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41화
10. 홍당무 엔터테인먼트(1)
└ㅋㅋㅋㅋㅋ눈치챘음?
└이 아저씨 오늘 왜 이렇게 진지함ㅋㅋㅋㅋ
└응 쫄았죠?
└정보) FSM 신도들은 본인들이 패러디 종교가 아님을 진지하게 주장한다
└교리 자체가 사르카즘인데 뭘ㅋㅋㅋㅋㅋ
└이 아저씨 원래 종교 정치 이런 거 무서워 함ㅋㅋㅋㅋ
└그런 것치곤 백반토론 때 별별 얘길 다 꺼내던뎈ㅋㅋㅋ
평소라면 금방 눈치채고 웃었을 거다.
백우진이 내게 해코지를 할 사람도 아니고 방송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혹시나 내 발언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했다.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은데, 내가 무심코 꺼낸 말이 그들에겐 평생의 상처가 되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으로 상황을 곡해했다.
“후.”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런 태도는 내게 약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하다.
나처럼 상처받는 사람이 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언행을 스스로 검열하지만.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나 사소한 일도 확대해석하게 된다.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줄었는데 요 며칠 정신적으로 내몰려 있던 탓에 나도 모르게 과민반응하고 말았다.
└?
└진짜 놀란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누가 봐도 농담이잖아
└이 아저씨 남한테 피해주는 거 싫어해서 그럼.
└야, 우냐?
“아, 이분들 날 2년이나 봤으면서 아직도 모르시네. 놀란 척한 거야. 속아줘야 재밌지. 안 그래요?”
-아니죠? 속았죠?
백우진이 열받는 목소리로 나를 약올리자 시청자들이 또 한 번 웃었다.
녀석이 이렇게 나와줘야 방송 분위기를 풀어낼 수 있다.
정말 괜히 100만 유튜버가 아니다.
“아니. 솔직히 중간까진 속았어. 근데 아멘 대신 라멘은 아니잖아.”
-난 재밌던데?
“와. 백우진. 백반 토론 때 당한 걸 이렇게 복수하네.”
-아니지. 누구처럼 종교 탄압으로 몰아가야 제대로 된 복수지.
“흐흐흫흫흫.”
나였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 같아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맞네. 나였으면 그랬지.”
-이거 봐! 여러분, 들으셨죠? 이 형이 이런 사람이에요. 제가 이런 더러운 사람하고 토론했던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상인이면 스파게티보다 라면볶이 좋아한다고 종교 탄압으로 몰진 않아요.
└ㅇㅇ 그런 발상 자체가 안 됨.
└ㄹㅇ 지도 똑같으면섴ㅋㅋㅋ
└이제부터 서로 죽여라
“흫흫흐흫흥흫.”
이때다 싶어 억울함을 호소했던 백우진이 시청자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다.
그 모습이 즐거워서 계속 잔웃음이 흘러나온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청자들이 기다려주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잠시라도 쉬고 웃길 바라서였다.
반찬가게는 일상에 지친 이들의 휴게소니까.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티내지 않고 방송을 켜야만 했다.
그런데 막상 방송을 켜보니 현실은 달랐다.
시청자들이 날 웃게 한다.
머리를 가득 채웠던 죄책감과 어깨를 짓누르던 우울함이 조금씩 옅어져간다.
방송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어서야 나와 저들의 관계를 알 것 같다.
가지에 앉아 노래를 들려주고 벌레를 잡아 주는 새들 덕분에.
여태 그림자이기만 했던 난 비로소 그늘이 되었다.
* * *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의 김서진 대리는 오랜 고민이 있었다.
바로 컨택을 시도하는 스트리머, 크리에이터, BJ마다 같은 팀 동료를 찾기 때문이었다.
오늘 미팅에서도 어김없이 묵은지 대리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저, 근데 계약하면 제 담당은 어떤 분께서 맡아주시나요?”
“물론 제가 맡습니다.”
“아.”
샘솔이TV의 샘솔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건 왜…….”
김서진 대리가 조심스레 물으니 샘솔이 어색함을 무마하고자 웃으며 말을 돌렸다.
“궁금해서요. 계약만 대리님하고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분하고 일하게 되는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샘솔 님 필요하신 일은 전부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네.”
샘솔이 잠시 망설이다 결국 본심을 내비쳤다.
“그런데 혹시 묵은지 대리님은 어떻게 되시나요?”
“네?”
“그게. 아는 분한테 들었는데 홍당무에 묵은지 대리님이 되게 꼼꼼하게 봐주신다고 해서요. 그냥 궁금해서.”
이번 달에만 4번째 듣는 말이었다.
김서진은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그쵸. 묵은지 대리 일 잘하죠. 샘솔 님 우리 회사에 관심 많으셨구나.”
김서진은 묵은지에 대한 관심을 홍당무 엔터테인먼트로 돌리고자 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네. 복분자 형이 많이 얘기해 주더라고요. 그렇게 꼼꼼하게 봐주는 사람 처음이었다고.”
구독자 37만 명을 확보한 과학채널 복분자는 홍당무 엔터테인먼트 소속 크리에이터였다.
작년 1/4분기 김서진 대리가 컨택하려고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묵은지 대리가 먼저 연락을 취하더니 3/4분기가 되어서야 계약을 진행한 케이스였다.
김서진으로서는 못내 아쉬웠다.
복분자 채널이 아직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 때 표준 계약을 진행했어야 했거늘.
묵은지가 시간을 끌더니 결국 30만 명이 넘어서 우대 조항으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 분자 님하고 친하셨구나.”
“네. 그런데 혹시 대리님도 조금 기다려 주시나요?”
