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21화 (21/120)

치팅데이 21화

5. 반찬가게(3)

진정하자.

생각지 못한 소재 때문에 잠시 놀랐는데 원래 이런 인간들이다.

“아무튼 그래요. 잠깐만.”

핸드폰이 울려서 보니 어머니다.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저 일하는 중이에요.”

-찬용아 자꾸 방송에서 정치 얘기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 큰일 나.

└????

└ㅋㅋㅋㅋㅋ어머님 놀라심ㅋㅋㅋ

└이게 뭔 일이얔ㅋㅋㅋㅋ

└어머님 그런 거 아니에욬ㅋㅋ

└다들 빨리 설명드렼ㅋㅋㅋㅋ

스피커폰으로 받은 건 아닌데 집음이 잘 되도록 마이크를 세팅해 두다 보니 소리가 잡혔나 보다.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아니, 그게 아니에요. 제가 이상한 말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노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트집 잡으면서.”

-네 방송 봐주시는 분들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말문이 막혀 가만있으니 채팅창은 좋다고 난리다.

-또 나이 많은 분들한테도 틀니가 뭐니.

“아.”

단단히 오해하신 모양이다.

-지금 방송에 내 목소리도 나가?

“나가고 있어요. 왜요?”

-여러분, 저 찬용이 엄마예요. 얘가 원래 어른들한테 싹싹한데 말실수를 한 거니까 이해해 주세요~

“아니라니까. 왜 이러세요. 끊을게. 이따 얘기해요. 네?”

-그래. 혈당은 잘 관리하고 있지?

“잘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만 아들 믿으니까 운동도 열심히 하고 밥도 잘 먹고.

“네. 그럴게요.”

-근데 왜 크리스마스인데 혼자 있어. 친구들도 만나고 그러지.

“일하는 중이잖아요.”

-엄만 너 여자친구는 바라지도 않아. 외롭지 않게 사람 좀 만나면서 살면 그걸로 된 거야.

“아니.”

-그리고 저번에 올린 영상 봤는데 걱정되더라.

“무슨 영상이요?”

-키스 못 해봤다는 거. 뭐 자랑이라고 말하고 다녀. 그런 말 하지 마. 응? 엄마는 네가 그러고 있는 거 봐도 우리 아들 열심히 산다고 생각할 테니까.

“…….”

방송이 송출되는 화면을 보았다.

하얀 곰 머리띠를 하고 얼굴에 분칠을 한 채 북극곰 잠옷을 입은 34세 남성이 앉아 있다.

└어머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치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필 코스프레했을 때 보셔가지곸ㅋㅋㅋㅋ

└원작자가 버그 수정 중인데 너무 웃지들 마라

└ㅁㅊ 원작잨ㅋㅋㅋㅋㅋㅋㅋ

└버그 잡는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방송 어머님이 살렸닼ㅋㅋㅋㅋㅋㅋ

멘탈이라면 누구보다도 단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힘들다.

“어머니.”

-응.

“끊을게요. 사랑해요.”

전화를 끊고 가만히 핸드폰을 내려보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의욕조차 없다.

이 상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좋을지 답이 없다.

천천히 고개를 드니 아직도 웃고들 있다.

“뭐 좋다고 웃어. 다 당신들 때문이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우리 탓?

└어머님이 아들 사랑이 지극하시네ㅋㅋㅋㅋ

└Q&A 맞냨ㅋㅋㅋㅋ

한숨을 내쉬었다.

10만 구독자 달성 기념 영상에 방금 일을 포함시켜야 하나 잠시 고민되는데.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 영상 조회 수라도 챙겨야겠다.

“또. 뭐 궁금해요?”

여러 채팅 중 방송은 어떻게 시작했냐는 질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정상적인 질문을 해주는 사람도 있어서 참 고맙다.

“방송? 심심해서. 굳이 이유를 찾으면 편집 연습할 때 영상 남으니까 올려볼까? 하고 시작했죠. 알바하던 회사에서 정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야 월급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망설이게 되는데.

어차피 체면 같은 건 없어진 지 오래다.

“여러분 그거 아시는지 모르겠네. 예전에 혼밥 난이도 있었잖아.”

시청자들도 다 아는 모양이다.

“구내식당이나 분식집, 중국집 같은 곳들은 쉬워. 혼자 가는 사람도 많고. 근데 고깃집은 조금 어렵더라고?”

└방송 어떻게 시작했는지 말하다가 갑자기?

└고깃집이 젤 어려운 것 같음.

└패스트푸드 같은 건 혼자 가는 사람 많지. 중국집은 좀 어려워 보이는데.

└근데?

└당뇨병 판정 받기 전엔 잘 갔잖아.

└친구가 진짜 한 명도 없는 거야?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은?

└그러니까. 회사 사람들도 있잖아.

“그 사람들 바쁜데 나 고기 먹고 싶다고 어떻게 막 불러. 멀기도 하고. 주말에 회사 사람 보고 싶어요?”

주말에 직장 동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별난 인간도 있긴 하다만 적어도 난 아니다.

“고기는 먹고 싶고 혼자 들어가자니 좀 그렇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갔어. 지금처럼 방송하는 건 아닌데, 그냥 카메라라도 앞에 두고 있으면 아, 방송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해 줄 거 아니야.”

└?

└ㅋㅋㅋㅋㅋㅋㅋ진짜 미치겠다

└설마 그 이유로 시작했다고?

└진짜 먹기 위해서 유튜브 시작한 거네 이 아저앀ㅋㅋㅋㅋ

└돈 벌려고, 유명해지려고, 취미로, 쉬울 것 같아서 시작했단 말은 들었어도 고깃집에서 혼밥하려고 시작했단 인간은 또 처음이네ㅋㅋㅋㅋ

“설마 나 혼자겠어? 고깃집 혼자 가고 싶은데 민망한 사람들은 한 번쯤 생각해 봤을걸?”

