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27화
7. 묵은지(1)
“600만 당뇨인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먹을 게 없다, 사는 낙이 없다 하시는 분들께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당뇨병 환자를 위한 요리 콘텐츠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첫 방송을 시작했다.
대형 채널답게 생방송을 시작하자마자 5,000명이 넘는 사람이 접속했다.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사말을 했더니 몹시 부끄러워진다.
└나 방 잘못 찾아 온 듯?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진짜 뭔 짓이얔ㅋㅋㅋㅋㅋㅋ
└아저씨들 졸귀네
└꾸엑 토 쏠려
채팅창도 소란스럽다.
내 이름 반찬용과 주지승을 섞어 만든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이란 코너명도 낯부끄러운데 ‘주지용’이라고 말하면서 두 손으로 볼을 감싸야 했다.
그냥 담백하게 말하면 안 되냐고 저항했지만.
꽃받침이 핵심이라고 주장하던 최미카엘은 정작 미친듯이 웃고 있다.
숨 넘어가겠다.
“아니, 잠깐만요. PD님이 하라고 하셨잖아요. 본인이 웃으시면 어떡해요.”
“웃기려고 하는 거잖아요흐흫.”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껴야만 하는 일이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허리까지 숙인 채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부아가 치민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도 현재 당뇨병을 가지고 있고 여기 찬용이도 한 달 전에 당뇨병 판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당뇨 있는 사람도 안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볼 건데.”
주지승이 방송을 진행했다.
“찬용이 김치찜 좋아한다 했지?”
좋아하는 음식 월드컵을 진행할 때 부대찌개, 김치찌개, 김치찜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다.
그걸 기억하고 저번 부대찌개에 이어 김치찜을 준비해 준 주지승에게는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너무 좋아하지. 푹 익은 김치 쫙 찢어서 야들야들하게 익은 고기에 싸서 먹으면 크.”
“좋지. 좋지. 그렇게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오늘 만들 김치찜은 특별합니다.”
카메라가 테이블 위에 놓인 식재료를 확대했다.
송출용 모니터로 확인하니 화면 가득 잘 잡힌다.
조명도 완벽해서 음식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다.
전부터 느꼈지만 최미카엘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다.
“목살이나 전지. 뭐, 등갈비로 해도 맛있지만 사실 삼겹살만 한 게 없죠.”
두툼한 삼겹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애잔해진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같이 함께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보기가 힘들다.
“또 보통은 배추김치로 하는데 오늘은 갓김치를 준비했습니다.”
“갓김치?”
“갓김치 안 좋아해?”
“어……. 그냥 있으면 가끔 먹는 정도?”
└갓김치 맛있는데
└게스트 바꿔 어디 갓김치 맛도 모르는 근본도 없는 놈을 데려와?
└넌 돼지 자격이 없다. 날씬해져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부터 좋아하게 될 거야.”
주지승이 어떻게 결혼했는지 알 것 같다.
말을 어떻게 해야 사람을 설레게 하는지 너무 잘 안다.
“이게 갓김치를 쓰는 이유가 있어. 갓김치. 이름을 잘 생각해 봐.”
“이름?”
└그냥 맛있어서 넣는 거 아님?
└뭔 이유?
└GOD김치!
└오
└ㅋㅋㅋ갓김치가 맛있긴 하지~
└GOD이라서.
“그쵸. 갓김치. 신김치죠. 김치찜을 할 때는 신김치나 묵은지를 써야 해요.”
“아.”
└????
└뭐라고?
└뭘 또 아얔ㅋㅋㅋㅋㅋ
└아재 둘이 붙으니까 부장님개그 미치겠넼ㅋㅋㅋㅋㅋ
└반찬용 납득하는 게 너무 열받는뎈ㅋㅋㅋㅋㅋ
“사실 신김치랑 묵은지랑은 엄연히 다르 거야.”
“어떻게?”
“신김치는 그냥 신맛이 나는 김치고 묵은지는 맛이 더 깊지.”
주지승이 큰 냄비에 물과 삼겹살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찬물에 오래 넣어서 핏물을 빼야 하는데, 여러분은 바쁘니까 그런 시간 없잖아요? 이렇게 살짝 데쳐줄게요.”
짧은 시간에 핏물을 제거하는 방법 같다.
“어디까지 얘기했지?”
