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10화 (10/120)

치팅데이 10화

2. 첫키스(4)

한우 코스 요리라더니 한우는 안 보이고 다른 음식만 주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 상관 없다.

잘 구운 농어와 무, 바질 리소토는 또 어떤 맛일지가 중요하다.

농어 살점을 조금 뜯어 먹었다.

“여기 음식은 전부 부드럽다.”

농어구이는 아주 정석적인 맛이다.

충분히 구운 껍질이 바삭한 식감을 더해주어 재밌는데, 속살이 주는 포근한 느낌을 찾게 된다.

“무도.”

생선조림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다름아닌 무다.

간이 얼마나 잘 배어 있고 부드럽게 익었는지가 포인트.

수없이 먹어본 음식인 만큼 이곳의 무조림이 어떤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어?”

사각사각한 느낌 없이 너무나 쉽게 잘린다. 그런데도 너무 익어서 흐물거리지 않고 식감이 유지되었다.

그런 와중에 또 소스를 가득 머금고 있다.

완벽하다.

생전 이렇게 완벽한 무조림은 처음이다.

진정하자.

하나하나를 맛보았으니 이제 함께 먹을 차례다.

숟가락을 들어 바질 리소토를 뜨고 그 위에 농어를 올려 입에 넣었다.

씹기 전에 무조림을 집어서 머금은 뒤 조심스레 씹기 시작했다.

눅진한 바질 소스 사이사이로 보리알이 알알이 춤춘다.

농어 속살이 바스라져 그 밑을 받치고 소스를 가득 머금은 무가 식감과 풍미를 더하니.

보리알이 혀 위를 누비며 춤을 추는 듯하다.

무게감을 잡아주는 베이스와 정열적인 첼로 반주가 절묘하다.

왜.

왜 이것을 함께 먹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다.

각각 독립된 음식으로도 충분히 맛있었던 이들이 트리오를 이루어 완벽한 하모니를 자아낸다.

문득 고개를 드니 차지찬이 불경스럽게도 이 완벽한 3중주를 각기 따로 먹고 있다.

“형. 이거 같이 먹어야 해.”

“난 따로 먹을래.”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같이 먹어 봐. 여기서 그렇게 먹으라고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안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뭐.”

“아니야. 그거 죄야. 범죄라고.”

“뭔 소리야.”

차지찬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접시 위의 모든 요소를 올려 한 입에 넣으니 이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맛있네.”

“맛있네? 형, 이건. 이건 예술이야. 농어. 이 농어가 여기까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어?”

“또 뭔 소리를 하려고.”

“얘는 깊은 바닷속에서 빛도 못 받고 살았어. 왜? 날이 추워지면 수면도 차가워지니까. 살려면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 담수를 좋아하는데도 수면으로 올라올 수 없었다니까?”

농어는 연안 같은 얕은 바다나 강 하류를 좋아한다.

“근데 그런 아이를 어부가 잡아 올린 거야. 그 농어를 건져 올린 어부의 노고는 또 어때?”

차지찬이 턱을 살짝 옆으로 돌리고 눈썹을 모았다.

“이 리소토에 들어간 보리는? 얘는 그 추운 날씨에도 이렇게 예쁘게 알을 맺었잖아. 이 아이를 위해서 겨울에 씨를 뿌린 농부의 땀은 또 어떻고?”

차지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무! 장하지 않아? 기특하게도 강원도 고랭지 밭에서 추위를 견디면서도 기어이 속을 꽉 채워냈어. 이렇게 장성했다고. 바다, 밭, 산에서 모인 세 명의 원석이 요리사라는 완벽한 프로듀서를 만나서 데뷔를 한 거야. 이 테이블이 얘들한테는 세종문화회관이라고. 그 수많은 역경을 지나 완벽한 현악 3중주를 이뤘는데 이게 맛있어? 고작 맛있어? 그래! 맛있지! 너무 맛있어!”

“방언 터졌냐?”

└어디 대본 있음?

└뭔 말이 끊나질 않앜ㅋㅋㅋㅋㅋ

└진짜 저 정도면 병이다. 병.

└ㅋㅋㅋㅋㅋㅋㅋ찬용 아저씨 예전 모습 나오네. 김치찌개 먹으면서 오르가즘 느끼던 때 생각나네.

└그거 고작 1달 전이었음.

