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9화
2. 첫키스(3)
“약식, 김 부각, 곶감에는 치즈를 넣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약식은 익숙하지만 김부각에는 뭔가 많이 올려져 있다. 또 곶감에 치즈를 넣다니. 무슨 맛일지 상상이 안 된다.
“잘 먹겠습니다.”
김부각을 하나 입에 넣었다.
바삭거리는 식감이 너무나 완벽한데, 씹다 보니 은은하게 고소한 향이 느껴진다.
“말도 안 돼.”
“뭐가.”
“김부각이 왜 이렇게 맛있어? 이건. 이건 반칙이잖아. 여러분, 김이 너무 맛있어요. 아니, 김이 맛있다는 정도를 넘어섰어요.”
김은 맛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김은 김일 텐데 이렇게까지 맛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맛이 풍부하다.
└오바 ㄴㄴ
└이 아저씨 이제 무리수 두네.
└맨날 배추, 숙주만 먹으니까 혀가 맛이 간 듯.
└반야식경 나가서 시금치도 맛있다고 했던 인간임. 이제 솔직한 반찬용은 없음.
└ㄹㅇ 혈관이 파괴되는 말든 햄버거 쑤셔 넣던 상남자였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딴 것도 먹어 봐.”
차지찬이 피식 웃었다.
약식은 맛을 알고 있으니 이번에는 치즈를 넣은 곶감을 집었다.
곶감은 무슨 맛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잊고 살았다.
맛있었다면 내가 가만둘 리 없는데 분명 취향에 맞지 않은 음식이었을 거다.
하지만 비싼 식당이니 맛은 보자는 생각으로 입안에 넣었다.
“……나 곶감 좋아했네?”
너무 황당하다.
쫄깃한 과육 아래 숨어 있던 치즈가 눅진한 맛을 과시한다.
“아니 여기 뭐야? 김이랑 곶감으로 어떻게 이런 맛을 내? 진짜 사기야.”
“네가 지금 뭘 먹어야 맛이 없겠냐?”
차지찬이 싱글싱글 웃으며 물었다.
“식단 관리한 지 일주일 정도 됐나?”
“응.”
“그동안 짜고 맵고 단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가 이제 미각이 돌아온 거야. 운동도 했으니 맛이 없을 리 없지.”
준비된 음식을 다 먹고 나니 빨리 뭔가 더 먹고 싶어진다.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마음이야 늘 한결같지만 이처럼 식욕을 돌게 해주는 에피타이저는 처음이다.
“나 지금 뭐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저씨, 아저씨 원래 다 먹었어요.
└언제는 안 먹은 것처럼 말하넼ㅋ
└나 당저씨 뭐 맛있게 먹으니 왤케 기분 좋짘ㅋㅋㅋ 나만 그럼?
└다행이긴 한데 저 황홀해하는 표정이 너무 킹받음.
└이 아저씨 요즘 뭐 먹을 때마다 고통받는 게 꿀잼이었는데
└짐꾼 님, 우리 아저씨한테 잘해주지 마세요.
└아닠ㅋㅋㅋ 곶감이 맛있으면 뭐 얼마나 맛있다고 오바야
“여러분, 제가 지금 막 과장해서 말하는 게 아니에요. 진짜 입맛이 싹 돈다니까요?”
말을 마치자마자 직원이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다.
“음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관자, 아라새우, 소스를 버무려서 함께 드시길 바랍니다.”
젤리 같은 것 위에 꽃잎을 올려두었고 그 아래는 새우, 야채, 관자가 깔려 있다.
주변 소스는 상큼한 향을 풍기는데 어떤 맛일지 상상이 잘 안 된다.
“작아.”
다만 양이 너무 작다.
콧구멍에 넣어도 되겠다.
“많이 남았어. 먹어 봐.”
차지찬이 씩 웃으며 본인 몫을 먹었다.
나도 알려준 대로 숟가락으로 잘 버무려 한 입에 넣었다.
젤리 식감은 별로지만 그 아래 탱글탱글한 새우살이 입 안에서 통통 튄다.
상큼한 향이 더해지니 이제는 다음에 뭐가 나올지 기다릴 수 없다.
“와. 여기 밀당 장난 아니다.”
“맛있지.”
