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12화 (12/120)

치팅데이 12화

3. 부대찌개(1)

“오.”

주지승, 차지찬과의 연이은 합방 덕분에 유튜브 영상 조회 수가 크게 늘었다.

특히 어제 업로드한 차지찬과의 먹방은 다른 영상들에 비해 조회 수 상승폭이 확실히 좋다.

이대로라면 내 채널 최초로 40만 조회 수를 넘길 것 같다.

댓글과 좋아요 비율이 좋아서 내심 기대는 했지만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간다.

“아저씨들이 밥 먹는 영상을 왜 좋아하는 거야? 취향 독특하다니까.”

고민해 보니 이유가 아예 없진 않다.

유명 유튜버가 출연했기 때문일 테고, 차지찬을 놀리는 장면이 짤방 형태로 여러 커뮤니티에 퍼진 덕이고, 내 헛소리가 잘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썸네일도 잘 뽑혔고 인트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유튜브 알고리즘 신께서 도움을 주시기도 했고 말이다.

이런 요인들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도 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앞으로 이런 영상을 자주 올려야 할 텐데 인지도 있는 유튜버와 합방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편집 일을 오래 하면서 쌓아둔 인맥이 있고 그중에서도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은 친하게 지내니 어쩌다 한 번씩은 기대할 수 있으나 그들 모두 일정이 빡빡하다.

언제까지고 기댈 순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반찬가게는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합방으로 유입된 사람들을 붙잡아 놓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도 건강식을 직접 해 먹으며 고통받는 어설픈 쿡방과 일주일에 한 번 외식하는 먹방이 괜찮은 반응을 보이나.

유튜버를 전업으로 삼게 되면 지금보다 방송일을 늘려야 하니 시간을 채울 새 콘텐츠가 필요하다.

“어디.”

특별한 생각이 나지 않아서 지금까지 외주 받았던 영상을 뒤적였다.

다양한 소재의 영상을 보고 있자니 유튜버들이 콘텐츠를 뽑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지 새삼 깨닫게 된다.

본업으로 삼기로 했으니 나 또한 전력을 다해 준비해야 할 거다.

책상까지 기어가 방송을 켰다.

11월만 해도 평균 시청자가 100~200명이었는데 이제는 방송을 켜자마자 180여 명이 들어왔다.

한창 방송 중일 때는 500명도 넘는다.

이제 시작이다.

작은 성과에 취해 있지 말고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시청자들이 적당히 모였으니 카메라를 켜고 이불 위에 누웠다.

└반하

└??

└오늘은 밥 안 해먹음?

└왜 누워 있엌ㅋㅋㅋㅋ

└방송 편하게 하네

└눕방ㅋㅋㅋㅋㅋㅋ

└크리스마스에도 방송함?

“너무 그러지 마요. 방송 켠 것만으로도 엄청 힘낸 거니까.”

그제 스쿼트 100개와 5.6㎞를 걸은 덕분에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지금의 나로서는 누워 있는 게 최선이다.

“오늘은 힘이 없어서 밥 먹고 틀었어요. 크리스마스에 뭐 하긴. 뭐 하는 날이야?”

크리스마스는 자는 날이다.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와서 마트에서 캐롤을 들을 수 있고, 매장에서는 가랜드와 트리를 볼 수 있다.

작년에는 자다 깨다 반복하며 해리포터 영화를 정주행했는데, 올해는 방송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 중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리스마스가 뭔데?

└케빈 보는 날

└케빈이 뭐임?

└벌써 나홀로집에를 모르는 세대가 왔나

└요샌 TV에서 잘 안 해주나?

└애초에 TV를 안 보잖아ㅋㅋ

얘들은 참 저들끼리 잘 논다.

“크리스마스에도 방송할 거예요. 뭘 할지는 아직 못 정했는데. 뭐, 생각 나겠지.”

└일단 산타 코스프레

└ㅋㅋㅋㅋㅋ개웃기겠넼ㅋㅋ

└이 아저씨가 수염 붙이고 빨간 옷 입으면 그게 산타짘ㅋㅋㅋ

└고퀄 코스프레 ㄷㄷ

└내가 이래서 이 아저씨가 좋아. 크리스마스에도 방송해야지.

열 받긴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어울릴 것 같긴 하다.

산타클로스 체형 선발 대회 같은 게 있다면 우승권 아닐까 싶다.

“그런 거 코스프레 해서 뭐 해요. 그리고 애초에 산타 자체가 문제야. 없는 걸 있다고 해서 좋은 게 뭔데?”

└헐. 산타 없음?

└나 너무 충격이야

└동심 파괴 ㄷㄷㄷ

└아저씨 너무 해요 ㅠ 선물 받으려고 올해도 안 울고 열심히 살았는데

└형 이건 진짜 큰데. 산타 없단 사실 밝혔다는 게 알려지면 사회적 파장 장난 아닐 거야.

