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22화 (22/120)

치팅데이 22화

6. 백반토론(1)

“…….”

10만 구독자 달성 기념으로 진행한 Q&A 영상을 업로드하고 자고 일어나니 믿기 싫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열심히 사는 아들을 본 어머니.MP4’라는 제목의 글이 여러 커뮤니티 베스트 글로 등록되어 있다.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안절부절못하는 북극곰 코스프레를 한 아저씨를 보며 즐거워하는 댓글을 살피니 한숨부터 나온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봨ㅋㅋㅋㅋㅋ

└열심히 사네

└응 바이럴~

└나라도 현타 오겠다ㅋㅋ

└아이고 어머닠ㅋㅋㅋㅋ 그냥 노는 거예욬ㅋㅋㅋㅋㅋ

└어머니 입장에서는 걱정되지ㅋㅋ 아들이 방송하는데 보수니 진보니 얘기 나오니까ㅋㅋㅋ

└이 아저씨 요즘 재밌더라.

└그거 아니라도 34살 먹은 아들이 저러고 있으면 걱정되실듯ㅋㅋ

└채팅이 개악질임 저 와중에 원작자가 버그 수정 중이래ㅋㅋ

└이집 맛집이네

반찬가게에 접속하니 Q&A 영상 조회 수가 20만 회를 넘겼다.

반나절 만에 20만 조회 수를 넘긴 건 처음이다. 대형 유튜브 채널에서도 흔치 않은 성적이다.

“이게 이렇게 되나.”

보통 Q&A 영상은 나를 소재로 삼기 때문에 반찬용이란 인간을 궁금해하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내수용 콘텐츠다.

한마디로 조회 수가 높게 나올 수 없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나 내게 관심 없는 이에게는 영상을 봐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인데.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방송하는 아들과 그것을 본 어머니의 대화가 주요했던 것 같다.

누구라도 상황을 이해하고 웃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 영상을 퍼다 나른 은인놈 덕분에 노출도 잘되어 조회 수가 터진 것이다.

아주 신이 난다. 신이 나.

12월 유튜브 광고 수익이 들어오면 어머니께 용돈이라도 부쳐드려야겠다.

“오늘은.”

오후 5시에 짐꾼 채널과 합방이 예정되어 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 따로 준비할 일은 없는데, 내일 방송에서 다룰 콘텐츠를 공부해야 한다.

백우진과 냉면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1부에서는 물냉면과 비빔냉면 어느 쪽이 더 맛있는가 토론을 하기로 했고.

2부에서는 냉면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기로 정했다.

2부는 게스트로 초대한 백우진이 알아서 준비해 준다고 했으니, 나는 적절히 호응하는 추임새 역할에 집중하면 된다.

문제는 1부인데, 물냉과 비냉 중 무엇이 더 맛있냐는 주제로 대화가 얼마나 이어질지 의문이다.

“이거 진지하게 하면 안 되는데.”

메모장을 열었다.

* * *

12월 29일 목요일.

백우진이 집 앞에 도착했다고 해서 카톡으로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잠시 뒤 찬바람과 함께 들어온 백우진이 날 내려다보더니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살아 있어?”

“아니.”

어제 차지찬과의 합방 ‘언제까지 뚱할 거야?’를 마친 여파를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어제 짐꾼 나갔었다며.”

“응.”

어제는 등 운동을 했다.

시티드 케이블 로우라고 앉아서 손잡이를 당기고 천천히 놓는 운동을 주로 했는데.

오늘 일어나 보니 눕지도 엎드리지도 가로로 눕지도 못한다. 뒤척일 때마다 등이 비명을 지른다.

“방송 할 수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앉아 있긴 힘들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누워서 할래?”

들어오라는 의미로 이불을 흔드니 백우진이 손에 든 봉투를 들어 올렸다.

“일어나 봐. 형 주려고 아이스크림 사 왔어.”

“내가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먹어.”

“이거 저당 아이스크림이라서 조금은 괜찮아.”

“그래? 무슨 맛인데?”

“민트초코랑.”

“…….”

“쿠키앤크림.”

“그렇지!”

무심코 벌떡 일어난 순간 등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못 내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으니 백우진이 걱정스레 물었다.

“괘, 괜찮아?”

“괜찮아. 앉아 있어. 옷 이리 줘.”

“아니야. 내가 할게. 어디 걸어?”

“손님은 그런 거 신경 쓰는 거 아니야. 아이스크림은 잘 있지? 녹진 않았지?”

“응.”

근육통 따위가 아이스크림을 향한 내 의지를 막아설 순 없다.

백우진의 외투를 옷걸이에 걸었다.

컴퓨터를 켜 방송대기 화면을 걸어둔 뒤 부엌에서 수저 두 개를 챙겼다.

어기적거리며 컴퓨터 의자 앞에 앉으니 아프긴 해도 누워 있을 때보단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방송 제목을 입력하는 등 대강 세팅을 마칠 무렵 시청자들이 제법 접속했다.

└방장 문 열어!

└살아 있네?

