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23화
6. 백반토론(2)
채팅창을 확인하니 하나하나 읽기 힘들 만큼 채팅이 빠르다.
알아볼 수 있는 문자는 도배가 되다시피 한 물음표뿐이다.
대체 몇 명이 들어와 있나 싶어 시청자 수를 보니 막 방송을 켰을 때만 해도 800명 정도였던 시청자가 지금은 3,000명이 넘는다.
└네?
└뭔 헛소리야ㅋㅋㅋㅋㅋ
└이 아저씨 뻔뻔하게 개소리하는 거 왤케 웃기짘ㅋㅋㅋ
└그치 물냉 하면 뭔가 약해 보임
└진짜 억지 부리네
└뭔 드립을 밑도 끝도 없이 쳐
└백우진 당황한 거 봨ㅋㅋㅋㅋ
└노잼
백우진은 턱을 내민 채 팔짱을 꼈다. 내 말을 어떻게 받을지 고민하는 눈치다.
“인정합니다.”
짧은 고민 끝에 백우진이 예상 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인정한다고?”
“그렇죠. 물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약해지는 느낌이 들긴 해요. 총은 위협적인데 물총은 귀여우니까.”
└이걸 받는다곸ㅋㅋㅋㅋㅋ
└인정하면 안 되지!
└이건 ㅇㅈ 맞지. 챌린저도 그냥 챌린저면 고수 느낌인데 물챌이라고 하면 허접 같음.
└이게 도대체 뭔 대화얔ㅋㅋㅋ
└백우진이 받아준 게 용하닼ㅋㅋ
└물냉 vs 비냉 아니었음?ㅋㅋㅋㅋ
“근데 비빔은 아니야. 주짓수 좋아하는 거랑 비빔냉면이 더 맛있다는 말은 연관이 없어.”
백우진이 단호히 말했다.
이름이 맛없어 보인다는 말을 인정할 때만 해도 놀랐는데, 예상대로 정론을 펼친다.
└맞지 맞지
└백우진 잘한다!
└맛으로 얘기해!
“그럼 왜 물냉면이 더 맛있는지 설명하실 수 있을까요?”
“사실 냉면은 물냉면이 디폴트예요. 물냉면이란 말은 원래 없었어요. 냉면이란 말 자체가 물냉면을 지칭하는 단어였죠.”
“냉면은 원래 물냉이었다?”
“네. 홍석모가 1849년에 쓴 동국세시기를 보면 냉면과 골동면이 등장해요.”
백우진이 말하는 사이 시청자들을 위해서 구글에 동국세시기를 검색했다.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 넣은 것을 냉면이라고 부른다. 또 국수에 여러 가지 채소와 배, 밤, 소고기, 돼지고기 편육, 기름장을 넣고 섞은 것을 골동면이라고 부른다」1)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냉면은 원래부터 물냉면이었어요. 비빔냉면은 골동면으로 불렀고요. 즉, 현대의 비빔냉면은 원래 이름을 버리고 냉면의 인기에 편승한 패배자예요.”
└뿌뿌뿌뿜-
└백우진 승!
└컄ㅋㅋㅋ 그렇지 어디 비냉 따위가ㅋㅋㅋ
└원래 냉면도 아니었네
“그런데 이제 와서 비냉이 물냉보다 맛있다고 주장하는 건 도리가 아니죠. 식구로 받아준 냉면 집안에게게서 유산을 빼앗으려 하는 아주 파렴치한 짓이에요. 즉, 비냉이 물냉보다 맛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은혜도 모르는 사람. 패륜아란 말입니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우진 얘도 제정신이 아니넼ㅋ
└이걸 이렇게 틀어버린다고?
└멀쩡하게 말하다가 급발진하넼ㅋㅋㅋㅋ
└패륜아 되고 싶어?
설마 냉면의 기원까지 가져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쵸. 패륜은 안 되죠.”
“물냉이 더 맛있다고 인정하시죠?”
“비냉이 적통이 아니라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백우진 위원께서는 지금 물냉이 적통이고 비냉은 입양되었으니 물냉이 더 맛있다고 주장하시는 거죠?”
“네.”
“근데 직계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능력이 뛰어날 순 있어요.”
내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몇 보인다.
“능력보다 적통성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왕조 국가에서나 할 법한 생각이죠. 그리고.”
“그리고?”
