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26화 (26/120)

치팅데이 26화

6. 백반토론(5)

저녁에 동해시 천곡동의 N식당을 찾았다.

브레이크타임이 막 끝나서 비교적 한산했는데, 점심 장사가 잘 되는 곳이고 냉면 자체가 저녁으로 먹는 음식은 아니다 보니 그런 듯싶다.

자리를 안내받고 메뉴판을 확인했다.

평양냉면, 함흥냉면, 온면, 순면, 수육 그리고 특이하게 통닭이 있다.

기름이 쫙 빠져서 담백한데 겉과 속살은 쫄깃한데 단점은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때문에 먹으려면 전화로 미리 주문해야 하는데, 식사량을 줄인 지금 어머니와 둘이서 먹기엔 부담스러운 양이다.

통닭은 다음 기회로 미루자.

“평양냉면 둘 주세요.”

이 집의 주력 메뉴 평양냉면을 둘 주문했다.

백우진의 말에 따르면 지금이야 평양과 함흥이 유명하지만 원래는 평양과 진주가 냉면을 대표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예나 지금이나 평양냉면의 인기는 꾸준했던 것 같다.

조선의 왕도 즐겨 먹었다고 하니 말이다.

“어머니, 냉면이 언제부터 배달되었는지 아세요?”

“글쎄?”

“1768년부터래요.”

그제 냉면 방송을 할 때 백우진이 설명한 내용이다.

배달 냉면이 처음 기록된 시기는 1768년 7월로 황윤석의 일기에서 언급된다.

황윤석은 ‘과거 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으로 일행과 평양냉면을 시켜 먹었다’고 적었으니 기록만 1768년이지 실제로 냉면이 배달된 시기는 그보다 오래되었을 거다.

“엄청 오래됐네.”

“그쵸. 우리나라가 음식 배달을 진짜 빨리 시작했더라고요. 배달어플이 잘 되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게 관계가 있어?”

“집에서 편하게 먹는 걸 좋아하니까? 배달 어플 생기기 전에도 짜장면 시켜 먹었잖아요. 해수욕장이라든가. 괜히 배달의 민족이겠어요?”

어머니께서 피식 웃으셨다.

“근데 비빔 안 먹고 물 먹어?”

“물이 더 좋아요.”

“방송에선 비빔이 더 좋다며.”

“방송이니까요.”

백반토론에서는 비빔냉면 편을 들긴 했지만 함흥식 비빔냉면보다는 평양이나 진주냉면을 선호한다.

시원하고 맑은 육수를 좋아하기도 하고.

전분 함유량이 높은 쫄깃한 면보다는 슴덩슴덩 씹히는 메밀면이 취향이기 때문이다.

“맛있게 드세요.”

점원이 냉면을 가져다 주었다.

색이 뽀얀 것으로 보아 순도 높은 메밀면이다.

접시를 들어 육수를 들이켜니 메밀향이 은은히 풍기는 가운데 소고기 육수가 몸에 스며든다.

오랫동안 우려냈음에도 기름을 모두 제거해서 맛이 깊고 맑은 우물 같다.

이 느낌이 좋아서 음식을 받자마자 육수를 한 번 쭉 들이켜고, 면을 풀 때도 계란을 건져 먹어 육수를 보호한다.

어디.

잘 풀어낸 메밀면을 집어 입 한 가득 넣는다.

메밀 함량이 높은 면답게 씹을 때마다 숭덩숭덩 끊기는데 그때마다 메밀향이 육수와 어우려져 말 못 할 쾌감을 전달한다.

이 슴슴한 가운데 느껴지는 고고함이 평양냉면을 먹는 이유다.

“근데 이런 거 먹어도 돼?”

어머니께서 걱정스레 물으셨다.

“메밀면이 좋대요.”

면 자체가 정제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몸에 흡수가 빠른 건 사실이다.

흡수가 빠르다는 말은 혈당 상승에도 영향을 주어 살 찌는 음식이란 뜻인데.

다행히 메밀 자체가 혈당상승지수가 낮다고 한다.

“GI라고 혈당상승지수가 있는데 이게 55보다 낮으면 좋은 음식이고, 70보다 낮으면 보통, 그 이상이면 살 찌기 쉬운 음식인데 메밀면은 54밖에 안 돼요.”

현미밥의 당지수가 55이니 당뇨병 환자에게 메밀국수는 참 고마운 존재다.

* * *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켰다.

고향에 내려오려고 목요일, 금요일에 밤을 새워가며 방송과 편집을 했기에 업무 연락 메일을 확인 못 했다.

