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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데이-17화 (17/120)

치팅데이 17화

4. 칼로리(1)

방송을 끝내고 거실로 나서니 최미카엘이 차를 권했다.

“아니요. 아직 여운이 남아 있어요.”

“여운이요?”

“부대찌개요. 오늘 이 안 닦고 잘까 봐요.”

“끄흐흫흣흐.”

따라 나온 주지승이 웃었다.

최미카엘은 호빵 같은 미소를 지었고 백우진은 고개를 저으며 식탁에 앉았다.

“몸은 좀 어때? 어지럽거나 하진 않아?”

주지승도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혈당이 갑자기 높아지면 어지러움을 느끼게 되는데, 치팅데이라고는 하지만 흰쌀밥과 부대찌개를 먹었기 때문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마침 시간을 확인해 보니 밥을 먹은 지 2시간 정도 흘렀다.

“괜찮은 것 같은데 확인해 볼까?”

주지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에 앉아 혈당 체크기를 꺼냈다.

피를 내서 검사지를 삽입하자 곧 체크기 화면에 숫자 187이 기록되었다.

“오.”

식후 2시간 뒤에 혈당을 체크하는 이유는 그때가 당이 가장 많이 오른 시점이기 때문인데.

의사는 식후 2시간 혈당을 180 이하로 떨어뜨리는 걸 목표로 삼자고 했다.

거의 근사치다.

“진짜 열심히 했나 본데?”

주지승이 씩 웃었다.

“공복 혈당이 낮은 건 아침 안 먹어서 그럴 수 있는데 일반식 먹고 이 정도면 정말 괜찮지.”

“나도 내가 너무 기특해.”

내 가슴을 툭툭 다독여주었다.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이 증명된 순간이다.

“이제 방송만 잘 되면 되겠네.”

“응. 형 덕분에 유입 많이 늘었어. 이제 내 콘텐츠로 만들어 봐야지.”

주지승이 고개를 끄덕인다.

합방으로 홍보도 해주고 밥도 만들어 준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거. 저번에 오니까 약간 건조한 것 같더라고.”

가방에서 가습기를 꺼내 보이자 주지승이 최미카엘과 눈을 마주쳤다가 난감한 듯 웃었다.

“야, 이걸 어떻게 넣고 왔어? 어쩐지 가방이 너무 크다 했다.”

“고마워서. 진짜 고마워, 형.”

주지승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첫 합방에서 내 미각이 예민해졌다고 말한 점이나 오늘 방송에서 날 두둔해 준 점 모두 같은 일을 경험한 사람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잘 받을게. 다음부턴 이런 거 가져오지 마.”

다음 주 토요일부터 주지승과 정기적으로 쿡방을 하기로 했다.

반야식경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출연만 하면 되는데, 맛있는 밥도 얻어 먹고 인지도도 높일 수 있으니 여러모로 이득이다.

“형, 오늘 방송.”

백우진이 주지승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태도를 보니 아마 주지승과 티격태격한 일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방송할 때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데 가끔 이렇게 마음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행히 주지승은 평소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다 아는 사람들끼리 뭘 그래. 덕분에 방송 분위기 좋았는데.”

주지승이 등을 툭 치자 백우진이 씩 웃었다.

* * *

백우진의 자동차를 얻어 타고 돌아오는 길에 유튜브 채널에 접속했다.

구독자가 평소보다 늘긴 했지만 저번처럼 큰 효과는 없다.

아마 반야식경 시청자 중에서 내게 관심 있는 사람은 일전에 대부분 구독한 모양이다.

대신 생방송 자체의 반응은 괜찮았다.

“오늘 부대찌개 이야기 괜찮았지.”

백우진에게 물었다.

“응. 채팅창도 깨끗한 편이던데?”

“이거 콘텐츠화 할 수 있으려나.”

“어떤 식으로?”

“음식 이야기.”

“예를 들면?”

“당장 생각나는 건 냉면?”

“지금도 꽤 많이 올라와 있을걸?”

아주 좋은 지적이다.

냉면 관련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 있다는 말은 그만큼 관심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고.

동시에 이미 다룰 이야기가 거진 다 나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다루면 내 영상을 봐야 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하면 대중적인 소재를 다룰 땐 나만의 색깔을 입히는 게 중요하다.

“냉면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냉면으로 생각해 보자. 뭐, 안 되면 딴 거 하고.”

“응.”

“유명한 냉면집 찾아다니는 거 어때?”

“형 먹방 재밌으니까.”

“근데 하는 사람이 많지.”

“그치.”

“자주 다닐 수도 없고.”

누구보다도 맛있게 먹을 자신은 있지만 당뇨병 판정받은 만큼 일반식을 자주 먹을 순 없다.

치팅데이에는 주지승과 합방 약속을 했으니, 맛집을 찾아다니는 콘텐츠는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뿐이다.

일주일에 한 번 올릴 수 있는 콘텐츠를 메인으로 삼기는 어렵다.

“그러네. 바깥 음식 많이 먹으면 안 되잖아.”

“일주일에 딱 한 번 올린다고 생각하고, 찾아가기 전에 냉면 썰 푸는 방송 하는 건 어때?”

“그러면 주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하루는 냉면 썰 풀고 또 하루는 직접 먹으러 가고. 지승 형이랑 쿡방도 하면 엄청 바쁘겠는데?”

“지찬이 형하고 운동 방송도 하기로 했어.”

“히이. 할 수 있겠어?”

“해야지.”

전업 유튜버가 되기로 했으니 오히려 좋다.

