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30화
8. 밥이 좋은 이유(1)
수요일.
‘언제까지 뚱할 거야?’ 라이브 방송 날이다.
오전에 편집을 마치고 오후 4시에 맞춰 짐꾼 헬스 클럽을 찾았다.
안상규 PD가 날 반겨 주었다.
“찬용 씨.”
“PD님. 잘 지내셨어요?”
“어유. 저야 항상 못 지내죠.”
함께 웃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하고 편집에 치이는 삶이 편할 리 없다.
“요새 너무 잘 나가시던데요? 백반토론이랑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보셨어요?”
“그럼요. 저 찬용 씨 팬이잖아요.”
“사인 해드릴까요?”
“하하하!”
안상규 PD가 크게 웃었다.
묵은지 대리에게 악수를 요청했을 때도 이런 반응을 예상했었는데.
다음에 보면 악수 말고 사인으로 얘기해 봐야겠다.
“사인은 괜찮은데 여기서도 잘 부탁드릴게요.”
“여기서는 말을 못 하잖아요. 그럴 정신이 없어요.”
옆에서 차지찬이 ‘좋아!’, ‘열정!’, ‘뽜예!’, ‘컴온!’ 등 온갖 감탄사로 귀가 떨어지게 소리치는 와중에 무거운 몸뚱이를 움직이다 보니 정신이 없다.
“그걸로 충분해요. 오히려 말을 잘하면 재미없어요.”
힘들어야 재밌다니.
개그콘서트에서 했던 마빡이란 코너가 생각난다.
그때는 거실에서 배꼽 잡고 웃었는데 내가 그 처지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여.”
차지찬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저번 달 쏠쏠했다며. 얼마나 들어와?”
“에이.”
손사레를 치니 차지찬이 다가와 싱글싱글 웃으며 부추겼다.
“왜? 말해 봐. 돈 벌어서 뭐 하게. 자랑이라도 해야지.”
“주량, 주먹, 돈 자랑 하지 말랬어.”
구체적으로 얼마 벌었다고 자랑하고 다닐 만큼 생각이 없진 않다.
차지찬이나 백우진만 해도 큰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온갖 인간들이 치근덕거렸고 그 광경을 직접 보았다.
보험이나 자동차 구매 권유는 양반이다.
몇 년씩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연락해서 사업이 힘들다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 투자해 달라는 사람도 있고.
유튜브 어떻게 하냐며 영상 업로드하는 법을 묻는 이도 있다.
그런 것조차 스스로 찾아보지 않으면서 쉽게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머저리들을 상대하고 싶진 않다.
“야, 너보다 많이 버는 사람한테는 해도 돼. 자랑하고 싶잖아. 딴 데 가서 하지 말고 나한테 해.”
“그럴까?”
하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을 꺼내 슬쩍 보여주니 차지찬이 몸을 뒤로 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이야. 반찬! 성공했네!”
“대박이지? 나 진짜 이런 금액 처음 봐.”
“크. 멋있네. 이 기세 이어가야지.”
“당연하지. 언제 또 이런 날이 올지 모르는데.”
“그럼. 그럼.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한 번 반짝이고 잊히는 사람 정말 많아. 열심히 해도 그렇게 되니까 기합 빡 넣어.”
“맞지. 맞지. 열심히 해야지.”
“그럼 오늘부터 세트 하나 늘리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정색하고 말하니 곁에 있던 안상규 PD가 웃음을 터뜨렸다.
“슬슬 강도 높일 때 됐어. 점진적 과부하를 줘야 근육이 늘어.”
차지찬이 또 요사스러운 혀를 놀린다.
“나 지금도 운동하면 다음날 알 배겨서 못 움직여.”
“원래 그래.”
“운동할 때마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당연하지.”
받아들일 수 없다.
“들어 봐? 내가 이제 스쿼트를 하루에 200개 할 수 있어.”
처음에는 100개만 해도 요단강이 아른아른거렸는데 어찌저찌 200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알이 배겨 고통받는 건 여전하다.