“우리나라 같은 민주공화국. 그것도 왕조국가로부터 위협받는 나라에서 그런 발언을 하시니 저로서는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슬쩍 운의 띄우니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이걸?
└북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ㅋ이걸 이렇게 엮는다고?
└돌아이급 마녀사냥ㅋㅋㅋㅋ
└가불기
└이건 피할 수 없닼ㅋㅋㅋㅋㅋ
백우진이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입을 오물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요. 당연히 능력이 더 중요하죠. 맛을 논하는 자리니까요.”
“그렇죠? 제가 착각한 거죠?”
“그럼요.”
백우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나중에 두고보자는 의미 같지만 이번 토론의 승리는 내 것이다.
“슬슬 이 격식 있는 토론을 끝맺음 지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네요. 제가 비빔냉면이 왜 맛있는지 확실히 설명드릴게요. 백우진 위원은 K푸드란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한국 음식이잖아요.”
“그렇죠.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음식이죠. 기사를 보면 외국인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나와 있어요.”
준비해 둔 기사를 띄웠다.
“보시다시피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한식 3위, 가장 자주 먹는 음식 3위가 비빔밥입니다.”2)
“그런데요?”
“그리고 비빔냉면은 비빔밥의 사촌이죠.”
“…….”
“두 단어가 합쳐졌을 때는 앞에 나온 단어가 본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두괄식이죠.”
“계속해 보세요.”
백우진이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제육볶음, 버섯볶음. 가지볶음. 모두 앞에 나온 단어가 본체죠?”
더럽게 맛없는 버섯볶음을 먹으며 절실히 느꼈다.
볶음요리가 아무리 맛있어도 버섯볶음은 버섯볶음이고 제육볶음은 제육볶음이다.
제육볶음이 맛있는 이유는 제육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빔냉면의 본질은 비빔이고. 비빔밥의 본질도 비빔입니다. 두 음식 모두 비벼서 여러 식재료와 다양한 양념을 한 번에 즐기는 음식이죠.”
└또 용소리 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맞는 말 아님?
└이 아저씨 버섯볶음 먹을 때 자기최면 걸던 거 생각나네ㅋㅋ
└그치 둘 다 비벼서 한 번에 먹는 음식이지
“그러니까 비빔냉면이 맛이 없다는 말은 곧 비빔밥이 맛이 없다는 뜻이고. 그 말인즉 우리나라의 비벼 먹는 문화 자체를 부정하고 K푸드가 실패하길 바라는 매국노다. 이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논리박살ㅋㅋㅋㅋㅋ
└인신공곀ㅋㅋㅋㅋㅋㅋㅋㅋ
└가불기 난샄ㅋㅋㅋㅋㅋㅋㅋㅋ
└반찬용 진짜 토론 더럽게 하넼ㅋㅋㅋㅋㅋㅋㅋ
이 공격에서 벗어날 순 없다.
논리정연한 말로는 똑똑한 백우진을 이길 순 없다.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야 당황해서 실수를 할 테고 그 허점을 노려야 승산이 있다.
무엇보다 백반 토론은 정말 무엇이 맛있는지 결정하는 콘텐츠가 아니다.
예능이다.
“반찬용 위원의 주장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어요.”
“네?”
“첫 번째. 합성어에는 처음 나온 단어가 수식어인 경우도 많아요. 예를 들어 호박고구마는 호박인가요? 고구마인가요?”
└맞네. 감귤도 감이 아니라 귤이잖아.
└감귤은 밀감하고 귤을 같이 부르는 거야 바부야.
└호!박!고!구!마!
└맞아. 소나무도 나무잖아.
└ㄹㅇ 리자몽도 자몽인데.
└?
└인어도 생선이지.
└인어는 사람 아님?
└오리너구리임.
“그러니 비빔냉면과 비빔밥은 다릅니다. 당연하게도요.”
내 완벽한 논리가 파훼되었다.
“그리고 비빔냉면이 맛있는 이유가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비빔밥과 사촌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확실한가요?”
“확실하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외국인이 맛있다고 하니까 비빔밥은 맛있는 음식이다. 서양인의 입맛은 옳으니까. 서양인의 의견은 정답이니까. 뭐 그런 사대주의적 발상을 하시는 건 아니죠?”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매국노 VS 사대주읰ㅋㅋㅋㅋ
└백우진 얘도 정상 아님ㅋㅋㅋㅋ
└아 왜 우리나라 음식이 대단한 걸 말하는데 서양사람을 데려오냐고ㅋㅋㅋㅋ
└이제 알겠다. 얘네 일단 물냉하고 비냉 중 뭐가 더 맛있는지는 관심없음.
