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36화 (36/120)

치팅데이 36화

9. 일어서다(2)

“그게 그 뜻이 아니잖아!”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감정이 중요하다.

오랜 세월 억압당한 한을 터뜨리듯 소리쳤다.

“그저 좋아할 뿐인데! 여기서 터지고 저기서 얻어맞고. 우리 민초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핍박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아니.”

“민트초코란 이름이 분명히 있음에도 치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것으로도 모자라! 똑같은 풀떼기인 녹차는 라떼, 아이스크림, 롤케이크 오만 곳에 사용되면서 온갖 사랑을 받을 때! 가여운 민트초코는 왜 핍박 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백우진이 입맛 뻥끗거린다.

“민초는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민초를 탄압하고 차별하는 당신은 민족반역자, 아니! 민초반역자입니다!”

└우지니가 잘못했네

└민초의 슬픔을 너희가 알아?

└민초반역잨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

└응 그래도 안 먹어~

└힘내요

└미친ㅋㅋㅋㅋㅋ 진짜 약빨았낰ㅋㅋㅋㅋ

└이걸 이렇게 연결하넼ㅋㅋㅋ

어느새 7,000명을 돌파한 시청자들의 의견이 드디어 갈리기 시작했다.

“민초가…… 민초?”

백우진은 황망한 얼굴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토론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5분 동안 여러분은 바닐라와 민초 중에 선택해 주시면 됩니다.”

투표창을 열었다.

1번은 민초 2번은 바닐라로 적어도 투표를 시작하자 잠시 후 표가 쏟아졌다.

“민초가…….”

“언제까지 그럴 거야. 정신 차려.”

“민초?”

결과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투표 창을 바라보자 백우진의 눈빛이 돌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날조와 선동을 했음에도 바닐라와 민트초코는 박빙을 이루며 표를 쌓아갔다.

└투표 조작 아님?

└바닐라가 민초하고 비비는 게 말이 되냐?

└아닠ㅋㅋㅋㅋ이게 이렇게 비빈다고?

└민초! 민초!

└민초반역자들이 드글드글하구만

└이건 갓직히 민초 편 들어야지.

“여러분! 회사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당하고, 사회에서 경험한 부조리한 일들. 그 모든 것이 민초를 향한 억압입니다!”

“아니야! 아니에요! 민초는 민초가 아니에요! 민초는 초콜릿입니다!”

“초콜릿이라뇨! 또다시 카카오를 배신할 생각이십니까!”

“아! 그거 하지 말라고!”

“저! 민트초코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 온 민트초코 독립 운동가 반찬용! 민초의 힘을 보여주시리라 간절히 간질히 외칩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꺼낸 마지막 외침이 닿은 모양이다.

투표가 완료된 시점.

민트초코는 3,213표를 얻어, 3,098표를 얻은 바닐라를 꺾고 비로소 주권을 회복했다.

“아아아악!”

백우진이 머리털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 * *

목요일 방송 1부 ‘백반 토론 민트초코 vs 바닐라’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렸다.

토론할 때는 방송 흐름에 영향을 미칠까 봐 슈퍼챗을 잠시 막아두는데, 이 시간을 활용해 후원을 받곤 한다.

속속들이 올라오는 슈퍼챗을 보고 있노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냥그냥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이제 당뇨는 좀 괜찮음?

“그냥그냥 님 감사합니다. 혈당은 꽤 내려갔어요. 내일 오전에 병원 가는데 그때 당화혈색소 체크 한번 해보려고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번 주에 갔어야 했는데 방송 일정이 빡빡해지면서 놓치고 말았다.

약도 다 떨어져서 내일은 꼭 들러야 한다.

“그러고 보니 토요일에 괜찮았어?”

4연속 패배의 충격에 빠졌던 백우진이 물었다.

저혈당 증상이 올 때 먹으려고 보관하던 초콜릿을 주니 금방 정신을 차렸다.

“좀 어지러웠는데 걷다 보니 괜찮아지더라. 혈당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니까 140 정도 나오고.”