“어. 맛있어.”
먹으면서 채팅창을 보는데, 그새 시청자가 늘어서 채팅 속도가 빨라졌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잘 먹으니 보기 좋네. 운동 열심히 해서 먹방도 하고 그래. 시청자분도 좋아하시네.”
“그래야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늘 내내 납득할 수 없었던 일을 확실히 해야만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형.”
“뭔데 무게를 잡아?”
“좀 이해가 안 돼서.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왜. 잘해주면 안 되냐?”
“아니 너무 좋아.”
차지찬이 피식 웃었다.
“꼭 이유가 있어야 하냐만은 너한텐 차고 넘치게 있지.”
차지찬이 물을 마셨다.
“나 힘들 때 네가 도와줬잖아.”
벌써 5년 전 일이다.
당시 차지찬의 방송은 시청자 50명도 안 되었는데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
문어하고 잠수 대결을 하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점잖은 방송이었는데.
욕하고 소리치는 방송을 싫어하던 내겐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채널이었다.
무엇보다 이것도 대리만족의 영역인지 차지찬이 운동을 마치면 뭔가 내가 뿌듯해지곤 했다.
다만 인기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
당시에도 방송경력이 4년이나 됐는데 유튜브 채널조차 없길래 채팅으로 물으니.
편집할 줄 몰라서 공부하는 중인데 쉽지 않다고 해서 팬심으로 도와주기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4년 동안 무명이었는데. 네가 유튜브 채널 만들어주고 반년 만에 50만 구독자 찍었을 땐 이게 뭔가 싶더라고.”
차지찬이 씩 웃었다.
“그동안 말은 안 했는데 지금인 것 같더라. 고맙다.”
이미 행동으로 충분히 돌려 받았다.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내가 직장을 따닐 때는 월급 실수령액이 고작 138만 원이었다.
월세랑 식비를 제하면 남는 게 거의 없어서 옷 한 번 사 입기 부담스러웠는데.
짐꾼 채널이 성장하면서 차지찬이 내게 큰 돈을 주기 시작하며 생활이 윤택해졌다.
지금껏 저축하여 전업 유튜버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희망을 가진 건 모두 차지찬이 내 보수를 다른 사람 이상으로 높이 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 합방하면서 인지도도 쌓고 건강도 챙기고 가끔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자.”
차지찬이 말을 마치자 잠시 대화가 끊겼다.
예전 일도 생각나고 해서 괜히 가슴이 간질거리는데 채팅창을 보니 따뜻해졌던 가슴이 식고 말았다.
└와 차지찬 인성
└아저씨가 짐꾼 채널 편집자였어?
└장투 성공 ㄷㄷ
└차지찬한테 빨대 꽂은 거 맞네.
└당저씨 인맥 뭐임? 반야식경에 짐꾼 미쳤다
└운동도 가르쳐 주고, 밥도 사 주고, 방송도 도와주고. 이 정도면 3대가 받들어 모셔야 할 듯.
└이런 사람한테 운동 힘들다고 찡찡댔어?
└정신 못 차렸네.
차지찬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아마 빨대 꽂았다는 채팅을 본 듯싶다.
“맞아. 빨대 꽂았지 뭐.”
차지찬이 놀란 얼굴을 했다.
“지승이 형 방송 나갔더니 그날 만 명 늘더라. 확인은 못 했는데 형 방송 나갔으니 그만큼은 늘었겠지. 대기업 방송 나가는 거 그거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해. 빨대 맞아.”
“반찬용.”
“근데 그걸 네가 말하면 안 되지. 우리끼리 농담으로 할 순 있어도 네가 뭔데 빨대니 뭐니 염병이야? 넌 나가.”
헛소리하는 놈을 강제퇴장시키니 차지찬이 피식 웃었다.
└어그로 컷
└ㅋㅋㅋㅋ그치 지가 뭔데
└난 당저씨 이러는 게 좋더라. 어그로 가차없이 쳐내는 거.
음식이 또 들어왔다.
“네품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단호박 수프, 새우전, 안심 샌드, 참깨 떡모찌입니다. 수프부터 시계방향으로 드시면 됩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미쳤다.”