“얼마나 좋아. 100개만 해도 죽을 것 같던 놈이 이젠 200개나 하네.”
“겨우겨우 노력해서 200개에 익숙해졌다고 쳐. 그럼 다음엔 300개를 해야 한다고?”
한꺼번에 100개나 늘리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실제로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0개씩 늘리면서 지금에 도달했다.
“그렇지.”
“300개에 익숙해지면?”
“400개 하면 되지.”
“말이 안 되잖아! 어디까지 가는데! 하루종일 앉았다 일어났다만 하라고?”
“크. 역시 반찬. 똑똑하네. 그래. 횟수만 늘리면 운동시간이 너무 늘잖아. 그래서 중량을 치는 거야.”
“……저거 들라고?”
헬스장 한 편에 놓인 바벨을 가리켰다.
“처음엔 봉만 들고 해도 돼. 그럼 300개로 안 늘리고 원래 하던 200개만 해도 돼. 어쩔래? 300개 할래? 아니면 봉 들래?”
“잠깐.”
이대로 가면 차지찬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에 말려들 것 같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좋아. 형 말대로 200개 하는 대신 봉을 들었어.”
“응.”
“거기에 익숙해지면?”
“그럼 이제 원판 끼우거나 숫자를 늘리면 되지.”
“똑같잖아! 계속 무게를 올리는 게 말이 돼? 만약에 내가 100㎏를 들었어. 운동을 해도 어느 순간부터는 힘이 안 세질 거 아니야.”
“그치. 너도 이제 우리 입장을 이해하는구나? 엄청 답답하다니까?”
“뭔 소리야?”
“더 세지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답답하다고. 사람 몸에 한계가 있으니까.”
이쯤되니 대체 어디까지 강해지고 싶은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그럼 그때는 어떻게 하는데? 무게를 계속 늘릴 순 없잖아. 세트도 늘릴 수 없고.”
“거기까지 안 가도 돼.”
차지찬이 빙그레 웃었다.
“네가 선수냐? 대회 나가게?”
“아니.”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쁘진 않네. 마지막 콘텐츠로 대회 나가서 입상하는 거.”
“절대 안 하니까 꿈도 꾸지 마.”
“왜? 도전해 봐.”
“형 다이어트 식단 어떤지 내가 뻔히 아는데 그짓을 하라고? 지금도 미칠 것 같은데?”
지금 내가 먹는 밥상은 건강해지는 식단이다.
필요한 영양성분을 충분히 먹는 대신, 비정제 음식을 먹어서 몸이 정상화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차치찬이나 보디빌더들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 하는 식단은 건강을 갉아먹는 행위다.
탄수화물과 지방 섭취를 극단적으로 줄여 몸에 체지방을 없애는.
한마디로 기아 상태가 되는 방법이다.
차지찬도 주지승도 예쁘고 멋있을지언정 건강에는 절대 좋지 못한 행위라고 못 박은 적 있다.
“대회 얘기는 나중에 하고.”
차지찬이 내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그러니까 네가 운동을 시작한 이유만 생각해. 보디빌더 같은 몸 만들려고 시작한 거 아니잖아. 그냥 건강하게 가끔 먹고 싶은 거 먹을 수 있을 정도만 되면 되잖아.”
“응.”
“그럼 그 정도에서 멈추면 돼. 남들보다 근육 많아질 필요도 체지방 줄일 필요도 없잖아. 네 기준은 네가 정하는 거야.”
한계에 도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내 목표는 내가 세우는 거니까.
고개를 돌려 차지찬을 보았다.
이 사람은 항상 자신감에 차 있다.
흔들림 하나 없는 눈으로 요사스러운 혀를 놀리나 가끔 이렇게 속아주고 싶은 말도 한다.
“알았어. 근데.”
“또 뭐.”
“이해가 되고 납득을 해야 움직일 수 있어서 그래.”
“그래. 그래.”
“형이 저번에 그랬잖아. 운동하면 거기에 익숙해져서 소모 칼로리가 줄어든다고.”
