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19화 (19/120)

치팅데이 19화

5. 반찬가게(1)

“아이고. 아이고.”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고요했지만 내 몸은 예년과 다르게 삭신이 쑤신다.

기어이 어제 양쪽 다리 런지를 100개나 하고 말았다.

처음 하는 운동이었는데 중심을 잡기 어려워서 느낌상 스쿼트보다 훨씬 힘들었다.

몸의 밸런스를 키우는 데 이만한 운동도 없다며 웃던 차지찬의 악독한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끄으응.”

어제 귀가하고 곧장 골아떨어져서 편집할 영상이 남았다.

유튜브에 업로드를 해야 하니 서둘러야 하는데 오늘 방송 준비도 못했다.

아침을 먹긴 해야 하는데 밥상 차리고 치우는 시간조차 아깝다.

배달시켜 먹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치팅데이와 방송 콘텐츠가 아니면 직접 차려 먹기로 다짐했으니까.

시간이 얼마 없으니 서둘러 일어나고 싶은데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기어가듯 움직여 냉동고 문을 열자 징글징글한 닭가슴살이 보였다.

한 달 전만 해도 켄터키 핫도그와 퀴진 양념감자, 고향만두, 용가리치킨으로 가득하여 정이 넘치던 공간이 이제는 흉물스럽기 그지없다.

오늘은 도저히 닭가슴살을 먹고 싶지 않아 냉장고에서 계란 6알을 꺼냈다.

냄비에 물을 받아 계란을 삶고.

마트에서 산 열무김치와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반찬을 꺼낸 뒤 잡곡 햇반을 돌렸다.

차려놓은 밥상을 보니 잠시 우울해지지만 밥이라도 한 공기 다 먹는 게 어디냐 싶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나물이 맛있고 마트에서 파는 열무김치도 시원하다. 계란은 항상 옳고.

곱씹어 보면 나쁘지 않은 아침밥이다.

핸드폰을 켜 유튜브에 접속했다.

볼만한 영상을 찾아 스크롤을 내리다가 얼마 전에 편집했던 영상이 눈에 띄었다.

짐꾼 채널이다.

차지찬이 생활 속 운동하는 방법이라고 찍은 영상인데.

길을 걷다가 갑자기 가로등을 붙잡고 다리를 들어 직각을 유지한 채 버틴다거나, 의자에 앉아 있는 척하다가 누군가 의자를 잽싸게 빼면 그대로 버티는 등의 짧은 꽁트 영상을 여럿 모아놓았다.

이틀 전에 업로드되었는데 벌써 조회 수가 130만을 넘겼다.

“쇼츠에 올릴 만한 영상을 붙여놔도 괜찮구나.”

짐꾼 채널 영상이 본래 조회 수가 잘 나오긴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식의 영상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5분에서 15분 사이의 영상이라도 하나의 이야기를 쭉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핵심 장면만 짧게 여러 개를 보여주는 게 시청 시간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영상에 사용된 여러 콘셉트를 잘라서 쇼츠에도 올리니 일석이조다.

다만 이런 방식은 콘텐츠 소모가 막심하다.

차지찬처럼 기회자가 여럿 있는 대형 채널에서나 소화할 수 있는 방식이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당장 오늘 방송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정해야 한다.

어제 준비해 둔 물건이 있긴 한데 길게 이야기 할 거리는 아니다.

뭘 할까 고민하며 반찬가게 관리페이지에 접속했다.

반찬가게

@banchan2

구독자 12.01만 명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사실 구독자 수 자체가 수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한 달 만에 3만 명 이상 늘어난 건 분명한 성과다.

반찬가게를 처음 시작했을 땐 1년 동안 구독자가 3,000명을 넘지 못했다.

이미 짐꾼과 우지니어스, 반야식경을 운영하며 노하우를 쌓은 상태로 시작했음에도 구독자를 쌓기 쉽지 않았다.

취미 겸 공부를 한단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도중에 몇 번이고 포기했을 터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재밌는 영상을 만들까 고민하며 이것저것 시도하길 1년 정도.

미디엄 사이즈 피자 두 판과 치킨 한 마리를 먹는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신에게 간택이라도 받았는지 조회 수 20만을 달성하더니 이후로 구독자가 꾸준히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12월 한 달 동안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관심을 받고 있다.

편차와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반찬가게 영상들은 조회 수 1만에서 3만 사이에 분포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조회 수가 비약적으로 높아져, 이번 달에 업로드한 영상 중 조회 수 10만을 넘어가는 것이 7개나 생겼다.

특히 기대도 하지 않았던 차지찬과의 먹방 영상은 현재 조회 수 71만을 기록 중이고.

그 영상을 통해 유입된 일부가 구독을 해 주고, 그러지 않더라도 과거 영상을 시청해 주어 전체 조회 수가 큰 폭으로 늘었다.

자연히 댓글 수도 늘어 비웃는 사람, 웃는 사람, 걱정하는 사람, 응원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아직은 얼떨떨하고 그와 동시에 내년 1월 3일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매월 3일은 이전 달의 예상 수입이 지급 페이지에 표기되는데, 11월과 12월 사이에 조회 수 차이가 큰 만큼 내심 기대 중이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지.”

오늘을 위해 준비한 물건을 잠깐 살피고는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방송 시간 전까지 외주를 처리해야 한다.

* * *

편집을 마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방송을 켰다.

방송 준비도 할 겸 BGM을 켜두고 잠시 물을 마시는데 아침과 점심에 사용한 그릇이 눈에 띄어 식기세척기에 넣어 돌렸다.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끌며 컴퓨터 앞에 앉으니 이미 접속한 시청자들이 저들끼리 놀고 있다.

“……700명?”