└오르 뭐요?

흥분해서 헛소리를 꺼냈지만 정말 맛있다.

당뇨병 판정을 받은 이후로 이렇게나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형.”

“왜 또.”

“키스해 본 적 있어?”

“컥.”

물을 마시던 차지찬이 사레 들렀다. 괴로운지 켁켁대며 목을 가다듬지만 지금 중요한 건 농어다.

“난 없어. 근데 이거 먹으니까. 알 것 같아.”

정말 알 것 같다.

이 황홀함.

혀와 잇몸을 스치는 애절한 감각.

짙은 향까지.

“이게 키스였어.”

“아니야.”

“응?”

“아니라고.”

“이 황홀함은 키스라는 말 이외에 표현할 방도가 없어.”

“아니라고, 미친놈아.”

“이해 못 하는 걸 보니 형도 키스를 못 해봤구나?”

“그만해! 아무리 방송 중이라도 이렇게까진 안 해도 되잖아!”

“뭔 소리야?”

“33살 먹고 키스 한 번 못 했다는 게 말이 돼?”

“……형.”

“어?”

농어구이와 바질 리소토, 무조림을 다시 한번 음미한 뒤 입을 열었다.

“형이 오늘 나한테 키스를 가르쳐 줬어.”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 마! 이상하잖아!”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쳤낰ㅋㅋㅋㅋㅋㅋㅋ

└반찬용 진짜 돌아이넼ㅋㅋㅋㅋㅋ

└아ㅋㅋㅋ 그치 저 정도 음식이면 그게 키스지

└팩트) 아님.

└차지찬 저러는 거 처음 봄ㅋㅋㅋ

└발작하넼ㅋㅋㅋㅋㅋㅋ

└반찬용 드립 수위 미쳤다 ㄷㄷ

차지찬이 기겁하니 시청자들이 웃고 난리가 났다.

웃기고 싶어서 한 말인데 기대 이상으로 리액션이 좋았다.

잘 통해서 다행이다.

아까 전 시청자들 앞에서 서먹한 사이라고 놀린 것에 대한 복수도 잘 마친 것 같다.

“다음 음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한우 비장탄 구이입니다. 초벌이 되었고 기호에 맞추어 구워 드시면 됩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고기다.”

앞서 너무 만족했던 터라 한우 코스 요리를 주문했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직원이 내어 준 고기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프라이팬이 적당히 달궈진 후에 고기를 한 점 올렸다.

치이익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그 어떤 가수의 목소리보다 아름답다.

“반찬, 먹으면서 들어.”

“응.”

“내가 내년에 준비하고 있는 콘텐츠가 있어. 별건 아니고 사람 모아서 다같이 부산까지 걸어가려고.”

“미쳤구나?”

“이 자식이.”

“거기까지 왜 걸어 가.”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으니까. 우리가 나이도 좀 먹었고 조금씩 도전이라는 걸 안 하게 되잖아. 마음도 다잡고 또 방송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으쌰으쌰도 하고. 친분도 나누고.”

언제쯤 뒤집을까.

“듣고 있냐?”

“어.”

고기를 뒤집으니 너무나 사랑스럽게 익은 한우가 날 향해 미소 짓고 있다.

“중간중간에 지역 들러서 좋은 일도 할 거야. 도움 필요한 곳에 쌀도 나눠 드리고 김치도 드리고.”

“좋네.”

“그지? 하자.”

“싫어.”

아무 말도 안 들려서 고개를 드니 차지찬이 인상을 쓰고 있다.

“좋다며. 뭐가 문제야.”

“부산까지 어떻게 걸어가. 못 해.”

“지금은 못 가도 내년 6월쯤엔 할 수 있어. 관리만 잘하면.”

“그렇게 하면 갈 수 있겠지.”

“가자.”

“안 해.”

“야!”

“아니, 형. 나 진짜 상상이 안 돼서 그래. 부산까지 어떻게 걸어가. 짐도 있을 거 아니야. 나 군대에서 20㎞ 행군할 때도 죽을 것 같았는데 400㎞를 어떻게 가냐고.”

시청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스마트폰을 보니 의외로 의견이 한 데 모였다.

└와 방송 도와준다는데 그걸 거절하네.

└아저씨 하자고 할 때 하세요.

└운동해, 방송해, 봉사활동으로 좋은 일도 해. 도대체 뭐가 문제임?