└ㄹㅇ 이 정도면 법정 서도 할 말 없음. 바로 유죄임.

└사과해

└해명해

이 사람들은 하루라도 헛소리를 안 하면 안 되는 병에 걸린 게 분명하다.

“참내.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 방송 시청자 30~40대가 90%예요. 자꾸 저한테 아저씨, 형 하지 말아요. 저보다 나이 많은 분 많잖아요. 형이잖아요. 산타가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30년 전에 알았잖아요.”

└38개월 아가는 산타 믿어요

└나 31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아저씨 얼굴 보면 아저씨 소리 절로 나오는데 어떡함.

└77뱀띤데 그냥 형이라고 부를래.

└미친ㅋㅋㅋ나만 20대였음?

이 인간들은 하루라도 날 놀리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산타는 배려심이 없어요. 생각해 봐. 어린이날 다른 애들은 게임기, 로봇, 자동차 이런 거 받을 때 선물 못 받은 애 기분은 어떻겠어? 나도 1년 동안 착하게 있었는데, 안 울었는데 왜 나만 선물 못 받지? 나 나쁜 아이인가? 그렇게 생각할 거 아니에요. 그런 애들한테는 제대로 말해줘야지. 산타 같은 건 없고 네가 나빠서 선물 못 받는 게 아니라고.”

└맞아. 나도 얼마 전에 친구가 부모님한테 자동차 선물 받았는데 너무 부러웠음.

└그 자동차가 아니잖앜ㅋㅋㅋㅋ

└경험담임?

└아저씨 누워서 그런 말 해봤자 설득력 없어요.

“그리고. 이 아저씬 왜 멀쩡한데?”

산타클로스 그림을 띄우며 물었다.

“여러분도 말했잖아요. 산타랑 나랑 체형이 똑같다고. 그럼 산타도 고혈압 있고 당뇨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이 아저씨만 건강해?”

└질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ㅋㅋ뭔 말하나 했네

└독기 오른 거 보소

└반하다 추찬용

└반했다고? 너 설마

“그렇잖아요. 난 산타가 크리스마스 말고 밖에 다녔단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여러분 3월 11일에 산타 본 적 있어요? 7월 19일은? 없잖아. 1년에 단 하루 외출하시는 분이면 운동도 안 할 텐데 왜 나는 풀떼기 먹고 이 아저씨는. 뭐, 맛있는 거 드시겠지. 산탄데.”

└산타라는 이름은 사실 사탄에서 유래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죠

└ㅁㅊ 받힘 위치만 바꾸면 산타가 사탄이 되네

└헉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산타랑 사탄은 영어잖아. santa. satan. 뭔 받침만 바뀌면 똑같아.”

└n 위치만 다르잖아.

└미친. 영어로 해도 n 위치만 달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산타는 무슨. 사탄이었네.”

└그걸 또 속네

└ㅋㅋㅋㅋㅋㅋㅋ빡대가리

└???: 내가 뚱뚱하지 멍청이야? 봐! 133㎏잖아!

“아, 뭘 또 그래요. 드립 친 거잖아. 무슨 농담을 못 해.”

시청자들과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던 중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우지니어스의 백우진이다.

그제 보낸 영상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 받았다.

-형, 나 방송 보는 중인데 잠깐 괜찮아?

이건 또 뭔 상황이지.

방송 중이라 잠시 뒤에 연락해도 되냐고 물어보려던 차에 먼저 질문을 받아버렸다.

“왜?”

-재밌는 이야기 생각 나서 얘기해 주려고.

“아니. 네가 왜 내 방송을 보고 있냐고.”

-심심하니까.

└뭔 전화임?

└누구?

└설문조사 전화잖아. 친구 있는 척하지 말고 끊어. 빨리.

└핸드폰 바꾸라는 전화임ㅋㅋㅋ

“친구 있는 척이라뇨. 우진아, 니가 얘기 좀 해봐.”

스피커폰으로 바꾸었다.

-안녕하세요. 친구는 아니고 그냥 지인인 백우진입니다.

“봐. 그…… 친구 있는 척해서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 우지니어스 백우진임?

└아니 이 형은 왜 모르는 사람이 없음?

└백우진이 누군데?

└문학, 미술, 음악, 상식, 과학 등등 잡다한 지식 다루는 유튜버임.

└진짜 백우진임???

“무슨 말인데. 빨리 하고 끊어.”

-형이 산타클로스는 왜 건강하냐고 억울해했잖아. 근데 솔직히 체형이라든가 안면홍조. 아, 안면홍조는 추운 날씨에 빠르게 이동하면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도 있긴 해.

깜빡했다. 얘 설명충이다.

우니지어스 채널에 업로드할 영상 편집해 줄 때마다 고생했다.

“그런데?”

