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33화 (33/120)

치팅데이 33화

8. 밥이 좋은 이유(4)

시청자들과 기나긴 토론 끝에 결국 한 달 생활비를 210만 원으로 낮췄다.

식비를 100만 원에서 60만 원으로 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정말 살을 내주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우울한 기분도 잠시.

오늘은 치팅데이다.

합법적으로 일반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기도 하고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 세 사람에게 인사하는 날이기도 하여 유명한 중식당을 예약했다.

일인분에 78,000원이나 하는 코스를 정하기까지 몇 번이고 고민을 거듭했다.

네 명이면 312,000원이니 한 끼 식사로 받아들이기 힘든 금액이지만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라 마음 크게 먹었다.

반찬가게가 급성장한 데에는 세 사람의 역할이 지대했다.

기회를 잡은 건 나지만.

유명 채널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고, 그 인지도를 바탕으로 입소문이 퍼져 선순환이 반복되는 현상은 그들의 도움 없이는 힘들었을 거다.

30만 원이 큰 돈이기는 해도 그들을 향한 고마움에 비해선 턱없이 작다.

서울역에 있는 D식당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부천에 살고 있는 주지승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어나 맞이했다.

“어떻게 형이 먼저 와?”

“그래? 지하철이 빠른가 보네.”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마포에서 사는 차지찬이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차지찬은 나와 눈인사를 하고는 곧장 주지승과 인사를 나눴다.

“형, 진짜 생각 없어? 올해 대회 같이 나가자.”

“끄흐흫. 왜 자꾸 그래?”

“형 몸이 아까우니까. 운동 그만치 했으면 대회 한번 나가볼 만하잖아.”

“아휴. 말도 마. 나 남들 앞에서 옷 못 벗어. 창피하게 어떻게 그래.”

생각해 보니 남들 앞에서 팬티만 입고 기름칠한 몸을 자랑하는 게 보통 신경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앉아서 얘기해. 형도.”

차지찬이 나와 나란히 앉고 주지승은 맞은편에 자리했다.

“반찬, 지승이 형 몸 봤어?”

“내가 지승이 형 몸을 왜 봐.”

“이야. 진짜 대퇴근이 장난이 아니야. 이 형 허벅지 진짜 예술이라니까?”

“끄흐흫.”

대회 나가긴 싫어도 칭찬은 기분 좋은 모양이다.

주지승이 민망해하면서도 특유의 끌끌 대는 웃음소리를 냈다.

“지승이 형은 운동 얼마나 했어?”

“나도 당뇨 때문에 시작했어. 7~8년 됐지?”

“오래 했네.”

“운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평범하지.”

나는 고작 5주 했는데도 힘들어 죽겠는데 몇 년씩 이어가는 사람들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요샌 루틴 어떻게 가져가?”

차지찬이 물었다.

“요샌 잘 못 해. 2분할하면서 사이에 하루씩 쉬고 있어.”

“좋은데? 2분할은 원래 휴식 가져가면서 해야 하니까.”

“넌 어떻게 하는데?”

“난 데피 키우느라 4분할로 해요.”

“거기서 더?”

“요즘 몸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대회 나가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해.”

2분할은 뭐고 4분할은 뭐고 데피는 또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멀뚱멀뚱 앉아 있으니 차지찬이 설명해 주었다.

“4분할하면 가슴, 어깨, 등, 하체로 나눠서 할 수 있거든. 하루는 가슴, 하루는 어깨 이렇게.”

“응.”

“근데 3분할로 하면 하루는 두 부위를 같이 하게 돼. 그러면 충분히 힘내기가 힘들어서 4분할로 한다고. 부위마다 집중할 수 있으니 근 선명도 높일 때 좋지.”

“응.”

이해 못 했다고 하면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할 테니 대강 이해한 척했다.

오늘 같은 날에 운동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다.

“벌써 다 모였네.”

동대문에 사는 백우진이 들어왔다.

“왔어?”

백우진이 주지승, 차지찬과 반갑게 인사하곤 주지승 옆에 앉았다.

“형님들 다 기다리는데 동생이 제일 늦게 오면 되냐?”

차지찬이 장난을 쳤다.

“그러니까. 형이 좀 늦게 오지.”

“지승이 형이 제일 먼저 왔대.”

“내가 눈치가 너무 없었나? 천천히 올걸.”

주지승이 능글맞게 농담을 받아줘서 덕분에 웃었다.

“근데 형 무리하는 거 아니야? 여기 비싸던데.”

백우진이 물었다.

“엄청 비싸. 나 오늘 여기 사면 한 달 동안 굶어야 해.”

“맞다. 찬용이 한 달 생활비 210만 원이잖아. 위험하지 않아?”

“어? 형이 어떻게 알아?”

“네 방송 챙겨 보니까. 매일 봐.”