└ㅋㅋㅋㅋㅋ어제 죽을 것처럼 굴더만 엄살이었네

└우지니랑 합방이었구나

“형 방송 사람 많다.”

백우진이 접속자 수를 보고 감탄했다. 800명을 넘어서 계속 늘고 있다.

“너랑 합방한다고 하니까 그렇지.”

“그제도 이 정도 들어오던데? 구독자 빨리 늘겠다.”

방송을 켜면 기본으로 시청자 1만 명 이상 기록하는 녀석이 말하니 민망하면서도 뿌듯하다.

내가 보기에도 지금 추세는 매우 긍정적이다.

영상 조회 수나 생방송 시청자 수가 급격히 늘면 대체적으로 구독자도 큰 폭으로 증가한다.

오늘 방송도 그 기세를 이어가는 다리가 되었으면 한다.

“마이크 켤게.”

“응.”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우지니어스 백우진 님 모셨어요. 방금 오셨는데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해. 저당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더라고. 이거 먹으면서 시작할게요.”

화면을 전환했다.

└반하

└우진 님 혹시 협박당하고 있거나 납치된 거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당근이 어딨어 멍청앜ㅋㅋㅋㅋ 진짜 납치된 거라도 못 흔들잖앜ㅋ

└왜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진짜 백우진이네ㅋㅋㅋㅋ

“안녕하세요. 우진입니다. 우지니어스 운영하고 또 얼마 전부터 카카오페이지에 모차르트 in 조선이라는 웹소설 연재하고 있어요. 모차르트가 조선시대에 환생한 이야기인데 많이들 읽어주세요.”

“너 소설도 써?”

“응.”

“TV도 나가, 개인 방송도 해. 지금 우리가 하는 방송도 있는데 거기다 소설까지 쓴다고?”

“응. 재밌어.”

나도 바쁘게 살지만 얘는 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아무튼. 자.”

숟가락을 넘겨 주었다.

오랜만에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을 하니 못 참겠다.

“형 되게 의외다. 이런 스푼도 써? 귀엽다.”

백우진이 티스푼을 보며 감탄했다.

“손님용으로 사 둔 거야.”

“접대용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티스푼이야?”

“왜?”

“형은 아빠 숟가락 쓰면서 왜 난 티스푼 주냐고.”

“……이래서 눈치 빠른 것들이 싫어.”

└여우와 두루밐ㅋㅋㅋㅋㅋㅋㅋㅋ

└지만 더 먹을려고 큰 숟가락 쓰넼ㅋㅋㅋㅋ

└와 동생 상대로

└너어는 진짴ㅋㅋㅋㅋㅋ

└대단하다 반찬용!

└진짜 상상도 못했닼ㅋㅋ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하짘ㅋㅋㅋㅋㅋㅋㅋ

“웃길려고 그랬지. 진심으로 그랬겠어?”

동의를 구하려 고개를 돌렸지만 백우진은 날 흘겨볼 뿐 답하지 않았다.

부엌에서 새 수저 하나를 꺼내 주었다.

“아무튼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여기 우진이랑 음식 얘기 나눌 거예요. 백우진, 반찬용 성 따 가지고 백반 하나요란 이름으로.”

“이름 마음에 들어.”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1부, 2부로 나눠서 방송할 건데 1부에서는 어떤 음식이 더 맛있는지 토론을 할 거예요. 이거 잘 먹히면 계속하고 아니면 바꿀 거니까 정해진 건 아니에요. 일단 한번 해보고.”

백우진이 고개만 끄덕이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야, 천천히 먹어.”

“형도 먹어. 맛있어.”

“둘 다 말을 안 하면 어쩌자고. 방송은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럼 계속 말해. 난 먹을래.”

백우진도 한 먹성 하는 놈이라 이대로 뒀다가는 혼자 다 먹을 판이다.

급한 마음에 숟가락을 들었다.

잘게 바스라진 쿠키를 감싼 부드러운 크림 아이스크림의 그윽한 향과 혀를 녹일 듯한 단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식감을 쿠키가 보완하니.

수많은 애니메이션, 소설, 영화, 드라마에 등장했던 츤데레 캐릭터가 왜 줄곧 사랑받아 왔는지.

이 쿠키앤크림을 느낌으로써 깨닫는다.

차갑고 까끌까끌한 식감마저도 달달하게 느껴질 만큼 사랑스러운 이를 어찌 멀리할 수 있을까.

연거푸 아이스크림을 떠 먹으며 채팅창을 보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뇨인데 아이스크림 먹어도 됨?

└방송 안 함?

└아저씨 둘이서 아이스크림 오물오물 먹는 영상 이건 귀하네요

└반찬용 또 속으로 이상한 생각하며 먹고 있을 듯

“아, 이거 저당 식품이라서 조금만 먹으면 괜찮대요.”

“응. 그러니까 이제 그만 먹어.”

백우진이 아이스크림을 자기 앞으로 끌어갔다.

“야, 치사하게 그럴 거야? 얼마 못 먹었어.”

“조금만 먹어야 한다니까?”

“…….”

안타까운 마음에 빼앗긴 아이스크림과 숟가락을 번갈아 보게 된다.