-당뇨 등 성인병을 겪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세상은 공평하다.

-근데 산타클로스가 언제부터 뚱뚱했는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원래 날씬했거든. 근데 19세기에 하퍼스위클리라는 잡지에 뚱뚱한 산타클로스 삽화가 실리면서 그 이미지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야. 그러니까 산타클로스는 19세기부터 당뇨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는 거지.

“……어?”

-근데 이상하지? 200년 이상 당뇨병을 앓았으니 분명 합병증이 왔을 텐데 산타클로스는 멀쩡하잖아? 심지어 1931년에는 코카콜라 광고까지 찍었고. 고향 핀란드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리시푸로라고 쌀, 우유, 설탕, 시나몬 가루로 만드는 리조또를 먹거든. 이렇게 혈당이 엄청 높아지는 음식을 먹는데도 합병증이 안 왔어. 신기하지 않아?

“…….”

-아마 내 생각엔 서양인의 췌장이 동양인에 비해서 대체로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 그러니까 산타클로스는 뚱뚱해도 혈당이 많이 오르지 않는 거지. 아, 혈당 조절은 인슐린이 하는데 췌장이 그 인슐린을 분비하는 기관이야.

전화를 끊었다.

도로 전화가 걸려왔지만 다시 끊었다.

“잠시 소란이 있었어요.”

└갑자기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명충ㅋㅋㅋ

└방금 뭔 일이었음?

└몰랔ㅋㅋㅋㅋㅋㅋ 백우진 진짜 돌아이넼ㅋㅋㅋㅋ

└저거 말해주고 싶어서 전화한 거임?

└나 알고 싶지 않았는데 산타클로스가 당뇨가 아닐 수도 있단 쓸데없는 정보를 얻음.

└럭키 너드 ㄷㄷ

└100만 유튜버 어태 된 거야

└[우지니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형, 전화 끊어졌어. 핸드폰 봐 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화 끊어졌댘ㅋㅋㅋㅋㅋ

└듣기 싫어서 일부러 끊은 거얔ㅋ

“핸드폰 망가졌어. 미안. 다음에 연락하자.”

이 녀석 페이스에 말려들었다간 오늘 방송 내내 고통받을 것이다.

└[우지니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아니야. 지금 전화 거는 중인데 형 방송에서 진동 소리 나잖아. 고장 난 거 아니야.

“야, 이 돌은 자야. 나 방송 중이잖아. 산타클로슨지 사탄클로슨지가 당뇨인지 아닌지는 네 방송에서 말해. 왜 여기 와서 이래?”

└[우지니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알았어. 산타 이야기는 그만할게.

“그래.”

└[우지니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그럼 뭐 하고 놀까?

“뭘 놀아. 내가 왜 너랑…….”

말하다가 문득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제 무리하게 운동을 한 탓에 힘도 없으니, 사운드를 채울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좀 이상한 애긴 해도 113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대형 유튜버다.

반야식당의 주지승, 짐꾼의 차지찬과 합방했던 것처럼 분명 채널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해야지. 해야죠. 디스코드로 연락드릴게요.”

스마트폰을 계속 켜놓기보다는 컴퓨터로 연결하는 게 편하기에 디스코드로 전화를 걸었다.

-응. 들려?

“들려.”

-뭐 할 건데?

“좋아하는 음식 월드컵. 아니, 근데 안 바빠?”

백우진은 최근 들어 공중파에도 종종 출연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

덕분에 구독자 상승 추이가 국내 유튜버 중 손에 꼽을 만큼 좋은 상황인데, 이 중요한 시기에 내 방송에 들어와 있으니 의아할 수밖에 없다.

-응. 바빠.

“근데 왜 이러고 있어?”

-바쁘니까.

“뭔 소리야?”

-형, 학교 다닐 때 시험 전날에 뭐부터 했어?

“공부했지.”

-공부하기 전에.

“……방 청소?”

-그런 느낌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딴짓하고 싶어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건 인정이지

└진짜 공부해야 할 때만 이상하게 책상이 더러워 보이더라

-사실 슬슬 일해야 해. 일하기 싫어서 딴짓하던 중이었어.

“그럼 그렇지.”

아마 일하던 도중에 잠시 머리를 식히던 차에 심심했던 모양이다.

합방을 못 해 아쉽긴 해도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형 몸은 괜찮아?

“뭐. 혈당도 많이 떨어졌고 꾸준히 체중 관리 해야 하면 된대.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되겠지.”

-음.

백우진이 뭔가를 고민하듯 말을 끌었다.

-이따 방송 끝나면 톡 줘. 할 말 있어서.

“따로 할 말이야?”

-그런 건 아닌데 형 괜찮으면 시간 한번 잡을까 해서.

합방 이야기다.

“진짜 하게? 나야 좋지.”

-그래. 그럼 이따 얘기해. 끊는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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