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43화
10. 홍당무 엔터테인먼트(3)
수요일.
‘언제까지 뚱할 거야?’ 방송일이다.
어제 박상철 PD와의 미팅이 늦게까지 미팅이 이어져 점심 무렵에야 정신을 차렸다.
오늘은 정말 쉬고 싶은데 주지승도 함께하는 날이라 억지로 일어났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짐꾼 헬스장으로 향했다.
주지승은 이미 도착해서 차지찬을 포함한 짐꾼TV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형, 방송에서 운동하는 건 처음이지?”
“처음이지. 여기서 하려니까 조금 부담되는데?”
“에이. 딱 봐도 각 나오는데. 뭘.”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한테 되나. 배우러 왔어.”
끼어들기 힘든 분위기라 슬쩍 근처로 가 눈인사를 하니 차지찬, 주지승, 안상규 PD가 반겨주었다.
“야, 얼굴이 왜 그래.”
차지찬이 물었다.
대답 대신 차지찬과 주지승, 내 몸을 차례로 훑으니 주지승이 크게 웃었다.
“비교 안 한다니까. 전에도 말했잖아. 난 네 옆에 서면 중학생이야.”
“그래. 난 머리도 없고.”
“흐하핳핫!”
차지찬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주지승이 대머리 드립을 칠 때마다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황했었는데, 그동안 많이 친해지긴 했다.
“갈아 입고 올게.”
방송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바로 환복했다.
대기화면이 나가는 동안 주지승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오늘 방송 끝나고 시간 있어?”
“시간은 있는데 힘이 없을 것 같아. 죽겠어.”
“끄흐흫.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럴 힘은 있지.”
아무리 힘들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는데, 한 끼 놓치면 그만큼 손해를 보는 거니까.
“와썹! 언제까지 뚱할 거야? 오늘은 찬용이 다리를 박살 내는 날입니다.”
조졌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하체하는 날이다.
“그리고 예고해 드렸죠? 오늘의 게스트. 반야식경의 주지승 님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요리 유튜버 주지승입니다.”
└와 반야식경
└이 아저씨는 또 누구야ㅋㅋㅋ
└주지승이다!!
└요리계의 한마 유지로 ㄷㄷ
└요리 유튜버요? 소림사 수련승이 아니고?
└와 허벅지 미쳤다 바지 터지려 하네
└여기서 주지승을 보넼ㅋㅋㅋ
└운동 채널에 등장한 살찌는 요리 전문가 ㄷㄷ
└암흑요리하는 분 아님?
└마가린 탕수육 만든 영상 봤는데
“정말 유명하신 분인데 우리 방송에는 처음이시니까. 우리 안 PD가 시청자분들이 궁금해하실 만한 질문 몇 가지 추렸거든요.”
차지찬이 질문이 적힌 카드를 보더니 안상규 PD를 찾았다.
“이거 맞아?”
“네. 맞아요.”
“그래?”
차지찬이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다시 방송을 진행했다.
“그럼 스트레칭하면서 인터뷰 해볼게요.”
차지찬이 천천히 앉았다 일어나면서 고관절과 햄스트링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나와 주지승도 따라서 움직였다.
“짐꾼 채널 구독자들이 주지승 님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입니다. 조계종이세요? 천태종이세요?”
└?
└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
└안 궁금해!
└그게 왜 궁금한뎈ㅋㅋㅋ
└듣고 보니 궁금해지네
└그게 뭐임?
└궁금하진 않았지만 일단 들어는 보고 싶음
“저는 천태종이요.”
“천태종이라고 하시네요.”
“그렇습니다.”
가만 듣고 있기 힘들다. 앉았다 일어나길 멈추고 서서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질문이에요?”
“몰라. 이렇게 적혀 있어.”
차지찬이 안상규 PD가 적은 대본을 나와 주지승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걸 궁금해한다고?”
“상규야, 질문 댓글로 받은 거 아니었어? 진짜 이런 질문이 있어?”
“네. 있었어요.”
차지찬이 확인 차 물었지만 너무나 태연한 답이 돌아왔다.
“너 나중에 찾아보고 없으면 프로틴 일주일 금지야.”
“아니, 사장님. 그건 아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없었넼ㅋㅋㅋㅋㅋ
└조계종, 천태종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90%는 되겠닼ㅋㅋㅋㅋ
└프로틴 일주일 금지 ㄷㄷ
└징계 빡세네
“계속할게요. 지승 님 탈모는 언제부터 오셨나요?”
주지승이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떨어뜨렸다.
“야! 우리 형 속상해하시잖아! 어쩔 거야!”
“적혀 있다고 묻는 형이 더 나빠!”
차지찬이 안상규 PD 탓을 해서 질문지를 빼앗으며 소리쳤다.