“형…….”

가끔 채팅도 남겨줘서 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매일 볼 줄은 몰랐다.

본인 방송하면서 다른 채널 보기가 쉽지 않은데 감동이다.

“야, 여기 너보다 못 버는 사람 없어. 객기 부리지 말고 그냥 각자 사 먹어.”

차지찬이 내 부담을 줄여주려고 굳이 강하게 말했다.

“알아. 그래도 오늘은 살게. 고마워서 그래.”

“괜찮겠어?”

주지승이 물었다.

“그럼. 마음껏 먹어. 오늘 진짜 내가 한 턱 낼 거야.”

“스읍. 이거 뭐 한 번 거절했으니 체면은 차린 거 같고 잘 먹을게.”

또 한 번 다같이 웃었다.

그렇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밥 한 끼 하는 것이 삶의 낙이 아닐까.

“찾아보니까 여기 짜장면 특이하던데.”

“나도 봤어. 트러플 어쩌고였는데.”

백우진이 메뉴판을 챙기며 말하자 차지찬이 맞장구쳤다.

“여기 있다. 트러플 스테이크 블랙 누들. 이거 맛있대. 형, 나 이거 먹어도 돼?”

“아, 안 돼. 이미 다 시켰어.”

설마 추가 주문을 한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시키자. 23,000원짜리 짜장면 궁금하잖냐. 형은 어때?”

“나도. 요새 트러플이 안 들어간 음식이 없긴 한데 짜장면은 못 먹어봤어.”

“시켜야겠네. 찬용아, 괜찮지?”

차지찬이 씩 웃었다.

운동 배울 때도 그렇고 요새 차지찬이 왜 이렇게 밉상인지 모르겠다.

“그럼 하나만.”

“야, 입이 몇 갠데 하나만 시켜. 4개 해.”

“코스 시켰어. 배 불러.”

“나 엄청 많이 먹어.”

“나도.”

“나도.”

차지찬, 백우진, 주지승이 차례로 말했다.

말문이 막혀 가만있는데 점원이 들어와 에피타이저를 내놓았다.

“저희 트러플 스테이크 블랙 누들 4개 추가할게요.”

말릴 틈도 없이 백우진이 냉큼 주문을 추가했다.

“자, 잠깐만요. 하나는 빼주세요.”

“야, 그냥 먹어.”

차지찬이 말했다.

“짜장면 당 엄청 오른단 말이야. 안 돼.”

“운동하면 되지.”

“그 말에 속아서 여의도에서 집까지 걸어갔는데 또 속을까 봐?”

차지찬과 주지승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고생하는 게 그리 좋은가 보다.

“3그릇만 주세요.”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앞에 놓인 애피타이저를 보니 그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왼쪽부터 해파리냉채, 전복, 수육인데 점원이 냉채부터 차례로 먹으라고 설명해 주었다.

냉채는 상큼했지만 평범하고 전복은 말도 안 되게 부드럽다.

전복 특유의 식감이 극한으로 부드러워지면 이렇게나 포근할 수 있구나 싶다.

“맛있다.”

“전복 진짜 괜찮네.”

백우진과 차지찬이 감탄했다.

주지승은 어떻게 먹을지 궁금해서 눈치를 보니 맛있게 잘 먹고 있다.

“왜?”

“전부터 궁금했는데 요리사는 외식하면 막 분석하면서 먹어?”

“그럴 때도 있고. 근데 어지간한 건 다 잘 먹어.”

주지승이 씩 웃었다.

“요리사니까 더 깐깐한 게 아니고?”

백우진도 나와 똑같은 게 궁금한 모양이다.

“맞아. 요리하면 입맛도 약간 고급스럽지 않나?”

“전혀. 남이 해준 건 다 맛있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게 남이 해준 밥이야.”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 까다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도 아닌 모양이다.

“야, 반찬. 너 근데 왜 내 방송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우진이랑 할 때만 잘하냐?”

차지찬이 물었다. 안상규 PD도 살짝 언급했던 말이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내가 말할 힘이나 있게 냅두고 그런 말을 해.”

“그건 그래.”

이 인간은 그냥 백반 토론 재밌게 봤다고 말하면 되는 걸 굳이 이렇게 돌려 말한다.

그동안 익숙해져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니까 넘어가는데, 예전에는 오해도 많았다.

“백반 토론?”

주지승이 물었다.

“응. 찬용이 헛소리하는 게 재밌더라고? 우진이가 토론 져서 부들부들하는 것도 재밌고.”

차지찬이 과장되게 몸을 떠니 백우진이 버럭 소리쳤다.

“내가 언제 부들부들했어!”

딱 차지찬이 따라한 그대로의 모습이라 다함께 웃었다.

