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40화 (40/120)

치팅데이 40화

9. 일어서다(6)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6시인데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은 녀석이라 시간이 괜찮을지 모르겠다.

일단 문자 메시지를 보내두었다.

“스펙부터 볼까.”

스파게티와 라면볶이의 성분표를 찾았다.

“답 나왔네.”

시청자들에게 표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러분들 아실지 모르겠는데. 열량 보존 법칙이라고 있어요.”

└질량 보존 법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능 이슈

“뭘 모르시네. 질량 보존 법칙도 있는데 열량 보존 법칙도 있어요. 누가 만들었냐고? 나요.”

시청자들이 또 헛소리한다고 구박한다.

“들어 봐요. 닭가슴살이 맛있어? 닭다리가 맛있어? 그치. 다리가 더 맛있죠?”

인터넷에 닭고기 부위별 열량을 검색했다.

“미국농무부에서 발표한 자료예요. 닭가슴살을 구우면 120kcal. 근데 날개랑 다리는 150kcal야.”1)

너무나 명확하다.

“가슴이 날개랑 다리보다 칼로리가 적지? 그러니까 맛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날개랑 닭다리는 열량이 같죠? 그러니까 취향 차이인 거고.”

└당이나 지방이 많이 들어가 있으면 칼로리도 더 높으니까 대체로 그런 듯?

└말이 안 되짘ㅋㅋㅋㅋ

└ㄹㅇ 그냥 우연이지. 열량 높다고 맛있으면 우라늄이 제일 맛있겠다?

└핵분열하면 다 그정도 칼로리 나오지 않나? ㅋㅋ

“여러분, 제가 드리는 말이 그냥 헛소리가 아니예요. 다 근거가 있어요.”

대체 왜 맛있는 음식은 살이 찔까 고민하다가 얻은 결론이다.

“인간이 못 살 때. 그러니까 농사 짓기 전에는 언제 먹을 걸 구할지 몰랐단 말이죠. 그러니까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야 했어요. 여기까지는 이해하죠?”

대부분 긍정한다.

“당연히 먹을 때도 열량이 많은 걸 먹어야 했어. 왜? 그래야 오래 버티니까.”

이번에도 다들 이해한 눈치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방이 많은 음식, 단 음식 같은 걸 선호하게 된 거예요. 똑같은 양이면 열량이 더 높은 걸 선호하는 편이 생존에 유리하니까 그쪽으로 진화를 한 거지. 더 높은 에너지를 주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존할 확률이 높으니까.”

└그럴듯한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음

└듣고 보니 ㅇㅇ

설명을 해주니 시청자들도 내 생각에 공감한다.

“증거도 있어요. 음식마다 칼로리 알아보면 되잖아.”

음식별 칼로리 순위를 검색했다.2)

“보세요. 식약청에서 발표한 칼로리가 가장 높은 음식 10가지라고 있네. 1등이 수육. 수육? 수육이 왜 이렇게 높아?”

놀라서 목소리가 커졌다.

“수육 건강식 아니었어? 나 수육 진짜 많이 먹었는데?”

당뇨병 판정을 받은 후로 가끔 먹었다.

물에다가 된장 풀고 후추랑 양파, 앞다리살만 넣고 삶으면 되니 만들기도 편하고 맛도 있는데 심지어 구워 먹는 것보다 건강하니 완벽한 한 끼 식사라고 생각했다.

└수육 미쳤네 진짜

└보쌈 많이 먹으면 살찌는구나

└그냥 압도적이넼ㅋㅋㅋ 감자탕, 돼지갈비보다 300이나 높앜ㅋㅋㅋ

└근데 맛있긴 함

└억울해하는 표정 봨ㅋㅋ

“와.”

황망해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만하다.

“그치. 맛있으니까 열량도 높지. 내 말이 맞죠?”

└태세전환ㅋㅋㅋㅋㅋ

└님 수육보다 짜장면 더 좋아하잖아요

└아저씨 논리대로면 수육이 간짜장보다 32% 더 맛있어야 하는데?

└잣죽 어쩔 거야

└잣죽이 짜장면보다 맛있다고?

“……그치. 수육보단 짜장면이 더 맛있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수육이 맛있긴 해도 어디까지나 건강 음식 중에서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에 담갔던 고기로는 짜장면의 아성을 넘기 힘들다.

“잣죽은 뭐지? 잣죽 주제에 뭐 이렇게 칼로리가 높아? 맛도 없으면서 열량도 높으면 그냥 쓰레기잖아.”

맛도 없으면서 살을 찌운다니.

어떻게 이런 양심 없는 음식이 탄생했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넘심ㅋㅋㅋㅋㅋ

└잣죽 맛있는뎅 ㅠ

└아ㅋㅋ 맛도 없으면서 칼로리 왤케 높냐고ㅋㅋㅋ

“인정하겠습니다. 이렇게 열량 보존의 법칙은 틀렸던 것으로 10년 만에 밝혀지네요.”

└이딴 걸 10년 전부터 생각했다고?

└누구 맘대로 10년 만에 밝혀졐ㅋㅋㅋ

└팩트) 원래 없었다

└그래서 스파게티임 라면볶이임.

