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32화
8. 밥이 좋은 이유(3)
목요일.
차지찬과 운동만 하면 몸살이 난다. 방송하는 날은 유독 많은 걸 요구해서 일어날 힘조차 없다.
가만 누워서 눈만 껌뻑이는데 백우진에게 전화가 왔다.
“어.”
-형, 나 들어간다.
“어? 벌써 왔어?”
오후 1시. 백반토론은 4시부터 하는데 빨리도 왔다.
-응. 시간 좀 남길래 점심 같이 먹으려고 왔지.
“나 지금 못 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현관 비밀번호가 눌리더니 백우진이 들어왔다.
“배달해 먹자. 뭐 먹을래?”
“진짜 왔네. 어…….”
그러고 보니 배달을 끊은 지 오래되었다.
어플리케이션을 열어 목록을 뒤지니 가끔 찾았던 미역국집이 눈에 띄었다.
“미역국 어때?”
“암 거나 괜찮아. 어우 추워.”
날도 추우니 따뜻한 국물이 괜찮겠다 싶어 미역국을 배달 주문했다.
멍하니 누워서 TV를 보고 있자니 벨소리가 울려 백우진이 미역국을 받아 왔다.
상을 펴고 있는데 백우진이 19,000원이나 나왔다며 기겁을 했다.
확인해 보니 일인분에 7,000원이고 배달료가 5,000원이다.
“뭐가 이렇게 비싸?”
“배달시키면 그 정도 하지 않나?”
당뇨병 판정을 받기 전에는 배달 어플을 자주 이용했는데, 한 번 주문할 때마다 2만 원은 우습게 나왔다.
“진짜 바깥음식 먹으면 돈 너무 많이 들어.”
“혼자 살면 해 먹는 게 손해 같더라.”
“그래?”
“시금치 사서 데치면 한무더기야. 다 먹기 전에 상해서 버리게 되더라고. 아까워 죽겠어.”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혼자 살면 조미료에 식재료에 이것저것 다 사게 되는데, 결국 다 쓰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
또 밥상 차리고 치우는 시간을 생각하면 시간이 부족하다.
아침 정리하면 점심 차려야 하고, 점심 치우면 저녁 차려야 하니 사 먹는 게 오히려 좋지 않나 싶다.
“직접 해먹으면 그런 점이 불편하구나.”
“응. 배달 음식 먹을 때가 좋았지. 내가 한 맛없는 거 먹는 거 보다야.”
“예전엔 다 시켜 먹었어?”
“응.”
“돈 엄청 썼겠다.”
“그런가?”
“한 번 시키면 이정도 나와?”
“난 보통 2만 원은 넘었지.”
“하루에 몇 번 주문하는데?”
“한 번. 배달료 아끼려고 시킬 때 두 번 먹을 양으로 시켰어.”
미역국을 떠 먹으니 속이 편안해진다.
평범한 소고기 미역국이지만 기름이 적어서 맛이 깔끔하면서도 깊다. 같이 딸려오는 밑반찬도 간이 잘 되어 있어.
속이 편하면서 든든한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종종 찾는 집이다.
“히이.”
밥 먹다 말고 백우진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왜?”
“형 배달 음식으로 돈 엄청 썼다.”
“그래?”
“하루에 2만 원 들었다고 치고 365일이면 730만 원이잖아.”
“에이. 말도 안 돼. 무슨 배달 음식으로 그만큼이 나와?”
“내 계산이 틀려?”
“그치. 배달만 시키는 건 아니니까.”
“밖에서도 먹었어?”
“그럼. 작년은 진짜 한창 맛집 찾아다녔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지만, 한두 달 전만 해도 맛집탐방은 반찬가게의 주력 콘텐츠였다.
“찾아 보자.”
“뭘?”
“배달 앱에 문의 남기면 알려주지 않을까? 작년에 얼마 썼냐고.”
“그런 걸 물어서 뭐 하게?”
“궁금하니까.”
백우진이 왜 아는 게 많은지 알 것 같다. 쓸데없는 일조차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저 호기심 때문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700만 원 넘게 썼다고 하니 궁금하기도 해서 배달앱을 열어 문의를 남겼다.
* * *
다음 날 오전.
배달앱 고객센터에 문의한 글이 답변되었다.
“미친.”
메일을 열자마자 욕이 나오고 말았다.
“1,700만 원?”
작년 한 해 동안 사용한 금액이 16,943,210원이었단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금액으로만 따지면 조회 수가 미친 듯이 터져 12월 한 달 동안 번 금액과 동일하다.
“허.”
헛웃음이 나온다.
이게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맛집탐방하면서 쓴 돈은 비용처리를 해왔기에 하나하나 다 기록해 두었다.
작년에 외식하는 데 쓴 돈은 1,500만 원 정도다. 그 외 아이스크림, 자바칩 프라푸치노, 음료수처럼 달고 살았던 것들은 따로 기록하지도 않았으니.