“어떤 것을…….”
“분자 형이 그러더라고요. 비율 문제 때문에 바로 계약할지 말지 고민됐는데 묵은지 대리님이 그러셨대요. 망설여지면 채널이 조금 더 성장한 뒤에 계약하자고. 그러면 우대 조항을 받을 수 있으니까.”
“……네?”
“보통 이건 저희 입장이잖아요. 근데 홍당무가 그렇게 나오는 거 보고 믿음이 생기더래요. 솔직히 저도 기왕에 계약할 거면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으로 하고 싶거든요.”
김서진 대리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좋죠. 좋은 일인데 사실 서포트를 받아서 빨리 성장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거든요.”
샘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김서진 대리의 말대로 빠르게 성장할 수만 있다면 계약 비율을 조금 더 내주더라도 얻는 게 없진 않았다.
“그럼 지금 제가 홍당무에 들어가도 대형 콘텐츠에 참가할 수 있는 거예요?”
“음.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확답 드리긴 어렵네요.”
“아…….”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획 콘텐츠 말고도 홍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예요. 예를 들어 홍당무 소속 크리에이터분하고 합방도 주선해 드리고. 매주 이 주의 인물 소개하는데 거기에도 노출해 드리고요.”
분명 효과는 있겠지만 샘솔에게는 크게 매력적이지 못한 제안이었다.
홍당무가 소개하는 ‘이 주의 인물’을 보고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소속 유명 크리에이터와 합방을 한다면 효과는 있겠지만 그 유명 크리에이터가 누구인지도 중요했다.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는지 약속받지 못한 지금 샘솔에게 홍당무와 계약할 이유는 크게 없었다.
대형 콘텐츠 참가도 불투명하고, 대형 채널과의 합방도 약조받지 못하니 김서진 대리가 말하는 빠른 성장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 죄송해요.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더.”
샘솔이 고개를 숙인 뒤 도망치듯 카페를 나섰다.
혼자 남은 김서진은 소파에 등을 파묻곤 고개를 들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번 달 내내 이런 식이었다.
‘아니. 묵은지 이건 대체 뭔 말을 하고 다니는 거야.’
생각하면 할수록 고까웠다.
만나는 사람마다 묵은지 이야기를 꺼냈고 결국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결국 묵은지와 계약을 해 성과는 모두 그녀 몫으로 돌아갔다.
얼마 전 눈여겨보고 있던 반찬가게만 해도 그랬다.
백반 토론이 인기를 끌 것을 알고 있는데, 재빨리 계약하지 않고 시간만 주고 있으니 회사로서는 손해를 보고 있었다.
‘그러게? 이거 심각하지 않나?’
팀 내 2명뿐인 대리 중 한 명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서 일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표준 계약을 체결하기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았다.
“…….”
김서진 대리가 핸드폰을 꺼내 오형만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팀장님. 방금 미팅 마쳤습니다. 잘 안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들어와.
“저, 팀장님.”
-어. 왜.
“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잠시 회사 밖에서 커피 한 잔 괜찮으실까요?”
-하고 싶은 말? 사무실에서 하면 안 되는 거야?
“조금.”
-그래. 도착하면 연락해.
“네. 감사합니다.”
* * *
“그런 일이 있었다고.”
김서진 대리로부터 현 상황을 전해들은 오형만 팀장이 입맛을 다셨다.
묵은지가 비록 팀에서 겉돌긴 하지만, 계약 체결 수와 고객 만족도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니까 은지 대리가 유튜버들한테 나중에 하면 더 좋은 조건을 받아볼 수 있으니 그때 가서 계약하자. 그리 얘기했다는 말이지?”
“네.”
“……지금 당장 계약할 의사가 없다면 그런 식으로 영입하는 방법도 있지.”
오형만 팀장이 큰 문제가 되냐는 식으로 말했다.
“이미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잖습니까. 이렇게 가다간 홍당무랑 표준 계약하는 사람은 호구 소리 나올 겁니다. 그때 가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오형만 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문제가 될 소지는 있었다.
“그럼 서진 대리는 어떡하면 좋겠어?”
“예?”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말을 꺼냈을 거 아니야.”
없었다.
문제가 되니까 제제를 하라는 뜻에서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현재 오형만 팀장의 태도로는 징계는커녕 주의조차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대화가 끝나면 김서진은 그저 같은 팀 동료를 뒷담화한 사람으로 남을 뿐이었다.
그럴 순 없다고 판단한 그는 조금씩 말을 부풀렸다.
“팀장님, 전 이 일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 방침상 한 사람에게는 한 사람만 컨택할 수 있는데, 묵은지 대리가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연락만 돌려놓고 계약에 소극적이면 다른 팀원들은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회사로서도 성장 가능성 있는 인재를 발굴하지 못하고 굳이 우대하며 들여야 하니 그 손해는 단순히 금액으로 상정하기 힘듭니다.”
“음.”
“게다가 다른 직원들은 하지 않는 일까지 하면서 업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어요. 매뉴얼대로 하면 되는데 굳이 더 많은 서비스를 해서 팀원들 불만이 높습니다.”
병적인 수준의 워커홀릭인 묵은지가 다른 직원들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은 사실이나.
팀원들의 불만이 높다는 말은 추측이었다.
김서진 본인이 그러니 다른 사람도 그러리란 판단이었다.
“그래?”
다른 팀원들도 불만이라니 팀장이 관심을 보였다.
“예.”
무작정 대답한 김서진은 당장 오늘 팀원들을 데리고 괜찮은 식당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팀장에게 그리 보고한 이상.
후배들의 마음에 분명 있을 묵은지를 향한 불만을 끄집어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