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37화 (37/120)

치팅데이 37화

9. 일어서다(3)

“600만 당뇨인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건강하고.”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토요일.

부천 반야식경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벌써 세 번째 인사지만 오프닝 멘트가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오늘은 또 뭐얔ㅋㅋㅋㅋ

└진짜 봐도 봐도 적응 안 되네

└ㅋㅋㅋㅋㅋㅋ꽃받침이라도 하지 말라곸ㅋㅋㅋ

└크리링 아님?

└태린아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

└크리링 왤케 우락부락해짐?

채팅창에도 언급되듯 오늘은 신경 쓰이는 점이 하나 더 있는데, 주지승이 머리에 점 6개를 찍고 소림사 무도복을 입고 있다.

남다른 근육 덕분에 영락없이 키 큰 크리링이다.

최미카엘은 오늘도 본인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소리 죽여 키득대고 있다.

저 사람은 주지승에게 이상한 분장을 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거 아닐까 싶다.

“자, 오늘은 딱 보시면 아시겠죠. 중화풍 요리를 만들어 볼게요.”

“중화풍이요?”

“네. 중식하면 뭐가 떠오를까요?”

“짜장면, 볶음밥, 탕수육 정도?”

주지승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쵸. 근데 볶음밥을 제외하면 집에서 만들기 쉽지 않잖아요? 오늘은 엄청나게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중국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내가 먹어도 돼?”

중국 요리를 정말 좋아하지만 혈당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했다.

저번 주 토요일에 먹었던 중식 때문에 혈당이 올라 2시간이나 걸어야 했으니 살짝 걱정된다.

“그럼. 당뇨 있는 분들을 위한 레시피야.”

“오오. 뭔데?”

“토마토 계란탕과 계란 순두부.”

“…….”

토마토도 좋아하고 계란탕도 좋아하지만 그 둘을 함께 먹을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았다.

나타난다면 악몽일 거다.

계란과 순두부 조합도 생소하다.

“찬용아, 형 못 믿어?”

내 표정을 읽은 주지승이 확인하듯 물었다.

“믿지. 근데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잖아.”

“에이. 설마 너한테 이상한 거 먹이겠어? 다 검증된 요리니까 걱정 마시고 잘 따라오면 됩니다.”

이 사람이 검증한 음식 중에는 콜라 수육과 치토스 버터 튀김, 된장 떡볶이 같은 것들이 있었다.

불안하다.

“자, 먼저 계란 순두부. 레시피 진짜 쉽습니다. 진간장 2스푼에 다시다 한 꼬집, 물 1스푼 넣어주시고 잘 섞어주세요. 다시다 말고 기호에 따라 굴소스나 치킨스톡, 참치액, 멸치액젓을 1스푼 넣으셔도 돼요.”

주지승을 따라 작은 그릇에 진간장, 다시다, 물을 넣고 잘 섞었다.

“소스가 완성됐으니 이제 계란. 계란 2개를 잘 풀어줍니다. 찬용아.”

주지승의 요구에 따라 계란 2개를 까서 잘 저어주니, 주지승은 고추를 꺼내 송송 썰었다.

“그런 다음엔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고추를 넣습니다. 그렇죠. 고추기름 내는 거예요. 저는 만들지만 여러분하고 찬용이는 그냥 시중에 파는 고추기름 쓰시면 돼요. 아, 찬용이 매운 거 못 먹지?”

“응. 완전 맵찔이.”

먹는 데에는 자부심을 느끼지만 매운맛에는 한없이 작아질 수 있다.

반찬가게 초기에 괜한 호기를 부리다가 혀에 화상을 입은 적 있다.

“예전에 매운 돈가스 드시고 혼났잖아.”

“맞아.”

얼떨떨해하는 날 보더니 주지승이 피식 웃는다.

“이건 안 매우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완벽히 파악하고 있죠?”

이쯤 되니 감동이다.

오늘뿐만 아니라 내가 집에서 뭐라도 해먹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주지승 덕분이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주나 싶다.

……뭐 되긴 한다.

“자. 이렇게 고추기름이 올라오면 순두부를 넣어줍니다. 기호에 따라 파 송송 썰어 넣어도 좋아요. 저는 쪽파 추천하는데 없으니까 그냥 대파 넣을게요.”

