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29화 (29/120)

치팅데이 29화

7. 묵은지(3)

“당장 MCN의 필요성을 느끼진 못해서 채널 성장에 도움받을 수 있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계속 이야기 나누다가 적절한 시기에 계약서 받아오겠습니다.”

묵은지 대리가 반찬용과의 미팅 내용을 보고했다.

홍당무 엔터테인먼트 기획지원팀의 오형만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묵은지는 홍당무에 입사한 이래 굵직한 계약을 여럿 체결해 왔었다.

팀에서 겉도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반대로 크리에이터와의 신뢰 구축은 잘하여 고객 만족도가 높은 사원이었다.

계약서를 받아오겠다는 말까지 했으니 큰 걱정은 없었다.

“그래. 수고했어. 이번에도 기대해도 되지?”

“네.”

자리로 돌아온 묵은지는 곧장 관리 중인 크리에이터의 최근 영상을 훑었다.

조회 수를 비롯한 주요 항목을 정리한 뒤에는 인원 별로 일정을 확인했다.

매일 아침 반복하는 일이라 기계적으로 처리하였지만 단 하루, 단 한 명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크리에이터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파악해 둬야만 담당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덕분에 묵은지는 담당 크리에이터가 어떤 말을 꺼내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크리에이터들은 묵은지를 신뢰할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무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늘 뭐 먹을까?”

오형만 팀장이 기지개를 켜며 팀원들에게 물었다.

“뜨끈한 굴국밥 어떠세요?”

팀 내 분위기를 주도하는 김서진 대리가 물었다.

“좋지. 먹을 사람들 같이 가자고.”

팀장이 일어서자 대부분 함께 자리를 비웠다.

“대리님은 따로 드세요?”

팀원 박형욱이 묵은지 대리에게 물었다.

“네.”

“요 앞에 쌀국수집 새로 생겼던데 같이 안 가실래요?”

“미안합니다.”

점심 식사를 권했던 박형욱이 무안함을 감추려 미소 짓고는 사무실을 벗어났다.

묵은지 대리는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묵묵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서랍에서 팩 음료 하나를 꺼냈다.

그녀의 하루 식사였다.

이마저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여러 번 쓰러지며 업무에 차질을 겪은 터라 억지로 먹기 시작했다.

오직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강박적인 워커홀릭이자 거식증 환자인 그녀는 매일 본인을 한계로 몰아붙였다.

취업 준비를 하며 겪은 스트레스가 그 시작이었다.

6년 전 26살이었던 묵은지는 책임감이 강하고 교우관계도 원만한 취업준비생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움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힘으로 대학을 졸업한 강한 사람이었다.

동기들에 비해 졸업이 다소 늦었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열심히 살면 미래가 있다고 믿으며 매일 자기소개서를 썼고 직접 취업 스터디 그룹을 꾸려 정보를 공유했으며 자격증, 인적성, 공인 영어 시험 등도 빠짐없이 준비했다.

그러나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여유가 남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속에 작은 불안이 싹텄다.

스터디 그룹 초기 구성원 중 남은 사람은 묵은지뿐이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마저 최종 합격을 알리게 되니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은지야, 엄마가 이번 달에 아파서 일을 못 나갔어. 미안해.’

‘괜찮다니까. 나 알바 하잖아. 병원은 갔어?’

‘좀 누워 있으면 돼.’

‘또 그런다. 병원비 그거 얼마나 한다고. 돈 부칠 테니 꼭 다녀와.’

그러는 와중에 지갑은 항상 비어 있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하루는 어머니께, 또 하루는 동생에게 돈을 부쳐야 했다.

그 즈음 라면과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잦아졌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먹어도 허기지는 일이 잦아졌고 먹는 양은 자꾸만 늘어갔다.1)

라면 하나나 둘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을 무렵에도 그녀는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날은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오랜만에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고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왔다. 마침 빈자리도 있었다.

면접관이 건넨 질문은 모두 예상 문제에 포함되어 있었고 묵은지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내심 뿌듯해하며 퇴실하던 순간, 면접관이 작게 꺼낸 말이 유일한 오점이었다.

‘난 좀 별론데?’

당시에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조금씩 체감할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길을 걷다 보면 일부러 어깨를 부딪칠 듯이 다가오는 사람이 늘었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이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마주 보고 걸으면 그녀 혼자 몸을 피하는 일이 잦아졌다.

거리의 사람들은 마치 묵은지가 당연히 길을 피해야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옷을 사러 가서 묘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사이즈가 있냐고 물으면 직원은 확인도 하지 않고 없다고 답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아무도 옆에 앉으려 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말이나 행동보다는 조롱과 무시, 멸시 어린 눈빛이 그녀를 괴롭혔다.

이전에는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단지 살이 좀 쪘을 뿐인데 사람들은 묵은지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다. 피하거나 무시 혹은 비웃었다.

생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차별 속에서 묵은지는 점차 우울해졌다.

밝고 기운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게 되었다.

‘너 왜 이렇게 쪘어?’

‘몰라 보겠다.’

‘많이 힘들어?’

친구들조차 만나기 부담스러워졌다.

‘살 좀 빼는 게 좋지 않아? 요샌 자기 관리도 스펙이야. 게을러 보이잖아.’