코스 요리에 짜장면까지 흡입하며 오랜만에 양껏 먹은 날임에도 혈당이 크게 튀지 않았다.

어지러움을 느꼈으니 분명 혈당이 높아졌을 텐데 2시간 이상 걸은 덕분인지 특이사항은 없었다.

“진짜 걸어갔어?”

“중간까지 가다가 포기. 어우 춥고 힘들고 못 참겠던데. 아이고 뱃살요정 님 5,000원 감사합니다.”

잠시 후원도 말도 없어졌다.

지쳤다.

백반 토론은 확실히 좋은 콘텐츠지만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빠지는 게 문제다.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 주엔 뭐 할까?”

백우진이 마침 좋은 대화거리를 던졌다.

방송을 오래 하다 보면 이렇게 말이 끊길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적절한 주제를 꺼내는 걸 보면 역시 100만 유튜버다.

“글쎄.”

└피자 vs 치킨

└김치찌개 vs 된장찌개

└광어 vs 우럭

└부먹 vs 찍먹 가야지

└파인애플 피자 찬반 토론

“파인애플 피자 어때?”

백우진이 채팅 하나를 읽었다.

파인애플 피자는 민트초코만큼이나 논란이 많고 또 얘깃거리가 많은 소재다.

“좋긴 한데. 넌 어느 쪽이야?”

“난 맛있는데.”

“나도.”

└?

└파인애플 피자가 맛있다고?

└이건 논란 좀 되겠는데

└맛알못

└당뇨 아조씨 맛알못이었어?

시청자들이 잔뜩 뿔났다.

많은 사람이 파인애플 피자를 싫어한단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예상 외의 반응이다.

“근데 파인애플 피자가 약간 억까당하는 부분이 있어요. 달달하고 맛있기만 하구만.”

“맞아. 취향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못 먹을 음식은 아니지.”

백우진이 눈을 반짝였다.

“아, 파인애플 피자를 하와이안 피자라고 부르는데 사실 캐나다 사람이 만들었대.”

또 설명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나 보다.

뭐만 던져 주면 알아서 얘기를 시작하니 같이 방송하기 정말 편하다.

백반 토론을 함께한 지 고작 4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직접 호흡을 맞춰보니 백우진을 원하는 곳이 왜 그리 많은지 알 것 같다.

분량 뽑는 데 도사다.

우지니어스 영상은 특히 편집하는 데 오래 걸려서 말 좀 줄였으면 싶었으나.

같이 방송하는 입장이 되니 이보다 든든할 수 없다.

“…….”

결국 편집하는 건 난데 왜 안도했지.

“독일 요리 중에 파인애플 넣은 토스트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었어.”

“캐나다 사람이 독일 요리를 보고 만든 하와이풍 피자란 말이야?”

“응.”

혼란스럽다.

“근데 재밌는 건 하와이안 피자 논쟁이 한창일 때 매출이 엄청 뛰었다는 거야.”

“잘 팔렸다고?”

치고박고 싸우는 와중에 정작 매출이 늘었다니 의아해 되물었다.

“2020년도 그럽허브의 올해의 음식 보고서에 따르면 1월부터 11월까지 3천만 명이 하와이안 피자를 주문했대. 매출은 2019년도에 비해 689% 상승했고.”1)

“난 외국 사람들은 파인애플 피자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특히 그런데 사실 피자의 역사를 알고 보면 잘못된 접근이야.”

백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피자 얘기 하고 싶어.”

“그러자. 다음 주에 할래?”

선뜻 대답하지 않는다.

뭔가 망설여지는 모양이라 기다리니 고개를 갸웃하다 입을 뗐다.

“한 8시간씩 일주일은 잡아야 할 것 같아. 준비할 것도 많고.”

“뭘?”

“피자 이야기.”

“뭐?”

“난 괜찮은데. 형 못 할 것 같아?”

얘가 제정신인가 싶다.

나야 피자에 대해 아는 거라곤 도미노피자의 페페로니와 포테이포, 파파이스의 존스 페이버릿과 치킨랜치가 맛있다는 정도뿐이다.