1년 동안 식비로 3,500만 원 정도 썼다는 말이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이러니까 돈이 없지.
수입이 많은 편임에도 이상하게 돈이 모이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당뇨병 판정을 받고 억울했던 마음도 누그러들었다. 이렇게 먹었는데 멀쩡한 게 이상하다.
“허허허.”
자꾸 헛웃음이 나온다.
지금까지 별 문제의식 없이 살았건만, 돌이켜보니 내가 얼마나 경제관념이 없었고 건강에 무지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수입이 늘었으니 적당히 써도 되고 또 그래야 세금 정산할 때 비용처리도 할 수 있지만 무턱대고 쓰다간 큰돈을 모을 수 없다.
언젠가는 집도 차도 사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차려야 한다.
잠시 고민하다가 메모장과 계산기를 켰다.
수입이 커졌으니 돈 관리를 제대로 해야겠다.
“어디.”
12월 한 달 동안 벌어들인 돈을 대략 계산해 봤다.
유튜브 스튜디오에 표기된 광고 수익이 약 1,700만 원. 생방송 중에 후원받은 금액에서 수수료를 뗀 금액이 약 108만 원, 구독으로 들어온 금액이 230만 원, 편집 외주로 번 370만 원.
합치면 약 2,400만 원이다.
이렇게 많이 벌어본 적이 없어서 세금이 얼마나 나올지 정확히 예측이 안 된다.
만약 이 수입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고 볼 때 1년 수입은 대략 2억 8천만 원.
개인사업자 과세표준에 따르면 세율은 38%로 책정된다.
2억 8,000만 원 중에서 1억 원을 비용처리한다면, 나는 1억 8,000만 원의 38%인 6,840만 원에서 누진공제금 1,940만 원을 제외한 4,9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2024년 5월에는 최소 5,000만 원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세금을 낼 수 있단 말이다.
“의료보험은 얼마나 나오지?”
국민건강보험 사이트에 접속해서 1억 8,000만 원을 벌면 지역 가입자가 의료보험료를 얼마나 내야 하는지 계산했다.
“한 달에 119만 원.”
1년이면 1,428만 원이다.
국민연금은 아마 월 최대 납부액인 49만 7,700원일 테니 1년에 597만 원 정도 된다.
이 모든 것을 더하면 1년에 약 6,925만 원을 세금 및 보험, 연금으로 내야 한다.
돈을 잘 번다고 생각없이 쓰다가 세금 낼 돈이 부족해질 수도 있다.
일부를 미리 빼두는 게 좋겠다.
“대충 20% 정도면 되겠네.”
가계부에 12월 수입 2,400만 원의 20%인 480만 원을 따로 모아둘 돈으로 기록했다.
“적금 하나 넣을까.”
남은 돈 1,920만 원을 어떻게 보관할지 고민이다.
재테크는 할 줄 모르니 나로서는 은행에 넣는 게 최선인데 요즘 금리가 올랐다고 하니 나쁘지 않겠다.
“그럼.”
남은 건 생활비.
한 달에 얼마를 쓸지 정해둬야 적금을 얼마나 넣을지 정할 수 있다.
또 1년 동안 식비로 3,500만 원을 쓰는 미친짓을 반복하지 않을 거다.
“월세가 70만 원이니까.”
생활비를 가늠하기 위해 고정 지출을 정리했다.
월세 70만 원, 교통비 10만 원, 통신비 10만 원, 편집 프로그램들의 월 구독료가 14만 원 정도 된다.
옷이라든가 생필품 등을 사는 데 20만 원 정도 책정하고 혹시 모를 일을 위해 20만 원 정도를 더 추가했다.
나머지는 식비인데.
“으음.”
고민된다.
한 달 식비를 얼마나 써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12월 기준으로 보면 대강 200만 원을 썼는데 그동안 집에서 음식을 해먹지 않아서 초기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냄비, 후라이팬, 조미료, 소스 등 살 게 너무나 많았다.
“100만 원만 쓰자.”
저번 달 대비 절반을 줄이자니 마음이 아프지만 살도 빼고 돈도 아껴야 하니 참고 견뎌야 한다.
“그럼 한 달 생활비는 250만 원 정도면 되나?”
적고 보니 너무 많지 않나 싶다.
월세랑 식비 때문이다.
“……아니야. 일단 한 달 해보고 결정하자.”
월세야 당장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식비를 더 줄이는 건 심리적 저항이 너무 강하다.
* * *
저녁 6시에 방송을 켰다.
어제 백우진과 합방했을 때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1,200명이나 들어와 주었다.
백반토론 덕분이다.
└반하
└오늘 맛집탐방하는 날 아님?
└왜 집이야?
└초심 잃었네 좀 잘 된다고 방송도 막하고.
