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28화
7. 묵은지(2)
MCN과 계약할지 말지에 대한 여부는 정하지 못했다.
다만 얘기나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의 묵은지 대리와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할 즈음 ‘백반토론 물냉면 vs 비빔냉면’을 틀어 댓글란을 확인하니 악플을 고정한 효과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구독자들이 다 해줬다.
어찌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그로 끌던 녀석은 하나하나 답을 달기 버거웠는지 4시간 전에 단 마지막 댓글에서 정신승리를 한 이후로 보이지 않는다.
약속 장소로 잡은 카페에 들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한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
인사하길래 나도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묵은지입니다.”
“안녕하세요. 반찬용입니다.”
명함을 받아 챙겼다.
“음료는 콜드 브루 디카페인으로 주문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커피를 달고 살기 때문에 일할 때 말고는 카페인을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또 당뇨 때문에 당분이 들어간 음료도 피하고 있으니 지금 내게 딱 맞는 음료다.
확실히 이 사람은 나를 잘 알고 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들었다.
첫인상은 꼼꼼하고 능력 있어 보이나 다소 대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단정하게 빗어 내린 단발머리와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한 정장이 그런 인상을 주었다.
너무 편하게 입고 왔나?
묵은지 대리의 차림을 확인하니 입고 있는 맨투맨이 부끄러워진다.
“급하게 요청드렸는데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궁금해서요. 보내주신 메일 읽어 보니까 제 방송 잘 알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네.”
묵은지 대리의 대답을 끝으로 잠시 대화가 끊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눈만 껌뻑이며 살피니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묵은지 대리는 핼쑥하다 못해 광대 아래에 그늘이 질 만큼 볼이 들어가 있었다.
손목과 손가락 또한 앙상하다.
이렇게 마른 사람은 처음 보는지라 어디 아픈 건 아닌가 싶다.
“유튜버가 MCN과 계약을 맺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묵은지 대리가 다소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하나는 MCN을 통해서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
이메일로도 설명해 준 내용이다.
그리고 주지승이 토마토 코퍼레이션과 계약한 이유이기도 하다.
“둘은 유튜버 개인이 처리하기 힘든 일을 처리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홍당무는 두 번째 이유에서 다른 업체와 차별됩니다.”
“개인이 처리하기 힘든 일이요?”
“잡다한 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잘 이해가 안 되어 고개를 살짝 기울이니 묵은지 대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백반토론 영상에 달린 악플 같은 경우 법률대리인을 통해서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
예시 하나로 잡다한 일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행사도 대행해 드립니다. 반찬가게가 팬미팅을 준비한다면 기획지원팀에서 모든 일을 대리해 드립니다. 행사장 섭외, 사회자 지원, 홍보, 참가자 선정 및 명단 정리, 식순, 다과 등 반찬용 씨는 확인만 하시면 됩니다.”
대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작은 학과에서 여는 행사에도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온갖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팬미팅 같은 행사를 혼자 진행하긴 무리다.
“앞으로 반찬용 씨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게 될 겁니다.”
묵은지 대리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억양에 높낮이가 거의 없고 목소리도 작아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은 없지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유명해질수록 반찬용 씨를 찾는 곳도 많아지고, 조건이 좋더라도 일정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겁니다. 지금 이상으로 시간이 부족해집니다.”
“…….”
“그때가 되면 기획, 편집은 물론이고 반찬용 씨가 혼자 맡아 해왔던 모든 일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그런 일에 쏟을 체력과 시간을 온전히 카메라 앞으로 옮겨야 합니다.”
나는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차지찬은 ‘짐꾼’이 성장함에 따라 채널 운영을 혼자서는 벅차다고 판단했다.
편집이야 내가 맡아주었지만 채널을 운영하는 데에는 그 외 여러 일이 따랐다.
수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법인을 설립하게 되었고 부족한 콘텐츠를 감당하고자 직원을 들이기도 했다.
차지찬 스스로 하던 콘텐츠 기획은 안상규 PD에게 맡겼고, 나 혼자 책임지던 편집은 아예 팀을 꾸려 처리했다.
헬스장을 차리고 운동 기구를 판매하는 온라인샵까지 여니 세무, 노무, 법무 등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반찬용 씨가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내 역할이 늘어나는 만큼 방송 출연 외 다른 일을 신경 쓸 수 없게 되고.
직접 회사를 차리지 않는 한 비용을 들여 홍당무에게 잡무를 위임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홍당무가 제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알겠어요. 반대는요?”
내가 얼마나 지급을 해야 하냐는 질문을 돌려서 했다.
“홍당무의 표준 계약 비율은 5 대 5입니다. 반찬용 씨가 외부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의 50%를 홍당무에서 가져가게 됩니다.”