집에 내려와선 점심 먹고 자고 일어나 저녁 먹으러 나갔다 와서 영상 반응도 제대로 확인 못 했다.

“어디.”

반찬가게에 접속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백반토론 ‘물냉면 vs 비빔냉면’과 ‘초콜릿 vs 사탕’ 영상의 조회 수가 말이 안 된다.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새로고침했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늘어갔다.

조회 수가 터졌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미쳤다.”

목요일, 금요일 방송 분위기가 괜찮았기에 어느 정도 내심 기대하긴 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동안 주력 콘텐츠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것저것 도전하다 보니 결국 찾아낸 듯싶다.

이거면 전업을 시작해도 전혀 문제 없다.

메일만 확인하고 커뮤니티 반응을 볼 생각으로 메일함을 열었는데 어제 자로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내온 신규 메일이 있다.

“여기서 왜?”

홍당무 엔터테인먼트라면 꽤 규모가 있는 MCN 업체다.

유튜버, 스트리머, BJ 등 인터넷 방송인의 활동을 지원해 주고 수익 일부를 챙기는 곳인데.

최근에는 매니지먼트와 영상 제작도 시작했단 이야기를 들었다.

메일을 열어 보니 역시나 계약 이야기다.

“만나서 얘기하자고.”

이런 일은 대개 컨택 단계부터 계약 조건을 명시하지는 않는다.

미팅 중에야 당연히 세부내용을 다루지만, 증거가 될 만한 문서는 만들지 않고 계약을 체결할 때 비로소 명문화한다.

계약 조건이 누설되지 않도록 조심하기 위함이나 솔직히 헛수고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어느 업체가 어떤 조건을 내거는지 공유하게 되고 나 또한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에게 들은 말이 있다.

“근데 굳이 MCN이 필요한가?”

국토횡단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차치찬이나, 지상파 및 강연에도 공을 들이는 백우진 같은 경우에는 MCN이 도움되겠지만.

내 방송은 그들과 방향이 다르다.

마음 맞는 사람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청자와 소통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뿐이다.

굳이 내 수익을 나눠서 얻을 게 없다.

다만.

“자세하게도 적었네.”

홍당무에서 보낸 메일은 내 채널을 쉬운 말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문장 자체는 딱딱하지만 사무적으로 연락한 게 아니라, 정말 내 채널에 관심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전략)

덕분에 반찬가게는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라이브 방송은 친구와 편하게 대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식사하거나 침대 위에서 시청하기에 적절합니다.

반면 편집 영상에서는 반찬용 님의 입담과 재치, 끼가 어필되어 채널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최근 업로드하신 ‘언제까지 뚱할 거야?’와 어제 ‘백반토론’은 그러한 요소가 잘 반영되어 한 명의 시청자로서도 즐겁게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내일 예정된 반야식경과의 합방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역시 기대가 됩니다.

이처럼 홍당무는 반찬용 님과 반찬가게 채널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며 귀하와 함께 아래와 같은 일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 홍당무 자체 기획 영상 제작

● TV프로그램 출연

● 광고 지원

● 굿즈 제작 지원

● 소속 크리에이터와의 교류

위 내용을 포함하여 반찬가게가 지향하는 시청자와의 소통, 만남, 교류에 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만나 뵈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해당 메일이나 아래 연락처로 문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획지원팀

대리 묵은지

010-XXXX-XXXX

[email protected]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XX

계약 때문에 내 영상을 대충 찾아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내가 무슨 영상을 업로드하는지, 어떤 콘텐츠가 예정되어 있는지, 평소에는 어떤 식으로 방송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다.

마지막에 ‘반찬가게가 지향하는 시청자와의 교류를 함께 고민하고 싶다’는 말은 내 방송을 꾸준히 봐 온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음.”

당장 소속사가 필요하진 않지만.

만약 찾는다면 다른 곳보다는 대기업 투자를 받은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에서 나를 잘 아는 사람과 일하는 게 나을 거다.

얘기나 한번 나눠볼까.

그리 생각하며 스크롤을 마지막까지 내렸다.

“……묵은지?”

설마 계약 관련 메일에 장난을 칠 리는 없고 아이디도 Aged kimchi인 걸 보니 본명이다.

생각해 보니 또 은지라는 이름이 딱히 이상하지도 않다.

우리나라에 묵씨도 있구나 생각하며 메일을 닫는 순간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고깃집에 혼자 들어가기 꺼려져서 방송을 켰던 첫 날.

그때부터 채팅 하나 없이 방송에 들어와 준 사람 닉네임이 묵은지였다.

