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20화
5. 반찬가게(2)
“몸무게는 129㎏ 나가요.”
9㎏이나 뺐는데 129㎏나 나가냐는 반응이다.
“오히려 좋지. 나처럼 살 많이 찐 사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금방 빠진대.”
치팅데이를 제외하곤 식단도 잘 지켰고 생전 안 하던 운동도 열심히 했다.
무엇보다 한 달 만에 9㎏이나 뺐다는 사실에 자신이 생겼다.
“목표 몸무게? BMI 기준으로 23미만이 정상범위라던데. 키가 184㎝니까 77~78㎏?”
└대충 50㎏를 더 빼야 정상이네
└가능하긴 함?
└금방 빼긴 힘들 듯
└제일 많이 나갈 때 대비로는 60㎏을 빼야 했네.
└ㅁㅊㅋㅋㅋㅋ 거의 성인 한 사람 몸무게잖아
“쉽진 않겠죠. 근데 뭐, 가끔씩 맛있는 거 먹으려면 빼야 하니까.”
내 경우는 인슐린 분비에 문제가 있진 않았다.
오히려 당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어 발생한 문제였다.
체내에 인슐린이 필요 이상으로 생성되면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게 되는데, 이 때문에 인슐린이 분비되어도 혈당이 잡히지 않는다.
주지승과 차지찬도 이 경우였다.
즉,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근육량이 받쳐주면 두 사람처럼 일반식을 먹어도 혈당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는 뜻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닠ㅋㅋㅋ 건강해지려고 빼는 게 아니라 먹으려고 다이어트하는 거야?
채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건강도 중요하지. 근데 내 낙이 먹는 건데 어떡해. 지금 하는 방송, 운동, 식단 다 맛있는 거 먹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먹기 위해 사는 남자
└먹는 게 그렇게 좋음?
└아저씨 취미도 만들고 그래요.
└몸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아직도 먹고 싶냐?
“넌 나가, 인마.”
시청자가 늘어난 만큼 시비 트는 인간도 늘었다.
한 사람을 차단하니 다른 시청자들이 웃기 시작한다.
“여러 이유가 있긴 한데 먼저 내가 한이 좀 있어. 좀 못 살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여러분, 여기 직장 다니시는 분들 많으니까 여쭤볼게요. 월급 못 받은 적 있어요?”
대부분 니은 두 번을 치며 경험한 적 없다고 하는데, 간혹 긍정하는 사람도 보인다.
“난 첫 직장이 그랬어. 부모님한테 부담 드리기 싫어서 이력서 막 넣다가 영업직으로 입사했거든요? 영업사원은 취직 쉽잖아. 근데 정말 어마어마한 곳이더라. 출근한 지 일주일 정도 됐나? 본부장이 사무실 들어오더니 옆 라인 과장 뺨을 때리는 거야. 이번 주 실적이 이게 뭐냐면서.”
└?????
└미쳤네
└아니 아직도 그런 회사가 있다고?
└경찰 불러야지.
“너무 놀라서 아무 생각이 안 드는데 한 30분 동안 생전 들어보지 못한 말을 퍼붓는 거야. 부모까지 들먹이면서. 너무 심해서 사람이 참는 데 한계가 있는데. 저러다가 진짜 큰일나지 생각하는데 과장은 끝까지 고개 숙이고 죄송하다고만 하더라고.”
신입 사원 교육 시간에 들어와 부드럽게 웃던 과장님은 매주 그런 수모를 겼었다.
그러면서도 웃고 다녔다.
자존심도 없는지 그렇게 당하고도 돌아서면 싱글벙글 웃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어느 날 그의 책상에 놓인 가족 사진을 본 뒤에야 내가 어렸음을 깨달았다.
“그런 회사인데 웃긴 건 4대보험도 없어. 월급도 안 줘. 응. 월급을 안 준다니까? 기본급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어요. 전부 계약 수수료만 받아. 계약을 못 따면 돈을 못 버는 거야.”
└회사가 아니라 뭔 앵벌이 집단을 들어갔네
└다단계인가?
└사이비종교도 밥은 주겠다
└4대보험이 없다고?