주지승이 순두부를 반으로 잘라 숭덩숭덩 넣었다.

“찬용아 계란 넣어 봐.”

“넹.”

달궈진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부었다. 찰박찰박 계란 익는 소리가 빗소리 마냥 안도감을 준다.

“이젠 골고루 익히기만 하면 돼요. 순두부 모양이 망가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조심해서 뒤적여 줍니다.”

계란이 적당히 익자 접시에 가지런히 담고 그 위에 미리 만들어둔 소스를 끼얹었다.

“이대로 먹어도 맛있는데 후추를 조금 쳐 주시면 기가 막힙니다.”

주지승이 후추통을 돌려 계란 순두부를 마무리했다.

“자, 먹어 봐.”

재료부터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숟가락으로 크게 떠 입에 넣으니 고추기름과 후추의 풍미가 입안을 휘어 잡으며 그 위에서 순두부와 계란이 춤을 춘다.

유유히 입 안 곳곳을 누비며 혀를 스치는 감각이 이보다 부드러울 수 없다.

“이거 고추기름하고 후추가 대박이다. 너무 맛있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맛이 두 가지 조미료로 풍성해졌다.

“그지?”

주지승이 씩 웃었다.

이런 사람을 조폭인 줄 알았다니, 보면 볼수록 잘생겼다.

“이거 진짜 완전 고단백 음식이야. 맨날 닭가슴살만 먹던데 이렇게 먹으면 맛도 있고 단백질도 챙길 수 있으니까 한번 배워 놓으면 좋아.”

“진짜.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어.”

└이 방송 특. 보기엔 쉬워 보이는데 따라 하면 어려움

└이건 진짜 쉬워 보이는데?

└뭐 없어 보임

└진짜 맛있나?

└두부랑 계란 조합인데 맛이 없을 리갘ㅋㅋㅋ

└ㄹㅇ 조미료도 들어갔고

└무슨 맛인지 궁금하네.

“그러면 이제 토마토 계란탕 만들어 봅시다.”

처음 들었을 때랑 느낌이 다르다.

거부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체 토마토로 끓인 계란탕은 어떤 맛일지 궁금해진다.

“먼저 육수. 국물 요리 할 때는 육수가 중요해요. 요즘엔 이렇게 팩으로 나오는 제품이 있어서 편하게 육수를 우려낼 수 있지만.”

주지승이 날 힐끔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렇죠. 여러분들 집에 이런 게 있을 리 없죠.”

└ㄹㅇㅋㅋ

└저런 거 사도 까먹고 안 넣음

└비싸

└안 비쌈

“사실 육수를 우리는 이유가 감칠맛 때문이거든요. 그 감칠맛은 이걸로 해결이 된다~”

주지승이 치킨스톡과 다시다를 들어 보였다.

나도 집에 다시다와 미원 정도는 있는데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반응이 좋다.

“토마토는 이렇게 얇게 썰어줍니다. 원래는 한번 데쳐서 껍질을 벗겨내는 게 좋아요. 입에 남아서 예민하신 분들은 싫어하거든요.”

“귀찮아서 안 하죠.”

주지승이 헛웃음 지었고 시청자들은 긍정했다.

“찬용이는 아까 했던 것처럼 계란 풀어주고 이번엔 파도 썰면 돼.”

“어떻게?”

“어슷썰기로. 응. 그렇게. 하나 다 잘라주세요.”

“네~”

비스듬하게 대파를 자르고 계란을 푸는 동안 주지승은 금세 토마토 4개를 자르고 냄비에 식용유를 둘렀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내게 주문했던 계란 3개를 풀었다.

확실히 손 빠르기가 다르다.

“불은 약불에 맞춰 주시고 아까 고추기름 만들듯이 파기름을 내줍니다.”

파기름이 올라오자 이번엔 다진 마늘을 넣었다.

“다진 마늘은 요새 작게도 나와요. 잘 안 상하니까 사 두면 두고두고 쓸 수 있습니다. 이제 토마토도 같이 볶아 줄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파와 다진마늘, 토마토가 흐물흐물해졌다.

토마토에서 나온 물인지 물을 넣지 않았는데도 국물이 생겼다.