부우웅-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마침 백우진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금 방송 중인데 괜찮아?”

-응. 왜?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컵라면 중에 스파게티랑 라면볶이 알지?”

-알아. 스파게티는 480kcal에 나트륨 730㎎, 탄수화물 73g이 포함된 고열량 고나트륨, 고탄수 제품인데 일본에서 발달한 나폴리탄과 유사한 맛이 강점이야. 라면볶이는.

난 가끔 얘가 무섭다.

“잠깐. 그건 이미 보고 있는데 넌 스파게티랑 라면볶이 중에 뭘 더 좋아해?”

-당연히 스파게티지.

“그래?”

-스파게티가 열량이 5kcal 높잖아.

“열량 보존 법칙?”

-형도 알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똑같은 것들이었넼ㅋㅋㅋㅋㅋ

└백반 토론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 둘 다 똑같은 놈이라서.

└나만 몰랐던 거야?

“근데 방금 열량 보존 법칙이 파훼됐어. 잣죽이 짜장면보다 열량이 높더라고.”

-어르신들을 상대로 리서치해 봤어?

“어?”

-나이 많으신 분들이 짜장면보다 잣죽을 선호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열량 보존 법칙이 틀렸다고 단정할 순 없어.

“아.”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게다가 라면볶이는 그냥 여러 라면 중에 하나인데 스파게티는 좀 다르지.

“어떤 점이?”

-신이거든.

“뭔 소리야?”

-Flying Spaghetti Monster. 줄여서 FSM.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란 종교에선 스파게티 면과 2개의 미트볼로 이루어진 스파게티 괴물을 신으로 여겨.

“……뭐라고?”

-그리고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세상과 인류를 창조했다고 믿는대.

“아니. 너무 성의 없잖아. 무슨 스파게티가 세상을 창조해.”

-그 말 취소해야 할걸? FSM은 미국, 네덜란드,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 종교로 인정받았고 신실한 신자도 있어.

잠시 사고가 멈췄다.

하지만 특정 종교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간 몰매를 맞을 수도 있기에 이성의 끈을 꽉 쥐었다.

방송 화면에는 띄우지 않고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라고 검색하니 정말 나온다.

[이 종교를 패러디 종교 예시로 들기도 하는데, FSM 신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여긴다.]

시간이 없어 자세히 읽진 못했지만 한 문단이 눈에 들어 왔다.

정말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서둘러 옷장으로 갔다.

정장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살이 찐 이후로 넉넉한 옷만 사 입었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격식 차린 옷으로 갈아 입고 넥타이도 한 뒤 카메라 앞에 섰다.

└????

└뭐 함?

└갑자기 무슨 일임?

마음을 경건히 하고 최대한 반성하며 고개 숙였다.

“유튜브에서 반찬가게 채널을 운영하는 반찬용입니다. 오늘은 제가 저지른 잘못을 정정하고 반성하고 피해자분들께 사과 드리고자 영상을 찍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저는 조금 전 동료에게 FMS라는 종교에 관해서 설명을 듣던 중 해당 종교의 교리가 성의 없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FSM.

백우진이 이름을 정정해 주었다.

“FSM을 비하한 행위는 어떤 방식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FSM을 믿으시는 신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교회도 있어.

“FSM 교회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신께도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이게 뭔 상황이야?

└아닠ㅋㅋㅋㅋ 일부러 저러는 거야?

└웃기려는 거야? 진심이야? ㅋㅋㅋㅋ

└이게 뭐라고 사과 영상을 찍어

“진심입니다.”

자칫 어그로를 끌기 위한 영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심이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무엇을 욕되게 해선 안 된다.

-그치. 진심으로 해야지. 파스타파리안이 지켜보고 있어.

“……그게 뭔데?”

-파스타파리안은 FSM의 신자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제 보니 백우진이 날 놀리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진짜 장난하지 마. 놀랐잖아. 뭔 말도 안 되는 소릴.”

-뭐가?

“스파게티 믿는 사람들을 파스타파리안이라고 한다고? 그럼 교회는? 교회도 있다며.”

-파스타파리아니즘.

“지금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믿고 안 믿고는 형 마음인데 진짜로 있어.

“아까 찾아 봐서 있다는 건 알아. 근데 네가 자꾸 이상한 말을 하잖아.”

-자세히 읽어 봐.

인터넷 창을 여니 백우진이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댔다.

-참. 파스타파리안은 기도할 때 아멘 대신 라멘이라고 해.

“야!”

끝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댄다.

“적당히 해. 내가 바보야? 무슨 아멘 대신 라멘이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소리를 친 순간 인터넷창에 검색 결과가 나왔다.

“…….”

└미친 진짜 있넼ㅋㅋㅋㅋㅋ

└아멘 대신 라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 왤케 오래됐엌ㅋㅋ

└한국에도 신자 있는데?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란 종교는 라멘이라고 기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니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자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패러디 종교고.

그들이 진지한 태도를 일관하는 행위 자체가 패러디를 목적에 두고 있단 사실을 알았다.

-히히힣힛힣힣

스마트폰에서 백우진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자 시청자들도 키읔을 연달아 올리기 시작했다.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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