“외부 활동이라면 홍당무를 통해 받은 일이죠?”
“그렇습니다.”
50%나 줘야 한다고 하길래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다.
현재 구독자 60만 명을 확보한 반야식경 채널도 6 대 4 계약이다.
지금 내 방송 활동에서 홍당무가 가져갈 돈은 없고.
홍당무를 통해 얻은 예능 출연 기회나 PPL 광고, 굿즈 판매 수익금만 나누게 되니, 홍당무와 계약한다고 해서 수익이 지금보다 줄어들 여지는 없다.
오히려 홍당무가 물어다 줄 일도 있으니 돈을 더 벌 수도 있다.
게다가 업계 최대 규모라는 토마토 코퍼레이션조차 법무나 세무 관련 일을 대리해 주진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로서는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럼.”
계약은 어떻게 진행해야 좋은지 물어보려고 입을 뗀 순간 묵은지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지금은 좋은 시기가 아닙니다.”
“네?”
생각지 못한 말이기도 하고 묵은지 대리의 얼굴이 너무나 담담해서 더욱 놀랐다.
“홍당무는 반찬가게와 빨리 계약하고 싶어합니다. 아직 구독자 15만 명의 중소 채널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유튜버 중에 구독자를 10만 명 모은 사람은 약 0.4%에 지나지 않다.
그 대단한 성과가 사회에서는 다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승자독식에 가까운 세계란 뜻이다.
그리고 홍당무 또한 지금의 나를 상위 0.4% 유튜버가 아니라 그들이 계약할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사람으로 보고 있단 말이다.
“더 커질 테니 기다리란 말씀이세요?”
“네. 현재로서는 반찬가게에 표준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드물 겁니다. 하지만 반찬용 씨가 이대로 조금 더 성장하면 그땐 업체에서 먼저 계약 비율을 조절하려고 들 겁니다. 홍당무든 토마토든.”
옳은 말이다.
MCN 업체에서 제공해 주는 편의가 지금 당장 필요하진 않다.
지금 상태로 계약을 해봤자 주지승이 일러준 대로 좋은 기회를 받긴 힘들다.
운 좋게 대형 프로젝트에 합류해서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난 내 콘텐츠를 소화하기에도 벅차다.
진행 중인 콘텐츠의 반응도 상당하다.
‘언제까지 뚱할 거야?’, ‘백반토론’,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모두 실시간 인기 탭에서도 상위권으로 진입했었다.
명확한 답이 있는데 굳이 다른 길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러니 MCN 업체와 계약할 이유가 현재로서는 없다.
홍당무가 제시한 지원도 지금 당장이 아니라 ‘반찬가게’가 성장한 이후에나 필요하다.
그러니 계약을 하더라도 내실을 다진 후 좋은 조건을 제시받는 편이 낫다.
묵은지 대리를 보며 물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그런데요.”
“네.”
“보통 이렇게까지 설명해 주시나요?”
묵은지 대리가 날 빤히 보더니 눈을 한 번 깜빡였다.
“홍당무 입장에선 계약을 미루기보단 지금 하는 게 이득이잖아요. 이렇게 자세히 말씀해 주실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있습니다.”
왜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냐고 물었는데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하니 묵은지 대리가 입을 열었다.
“이유가 궁금하십니까?”
질문했다고 반드시 답할 의무는 없긴 하지만 여러모로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네. 궁금해요.”
묵은지 대리가 잔을 들었다가 금방 내려놓았다. 입술만 축인 듯 커피는 처음 주문한 그대로다.
“사업 파트너가 될 사람과는 신뢰부터 구축해야 합니다.”
단 한 마디로 묵은지 대리가 일을 어떻게 하는지 단박에 이해되었다.
MCN에 관해서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던 내가 묵은지 대리의 메일 한 통으로 관심이 생겼다.
내가 홍당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지, 홍당무가 다른 MCN 업체와 어떻게 차별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내 채널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으니 믿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다소 손해가 생기더라도 신뢰 구축이 우선이라고 판단하는 사람 같다.
“제가 다른 곳에 갈 수도 있잖아요.”
“토마토 말씀이십니까?”
“그럴 수도 있죠.”
“토마토와 홍당무는 서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반찬용 씨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토마토가 더 좋은 선택지일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내가 적극적인 홍보와 콜라보레이션을 원한다면 방송국과 언론사를 끼고 있으며 대형 크리에이터를 다수 확보한 토마토와 함께하는 게 낫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어떤 담당자도 저보다 반찬용 씨를 잘 케어할 순 없습니다.”
깡 마른 몸에 그늘진 얼굴에서 어떻게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 또한 그리 생각한다.
잠깐 만났을 뿐이지만 이 사람은 사람을 상대하는 요령이 없을 뿐 이성적이면서도 정직하다.
