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14화
3. 부대찌개(3)
토요일 오전.
아침 일찍 백우진이 자동차를 끌고 집 앞으로 와 주었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볼이 꼭 조랭이떡 같아서 얼굴을 보면 식욕이 돈다.1)
“부대찌개에 조랭이떡 넣어주면 좋겠다.”
“웬 조랭이떡?”
“먹고 싶어졌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반야식경 스튜디오가 있는 부천으로 향했다.
“조랭이떡이라고 하니까 재밌는 이야기가 생각 났어.”
또 건수를 잡은 모양이다.
“조랭이떡은 개성 전통 떡인데 개성이 고려 수도였잖아.”
이대로 가면 도착할 때까지 떠들 게 분명하다.
“안 궁금해.”
“아니야. 형이 궁금한지 안 궁금한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말하고 싶어.”
“……?”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 개성 사람들의 불만이 심했대. 한 개성 사람은 이성계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났는데 그럴 순 없으니 대신 가래떡을 세게 쥐었고 그때부터 조랭이떡이 탄생했다는 말이 있어.”
“진짜야?”
“성계탕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물었는데 다른 얘기를 꺼낸다.
“드라마에서 봤어.”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에서 이성계가 성계탕을 먹으며 우는 장면이 있었다.
개성 백성들이 ‘개경 사람 중에 나랏님 손에 죽은 가족 한 명 없는 이가 없다’며 화풀이로 돼지고기를 씹어먹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성계를 향한 개성 사람들의 분노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럼 조랭이떡 이야기도 진짜야?”
“아니. 그럴 가능성은 적어.”
그럴 듯하게 말하다가 갑자기 아니란다.
의아해하니 백우진이 설명을 이어갔다.
“개성 사람들이 그렇게 이성계를 싫어했으면 한양으로 천도할 때 개성 사람들을 데리고 갔을까?”
“이주시켰는지도 몰랐어.”
“성계육, 성계탕 같은 말은 개성 사람 전체가 아니라 최영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쓰던 말이야.”
“그럼?”
“조랭이떡 설화나 성계탕의 유래는 조선 후기에 개성이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아마 조선 초기부터 홀대당하지 않았겠냐는 추측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야.”
“왜 그런 오해가 생겼는데?”
“최영 신앙하는 사람들은 이성계를 그렇게 불렀었으니까. 근데 말 그대로 극히 소수만이 쓰던 단어라 드라마처럼 이성계가 그 단어를 직접 들었을 리는 없어. 극적인 이야기를 위한 픽션.”2)
“몰랐어.”
드라마에서 등장하길래 사실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비슷한 이야기는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정리하면 성계육, 성계탕, 조랭이떡의 기원은 최영을 숭상하는 종교 집단에서 향유하던 이야기를 개성 사람 전체가 공유했다고 왜곡되고 부풀려지는 과정에서 탄생했단 말이야.”
“이해했어. 아니 근데 이런 건 어떻게 알아?”
“영상 소재 찾다 보니 이것저것 잡지식이 늘었어.”
찾는 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명사, 대명사까지 정확히 아는 기억력이 신기하고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조랭이떡에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어.”
백우진이 내 얼굴을 힐끔 보곤 물었다.
“왜?”
“방금 같은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음식 이야기 따로 만들어서 올리면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오늘 하기로 한 부대찌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같은 거.”
“괜찮지. 군부대에서 얻은 햄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다들 너무 잘 알지만.”
“잘 알지.”
백우진이 씩 웃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라면 굳이 영상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콘텐츠 때문에 조사 좀 했는데 어렵더라고. 다른 음식들도 하려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응. 엄청 힘들어.”
온갖 분야의 지식을 다루는 우지니어스 채널을 운영하는 녀석이 하는 말이기도 하고.
오늘 반야식경에서 썰을 풀기 위해 부대찌개를 조사하면서 직접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남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기도 어렵지만, 그걸 찾아내고 공부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 좋아하니까 누군가는 좋아해 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 방송 반응이 괜찮으면 콘텐츠로 삼아야겠다.
* * *
“어서 와.”
“…….”
문을 열어준 주지승은 산타클로스 복장에 하얀 수염까지 붙이고 있었다.
손목에 찬 염주 때문에 혼란스럽다.
얼떨결에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친 백우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안녕.”
“들어 와. 뭐 해.”
백우진은 산타클로스 복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형 불교 아니었어?”
“맞아.”
“그럼 이건 뭐야……?”
백우진이 주지승의 옷을 가리켰다.
“아, 이거? 크리스마스잖아.”
고개를 돌리니 백우진도 동시에 날 봤다.
나도 백우진도 주지승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당황해하는데 최미카엘이 마중 나왔다.
“크리스마스가 좋대요.”
“미카엘 씨.”
천주교를 믿는 이 사람이 오히려 멀쩡한 차림을 하고 있다.
“이쪽으로 오세요. 시간이 좀 남았는데. 차 드릴까요?”
“아, 커피 사왔어요.”
백우진이 도중에 카페에 들러 산 커피를 들어 보였다.
식탁에 앉으니 최미카엘이 아이비를 가져다 주었다. 저당 크래커라 과자가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 조금만 먹을 수 있는 간식이다.
“몸은 좀 어떠세요?”
최미카엘이 내게 물었다.
“좋아졌어요. 이젠 많이 떨어져서 공복에 190 정도 되더라고요.”
정상 수치는 70~100 사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 달 전만 해도 공복혈당이 300을 넘어가던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이 호전되었다.
식단과 운동을 병행한 보람이 있다.
“열심히 했네.”
주지승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응. 그래서 오늘은 작정하고 왔어.”
당근, 오이, 양배추, 숙주나물, 시금치, 닭가슴살 같은 유사 음식으로 혀와 위장이 너무나 청결해졌다.