└이 아저씬 초심 좀 잃어야 해. 그래야 건강해지지
└ㅋㅋㅋㅋㅋ인정. 방송 초기처럼 먹어대면 큰일 남.
“오늘 좀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요. 나 진짜 오늘부터 돈 관리 철저하게 할 거야.”
오늘은 맛집탐방을 하는 날이다.
일주일에 하루라서 목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내 수입과 지출을 되짚어보니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다.
“그래서 맛집탐방은 다음 주부터 할 거고 오늘은 반성의 시간, 계획의 시간을 가지도록 할게요.”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올렸다.
“어제 점심에 우진이랑 미역국 시켜 먹었거든요? 19,000원 나온 거 보더니 얘가 너무 놀라는 거야. 비싸다고.”
└100만 유튜버가 19,000원에 놀란다고?
└백우진 알뜰하게 사네
└근데 솔직히 한 끼에 19,000이면 선 넘었지ㅋㅋ
└혼자도 아니고 둘인데 그 정도는 나오지 않나?
└ㅇㅇ 둘이니까 9,500원이라고 치면 요새 어딜 가도 그 정도는 함.
└어쩌다 먹는 건 괜찮아도 매끼마다 그렇게 사 먹는 건 부담되지.
“그니까. 난 배달 자주 시켰잖아요. 그래서 우진이가 대충 계산해 보더니 제가 1년 동안 배달 음식에 700만 원 정도 썼다고 하는 거예요.”
└님 드시는 거 보면 납득되는데요?
└그것밖에?
└ㄹㅇ 배달 삼겹살로 5인분 시켰으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700만 원
└중고차도 사겠닼ㅋㅋ
└설마 진짜 그 정도 쓴 거야?
시청자 반응을 보니 나만 놀랐나 보다. 다들 그럴 만하다는 눈치다.
“그래서 문의 넣었지. 잠깐만. 답변 메일 보여줄게요.”
답변 메일을 캡처해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온 거야. 게다가 나 비용 처리 하려고 영상으로 찍은 식비는 다 계산해 두거든. 그거랑 합치면 1년 동안 먹는 데 3,500만 원 썼더라?”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먹기 위해 사는 인간
└아저씨 정신 차렼ㅋㅋㅋㅋㅋㅋ
└와 세상에. 어떻게 3,500을 쓰냐? 말이 됨?
└맨날 돈 없다고 하더니 다 먹는 데 썼구만ㅋㅋㅋㅋㅋ
└엥겔 지수 폭발ㅋㅋㅋㅋㅋ
“진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딱 정했어. 한 달 생활비로 250만 원 이상 안 쓴다고.”
채팅창에 그것도 많다는 의견이 다수 올라왔다.
“알지. 근데 월세가 70만 원이라 더 못 줄여요. 6개월 뒤에 이사하든 전세를 얻든 해야 하는데 당장은 힘들어.”
월세를 너무 많이 쓴다고 혼내는 시청자도 있고.
서울 월세가 너무 비싸다고 공감하는 사람도 많다.
“아무튼 교통비, 통신비. 이건 편집할 때 쓰는 프로그램 구독료. 이건 비상금. 마지막으로 식비를 얼마로 책정할지 진짜 많이 고민했거든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큰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다.
시청자들에게 100만 원만 쓴다고 얘기했으니,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만 원만 쓰려고.”
└?
└더 먹겠단 뜻인가?
└식비를 누가 한 달에 100만 원씩 써 ㅋㅋㅋㅋㅋㅋ
└이 아저씨 아직 정신 못 차린 듯
└이 사람아, 한 달에 100만 원 쓰면 1년이면 1,200만 원인데 그걸 뭔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구냐?
└1년에 3,500만 원 쓰다가 1,200만 원만 쓰는 거면 많이 줄였넼ㅋㅋㅋㅋㅋㅋ
└빡대가맄ㅋㅋㅋㅋㅋㅋㅋㅋ
“어?”
12월에는 음식 외에 이것저것 많이 사긴 했지만 절반이나 줄였으니 식비를 크게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조차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모양이다.
“잠깐만. 내가 배달시키면 한 2만 원 나왔거든? 한 달이면 60만 원이잖아. 콘텐츠로 외식해야 하니까 40만 원 정도는 쓸 텐데?”
└내가 볼 때 이 아저씨 지금 햄버거에 뇌가 절여졌음
└배달 음식 안 먹잖아. 먹방도 일주일에 한 번이고.
└몸은 이미 안 그러고 있는데 머리가 인정 못 하는 거임ㅋㅋㅋㅋㅋ
└현실 부정 중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럴 리 없음ㅋㅋㅋㅋ
“……그러네?”
배달 음식을 안 먹은 지 꽤 되었다.
직접 요리해서 먹고, 외식도 예전처럼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하진 않는다.
“그럼 보통 다들 한 달에 식비 얼마나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