“신김치랑 묵은지 차이.”
“아. 김치에서 신맛을 내는 유산균은 10도 이상에서 활동해. 그래서 실온에 하루이틀만 둬도 시큼한 맛이 나고 보통 시중 김치찜 가게에서는 그렇게 신김치를 만들어.”
특별한 방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 실온에서 보관만 하면 신김치를 만들 수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경우는 중국산 저품질 김치를 많이 쓰고.”
“단가도 낮추고 재료도 빨리 수급할 수 있겠네.”
“그치. 반면 묵은지는 낮은 온도에서 6개월 이상 묵혀야 해. 공기랑 접촉되지 않으니 상하지 않고 깊은 맛이 나고.”
“그럼 묵은지 쓰는 식당이 좋겠네? 김치찜 먹으러 가려면.”
“그거 구분하는 법 알려줄게. 이거 엄청난 팁인데 묵은지는 처음부터 반투명하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신김치는 아니야?”
“담은 지 얼마 안 된 걸 짧은 시간에 삭히다시피 하니까 반투명해질 수가 없어.”
“그런가? 대부분 반투명했던 것 같은데.”
“방법이 있지. 속성으로 만든 신김치도 팔팔 오래 끓이면 반투명해져. 그럼 어떻게 되겠어?”
“흐물흐물해지지.”
“그렇지. 너무 오래 끓여서 식감이 완전히 다 사라져서 흐물흐물한 곳들 있잖아? 그런 데는 이제 좋은 재료를 썼다고 보긴 힘들죠.”
“오래 끓인다고 다 좋은 게 아니구나.”
“배추 식감이 어느 정도 살아 있을 때 먹는 게 베스트야.”
주지승이 데친 삼겹살을 건져냈다.
“이제 따라하시면 되는데 항상 말씀드리지만 저는 2인분 기준으로 만듭니다. 저한테 2인분이니 여러분한테는 1인분일 수도 있고 3인분일 수도 있어요.”
양은 알아서 잘 맞추란 뜻이다.
“삼겹살 1㎏에 갓김치는 650g 정도 넣어줍니다. 무게 재서 넣을 필요 없어요. 많이 드시고 싶으면 더 넣고 좀 덜 넣어도 됩니다. 집집마다 김치 간이 다 달라서 저랑 똑같이 한다고 다 간이 맞진 않아요. 요리는 간을 계속 확인해야 해요.”
주지승이 갓김치 국물을 압력솥에 넣었다.
“김칫국물도 적당히 넣어주시고. 야채 많이 먹으면 좋으니까 양파랑 대파 썰어줄게요.”
주지승의 멘트에 맞춰 양파랑 대파를 썰었다.
“이렇게 썰면 돼?”
“아주 좋습니다. 어차피 아무렇게나 썰어도 우리가 먹을 거니까 괜찮아.”
혼자 할 때는 막막했는데 주지승이 가이드를 잡아주니 의외로 쉽게 느껴진다.
“더 맛있게 드시고 싶은 분은 여기에 굴소스나 설탕, 후추 같은 거 넣으시면 좋아요. 티스푼으로 2번 정도. 근데 김치찜이 좋은 게 사실 김치만 맛있으면 그런 거 안 넣어도 되기 때문이거든요. 이미 간이 다 되어 있잖아요.”
“그럼 김치랑 고기만 넣고 쪄도 돼?”
“그럼. 어때? 요리 쉽지?”
“응. 이상하게 형이랑 하면 쉽게 느껴져.”
“끄흐흫.”
쉽기만 한 게 아니라 건강에도 큰 탈 없을 것 같다.
물론 김치가 짜고 삼겹살에 지방이 많아서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다른 조미료를 쓰지 않고 김치로만 조리한다면 혈당이 오를 리가 없다.
“이제 여기에 물을 살짝만 넣으면 됩니다. 김치에서 물이 나오니까 적당히. 심심할 수 있으니까 다진 마늘하고 깨도 넣죠. 잡내 있으니까 맛술로 냄새만 딱 잡아주고.”
“식당에서 먹는 김치찜은 약간 달큰한 맛도 있던데.”
“그런 곳은 이제 아까 말했던 설탕을 넣는 거지. 바깥음식 진짜 설탕 징글징글하게 들어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넣어야 또 맛있거든.”