그 와중에 취업해서 스터디를 나간 사람이 남긴 말은 묵은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거늘 게을러 보인다는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묵은지는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심한 우울증과 섭식장애를 앓았다.

본인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해서, 본인이 아픈 줄도 모르고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했던 예전 몸무게로 돌아왔을 무렵 국내 최대 플랫폼 업체의 자회사인 홍당무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토록 바라던 대기업에 합격했고 어머니는 울면서 기뻐했지만 묵은지는 웃지 않았다.

잠시 안도할 뿐이었다.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도태될 거라는 압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묵은지는 잠도 줄여가며 회사 업무에 집중했다.

성과도 냈다.

동기 중에선 가장 빨리 대리 직급을 달았다.

그 즈음 조금씩 줄어가던 식사량은 물 외에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데 이르렀다.

쓰러지는 일이 빈번했다.

의사로부터 경고를 받았지만 묵은지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몸 관리라니.

도태될 걱정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속 편한 일이라고 치부했다.

그렇게 작은 종이팩에 든 유동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저녁에는 윗몸 일으키기를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반복했다.

앙상해진 등에는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처 위에 상처가 덧나 아물 새도 없었지만 묵은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윗몸 일으키기를 반복했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가난도 취업난도 멸시도 아니었다.

아파도 아파할 수 없는 환경.

아프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고독.

그 모든 시련마저 이겨낼 수 있었던 강인한 책임감이 그녀의 등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

스크롤을 내리던 묵은지의 눈에 반찬가게가 들어왔다.

12월 한 달 동안 일일 평균 조회 수가 20만을 넘겼다.

11월에 비해 무려 18만 회 이상 늘었으니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럼요. 먹기 위해 사는데.’

묵은지 대리는 어제 미팅에서 반찬용이 한 대답을 떠올렸다.

살기 위해 굶는 자신과 달리 먹기 위해 산다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화가 나기도 했다.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그에게 짜증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가 당뇨병에 걸렸단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역시 음식을 먹는 행위가 잘못되었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밥 한 끼에 웃는 그를 자꾸만 찾게 되었다.

* * *

매달 3일은 유튜버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다.

바로 이전 달의 예상 수입이 확정되어 지급 페이지에 표기되기 때문이다.

반찬가게 유튜브 스튜디오에 접속해서 곧장 지급 페이지를 확인한 순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US$ 13,711.41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 아니란 확신이 드니 나도 모르게 눈과 입이 벌어졌다.

“13,000달러?”

소수를 떼고 대충 계산하니 17,229,516원이 나왔다.

물론 실제 지급이 될 때는 무효 활동으로 인한 차감 내역에 따라 금액 변동이 생기고 환전 수수료도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수익에 큰 차이는 없다.

워낙 조회 수가 높게 나와서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1,700만 원이라니.

찌릿찌릿한 감각이 허리 부근에서 시작돼 전신으로 퍼진다.

“소, 소고기.”

이번 치팅데이에는 소고기를 먹어야만 한다.

“……게?”

아니면 저번에 차지찬이 사 주었던 그런 식당을 찾아볼까. 겨울이니까 방어회를 먹을까.

그동안 비싸서 못 먹은 음식들이 아른거리는 와중에 스마트폰이 울렸다.

백우진이다.

내 채널에서 최초로 100만 조회 수를 기록하게 해준 은인 중의 은인 백우진이다.

“우진아!”

-어? 어?

“이 예쁜 거. 내가 진짜 너 사랑하는 거 알지?”

-모를래.

“그럼 지금부터 알아. 우우움 쪽!”

-악! 소름! 무슨 짓이야!

“토요일에 시간 돼? 내가 한 턱 낼게. 진짜.”

-무슨 일 있어? 아, 오늘 3일이지.

“나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 맛있는 거 먹자.”

-그래. 형 잘 됐다니까 나도 좋네. 이번 주 주제 뭘로 할까?

“아.”

반응이 묘하게 차분하다.

원체 돈을 잘 버는 녀석이라 감흥이 크지 않은 모양이다.

“난 다 괜찮아. 이길 수 있어.”

-흐.

백우진이 헛웃음 지었다.

이제 보니 저번 토론에서 진 걸 여태 마음에 두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 전 반응이 미적지근했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럼 내가 정해서 나중에 알려줄게.

“그래. 그래.”

이렇게 진심으로 나와줄수록 오히려 좋다.

이기든 지든 중요한 건 조회 수다.

백우진이 어떤 논리를 준비해 오든 조회 수만 뽑을 수 있다면 아무 상관없다.

“하.”

백우진과 통화를 마치고 차지찬과 주지승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토요일에 맛있는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전하니 두 사람 모두 축하해 주었다.

“…….”

그러고 나서 뭘 하지 고민하니 딱히 생각나는 일이 없다.

정말 말도 안 되게 큰 수입을 얻었건만 막상 어디에 써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거라면 당연히 집인데, 집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자동차도 애매하다.

핸드폰도 고작 3년밖에 안 되었고.

컴퓨터는 잘만 돌아간다.

마이크랑 조명은 바꾸면 좋겠다 싶고 어머니께 용돈 드리는 정도 외에 딱히 생각나는 일이 없다.

역시 사람이 돈을 버는 이유는 소중한 사람과 맛있는 밥 한 끼 먹기 위해서다.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용돈에 놀라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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