└보통은 그냥 아는 사람하고 가.

└혼자 갈 생각을 안 함

└님만 그런 거

웃을 수만 있으면 사람을 노인학대범으로 몰아가던 인간들이 갑자기 근엄하게 나온다.

“아무튼. 혼자 떠드는 것도 심심하더라고. 한두 사람만 들어와도 괜찮단 생각으로 방송 켰다가 여기까지 왔죠.”

처음 들어왔던 사람은 묵은지란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다.

접속만 하고 채팅 한번 친 적이 없어서 대화를 나누진 못했고.

덕분에 내 방송을 보는지 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 말하면서 심심함을 달랬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말을 하는 행위가 너무나 어색했는데, 차라리 채팅을 치지 않아서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청자가 한 사람, 두 사람 늘어나서 지금은 12만 명의 구독자가 생겼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은 어느덧 900명에 근접했다.

세상 참 알 수 없다.

“또 지찬이 형이랑 우진이 채널이 크니까 그쪽 통해서 들어오는 외주도 늘더라고. 소개도 받고. 회사 다니면서 방송도 하고 외주도 하기는 힘들어서 회사는 그만뒀죠.”

└회사 다닐 때보다 지금 더 많이 벌어?

└얼마나 버는데?

└수익 공개하자

“훨씬 많이 벌지. 안 그랬으면 안정적인 직장을 왜 그만두겠어요. 유튜브 수익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나와요. 이번 달은 좀 더 나올 것 같고. 외주는 달마다 차이가 커요.”

대충 넘기려고 했는데 끈질기게 묻는다.

“적게 벌 때는 한 달에 400? 많이 벌때는 5~600 정도 벌고.”

└ㅁㅊ

└ㄷㄷ 잘 버네

└기만자였어?

└아까 느꼈던 내 안쓰러움 돌려내

└아니 돈 그 정도 벌면 왜 옷을 그따위로 입고 다녀

└북극곰 코스프레 할 만하구나

“옷은 맞는 게 없어. 그리고 여러분은 주말이라도 쉬잖아. 전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빼면 계속 일만 해요. 내 일정 볼래요?”

따로 정리해 두었던 일정과 달력을 찾았다.

가릴 부분은 있어서 그림판으로 대충 덧칠했다.

“봐요. 이게 다음주 스케줄이야.”

월요일, 화요일 양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월요일하고 화요일은 외주 처리해야 해. 4개 편집해야 하는데 긴 영상이라서 하나당 4시간은 잡아야 해요. 또 수정 요청 들어오면 맞춰줘야 하고.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한다고 보면 돼요. 순수하게 집중해서 하는 시간만 10시간.”

마우스 커서를 수요일로 옮겼다.

“다음 주부터 수요일마다 지찬이 형하고 합방하기로 했어요. 운동. 이거 하면 나 쓰러져. 쓰러진 채로 그날 방송 편집해야 해.”

내가 정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 날은 좀 쉴 수 있냐? 아니야. 목요일엔 우진이랑 음식 이야기 하기로 했거든요? 이것도 고정 콘텐츠인데 무슨 얘기할지 공부는 해야 하니까 일찍 일어나야지. 또 방송한 뒤에 편집도 해야 하고.”

그나마 음식 이야기니까 힘들어도 재밌게 할 수 있을 듯싶다.

“안 끝났어. 금요일엔 예전처럼 맛집 탐방할 거예요. 미리 조사도 해야 하고 편집도 해야 하고. 토요일엔 지승이 형하고 쿡방 있지. 일요일엔 너무 힘들어서 미룬 일 처리하거나 다음 주 방송 준비해야지.”

└님 무슨 헤르미온느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예전에 경희대 헤르미온느 생각나넼ㅋㅋ

└이렇게 빡빡하게 산다고?

└돈 많이 벌어라. 난 저렇겐 못 살겠다

└ㅁㅊ 진짜 물 들어올 때 노 젓네

└언제 쉼?

“이러니까 제가 밥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힐링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나 진짜 방송이랑 편집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벌써 4~5년 정도 된 일이다.

직장을 그만두면 좀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큰 오산이었다.

고정 수입이 없어진다는 압박 때문에 들어오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을 더 찾았다.

“채널이 좀 커지면 저도 사람 좀 구하려고요. 편집은 제가 한다 쳐도 방송에 필요한 자료 준비해 주실 사람이 필요할 것 같거든.”

일정을 정리하면서 직원을 들여야겠단 생각을 했다.

당장은 힘들지만 수입이 조금만 더 늘어나면 한 사람 월급 정도는 책임질 수 있으니.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고 싶다.

“그리고. 이건 정말 나중에 일인데, 이런 말 할 기회가 많이 없으니까 그냥 할게요.”

될 수 있으면 거창하지 않게 들리도록 편안히 입을 열었다.

“전에 한번 말씀드린 적 있는데 당뇨병 가진 사람이 정말 많아요. 근데 밖에 나가면 그 사람들을 위한 식당이 정말 없어.”

당뇨 식단을 시작하면서 쭉 해왔던 생각이다.

집에서 일하는 나도 밥을 챙겨먹기 힘든데 직장 생활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밥을 먹을까.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방법 외에는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승이 형한테 요리 열심히 배우고 나도 내 경험 살려서 당뇨 환자를 위한 가게 하나 내고 싶어요. 진짜 마음 놓고 편하게 먹을 수 있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요.”

너무나 힘든 시절 그리고 지금까지도 식사 시간은 내게 너무나 소중하다.

하루가 아무리 고되도 밥 먹는 시간 만큼은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면 이 채널도. 내가 앞으로 할 일도 더 가치가 있어질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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