└아니, 대체 뭘 한 거얔ㅋㅋㅋ
“그러니까. 그땐 어리기도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속은 거지. 지금 말로 하면 가스라이팅. 그땐 가스라이팅이란 말도 몰랐어요.”
시청자들이 예전 회사 욕을 해준다.
“아무튼 그 회사를 반년 다녔는데 월급을 딱 두 번 받았어요. 마지막 네 달은 아예 못 받았고. 첫 달은 버틸 만했는데 두 번째 달부터는 당장 뭐 교통비는커녕 밥 먹을 돈도 없는 거야.”
└그런 델 왜 계속 다님?
└이해가 안 되네
└그 상태가 됐으면 나왔어야지
“당장 그만두면 일은 바로 구해져? 또 한 달 일한 다음에 월급 나오잖아. 그러니까 이직 준비하다가 자리가 확정되면 나갈려고 생각했죠.”
다들 수긍한다.
“근데 얘들이 진짜 악독했어. 면접 보러 갈 시간도 안 주고. 응, 연차라는 개념이 아예 없거든. 아파도 반차, 조퇴 이런 거 없어요. 게다가 매일 새벽까지 회식을 해요. 밤에 다른 일 준비 못 하게. 물론 나도 그때 너무 한심했어. 잘 알아. 아는데 아무 이유 없이 당하는 건 아니었어요.”
└몇 살 때임?
“25살? 26살 그쯤. 아무튼 배가 너무 고프니까 뭐라도 먹어야 하잖아? 다행히 고시원에서 라면을 공짜로 제공했어요. 한 층에 사는 사람이 10명이 넘는데 하루에 딱 4개만. 그 고시원 사는 사람들이 전부 나 같은 상황이었나 봐. 아침에 고시원 아저씨가 라면 두고 가면 다 같이 나와서 라면부터 챙겨. 그때 못 챙기면 그날은 그냥 굶은 거예요. 응. 굶는 거야. 그럼 제게 남은 선택지가 뭐겠어요?”
└라면 챙기려고 싸움?
└와 난 상상이 안 되는데.
└회식?
“맞아. 회식. 매일매일 회식하니까 그때 하루치를 다 먹는 거야. 안 그러면 진짜 배고파 죽을 것 같으니까. 진짜 있는 대로 다 먹었어요.”
└그거 안 좋은데
└폭식했구나
└그치. 그때 안 먹으면 또 언제 먹을지 모르니까.
“저 원래 밥 그렇게 많이 안 먹었어요. 그냥 적당히 먹었어. 그 회사 들어갈 때 내 몸무게도 70㎏ 정도였고. 근데 나올 때는 90㎏가 넘었었어. 한 번에 많이 먹게 되고.”
당시에는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이러다가 굶어 죽는 건 아닐까.
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다가 죽을까.
매일 자책하고 후회했다.
“그러다 정말 안 될 것 같아서 나왔어요. 어머니께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도와달라고. 그래서 고시원 월세도 어머니께서 내주시고 그랬어.”
그 날이 마지막 자존심과 자존감이 사라진 시점이었다.
어머니께는 자랑스러운 아들로 남고 싶었는데, 취업했다고 이제 걱정 마시라고 그렇게 큰소리를 쳤는데.
고시원 월세를 밀렸다는 말에 어머니께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왔으니까 아르바이트라도 구하는데 작은 영상 제작 회사에서 받아주시더라고. 물건 나르고 이것저것 심부름도 하고 그랬는데 실수령액이 138만 원 정도였어요. 그때 최저시급이었을 거야. 근데 그게 어디야 나한테. 월세 50만 원 내고 50만 원 저축하고 나머지로 살았어요.”
└그걸로 생계가 유지 됨??
└30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고?
└하루에 만 원 꼴이네
└최저시급 130만 원이면 2016년쯤이겠네
“맞아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하루에 딱 만 원만 쓰기로 했으니까. 게임이고 영화 그런 건 생각도 못 했지. 친구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때 내가 좋아하던 일을 많이 포기했다.
게임도 영화도 전시회도 친구도.
“근데 밥은 먹어야 하잖아? 그래서 싸고 맛있는 곳을 찾았어요. 멀리는 못 다녔지. 교통비 아껴야 하니까. 그래서 동네 돌아다니면서 찾은 맛집 한 곳, 한 곳이 나한텐 행복이었어.”