“이제 물을 넣어줍니다. 저는 300㎖ 넣어줄게요. 그리고 진간장 한 스푼에 전분을 넣어줘야 하는데.”

주지승이 고개를 들었다.

“당 있으신 분들은 전분이 진짜 안 좋아요. 맛이야 당연히 더 좋지만 당면이나 전분가루는 되도록 안 드시길 바랍니다.”

전분가루는 말 그대로 가루.

즉, 정제된 재료다.

그러지 않아도 탄수화물이라 혈당을 높이는데 가루가 되어 소화도 빨라지면 당뇨병 환자로서는 대책이 없다.

“그래서 얼만큼 넣어야 하는지 알려만 드릴게요.”

주지승이 전분 가루를 반 스푼 뜨고 물을 5스푼 넣어 가루를 풀어주었다.

“자, 이제 끓기 시작하죠? 이만큼만 넣으시면 됩니다. 조금씩 넣어서 농도 맞춰주시면 돼요.”

주지승의 말이 다소 빨라졌다.

요리를 하며 설명도 하니 어쩔 수 없다.

“만약 전분 넣으실 거면 토마토는 3개만 넣어도 돼요. 물도 조금 더 넣어도 되고요. 근데 우리는 전분을 안 넣으니까 토마토를 더 넣고 물을 적게 잡아서 맛을 깊게 만들어 보는 겁니다. 양은 나중에 자막 달아드릴 테니 참고만 하세요.”

└어차피 전분 안 넣음.

└ㅋㅋㅋㅋㅋ그냥 지금 보는 대로 넣으면 될 듯.

└맞아. 당뇨 없는데 그냥 귀찮아서 안 넣을 거임

└ㄹㅇㅋㅋ

└집에 전분이 어딨어?

└밀가루 넣어도 됨?

“전분 없으면 밀가루 넣어도 돼요?”

한 시청자의 채팅을 보고 대신 물었다.

“밀가루 안 돼요. 일부 소스 만들 때는 전분가루 대신 밀가루 넣어도 되는데, 여기다가 밀가루 넣으면 밀가루 맛이 너무 강해서 맛이 달라져요.”

“아~”

“요리 못 하는 분들은 재료 이걸로 바꾸면 될 것 같은데? 같은 추측만 안 하셔도 절반은 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킨 것만 하라고!

└반찬용 아직도 저러넼ㅋㅋㅋ

└제발 국간장 쓰라면 국간장 써! 진간장 쓰지 말고!

억울하다.

난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걸 대신 물은 건데 오해를 샀다.

“이제 충분히 끓었으니 계란물을 천천히 부어 줍니다.”

주지승이 토마토탕에 계란물을 두르자 이내 끓어오르는 국물 위로 계란이 노랗게 올라왔다.

거기에 다시다와 소금으로 간을 하고 후추까지 뿌리니 모양새가 나쁘지 않다.

심지어 냄새도 좋다.

“어디.”

국물을 떠 먹은 순간 토마토 계란탕을 향한 내 편견이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맑고 깊은 국물이 일품이다.

토마토 소스는 좋아했으면서 이렇게 국물도 맛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때?”

주지승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너무 맛있어. 이렇게 깔끔한데 깊은 맛은 처음이야. 속도 든든하고.”

무엇보다 속이 편안하다는 데 놀랐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오니 몸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밥이 없어도 괜찮겠단 생각이 든다.

애초에 밥보다는 빵이 어울릴 듯한데 중국 음식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전분이 들어가면 또 느낌이 다르려나.

“이건 진짜 내일 해 먹어야겠다.”

중화풍 계란 순두부 만들기

순두부(1모), 계란(2알), 대파(식감이 싫으면 쪽파), 진간장(2스푼), 굴소스(1스푼), 고추기름.

진간장 2스푼, 굴소스 1스푼, 물 1스푼을 잘 섞어 줍니다.

파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계란은 잘 풀어줍니다.

약불로 프라이팬을 달구고 식용유를 둘러준 뒤 순두부와 계란물을 넣어줍니다.

조심스레 슬쩍슬쩍 섞어줍니다.

그릇에 담은 뒤 미리 만들어둔 소스를 둘러 주고 마무리로 고추기름을 살짝 넣어 줍니다.

기호에 따라 후추를 뿌려주셔도 맛있습니다.

잘 섞어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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