“비싼 데 아니야?”

“적당히?”

“얼만데?”

“몰라. 10만 원 좀 넘을걸?”

“히.”

이 인간은 금전감각이 맛이 간 게 분명하다.

한우라고 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한끼 식사로 삼기엔 부담스럽다.

“한우 코스는 처음이야.”

“오늘 먹으면 되겠네. 여기 음식 괜찮아.”

메뉴판에 M 식당이라고 적혀 있다. 여의도는 올 일이 없기도 하고 이렇게 비싼 식당도 올 일이 없다.

“나 이런 데 안 다녀봐서 기분 좀 이상해. 얻어먹어도 되나 싶고.”

“너 전업한다고 하니까 힘내라고 사 주는 거야. 맛있게 먹어.”

“형…….”

“감동했냐?”

“응. 근데 좀 어떨떨해.”

“그래. 누가 소고기를 사 주냐?”

“그러니까. 우리 이런 거 사 줄 정도로 친하진 않잖아.”

“이 자식이.”

실없는 농담에 웃었다.

“아, 근데 나 방송 켜도 돼? 집에 가면 바로 뻗을 것 같아서.”

“어. 편하게 해.”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켜니 곧 시청자들이 들어왔다.

└반하

└헐 짐꾼이다

└아까 합방하던데 뒷풀이 중임?

└힘들어서 오늘 방송 안 할 줄 알았는데 엄살이었나 보네

“엄살은 무슨. 지금 죽겠어요. 다들 지찬이 형 아시죠?”

200만 구독자의 유명인사와 함께하니 다들 믿기 힘든 모양이다.

└지찬이 형?? 차지찬이 형이야?

└아저씨 친하지도 않으면서 지찬이 형이라고 부르지 마요.

└아니, 아저씨 요즘 왜 그래. 반야식경에도 나오고 짐꾼에도 나오고. 돈 줬어?

└왜 친함??? 왜?

“왜긴 왜야. 난 뭐 유명한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면 안 돼요? 오늘 합방 끝내고 밥 사 준다 해서 따라 왔어요.”

“우리 안 친해요. 서먹하고 건조한 계약 관계예요.”

점심 때 얘기했던 걸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청자들이 웃는다.

└그럼 그렇짘ㅋㅋㅋㅋ

└그만 좀 들러붙어. 민폐야.

└ㅋㅋㅋㅋㅋㅋㅋㅋ친한 척 오짐

└빨대 제대로 꽂았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 지으니 차지찬이 복수했다는 듯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치하다.

한마디 하려던 차, 직원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맞이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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