그때만 해도 한끼에 5,000원 이하로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많았다.
엄청나게 맛있진 않았지만 집 앞 분식점에서 파는 4,500원짜리 김치찌개라든가.
다양하게 먹고 싶으면 회사가 세 들어 있는 빌딩 한식 뷔페 구내 식당에서 5,000원을 내고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식판 앞에 핸드폰을 놓고 유튜브를 보면서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던 그 시간, 그 한 끼가 나도 괜찮게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갑자기 찡하네
└뭔 고생을
└너무 평범한데 그게 아저씨한텐 행복이었구나
└나도 사회초년생 때 생각 난다. 학자금 대출 갚기도 빠듯해서 매일 삼김 먹고 그랬는데.
└나도. 공시 준비할 때 부모님께 용돈 달라고 하기 죄송해서 라면만 먹었음.
“그래. 여기 말씀하시네. 솔직히 고생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서 밥 한 그릇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고.”
└그럼 편집은 언제부터 한 거임?
└영상 제작 회사 다니면서 배움?
“아, 그거.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배가 좀 차니까 정신이 드는 거야. 시키는 일만 하면 알바만 하겠더라고. 그래서 이것저것 물으면서 독학했지. 그러다가 그때 보던 방송이 짐꾼이었거든. 지찬이 형 방송. 유튜브 채널이 없어서 왜 안 만드냐고 하니까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른대. 그래서 연습할 겸 도와준다고 했지.”
└와 그때부터 빨대 꽂으려고 빌드업 ㄷㄷ
└돈은 얼마나 받았는데?
└차지찬하고 그렇게 만났구나
└ㅋㅋㅋㅋ계속 합방하길래 난 또 뭔 비밀 같은 거 쥐고 협박하는 줄
“에이. 돈은 무슨. 그때 지찬이 형 방송 50명도 안 봤어요. 유튜브 채널도 내가 개설했다니까? 보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지. 그냥 팬심으로 했어요.”
└?
└보수는 안중에도 없다?
└10만 유튜버, 정치성향 드러내
└와 10만 돌파했다고 이제 거침이 없네!
“아니, 그게 그 말이 아니잖아. 미친 시청자야! 뭔 소리야! 지금!”
평소에도 시청자와 농담 따먹기를 하는 편이라 어지간한 말은 넘어가는데 생각지도 못한 드립에 깜짝 놀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작하넼ㅋㅋㅋㅋㅋ
└암살 성공
반응을 보니 요샌 또 이러고들 노나 보다.
제로 콜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유튜브에 무슨 영상을 올려야 하는지. 방송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좋은 사람은 많고 거지 같은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사실이라든지. 그리고 뭔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었어.”
└……앞으로 나아간다고?
└예? 진보 말씀하시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놈들아 그만햌ㅋㅋㅋㅋ
“아, 진짜 억지 좀 부리지 마. 이런 거 누가 또 클립 따가지고 올리면 이상해진단 말이야.”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클립영상 따 달라는 말이냐는 채팅이 올라왔다.
이 인간들은 하루라도 날 놀리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게 분명하다.
└차지찬하고 일하는 건 어땠음?
└차지찬 평소에도 문어하고 잠수 대결 함?
└차지찬하고 죽이 잘 맞았나 보네. 유튜브 시작하고 금방 컸잖아.
└차지찬 실제로는 어떰?
역시 유명한 사람이라 궁금한 게 많나 보다.
차지찬에 대한 질문이 연속해 올라온다.
“지찬이 형은 나랑 3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도 뭔가 존경스러워요. 사람이 좀 뭐라고 해야 하나. 주관이 뚜렷해. 정신력도 좋고. 뭔가 틀이 잡혔어.”
└틀????
└틀니?
└와 반찬용 오늘 진짜 실수 많이 하네. 정치성향 드러내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제 세대 갈라치기까지 ㄷㄷ
“아니! 그 틀이 아니라! 뭐 끼워 맞추는 거 있잖아. 틀을 잡다. 할 때 그 틀! 기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북극곰 코스프레하고 화내니까 졸 귀엽넼ㅋㅋㅋㅋ
└이 형 화낼 때 좀 귀여움
└우리 찬용이가 놀리는 재미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