피자 이야기를 한다면 대부분 백우진 혼자 떠들어야 한다.

“나한테 물어볼 문제가 아닌데? 8시간 동안 한다고? 일주일 내내?”

“솔직히 1년짜리 강의하고 싶다. 피자 진짜 재밌거든.”

얘가 말하는 재미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미와 동떨어져 있다.

우지니어스는 영상 길이가 보통 30분 이상이고 긴 영상은 3~4시간짜리로 통으로 올라오는데.

그럼에도 비상식적으로 영상 시청 시간이 길다.

틀어놓고 자기 때문이다.

우지니어스의 구독자 절반은 내용을 듣지만, 나머지 절반은 수면 음악이나 ASMR 정도로 여긴다.

그런 우지니어스에서 하면 모를까.

내 채널에서 그런 방송을 했다간 시청 시간이 처참해질 거다.

“그건 네 채널에서 하면 어때?”

“왜? 하기 싫어?”

“너무 기니까. 또 그렇게 공들일 거면 네 채널에서 하는 게 맞지. 거의 다 네가 설명할 건데.”

백우진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러분, 들으셨죠? 다음 주 목요일엔 우지니어스에서 방송할게요.”

* * *

금요일.

5~6주 만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와 상담을 하고 당화혈색소를 확인하고자 피를 뽑은 뒤 다시 진료실을 찾았다.

“많이 좋아지셨네요.”

의사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처음에 당화혈색소가 10.9%였는데 지금은 8.6%입니다.”2)2)2020년 이후 당화혈색소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기기가 발명되어 5분 이내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이 좋아졌다는 말치고는 여전히 높다.

정상 수치가 4.0~6.0%이니 갈 길이 멀다.

“그렇게 많이 좋아지진 않았네요.”

의사가 작게 웃었다.

“당화혈색소는 3개월 동안의 평균 혈당 수치라고 보시면 돼요. 이제 6주 정도 관리하셨으니 다음에 오실 때는 많이 다를 겁니다. 운동은 하고 계시고요?”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좋네요. 지금처럼 하시면 되고 드시는 건 좀 어떠세요?”

“죽겠어요. 뭐만 잘못 먹어도 혈당이 튀니까 밥 먹고 무조건 걷게 되더라고요.”

“좋은 습관입니다. 식후 30분 걷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효과가 있거든요. 잘하고 계시네요. 약은 어떻게 지어드릴까요. 저번처럼 한 달?”

“네. 그렇게 해주세요.”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기대만큼 좋아지진 않았지만 이대로 가면 된다는 말을 들으니 또 한 번 기운이 난다.

6주 동안 열심히 한 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또 짜장면을 그렇게 먹었는데도  추이가 좋다는 데 희망을 얻었다.

“…….”

그러면 오늘은 좀 맛있는 걸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어제 백반 토론 주제로 ‘민트초코 vs 바닐라’를 다뤘고, 2부에서는 아이스크림이 어디서 발달했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이야기 나눴는데.

그러다 보니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날이 되었다.

목요일에 다뤘던 음식을 금요일에 먹기로 했으니까.

아이스크림을 먹기엔 겁이 나기도 하면서, 사실 짜장면 먹고도 괜찮았는데 아이스크림 조금 먹는다고 나빠질까 싶기도 하다.

“아니야.”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당분이 들어간 음식을 철저히 금하다가 짜장면을 먹은 뒤로 자꾸 단 음식이 당긴다.

차라리 계속 안 먹었으면 모를까.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자꾸만 생각이 나 큰일이다.

“이해해 주겠지.”

내 방 시청자들도 평소에는 날 놀리고 갈구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챙겨준다.

혈당 때문에 아이스크림 못 먹는다고 하면 ‘먹고 싶죠? 먹고 싶은데 못 먹죠?’라며 놀릴지언정 이해 못 해줄 사람들은 아니다.

“……아. 미치겠네.”

오늘따라 백우진과 가끔 찾았던 강남의 디저트바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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