└당장 짐싸서 걸어. 오늘부터 걸으면 내년 6월엔 도착하겠지.

역시 미친놈들이다.

“쉬엄쉬엄 갈 거야. 걱정 마.”

“큰일하면 변수가 생겨. 천천히 가려고 해도 참가하는 사람들도 개인 일정 있으니까 쉽지 않을걸? 그리고 날씨는? 하루이틀도 아닌데 비라도 오면 어쩌려고. 저는 못 갑니다.”

“진짜 안 갈 거야?”

“응.”

“더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데?”

고개를 들었다.

단호한 표정 때문에 혹하기도 했지만, 순간의 쾌락을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만큼 멍청하지 않다.

맛있는 건 서울에도 많으니까.

“인정할게. 혹하긴 했어. 근데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전국에 안 다닌 곳이 없어. 충주, 상주, 대구, 부산. 어지간한 맛집은 다 가봤지.”

“…….”

“짐은 차로 실어줄게. 중간중간 차 타고 이동할 때도 있어. 대신 걷는 날엔 무조건 맛있는 거 먹여줄게.”

잘 익은 한우를 입에 넣었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육질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패착이었다.

“여기보다 맛있어?”

“맛있는 곳도 있고 조오금 덜한 곳도 있고.”

“아니면?”

“반찬, 나 못 믿냐? 나 의리와 열정으로 살아온 남자야.”

차지찬이 본인 몫의 소고기를 내게 덜어주었다.

확실히 의리 있는 사람이다.

“너 지승이 형하고 합방하고 구독자 많이 늘었다고 했지.”

“응.”

“나랑 해도 그럴 거고. 다른 사람이랑 만나도 반응 있을 거야. 이 바닥에 합방이 왜 그렇게 많은 줄 알아?”

“구독자가 느니까.”

“그래. 내가 200만이고 네가 10만이라도 서로 이득이야. 왜? 내 채널 보는 사람 중에 너 모르는 사람 있고, 네 영상 보는 사람 중에 나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또 방송 자체가 신선해지니까.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잖아.”

이건 옳은 말이다.

서로 전문 분야가 다르고 성향도 다르니 대화 주제가 평소와 다르게 잡히고 그러다 보니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서로 죽이 잘 맞는 사람이 모이면 재밌거든. 우리도 시청자들도. 근데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

구워진 고기를 입에 넣었다.

“혼자서는 언젠가 콘텐츠에 한계가 와. 한 사람이 아는 게 얼마나 있어서 매일 영상을 올리겠냐. 매일 공부하고 연구해도 부족하지.”

“……그치.”

나도 잘 안다.

최근 콘텐츠를 보충하기 위해 노력 중이나 이거다 싶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힘들다.

차지찬처럼 장기간 방송을 한 사람이면 더욱 그럴 것이다.

“새로운 사람 만나면서 서로 도와주는 거야. 이렇게 큰 모임에 얼굴도 비추면 도움이 되지.”

옳은 말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교류가 힘들잖아. 맨날 집에만 있으니까.”

“응.”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우울증 같은 거 생겨. 나도 사교적이진 못해서 그러라고 강요는 안 하는데, 잘 생각해 봐. 적당한 거리 두면서 사람들하고 교류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좁아졌다.

원래도 친구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사는 게 워낙 팍팍한 데다 직업 자체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 되었다.

└그래 친구 좀 사귀어

└ㅋㅋㅋㅋㅋ사회활동 좀 하라는 말 잘 포장하네

└맨날 집에만 있지 말고 사람들 만나면 좋을 듯

채팅창을 확인해 보니 시청자들이 또 날 놀려먹고 있다.

“여러분도 없잖아요. 누가 보면 친구 있는 것처럼 말해.”

└헐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해요?ㅠ

└팩폭 ㄷㄷ

└아ㅋㅋㅋㅋㅋ친구 있었으면 이 시간에 아저씨 둘이 밥 먹는 방송 보겠냐고ㅋㅋ

└독하다

└ㅠㅠ

“생각해 볼게.”

“생각할 게 뭐 있어. 한번 해보고 아니면 말면 되지.”

더 긍정적으로 말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어 난감한 차에 노크 소리가 났다.

직원이 담양식 떡갈비와 수란, 그리고 흰쌀 밥과 미역국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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