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13화 (13/120)

치팅데이 13화

3. 부대찌개(2)

부탁하기 민망했는데, 백우진이 먼저 나서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갑자기 합방 제안을 한 것을 보면 뭔가 다른 생각이 있겠지만 나쁘지 않을 거다.

“아무튼 오늘은 좋아하는 음식 월드컵 할게요.”

누워서 입만 움직이기엔 이만한 콘텐츠가 또 없다.

“32강으로 가자. 시작은…… 부대찌개 대 탄탄멘. 와, 이거 미쳤다.”

└탄탄멘이 뭐임?

└닥치고 부대찌개 아님?

└처음부터 ㄷㄷ

“부대찌개는 사실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지. 대학 다닐 때 진짜 많이 먹었거든요.”

└친구를…… 먹는다고?

└반찬용, 친구는 한끼 식사

└나무위키 논란 탭 추가해야겠네

진짜 미친놈들인가.

반응하기도 귀찮아서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돈 없지 배는 고프지. 양 많고 싼데 맛있는 밥 먹고 싶으면 부대찌개만 한 게 없어.”

대학 다닐 때 생각이 난다.

“제가 숭실대 나왔거든요? 군대 갈 즈음에 중문 앞 낡은 건물 2층에 부대찌개 집이 생긴 거야. 거기 자주 다녔어요. 처음 생겼을 때는 1인분에 5,000원이었나. 5,500원이었나 그랬던 것 같아. 근데 라면 사리랑 반찬, 밥을 무제한으로 리필해 먹을 수 있었어요. 사장님 인심 진짜 좋았지.”

└그 사장님은 아저씨 싫어했을 듯

└ㅋㅋㅋㅋㅋㅋ무제한ㅋㅋㅋㅋ얼마나 먹었을지 안 봐도 알겠다

└맛있음?

└대체 몇 년 전 얘기얔ㅋㅋㅋ 부대찌개 일인분에 5,000원이면ㅋㅋ

└대학생 때는 진짜 가성비 찾게 되지.

└지금도 있음?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니지. 근데 가성비가 좋으니까. 지금도 있을 거예요. 아, 있네.”

숭실대 부대찌개로 검색하니 첫 화면에 뜬다.

시간이 흘러 가격은 많이 인상되었다.

“맞아. 여기 떡강정이랑 테이터 탓즈가 반찬으로 나왔어. 한 번 가면 서너 번은 더 타먹었어요. 테이터 탓즈가 뭐냐고? 왜 감자 잘게 갈아서 둥글게 뭉쳐서 튀긴 거 있잖아요. 모듬 감자 튀김 시키면 제일 맛있는 거.”

매장 사진을 둘러보니 생각지도 못한 향수가 느껴진다.

“기분이 좀 이상하네. 여기 다닐 때가 3학년 때거든요? 동기들은 다 군대 가고 같이 다닐 사람이 없었어. 근데 여기가 또 1인분을 해주셨어. 2시쯤 점심시간 살짝 피해서 가서 혼자 먹는데…….”

└?

└왜 말을 하다가 말아?

└ㅋㅋㅋㅋㅋㅋ나도 복학하고는 밥 혼자 먹었음

“옛날 일이라고 다 좋은 기억은 아니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 때 생각나서 기분 좋았는데 혼자 밥 먹은 기억이 너무 많아. 아니, 거의 다 혼자 먹은 거 같아.”

눈을 깜빡이니 시청자들이 또 날 놀리기 시작한다.

“그래. 나 친구 없었다. 왜. 아무튼 부대찌개는 추억이 많아요. 반면에 탄탄멘은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닌데 이것도 추억이 하나 있긴 해요. 여러분 고독한 미식가라는 드라마 알죠?”

└ㅇㅇ

└고로 아저씨?

└하라가 헷타

└모름.

└그게 뭔데 십덕아

유명한 드라마라서 아는 사람이 많은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은 사람도 꽤 있다.

“그 드라마 3화에 주인공 아저씨가 탄탄멘을 먹어요. 국물 없는 탄탄멘. 그게 진짜 미친 듯이 먹고 싶은 거야. 근데 아무리 검색을 해도 국물 없는 탄탄멘 하는 곳을 못 찾았어요.”

시루나시 탄탄멘이라고, 비벼서 먹는 탄탄멘을 먹고 싶어서 한동안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지금도 없나? 몇 년 전 일임?

└나도 진짜 먹고 싶었음.