숟가락에 남은 아이스크림이라도 맛보기 위해 입에 넣으니 다시 한번 쿠키앤크림의 상냥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너도 그만 먹어.”

심술이 나 백우진을 말렸다.

녀석도 아쉬운지 옆으로 치운 아이스크림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까 어디까지 했지. 아, 오늘 주제는 냉면. 1부에서는 물냉이 맛있는지, 비냉이 맛있는지를 두고 토론할 거고. 2부에서는 냉면에 관련된 이야기를 우진 씨가 설명해 드릴 거예요.”

“근데 토론 결과는 어떻게 내?”

“그건 시청자 투표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기면 뭐가 좋은데?”

“……저녁 내기?”

“좋아.”

송출 화면 기준으로 내 가슴 앞에 비빔냉면, 백우진 앞에는 물냉면이라고 적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가장 치열한 주제를 놓고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합니다. 백반 토론의 반찬용.”

“백우진입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늘 주제는 냉면, 물냉이 맛있는가 비냉이 맛있는가입니다. 백우진 위원께서는 어떤 입장이십니까?”

“당연히 물냉면이 맛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비빔냉면이 맛있다는 주장으로 토론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백반 토론ㅋㅋㅋㅋㅋㅋ

└백분 토론 짭이야?ㅋㅋㅋㅋ

└뭔 위원이얔ㅋㅋㅋㅋ 냉면협회라도 있음?

└이게 뭐라고 진지함?

└ㄹㅇ갑자기 진지한 척하넼ㅋㅋㅋ

“우선 너무너무 맛있는 비빔냉면 사진 같이 보겠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비빔냉면 이미지를 화면에 띄웠다.

“이 사진 왜 이래? 포샵했어?”

“아닌데요? 비빔냉면은 원래 이렇게 샤방한데요?”

“뭔 소리야! 어떻게 냉면에서 빛이 나! 말이 안 되잖아!”

“혹시 비냉이 맛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닐까요?”

“아니야.”

어쩔 수 없이 평범한 비빔냉면 사진으로 대체했다.

“다음은 물냉면. 물냉면 사진도 토론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띄워놓고 진행하겠습니다.”

“응.”

“잠깐. 이거 뭐야?”

백우진이 성을 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당연히 안 들지! 이거 뭔데! 뭐 그림판으로 그렸어? 사진 없어?”

└이게 뭔뎈ㅋㅋㅋㅋㅋㅋㅋ

└내 조카도 저것보단 잘 그리겠닼ㅋㅋㅋ

└아닠ㅋㅋㅋㅋㅋ뭔 자료를ㅋㅋㅋ

“야, 사진 쓰려면 저작권 내야 하는데 내가 돈이 어디 있냐?”

“그럼 비냉은! 그거 얼마나 한다고 이딴 걸 가져와!”

“이게 뭐 어때서. 잘 그리지 않았어? 계란도 있고. 오이도 있고. 있을 거 다 있잖아.”

“아, 안 돼. 빨리 바꿔. 진짜 다른 사진 없어?”

“문제 없어 보이는데. 뭐,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니까 다른 사진 보여드릴게요.”

제대로 된 사진을 올리니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네.”

백우진이 어디 해보라는 듯 여유롭게 답했다.

“물냉면. 맛있죠.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생각해 봄직해요. 물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요?”

“예를 들어 물주먹. 물주먹에 맞으면 아플까요?”

“……아니요?”

백우진이 망설이다가 답했다.

“그쵸. 물주먹은 아무리 맞아도 아프지 않아요. 만약에 길에서 만난 사람이 자기를 조원동 물주먹으로 소개하면 겁이 날까요? 아니죠. 웃기죠.”

“아니. 그게 물냉면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반면 비빈다는 표현은 상당히 강하고 위협적인 표현입니다.”

“……어떤 점이?”

“생각해 보세요. 호랑이와 비비는 토끼. 뭔지 몰라도 엄청나게 강해 보이지 않습니까?”

백우진이 고개를 기울이다가 살짝 끄덕였다.

“이처럼 비빈다는 표현은 약한 존재를 아주 효과적으로 강하게 표현하는 공격적인 단어입니다. 또 백우진 위원이 좋아하기도 하죠.”

“내가?”

“타인과 몸을 비비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뭔 소리야! 미쳤어?”

백우진의 목소리가 커졌다.

당황한 게 분명하다.

“내가 언제 그랬어! 없는 말 지어내지 마!”

“과연 지어낸 말일까요? 반 년 전, 주짓수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제게 했던 말이 있죠. 몸과 몸이 맞닿고 부딪히고 스치는 게 기분 좋다고.”

“아니! 그게 그 말이 아니잖아!”

“아니요. 아주 훌륭한 부비부비입니다.”

“그럴 때 쓰는 말 아니야!”

“아무튼 해당 발언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시는군요?”

“그게 그 뜻이 아니잖아!”

“백우진 위원은 사실 누구보다도 비빔을 사랑하면서 왜 본심을 숨기시는 건가요? 사실 물냉면보다 비빔냉면을 좋아하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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