“아니, 진짜 저 형 너무해. 처음엔 진지하게 하자고 했거든? 근데 입만 열면 억지야.”

“아주 억지는 아닌 것 같던데. 카카오한테 투자 받은 사람이 카카오를 그렇게 비난하면 상도덕에 어긋나지.”

차지찬이 실실 웃으며 백우진을 약올렸다.

“내 생각도 그래.”

주지승마저 합류하니 백우진이 억울해하며 몸을 들썩였다.

“근데 진짜 반응 괜찮더라. 둘 다 100만 넘었지?”

차지찬이 웃음기를 빼고 말했다.

확실히 ‘물냉면 vs 비빔냉면’, ‘초콜릿 vs 사탕’은 조회 수 느는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찬용이가 그런 쪽에 잘 맞는 것 같아. 프레임 씌우고 선동하는 거.”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니 백우진이 냉큼 말을 받았다.

“형이 봐도 그치? 반찬용 진짜 더럽다니까?”

“야, 웃자고 하는 거잖아.”

“형 때문에 내 채널 구독자들도 놀린단 말이야. 진짜 노인 학대하냐고!”

백우진이 발작하는 모습이 너무 웃긴다.

차지찬과 주지승도 크게 웃었는데 방을 잡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실례합니다.”

직원이 다음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랍스터 산라 스프.

직원이 거품을 잘 섞어 먹어야 비린맛이 없어진다고 설명해 주었다.

들은 대로 잘 섞어 한 술 떠먹으니 나를 포함해 네 명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따뜻한 스프가 혀에 닿자 모든 미뢰 세포가 깨어났다.

빈틈 하나 없이 꽉 찬 맛에 더불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삼킨 후에는 속을 편안히 해주니 생긴 것과 다르게 부담스럽지도 않다.

“진짜 맛있어!”

“이건 좀 배우고 싶은데.”

백우진과 주지승이 연신 감탄했다.

“여기 괜찮네. 잘 찾았다.”

“그치?”

차지찬이 엄지를 보이곤 스프를 연신 퍼먹는다.

“맞다. 저번에 홍당무 만난다는 건 어떻게 됐어?”

주지승이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와의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어? 형 홍당무랑 계약해?”

백우진이 놀라 물었고 차지찬도 고개를 돌려 관심을 보였다.

“아직. 그쪽에서 당장은 계약하지 말쟤.”

“엉?”

“어차피 채널 더 클 거니까 우대 조건 받을 만큼 성장한 뒤에 계약하자고 하던데?”

세 명 모두 눈만 깜빡이다가 이내 다시 스프를 먹었다.

확실히 못 참을 만큼 맛있긴 하다.

“신기하네. 보통 우리 입장에서 하는 말이잖아.”

백우진이 말했다.

“속여 봤자 유튜버들끼리 정보 공유하면 알게 되고, 나중에 속은 기분 들어서 재계약 안 하면 그게 더 손해라고 하더라.”

묵은지 대리의 말을 그대로 전하니 세 명 모두 감탄했다.

“괜찮네. 홍당무면 나도 좀 아는데 누구야?”

“묵은지 대리.”

“아.”

차지찬, 주지승, 백우진이 묵은지를 아는 것처럼 반응했다.

“알아?”

“들어는 봤지. 딱딱하고 고집있고 원칙대로 움직이고. 일 잘하고.”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내가 느꼈던 첫인상과 같다.

“친해지기는 어려운데 그렇다고 나쁜 느낌은 아니래. 일을 워낙 잘해주고 채널 신경도 잘 써줘서.”

“일 잘해주는 게 어디야.”

“맞지. 이 업계에 양아치가 원체 많아야지. 친한 척, 다 해줄 것처럼 굴다가 뒷통수 치는 놈들이 좀 많냐?”

“씁. 찬용아, 네 방송에 묵은지란 닉네임 쓰는 사람 있지 않아?”

진짜 내 방송 열심히 보는 모양이다.

주지승이 묵은지가 묵은지 대리인 걸 눈치챘다.

“어떻게 알았어?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그렇더라고. 그래서 믿음도 가고. 아마 홍당무랑 계약할 것 같아.”

홍당무가 작은 회사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 방송을 잘 아는 담당자를 만날 수 있다면 괜찮은 선택지라 생각한다.

“우연이네.”

“우연이라고 하기엔 그렇지 않나? 시청자였으면 어느 정도 눈여겨보고 있었겠지. 안 그래?”

차지찬이 말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아서 엄청 반가웠지. 시청자 직접 보는 건 처음이고. 그래서 악수하자고 했는데 싫대. 팬 아니래.”

“프하핳핫! 악수를 왜 해.”

“형 연예인병 걸렸어?”

“농담이었지.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서 좀 풀어 보려고.”

“벌써부터 유명인된 것처럼 굴면 피곤한데.”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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