└명지대 근처에 잘하는 곳 있음.

└거기 없어짐.

└진짜 국물 있는 탄탄멘은 많은데 국물 없는 곳은 드물더라

└국물 없이 해달라면 해줄 텐데.

└매장마다 다를걸?

└그래서 못 먹음?

“결과적으로는 먹었어요. 국물 있는 탄탄멘도 맛있긴 했는데 꼭 비벼 먹고 싶은 거야. 그래서 컵라면을 직구 했지. 국물 없는 탄탄멘이 컵라면으로도 있더라고.”

그때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너무 비쌌어. 배송비까지 합쳐서 24,000원? 그 정도 했을 거야. 응. 컵라면 하나에.”

당시 나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허리를 삐어 드문드문 출근했기 때문에 고시원 월세를 내고 나면 수중에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끼니 대부분을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라면으로 해결했는데.

그 와중에 국물 없는 탄탄멘 한번 먹어보겠다고 24,000원이나 썼으니 지금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컵라면 하나가 아무 희망도 없던 그때의 나를 위로하고 지탱해 주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오래 기다려서 딱 받았지. 배송비 포함 24,000원인 컵라면답게 뭔가 다르더라고. 컵은 8각형으로 생겼고 물 버리는 곳도 은박으로 잘 되어 있고. 컵을 깊게 만들어서 비벼 먹기도 편했어. 아무튼 면 익힌 뒤에 물 따라내고 액체 스프 짜서 비볐죠. 산초 냄새 알아요? 비빌 때마다 산초 특유의 향이 올라오는데 입에 침이 막 나오는 거야. 내가 24,000원짜리 라면을 먹는다. 드디어 고로 아저씨가 먹었던 국물 없는 탄탄멘을 먹는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딱 한 젓가락 먹었는데.”

잠시 채팅창을 보고 뜸을 들이니 다들 빨리 말하라고 성을 냈다.

“맛있어. 맛있긴 한데 이걸 24,000원 씩이나 주고 사 먹을 만한 거였나? 그렇게 생각하면 또 아니었어.”

└ㅋㅋㅋㅋㅋㅋ그치 컵라면이 맛있어 봤자지ㅋㅋㅋ

└고독한 미식가에 소개된 매장도 직접 가본 사람들 리뷰 보면 맛있긴 한데 일본까지 가서 먹을 정도는 아니라던데.

└맛집들은 다 그렇더라

└거기 사는 사람들한테는 가볼 만한 곳이겠지.

└아저씨 예전에 어렵게 살았다고 하지 않았나? 돈 아까웠겠다

“돈이 아깝진 않았어. 힘들어 죽겠는데 그거라도 먹으니까 좀 낫더라고. 나도 날 위해 특별한 걸 사 먹을 수 있단 느낌이 드니까.”

바닥으로 가져온 무선 마우스로 커서를 이리저리 옮겼다.

“부대찌개도 탄탄멘도 그렇게 막 좋은 기억은 아니네. 근데 부대찌개가 가성비가 더 좋으니까 부대찌개로 갈게요.”

부대찌개를 선택하고 나니 이번에는 곱창과 김치찜이 나왔다.

“와.”

두 음식 모두 너무나 좋아해서 선뜻 고를 수가 없다.

채팅창을 확인해 보니 시청자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곱창은 진짜 좋아해요. 구이로 먹어도 좋고 볶음도 좋고 전골로 해먹는 것도 맛있고 다 좋은데 너무 비싸.”

소곱창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어지간한 다른 부위보다 비싸다.

└ㄹㅇ 맛있긴 한데 너무 비쌈

└예전엔 진짜 쌌는데 인기 있어지면서 주제를 모르고 비싸짐.

└빨리 상해서 그럴걸?

└신선하게 유통하기가 힘들대. 예전엔 도축하는 곳에서나 먹었다고 들음.

└곱창에 소주 한 잔 딱 걸치면 끝이지

“구이로 많이 드시나 보네. 전 볶음으로 먹는 걸 좋아해요. 왕십리도 유명한데 전 구리에서 자주 먹었어요. 거기 아예 곱창볶음 거리가 있는데, 나 다닐 때는 진짜 싸고 맛있었거든요. 밥도 볶아 먹고. 이것도 추억이 깊은데. 선택은 김치찜.”

└?

└뭐야. 곱창 얘기만 하다가 왜 꺾엌ㅋㅋㅋㅋ

└이걸?