“그래. 잘 기억하네.”
“그래서 점진적으로 운동량을 늘려야 운동 효과를 본다고 했고.”
“알면서 왜 이리 투정이야.”
“지식으로는 알지. 근데 납득이 안 된다니까?”
“해 봐.”
“예를 들어서 도중에 운동량을 안 늘려. 더 이상은 시간이 부족하든 내 몸에 한계가 왔든 아무튼 못 하게 돼.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똑같은 강도로 운동해도 효과가 없다고 했잖아.”
매일 10㎞를 뛰어다니는 탄자니아의 하자족 사람들의 하루 소비 칼로리량이 하루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서구인의 하루 소비 칼로리량과 비슷하다고 했었다.
그러면 운동을 하는 게 손해 아닌가 싶다.
“그건 네가 지금도 운동을 하는 이유를 칼로리 소모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야.”
차지찬이 물을 마셨다.
“운동은 칼로리를 소모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근육을 늘리는 게 목적이야.”
근육이 많아야 혈당이 조절되고.
혈당이 조절되어야 인슐린이 적게 분비되어 살이 찌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그건 저번에 들어서 알아. 근데 운동을 멈추면 안 되잖아.”
“안 되지.”
“그럼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단 소리야?”
“응.”
기가 막혀서 입을 벌리고 있으니 차지찬이 피식 웃었다.
“좋아. 좋아. 어디서 불만이 생기는지 알겠다. 기껏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만들었는데, 그 효과를 못 누리면 억울하다는 거잖아.”
“억울하지.”
“운동이 너무 힘든데 평생 해야 한다고 하니까 너무 막막하고.”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너 수능 점수 얼마였어?”
“420이었나?”
“지금 보면 그 점수 나오냐?”
“절대 안 나오지.”
“왜 안 나와?”
“그게 언제 일인데. 10년도 넘었는데 어떻게 기억해.”
“그거야. 운동도 열심히 하면 효과가 생겨. 근데 안 하면 사라지는 거야. 네가 공부했던 거 까먹듯이.”
“…….”
“사람이 하는 일은 원래 다 그래. 그러니까 네가 평생 운동해야 한다는 걸 억울해하면 안 된다고.”
절망이다.
당뇨병 판정을 받았던 날도 이렇게까지 절망적이진 않았다.
“네가 그런 생각 가지는 이유가 힘들어서 그래. 운동이 너무 싫으니까.”
“좋아하고 싶다고 좋아져?”
“힘들진 않게 되지. 말했잖아. 같은 강도로 운동하면 조금씩 익숙해진다고.”
“강도 높이라며.”
“네가 만족할 수준까지만 올리면 돼. 그리고 지금은 아직 멀었고. 그때가 되면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만 하면 몸 상태가 유지 돼. 운동하는 게 힘들지 않게 된다고.”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 몸에 있는 세포는 보통 30일 정도 산대. 1년 정도면 몸에 있는 세포는 거의 다 새 걸로 바뀌고.”1)
“그런데?”
“1년만 힘내라고. 그럼 진짜 새로 태어나는 거야. 치팅데이만 기다리는 반찬용이 아니라, 2~3일에 한 번은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반찬용이 되는 거라니까?”
“…….”
“해야겠어. 말아야겠어.”
“해야 해.”
“그럼 봉을 들어야겠어. 말아야겠어.”
“들어야 해.”
“가져 와.”
“응.”
차지찬의 말에 용기를 내 바벨이 놓인 곳으로 향했다.
대체 언제까지 보상 없이 고생해야 하나 싶었는데 1년이라는 목표가 생기니 의욕이 난다.
그래. 고작 1년이면 해볼 만하다.
138㎏까지 찌는 데 5년이 걸렸으니 1년 정도야 당연히 투자해야겠지.
그런 생각으로 바벨을 든 순간 후회가 물밀 듯이 들이닥쳤다.
“형 이거 잘못된 거 같은데?”
“뭐가?”
“너무 무거워.”
이런 걸 짊어지고 스쿼트를 할 수 있을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