채팅창 접속자 수에 깜짝 놀랐다.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과의 합방도 아닌데 700명이나 모인 적은 처음이다.

그것도 방송을 켠 지 5분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다.

└반하

└ㅁㅊ 사람 왤케 많아

└문 열어!

└ㅋㅋㅋㅋㅋㅋㅋ아저씨 안녕

└안 돼 내 작은 반찬가게가 커지고 있어

└자기도 놀랐나 봄ㅋㅋㅋㅋ

└반야식경 보고 왔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준비해 둔 옷을 아직 입지도 못해서 대기화면인 상태로 말했다.

“왜 이렇게 많이 들어왔어요? 크리스마스잖아. 다들 약속 없어요?”

└왜 때림?

└지는?

└넌요.

└크리스마스에 약속 있으면 아저씨가 밥 먹는 방송 보겠냐?

└아닠ㅋㅋㅋㅋ 들어와도 뭐래

“반가워서 그러지. 우리 방송에 나처럼 친구 없는 사람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

채팅창이 시끄러워졌다.

주지승, 차지찬 방송처럼 빠르진 않지만 모든 채팅을 읽기가 버겁다.

처음 보는 닉네임도 보이고.

이 당황스러운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준비 좀 할게요.”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 선크림을 바른 뒤 카메라를 켰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

└저 방송을 잘못 들어온 것 같아요

└개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

└뭔 짓이얔ㅋㅋㅋㅋ

일전에 시청자들이 산타 코스프레를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대로 하자니 자존심이 상해 북극곰 코스프레를 했다.

궁예 코스프레까지 했던 주지승을 본받아.

북극곰 잠옷을 입고 얼굴에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뒤 곰 머리띠를 한 보람이 있다.

다들 좋아한다.

아무 말 없이 준비해 둔 제로콜라를 꺼내 마시니 채팅창이 키읔으로 도배되었다.

“시작하기 전에 오늘 채팅창에 메리크리스마스라든가 크리스마스 관련 단어 올리시는 분은 차단할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크리스마스가 뭔데?

└우리 그런 거 몰라

└ㅋㅋㅋㅋㅋㅋ반야식경이랑 놀더니 그새 옮았넼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ㅋ 진짜 너무 빈티나서 더 웃김ㅋㅋㅋㅋ

└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얼굴엔 뭘 칠한 거야ㅋㅋㅋ

└제발 초심 좀 잃어……. 너무 열심히 하잖아.

“옮다뇨. 벤치마킹이지. 솔직히 지승이 형 존경스러워. 그 나이에 그렇게까지 하는 게 쉽지 않거든. 게다가 그 형 원래 성격이 되게 점잖아요. 어제 반야식경 방송 봤어요? 절 다니는 사람이 산타클로스 코스프레를 했다니까?”

└그게 상업 유튜버다 이 말이야

└이상한 거 본받지 맠ㅋㅋㅋ

└아닠ㅋㅋㅋㅋ 진짜 얼굴 개웃기게 생겼넼ㅋㅋㅋㅋㅋㅋ

└어제 방송 보니까 백우진하고도 진짜 친해보이던데

“네. 우진이하고는 오래 봤으니까요. 전에 말씀드렸는데? 우지니어스 채널 편집 일 오래 도와줬어요. 지금도 그러고.”

└차지찬 방송도 해줬다며

└와 빨대 꽂고 싶어서 편집해 준 거야?

└큰 그림 ㄷㄷ

└반야식경에 짐꾼에 우지니어스까지 진짜 제대로 골랐네

└방송 그렇게 키우고 싶었음?

└솔직히 말해요 섭외비 얼마 줌?

└당뇨 아저씨 인맥 ㄷㄷ

“아, 진짜. 당뇨 아저씨라고 하지 말라고.”

채팅 중에 거슬리는 말이 보였다.

“당뇨 동생이라고 하든가. 이 아저씨들 가만 보면 툭 하면 나이 속이려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당뇨는 인정해도 아저씨는 못 하지ㅋㅋ

└나이 생각하면 동생 맞짘ㅋㅋㅋ

└솔직히 내가 나이 더 많은데 동생이라는 생각 1도 안 듦.

“진짜 저보다 어리셔서 아저씨라 하시는 건 괜찮은데, 뻔히 저보다 형인데 아저씨라 하시는 분들 다 눈여겨보고 있어요. 아저씨라 하지 마세요.”

└그럼 뭐라고 해

└찬용 씨~

└미친 찬용 씨 뭐옄ㅋㅋㅋ

└소름돋앜ㅋㅋㅋㅋ

정말 양심없는 사람들이다.

“어……. 아무튼 오늘 뭘 할지 못 정했어요. 어제 지찬이 형 때문에 거의 죽어 있었거든요.”

차지찬과 무슨 일 있었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어제 짐꾼 가서 운동했는데 오늘 걸어 다니는 게 기적이에요. 진짜 징글징글하더라.”

└아 그걸 못 봤네

└그 재밌는 걸 혼자 봤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오늘 뭐 할 건데?

└월드컵 하자

└10만 넘겼는데 Q&A 같은 거 안 함?

“아. 그러게.”

구독자가 갑자기 늘어난 만큼 나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러지 않아도 10만 구독자 달성 기념으로 구독자들께 작은 선물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질의문답 영상을 올리며 같이 진행하면 될 듯싶다.

“그럼 오늘은 얘기나 하자. 뭐가 궁금해요?”

└지금 몇 키로임?

└먹방 자주 좀 해줘

└당뇨라서 못 먹잖아

└님 진짜 키스 못 해봄?

└팬티 무슨 색임?

└미친 반찬용 팬티가 왜 궁금해

└안 힘들어요?

└오늘 똥 쌌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ㅇㅇ 님 잘못임

└아 그래서 지금 몇 키로냐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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