햄이나 흰쌀밥처럼 은혜로운 양식이 고프다.
“치팅데이라고 막 먹으면 안 돼. 딱 일인분만 먹어야지.”
“우진이 말이 맞아.”
백우진, 최미카엘, 주지승 모두 걱정스럽게 쳐다보길래 머쓱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이야. 나도 좀 살아야지. 왜 무안을 줘?”
“끄흐흫. 그 마음 잘 알지. 먹고 운동하면 되니까 마음껏 먹어. 많이 준비했어.”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역시 같은 당뇨병 환자인 주지승뿐이다.
“근데 이거 형이 만든 거야?”
백우진이 식탁 가운데에 놓인 냄비 받침을 가리켰다.
“아, 그건 제가 만들었어요.”
최미카엘이 답했다.
“와. 저 이런 거 못 해서 맨날 해볼까 생각만 했거든요.”
“처음엔 어려운데 하다 보면 금방 늘어요.”
“언제부터 하셨어요? 전 어렸을 때 학교에서 스킬자수 했었는데 그건 쉽잖아요. 요새도 파나?”
“요즘도 팔더라고요. 저기.”
최미카엘이 거실 벽을 가리켰다.
시선을 옮기니 귀여운 고양이 형태의 스킬 자수가 소파 방석으로 놓여 있었다.
“미쳤다. 너무 귀여워.”
“그쵸? 가격도 안 비싸더라고요.”
처음 만난 30대 아저씨 둘이 뜨개질과 자수 이야기를 시작하니 도저히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신기하게 보고 있자니 주지승이 식탁에 팔을 기대며 물었다.
“밥 차려 먹는 건 좀 익숙해졌어?”
“아니. 하던 것만 하게 되더라. 진짜 어디 학원이라도 다닐까 봐.”
“뭐 하러 학원을 가? 나한테 배워.”
저번에도 들었던 말이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닌 듯싶다.
“에이. 형 바쁘잖아.”
“시간이야 어떻게든 내면 되지. 너도 방송으로 하면 영상도 챙기고 요리도 배우고 좋잖아. 어차피 따로 시간 빼서 학원 가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아?”
그것도 그렇다.
매일 5시간 이상 방송을 하는데, 아침 점심 저녁 식후 30분씩 걷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직은 외주로 받은 영상을 편집해야 한다.
거기다 일주일에 세 번은 차지찬과 운동을 하기로 약속했다.
따로 뺄 시간이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어때? 어차피 치팅데이라고 해도 바깥음식보단 직접 만들어 먹는 게 나을 거야.”
“으음.”
“나도 콘텐츠 늘어서 좋고.”
거절할 이유가 없다.
방송도 챙기고 요리도 배우고 무엇보다 주지승이 한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럼 부탁 좀 할게. 나 진짜 염치없어서 이런 거 거절 잘 못 해.”
“거절하지 마. 화요일이랑 토요일둘 중에 언제가 더 나아?”
“둘 다 괜찮아. 토요일이 좀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럼 토요일 점심으로 하자.”
콘텐츠 고민을 꽤 오래 이어왔는데 이렇게나 쉽게 풀린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어쩌면 정말 부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콘텐츠 고민 많이 했거든. 전업 시작하면 채울 게 많아서. 형 덕분에 하루 챙겼다. 고마워.”
“고맙긴. 말했잖아. 네 일이면 무조건 도와주고 싶다고. 게다가.”
주지승이 멋쩍은지 입술을 씰룩였다.
“솔직히 나도 고민이야.”
“뭐가?”
“뭐 하려고 해도 어지간한 건 다 만들어서 할 게 없더라고.”
“요리?”
주지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같이 영상을 업로드하는 사람이라 콘텐츠 고민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따져 보면 그렇게 고민을 했기에 그 많은 영상을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너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 한 번 더 하려고.”
“좋은데?”
“그치?”
작게 웃었다.
* *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방송을 시작하자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주지승이 목탁을 치며 반야심경을 외웠다.
“이래도 돼?”
“몰라.”
불교든 천주교든 어느쪽에서 항의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백우진도 나도 당황해하는데 채팅창을 보니 다들 익숙한 모양이다.
“공지 드렸죠? 오늘은 게스트 두 분하고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부대찌개 먹을 거예요. 먼저 우진이. 혹시 모르니까 소개 좀 해줘.”
“안녕하세요. 우지니어스에서 귀여움을 담당하는 백우진입니다.”
어이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주지승도 가운데 앉은 백우진을 빤히 바라보자 녀석이 검지로 양볼을 꾹 눌러 한술 더 떴다.
“뿌잉.”
└웩
└ㅋㅋㅋㅋㅋㅋ개뻔뻔하네
└와 어떻게 33살 먹고 저런 짓을 하지
└지가 지보고 귀엽댘ㅋㅋㅋ
└와 백우진 실물 ㄷㄷ
└실물이랰ㅋㅋ 멍충아 방송이잖아
└아니, 이런 이미지 아니었잖아;;
주지승이 고개를 좀 더 내밀어 날 보았다.
왠지 조금 기대하는 눈치다.
“안녕하세요. 반찬가게의 반찬용입니다. 저번에 나오고 금방 다시 인사드리네요.”
“재미없어.”
“그러게. 유튜버로서 자각이 없는 것 같은데.”
백우진과 주지승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산타클로스 코스프레한 스님이랑 33살 먹고 뿌잉뿌잉 해대는 사람을 어떻게 이겨.”
“스님 아니에요.”
“뿌잉 한 번만 했어요.”
“그쵸. 두 번은 과한데 한 번은 괜찮죠.”
둘이 아주 쿵짝이 제대로다.
멍하니 있다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합방에서 억울함을 담당하게 된 반찬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