“곱창이 좋긴 한데 김치찜만 못 하거든요. 푹 익은 김치 쭉 찢어서 고기에 말아요. 그걸 또 흰쌀밥 크게 한 술 떠서 같이 먹으면 끝장 나지. 야들야들한 돼지고기랑 푹 익은 김치가 어우러지는 식감에. 육향 가득 머금은 김치국물을 쪽 빨아들인 쌀밥은 어떻고.”

곱창도 맛있기야 하지만 주로 밖에서 먹는 음식이고 김치찜은 어머니 해주시던 요리다.

독립한 지 오래되니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밥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반야식경: 얼큰한 거 좋아했구나.

└헐 스님이다

└주지승이다

└아저씨 왜 방송 안 하고 여기 있어요

“매운 건 못 먹는데 요즘 그쪽이 당기더라. 밍밍한 것만 먹어서 그런가 봐.”

└반야식경: 그럼 이번 주에 놀러와. 부대찌개 먹자.

└??

└합방 좋아

└주지승 님 혹시 협박당하고 있으면 다음 영상에 당근 보여주세요.

└아깐 우지니가 연락하더니 지금은 주지승 ㄷㄷ

└당저씨 정체가 뭐야

“진짜? 나 거절 같은 거 몰라.”

합방도 반갑지만 그보단 주지승이 만든 부대찌개가 너무나 궁금하다.

건강식단만 이어가다 보니 짜고 얼큰한 찌개 생각이 계속 났는데, 나물조차 맛있게 만드는 주지승의 부대찌개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반야식경: ㅋㅋㅋ그래 언제 올래?

“금요일? 형 편한 시간에.”

주지승이 금요일로 하자는 말과 함께 어떤 부대찌개가 좋냐고 물었다.

“햄 많이. 많은 햄. 스팸.”

└ㅋㅋㅋㅋㅋㅋ아 스팸은 못 참지

└난 살라미가 좋던데

└부대찌개 들어가는 햄 종류도 엄청 많던데.

└우지니어스: 어 나도 먹을래

└반야식경: 그래ㅋㅋ 우진이도 와.

└헐

└백우진도 간다고?

└우지니어스: 근데 토요일에 가면 안 돼? 금요일 일 있는데.

나간 줄 알았던 백우진이 채팅을 쳤다. 어지간히 일하기 싫은 모양이다.

“토요일 크리스마스이브잖아. 지승이 형 쉬어야지.”

크리스마스이브에 주지승을 잡아두면 형수님한테 혼날 거다.

└반야식경: 아니야 와이프 친정 가기로 했어. 찬용이 괜찮으면 토요일에 보자.

└우지니어스: 찬용이 형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일 있을 리가 없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해리포터 정주행해야 한다고ㅋㅋㅋㅋ

└백우진 말 막하넼ㅋㅋㅋㅋ

반박하고 싶은데 사실이다.

“왜 남의 방송 와서 자꾸 헛소리야. 바쁘다며! 빨리 일하러 가!”

└우지니어스: ㅇㅇ 토요일에 봐

└아니 진짜 백우진, 주지승이랑 합방하는 거?

└반야식경이랑 우지니어스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니깤ㅋㅋㅋㅋ 당저씨 대체 정체가 뭐야

└이 정도면 뭔 약점이라도 잡고 협박하는 거 아님? ㅋㅋㅋㅋ

└ㄹㅇ

└그만햌ㅋㅋㅋㅋ 찬용 아재가 뭐 어때서

└그래 요즘 방송도 열심히 하는데 너무 패는 거 아니냨ㅋㅋㅋ

└여기 원래 이러고 놀아

└우지니어스: 사실 찬용이 형이 합방 안 해주면 편집 안 해준다 했어요…….

└엌ㅋㅋㅋㅋㅋㅋㅋㅋ

“너 토요일에 오지 마.”

백우진이 전화를 걸었다.

“왜 또.”

-그렇게 나올 거야?

“어. 너 빼고 부대찌개 맛있게 먹을 거야.”

-내가 부대찌개만도 못해?

“응.”

-나랑 부대찌개가 물에 빠졌어. 누구 구해?

“그건 당연히 너지.”

부대찌개는 물에 빠진 순간 못 먹게 된다.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형 생각 얼마나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전화를 끊었다.

“자꾸 방송 방해하시는 분이 계신데 차단할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지니어스: 아! 또 끊었지!

└이 아저씨들 왤케 귀엽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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