묵은지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는데 지금 보니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비약인가.

답장 버튼을 눌러 만나보자는 내용을 적었다.

혹시 내 방송을 보냐고, 닉네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적었다가 아니면 서로 민망할 것 같아 지웠다.

* * *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부천으로 향했다.

집에 들를까 고민하다가 짐도 많이 없고.

바로 가면 1호선 타고 쭉 가면 되는데 집에 가려면 갈아타야 해서 그대로 반야식경 스튜디오를 찾았다.

덕분에 여유 있게 도착해서 주지승에게 MCN에 관해 물어볼 수 있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 및 MCN 업체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토마토 코퍼레이션 소속인 만큼 정확한 정보를 알려줄 거라 생각했다.

“장단점이 있지.”

주지승이 반들반들한 두피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홍당무 같은 곳에서 밀어주면 기회는 많이 생겨. TV 출연이든 대형 기획이든. 그러고 보니 이번에 홍당무가 뭘 크게 한다던데 거기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지? 아마.”

“단점은?”

“수익 나누는 게 커. 홍당무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난 PPL 광고 수익을 나누거든.”

“외부 홍보 건만?”

“응.”

주지승이 말하는 PPL 광고 수익은 대가를 받고 상품을 홍보해 주는 일이다.

유튜브 광고 수익 같은 경우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게 많이 커?”

“그럼. 난 6 대 4.”

“히이.”

생각보다 가져가는 비율이 크다.

“이걸 이렇게까지 나눠야 하나 싶을 때가 왕왕 있어.”

“토마토랑 계약하기 전에도 광고 문의는 많이 들어왔으니까요.”

최미카엘이 한마디 거들었다.

지금 내게도 가끔 광고 문의가 들어오는데 주지승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광고를 섭외해 준다는 명목으로 일정 부분을 가져간다면 충분히 부당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럼 왜 계속해?”

“잘 밀어주니까.”

주지승이 미간을 좁힌 채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너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응.”

믿고 하는 말이니 다른 곳에 가서 떠들지 말란 뜻이다.

“사실 이런 기업에선 효율이 나오는 사람한테 집중할 수밖에 없어. 그래야 자기네들한테도 수익이 생기니까.”

“아무래도?”

“그래서. 음. 이런 말 하는 게 좀 그런데 소위 잘 나가는 사람한테는 이것저것 신경 써 주거든. 나만 해도 저번에 TV 방송 토마토에서 꽂아줬고.”

“아.”

“새 콘텐츠 필요한데 아이디어 없으면 같이 고민해서 영상 뽑아주기도 하고. 어디 행사 있으면 꼬박꼬박 챙겨주고. 법률 자문도 도와주고 얻는 게 없진 않지.”

“그럼 잘 안 되는 사람은?”

굳이 듣지 않아도 예상이 된다.

“기분 더럽지. 이게 잘 나가다가 안 되는 경우가 있잖아.”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렇다. 큰 실수를 한 게 아니라도 언젠가는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조금씩 홀대 받는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 또 잘 될 것 같아서 계약했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도 마찬가지고. 유튜버 입장에선 처음 들었던 얘기하고 다르니까.”

“이것저것 다 해줄 것처럼 말했는데 안 해주면 서운하지.”

“그치. 불만만 쌓이다가 재계약 시점 오면 결국 연장 안 하게 되지.”

요약하면 잘나갈 때는 도움이 되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없는 살림마저 나눠줘야 한다는 뜻이다.

남들과 비교되며 얻는 상실감, 서운함, 억울함까지 덤으로.

“약았네.”

“약았지. 잘 될 때는 빨대 꽂고 온갖 좋은 말 해주면서 안 될 때는 버리는 거나 다름 없으니까.”

요즘 빨대 꽂는다는 말만 들으면 괜히 움찔하게 된다.

반야식경, 짐꾼, 우지니어스에 나보고 빨대 꽂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끔 나타나기 때문이다.

“얘기나 한번 들어봐. 뭐, 찬용이 너야 이쪽 잘 알고 직장생활도 해서 어느 게 더 나은지 판단할 수 있잖아.”

“고민이야. 할지 안 할지.”

“끄흐흫. 요새 잘 나가긴 하네. 홍당무에서 연락도 다 받고.”

“그니까. 깜짝 놀랐어. 들어오면서 확인해 보니까 100만 넘었더라고.”

“크으. 좋다. 오늘 내가 축하 의미로 맛있는 거 해줄게.”

“뭐 할 건데?”

“김치찜. 삼겹살로.”

이 사람은 부처님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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