└ㄹㅇ 서로 상대 묻어 버리기만 생각함ㅋㅋㅋㅋㅋㅋ
“그럴 리가요. 서양사람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런 말이죠.”
토론이 여기까지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준비했던 말이 떨어져서 어떻게 받아쳐야 하나 망설이던 차.
좋은 생각이 났다.
“서양인들도 좋아하지만 음식을 비벼 먹는 건 우리나라의 전통이란 뜻에서 한 말이죠.”
“그래요?”
“그럼요. 혹시 백우진 위원께서는 쓰까먹는다란 밈을 알고 계십니까?”
부산 지역에서 온갖 음식을 한 데 섞어 먹는다는 글에서 시작해서 한때 쓰까묵자란 말이 유행을 탄 적 있었다.
“네.”
“처음 인터넷에 등장했을 땐 부산 지역 사람들의 식문화를 과장되게 표현한 유머였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부산을 비하할 때 표현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
“비빔밥, 비빔냉면 같이 우리의 소중한 식문화가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단어로 사용되는 현실이 저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혹시 백우진 위원께서도 지역 비하 발언에 동조하십니까?”
“아니 그게 그 말이 아니잖아.”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비빔냉면을 욕되게 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반찬용 혀 요사스러운 거 봐랔ㅋㅋㅋ
└진짜 아무 말이고 내뱉고 보넼ㅋㅋㅋㅋㅋ
└물냉면이 더 맛있다고 하면 지역 비하 발언하는 인간이랰ㅋㅋㅋ
└뭔 냉면 가지고 매국노니 사대주의니 지역 비하니 별 소리를 다하넼ㅋㅋㅋㅋ
└괴벨스도 울고 갈 선동ㅋㅋㅋ
└백우진 입만 뻥긋뻥긋하는 거 봨ㅋㅋㅋㅋㅋ
└논리고 뭐고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뻔뻔하게 하니까 어이가 없짘ㅋㅋㅋ
백우진이 헛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숙였다.
“졌습니다.”
“투표 아직 안 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백우진이 손을 들어보이며 괜찮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이런 식으로 한다 이거지? 진짜 두고 봐.”
* * *
방송을 끝내니 잠시 잊고 있던 근육통이 밀려들었다.
몸을 비틀며 뻐근해진 등을 푸는데 백우진이 의자에 등을 파묻은 채 말이 없다.
“왜 그래?”
“아까 토론한 거.”
백반 토론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사실 백우진은 내가 오늘 토론을 어떻게 풀어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나 잘 받아주었다.
내 억지가 통했던 이유는 백우진이 능청스럽게 접수를 해준 덕이다.
만약 정색하고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이야기했더라면 방송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당황할 만도 했거늘.
괜히 100만 유튜버가 아니다.
“당황했지? 이게 웃기려고 하다 보니까.”
“비빔냉면은 먹을 때 옷에 튈 수 있어서 별로야.”
“……응?”
“게다가 시원한 육수도 없잖아. 형 예전에 삼겹살 먹으면서 뭐라고 그랬어. 시원한 육수로 기름기 씻어줘야 한다고 했잖아.”
“그치?”
“아. 준비해 왔으면 내가 이겼어. 내일 다시 해.”
“내일도? 안 바빠?”
“해.”
진짜 분한가 보다.
다음 토론 때 뭘 준비해 올지 두려워지는데 그래도 즐긴 것 같아 마음은 편하다.
“근데 이기고 싶어서 욕심 내는 건 조심해야겠어. 방송하다 보면 웃겨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게 되잖아.”
“그치.”
“그러다 보면 선 넘는 말 나올 수 있으니까 그 점은 나도 형도 조심해야 할 거야.”
“맞지.”
본래 웃고 떠들자고 하는 방송이고 시청자들도 우리 말이 농담임을 알기 때문에 비빔냉면을 싫어하면 매국노란 헛소리에 웃는 것이다.
그 와중에 어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고.
어느 정도는 감안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순 없으니까.
그러나 대다수가 불편해하는 내용이 들어가면 유튜버로서는 치명적이다.
“괜찮게 흘러갈 것 같으니까 그것만 조심하자고.”
“물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