“많은 크리에이터가 MCN과 계약하고 후회합니다.”
묵은지 대리의 말에 주지승이 한 말이 떠올랐다.
“소외받는 사람도 생긴다고 들었어요.”
“그렇습니다. 기회와 인력은 한정적이니 업체는 소위 인기몰이를 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소외받는 사람이 생깁니다.”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설명해 준다.
“계약 후 크리에이터가 잘 되더라도 문제는 발생합니다.”
“어떤 문제요?”
“표준 비율이 아쉬워지게 됩니다.”
“아.”
“구독자 10만 명일 땐 5 대 5 계약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계약했지만, 100만 명이 되었을 때는 5 대 5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지승도 비슷한 말을 했다.
“같은 5 대 5 계약이라도 10만 명일 때 1,000만 원을 나누게 된다면 100만 명일 때는 1억 원을 나누게 됩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MCN이나 매니지먼트가 해주는 일은 똑같은데 예전에는 천만 원을 주면 되던 게 1억 원으로 늘어나면 나라도 아까워질 것 같다.
설령 처음부터 그런 계약임을 알고 체결했더라도 사람인 이상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은 다른 법이다.
“그렇게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면 재계약을 망설이게 됩니다. 비율을 높여 드리면 만족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아닌 분도 계십니다.”
자기가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당장 높아진 비율도 만족스럽지 않을 거다.
1~2년 뒤에는 더 좋은 비율로 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홍당무는 기껏 키운 100만 유튜버를 잃게 되고, 저는 열심히 관리했음에도 담당 유튜버를 만족시키지 못한 무능한 사람이 됩니다.”
이 사람은 좀 더 앞을 보고 일한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서 속이고 가리는 것 없이 올곧은 시선으로 앞을 얘기한다.
“당장의 성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묵은지가 말을 이었다.
“15만 구독자 크리에이터를 데려오는 것보다는 100만 유튜버에게 도장 받아가는 게 제 고과에 좋습니다.”
이건 또 신박한 말이다.
지금 당장 계약하면 기업에는 이로울 수 있지만, 나와 묵은지에게는 그리 좋은 일이 아니란 말이다.
확실히 묵은지 본인의 성과를 생각하면 15만 유튜버보다는 100만 유튜버를 데려가는 게 이득이다.
대체 어디까지 솔직하려는지 감이 안 잡힌다.
“놀랐어요.”
괜한 수작 부리지 않고 이처럼 담백하게 다가온 사람을 적당히 상대할 순 없다.
“제가 원하는 걸 전부 알고 계시더라고요. 처음에는 관심 없었는데 괜찮겠다 싶어졌어요.”
“지금은 안 됩니다.”
묵은지 대리가 단호히 말했다.
그 모습이 이젠 웃기기까지 하다.
“그쵸. 대리님 말씀대로 좀 더 성장한 뒤에 하는 게 좋겠죠.”
묵은지 대리는 알면 됐다는 듯 또 무심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런데 정말 궁금해요. 사실 제가 알려진 게 최근이잖아요. 저랑 반찬가게에 대해서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
“원래 그렇게 조사를 철저히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혹시 원래 제 방송을 보셨던 거예요?”
“예전부터 시청해 왔습니다.”
“그럼 묵은지란 닉네임이.”
“맞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였다.
“정말요? 그 묵은지 님이세요? 첫 방송에 들어오셨던?”
“네.”
“와. 팬하고 실제로 만난 적 처음이에요. 홍당무 같은 대기업에서 일하시는 분이셨구나. 반가워요.”
악수라도 하고 싶어서 일어나 손을 내미니 묵은지 대리가 내 손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팬 아닙니다.”
어디 가서 말로는 안 지는데 당황해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하하. 에이 농담도. 방금 제 방송 처음부터 보셨다고 하셨잖아요.”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는 방송을 찾았을 뿐입니다.”
대답이 너무나 차가워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제 방송 좋아하시니까 이런저런 얘기도 해주신 거 아니에요? 채널 회원도 계속 해주셨고. 이번 달에 17개월이었잖아요. 반찬가게 최초로.”
“MCN의 도움을 받아 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으신 분들 예외지만, 계약과 관련된 내용은 다른 유튜버에게도 똑같이 설명 드립니다. 반찬용 씨라서 더 하지 않았습니다.”
구독자를 처음 만난 반가움을 누리기도 전에 얻어 맞았다.
상대 상황에 맞추어 제시할 뿐, 누구라고 더 좋은 조건을 말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부끄러워서 어색하고 웃으니 묵은지 대리가 입을 열었다.
“제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여전히 무표정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다.
“네.”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먹방 콘텐츠를 이어가시는데, 이유가 따로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