“조회 수가 잘 나올지는 몰라도 큰 채널에 계속 노출되면 얻는 없진 않을 거야.”

백우진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에서 음식 얘기 같이하자.”

“나랑?”

“응. 너랑 하면 편할 것 같아.”

“몇 번 하는 건 좋은데 고정적으로 나가긴 어려울 것 같아.”

“그것만 해도 어디야. 너 편집자 새로 구할 때까지만 가끔 도와줘.”

“어? 그럼 계속 나가면 편집도 계속해 주게?”

“그건 좀.”

“왜애애애?”

백우진이 말끝을 늘이며 앙탈을 부렸다.

* * *

집에 돌아와 일정을 정리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외주를 처리하고.

수요일은 차지찬과 운동 방송.

목요일은 백우진과 음식 이야기를 풀고 금요일은 맛집 탐방이다.

토요일엔 주지승과 쿡방을 하고 일요일엔 방송 당일 처리하지 못한 남은 일을 정리하기로 했다.

“…….”

일주일 일정을 확인하니 이러다 죽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직 반야식경, 짐꾼, 우지니어스 채널의 외주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내 영상은 방송 당일에 편집해 올려야 한다.

혹시 일이 밀리면 일요일을 활용해야 하는데 한마디로 쉬는 날이 없다.

원래 개인사업자는 쉬는 날이 없다고 하지만 이대로 괜찮을까 싶다.

“잠깐이니까.”

고민 끝에 잠시만 고생하자고 마음먹었다.

외주를 천천히 줄이고 있으니 반찬가게가 성장할 즈음에는 여유 시간이 생길 거다.

꾸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저녁 7시다.

냉동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 뒤 밥을 푸고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을 꺼냈다.

점심에 먹었던 부대찌개가 아른거린다.

“에휴.”

물릴 대로 물린 시금치를 우적우적 씹었다.

주지승이 만들어 준 시금치는 맛있는데 내가 한 시금치는 왜 이리 맛없는지 모르겠다.

밥도 너무 적고 닭가슴살은 정말 어떻게 닭처럼 훌륭한 동물에 이런 부위가 존재하는지 믿기 힘들만큼 절망적인 맛이다.

그러나 칼로리 적은 음식을 위주로 식단을 짜니 효과는 있다.

5주 전만 해도 138㎏이었던 몸무게가 오늘 아침 기준 129㎏으로 줄었다.

고도비만인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면 금방 효과를 본다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몸무게 덕분에 힘을 낼 수 있다.

실제로 혈당도 떨어지고 말이다.

부우웅- 부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차지찬이다.

“응. 형.”

-반찬, 오늘 운동 하러 올 거지?

방송은 수요일 하루뿐이지만 운동을 매일 해야 한다며 이렇게 압박을 준다.

“이따 갈게. 지금 밥 먹고 있어.”

-오늘 치팅데이라고 먹고 싶은 거 다 먹는 건 아니지?

“아니야. 지금 얼마나 잘하고 있는데.”

-그래? 지금 먹는 거 보내봐.

“왜?”

-PT 하면 원래 식단도 관리해 주는 거야. 잔말 말고 보내.

“싫은데.”

-씁.

대충 차린 초라한 밥상이라 보여주기 싫은데 안 보내면 오늘 숫자를 또 괴상하게 셀 것 같아서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보냈어.”

-어디.

침묵 뒤에 한숨 소리가 흘러들었다.

-야, 이렇게 먹으면 큰일 나.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왜? 단백질, 탄수화물, 야채 다 챙겨 먹잖아.”

-양이 너무 적잖아. 너 이거 먹고 배 안 고파?

“엄청 고파.”

-그래! 이렇게 먹으면 너 나중에 반드시 요요 온다. 밥이 뭔. 소꿉놀이 하냐?

“더 먹어도 돼?”

-너한테 더 먹으라 하면 얼마나 먹을지 감이 안 와서 그러라곤 못 하겠는데. 딱 한 공기만 먹어. 보통 밥그릇으로 딱 하나.

“응.”

-닭가슴살 저거 얼마 짜리야?

“100g이었던가?”

-반 개 더 먹어. 배추는 김치야?

“응. 어머니가 식초랑 고춧가루만 넣고 해주셨어. 이거 없으면 나 밥 못 먹어.”

어머니가 해주신 건강한 배추 겉절이 덕분에 퍽퍽하기 이를 데 없는 닭가슴살을 그나마 먹을 수 있었다.

-누가 뭐랬냐. 아무튼 너 오늘 헬스장 오면 일단 공부부터 하자. 언제 올 건데?

“1시간쯤 뒤에?”

시계를 확인하니 7시 10분이다.

“8시까진 갈게.”

-오케이.

통화를 끊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일단 공부부터 하자고 했으니 오늘은 운동할 시간이 없을 거다.

“음흠흐흐흠흠.”

차지찬이 더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 밥도 조금 더 푸고 닭가슴살도 하나 더 뜯었다.

이런 것들로 배를 채워야 하는 게 억울하긴 하지만, 배고픈 것보다야 훨씬 낫다.

세 숟가락 먹던 밥을 한 공기나 먹을 수 있으니 그렇게 막 나쁘지 않다.

“최소 두 공기는 먹었는데.”

오늘 점심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찬란했던 과거가 그립다.

그보다.

“이상하네. 적게 먹으면 좋지 않나?”

얼핏 굶어서 살 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긴 한데, 굶지 않고 먹는 양을 줄였을 뿐인데 이것도 문제가 되나 싶다.

차지찬의 반응으로 뭔가 잘못되었단 느낌은 받았지만 내 상식으로는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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