“그럼 우리가 하는 건 맛이 좀 덜하겠네?”
“아니지. 아까 내가 뭐라 했지? 김치찜은?”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
“그렇지. 이거 종갓집에서 담근 김치야.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어? 형네 종갓집이야?”
“아니. 가끔 용돈 주시는 분들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 광고를 한다고?
└앞광곸ㅋㅋㅋㅋㅋㅋ
└암 용돈 주시면 집안 어른 맞지
└왜 갓김치 가져 왔나 했네
유튜브에 편집해서 올릴 때는 처음부터 광고 표시를 하겠지만, 생방송 중일 때는 이런 식으로 광고임을 알린다.
노련하다.
주지승이 카메라를 보며 시청자들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김치 자체가 이런저런 조미료가 되게 많이 들어가요. 그래서 김치가 들어가면 어지간하면 더 뭐 안 넣으시는 게 좋아요. 특히 저나 찬용이처럼 성인병 있는 경우는요. 딱 하나 예외가 있긴 한데.”
“예외?”
“MSG는 기호에 따라 살짝만 첨가해 드시는 걸 추천드려요.”
주지승이 미원을 꺼내더니 압력솥에 솔솔솔 뿌렸다.
“이건 반칙 아니야?”
“아, 찬용이 모르는구나. MSG는 괜찮아.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야.”
“……?”
내가 어리둥절하든 말든 주지승은 압력솥을 닫고 불을 중불에 두었다.
“압력솥으로 하면 금방 됩니다. 한 30~40분 정도 보죠.”
* * *
“맛있었지.”
아침을 먹으며 그제 먹은 김치찜을 떠올렸다.
지방과 살코기가 어우러진 삼겹살 또한 절묘한 식감을 자랑했다.
김치는 흐물흐물해지기 직전까지 조리해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으면서도 부드러웠다.
게다가 자작한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니 행복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이곳엔 고행만이 남아 있다.
데친 브로콜리와 삶은 계란, 참나물에 현미밥이라니.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식단으로 또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
굶으면 다이어트에 좋지 않다고 하니 억지로 쑤셔 넣고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메일함을 여니 홍당무에서 답장이 와 있다.
월요일 아침 8시에 도착한 메일인데, 대체 이 회사는 근무시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늘 보자고?”
답장도 급하게 보내고, 오늘 당장 만나자는 걸 보면 확실히 내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최근 경향이 좋긴 하다.
어제 편집해 올린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을 포함해서 ‘언제까지 뚱할 거야?’, ‘백반토론’ 모두 인기 급상승 탭이 달리며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특히 백반토론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면서 조회 수 오르는 속도가 줄질 않는다.
“이게 말이 되냐고.”
그리고 무엇보다 날 설레게 만든 건 구독자 수다.
반찬가게
@banchan2
구독자 15.87만 명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게 된다.
저번 달, 12월 상승세가 심상치 않긴 했지만 최근 일주일은 정말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2년 걸려서 8만 명을 모았는데.
단 한 달 만에 7만 명이 늘었다.
그만큼 유입된 사람도 많아서 댓글도 관리하기 힘들어졌다.
이전에는 날 오래 봐 온 사람들 위주라 장난은 해도 인신공격이나 얼토당토하지 않는 비난 글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댓글이 상당히 늘었다.
가장 많이 달리는 내용은 유명 유튜버에게 빨대를 꽂았다는 말이다.
백반토론 물냉면 vs 비빔냉면 영상에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답글이 50여 개나 달려 있어 확인해 보니 한 구독자가 날 옹호해 주면서 악플러와 싸우고 있다.
└쪽쪽 잘 빨아먹네. 짐꾼, 우지니어스, 반야식경 다음은 또 어디 기웃거릴려고?
└어딜 봐서 빨아먹는 거임?
└누가 봐도 기생충인데? 물주먹 이 지랄하면서 개노잼 드립 치는 거 안 보임?
└응~ 너 방구석에서 찌질거릴 때 반찬용은 드립치면서 돈 벌어
└저딴 소리하면서 돈 버는 게 이상한 거지ㅋㅋ
└돈 버는 게 낫지 인터넷에서 헛소리하다가 고소당해 부모님 울게 만드는 것보단ㅋㅋ
└왜 인신공격함?
└지는ㅋㅋㅋ
이러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 댓글을 고정했다.
우리 팀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