정말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음식은 예쁘게 담아야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서도, 이렇게 정갈하고 기품 있게 플레이팅 된 음식을 보니 그 말 뜻을 비로소 이해한 듯싶다.
“어디.”
설명 들은 대로 단호박 수프부터 한 입 떠 먹었다.
“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호박죽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죽을 쑤고 곱게 갈았나 싶을 만큼 부드러운 호박 수프가 혀 위에 도포된 순간 농밀한 호박향이 그윽하게 올라온다.
달다.
본능적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멈출 수 없다.
“나 당뇨 판정 받고 이렇게 단 거 처음 먹어.”
당근 케이크조차 이보다 달진 않았다.
“괜찮아.”
차지찬이 씩 웃는다.
정말 괜찮을지 걱정되나 오늘 운동을 열심히 하긴 했다.
차지찬도 괜찮다고 하니 마음놓고 수프를 비웠다.
“이번엔.”
새우전을 살폈다.
새우로 만든 전은 처음 보는데 상당히 통통해서 전분가루를 많이 쓰지 않았을까 싶다.
“어디.”
새우전을 입에 넣은 순간 내 상상력이 얼마나 옹졸한지 절감했다.
“흐흐흐흫. 그렇게 맛있냐?”
차지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을 끄덕여도 부족하다.
“이게 말이 돼? 익은 거잖아. 익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탱글탱글해?”
얇은 전분옷 아래 새우는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는 식감을 자랑했다.
탱탱한 새우 여럿이 입 안을 유영하는데,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그만큼 풍요롭다.
새우를 이보다 만족스럽게 먹는 방법은 없다.
씹을 때마다 잇몸과 혀 사이를 누비는 새우살이 입 어디에나 존재한다.
전분인 줄 알았던 그 모든 것이 전부 새우다.
“와.”
충격만큼이나 여운도 길다.
여태까지 먹어본 그 어떤 전도 이런 행복을 전해주진 못했다.
새우전. 맛있다.
시선을 옮기는 과정에서 내가 방송중이었단 사실을 깨달았지만, 채팅창 따위 볼 시간이 없다.
다음 요리를 먹어야 한다.
“이건.”
다음은 카츠산도.
앞서 먹었던 음식들은 무슨 맛일지 예상이 안 되었던 데 비해 카츠산도는 편의점에서 몇 번 사 먹어 보았다.
이런 곳에서 내주었으니 분명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 좋아하는 음식이라 무슨 맛인지 잘 안다.
어디.
샌드위치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은 순간 또 한 번 내 성급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토스팅된 식빵 아래 자리한 안심가스야말로 오늘의 주인공이었다.
바삭한 튀김옷으로 감싸진 육질이 혀에 닿자 진한 육향이 비강을 채우고 녹아내린 육즙이 혀와 잇몸을 감쌌다.
이성이 마비되는 맛이다.
씹고 맛보는 일 이외에는 그 어떤 정보도 입력되지 않는다.
“난 이게 제일 맛있더라.”
차지찬의 말에 백번 공감한다.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돈가스 샌드위치는 가짜였어.”
“뭐라냐.”
차지찬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서 다음 음식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모찌.”
모찌도 몇 번 먹은 적 있다.
쫄깃쫄깃한 식감을 좋아해서 아마 이것도 즐겁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수저로 작게 덜어 입에 넣었다.
“……음?”
이건 뭐지.
모찌라기보다는 푸딩에 가까운 식감인데 놀랍도록 부드럽다.
우유?
참깨와 우유의 고소한 맛이 절묘하게 어울리는데 혀를 움직일수록 풍미가 깊어진다.
“맛있지.”
“다음.”
참을 수 없다.
“다음!”
다음은 또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나올까 흥분되어 소리치니 노크 소리가 났다.
민망해서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리니 차지찬이 맞은편에서 큭큭거린다.
└진짜 개창피하넼ㅋㅋㅋㅋㅋㅋ
└이 아저씨 오늘 왤케 신났엌ㅋㅋ
└스쿼트할 땐 죽어가더만 먹으니까 살 판 났네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다음 음식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보리로 숙성한 농어 구이, 무 조림 그리고 바질 리소토입니다. 드실 때는 세 음식 모두 한 번에 드시길 추천드립니다.”
직원이 그릇을 치우고 새 음식을 식탁에 올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