채팅창에서도 차지찬이 더 악질이란 말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뭐야, 이게. 전완근 대신 모근을 잃으셨나요? 버터에 햄 둘러서 핫도그 만드시던데 혈관에 미안하진 않으신가요? 이게 질문이야?”
“미안하진 않아요. 제가 먹진 않으니까.”
주지승이 당당히 대답했다.
“예?”
└ㄷㄷ 반야식경 논란 탭 준비해라
└요리 유튜버가 음식을 만들어 놓고 버린다고?
└상상도 못한 정체 ┌◎ㅁ◎┘
└조회 수 뽑으려고 쓰레기 만든 거였어?
└그런 걸 우리 보고 따라 만들라고?
“우리 최미카엘 PD가 남김없이 먹습니다. 전 당뇨 있어서 그런 거 먹으면 큰일 나요.”
“최미카엘 PD님이 드신다고 하십니다.”
“근데 전완근 대신 모근을 잃은 건 맞아요. 제가 딱 머리 빠질 때 즈음이 운동 시작할 때였거든요.”
“그럼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그 전에 스트레스 생기면서 시작된 것 같기도 해요. 여러분도 있을 때 잘하세요. 떠나고 나면 잘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요.”
난 이 방송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좋습니다. 그럼 궁금한 건 다 알아본 것 같고.”
“하나도 안 알아봤어!”
차지찬이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 같길래 치고 들어가니 차지찬과 주지승이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았다.
“요즘 찬용이가 감이 좋아. 자, 주지승 님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반야식경 채널 들어가셔서 보시길 바라고. 오늘은 스쿼트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한 운동이고.
동시에 가장 싫어하는 운동이다.
“찬용이가 요새 봉을 들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자세 잡는 겸해서 프리웨이트로 진행할 겁니다. 괜찮으시죠?”
“네.”
“그럼 저부터 시범을 보여드릴게요.”
차지찬이 봉과 원판을 준비했다.
원래는 140㎏으로 했는데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큰 원판을 양쪽에 하나씩만 낀 채 자세를 잡았다.
“자, 중량을 가하는 모든 운동은 자세가 정말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관절이나 근육이 다칠 수 있거든요.”
그 때문인지 차지찬은 준비 운동을 과하게 하는 편이다.
“봉은 승모근 바로 위에 고정합니다. 봉을 들면 이런 식으로 등이 조여지는데 튀어나오는 곳 바로 위에 두시면 돼요.”
차지찬이 발을 살짝 벌렸다.
“이 상태에서 다리를 어깨 너비 정도로 위치하고 발끝이 살짝 벌려지도록 합니다.”
차지찬이 천천히 앉았다.
“지금 발바닥 전체가 무게를 지탱하고 있어요. 어느 한 쪽으로 무게중심이 가해지면 안 돼요. 골고루 분산시킵니다. 이대로 일어설 때는 봉을 수직으로 들어올리면서 발바닥으로 지면을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올라오시면 돼요.”
차지찬이 10개를 채운 뒤 봉을 내려놓고 주지승에게 물었다.
“형, 워밍업 어떻게 할래?”
“이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
주지승이 자세를 잡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단단하게 고정된 발바닥과 상체가 꼭 단단한 나무를 보는 느낌이다.
“와. 자세 너무 좋다. 그래. 자세를 모르는데 이런 몸이 나올 리가 없지. 여러분, 지승이 형 고관절 보세요. 고관절이 잘 풀어져 있으니까 가동범위가 잘 나오잖아. 완전 풀 스쿼트.”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시청자들은 다 이해한 모양이다.
└너무 가볍다
└자세 좋네.
└와씨 둔근 봐. 힙업 미쳤다
└이 아저씨 보충제 뭐 먹음?
└이 아저씨 벗겨 봐. 대퇴근 보고 싶다.
“보충제 뭐 드시냐는 질문이 있는데. 안상규, 너 저런 걸 뽑아와야지 뭐 이딴 걸 골라 왔어?”
“진짜 있었어요.”
“저게 끝까지.”
스쿼트 10개를 마친 주지승이 봉을 내려놓았다.
“전 보충제는 안 먹어요. 워낙 단백질 위주 식단이라서 따로 먹진 않아요.”
“그럼 완전 식단으로만?”
“그지. 근데 닭가슴살은 나도 너무 싫거든. 한 4년 먹으니까 이젠 못 먹겠더라.”
“닭가슴살을 4년이나 먹었어?”
세상에서 제일 맛대가리 없는 걸 4년이나 먹었다니 주지승이 존경스럽다.
“근데 형은 맛있는 닭가슴살 요리 이런 거 알지 않아?”
차지찬이 물었다.
“닭가슴살은 무슨 짓을 해도 맛있게 만들기 힘들더라고. 그래서 콩, 소고기 이쪽으로 먹어.”
“식사량은? 꽤 될 것 같은데.”
“그지. 일반식으로 먹으면 하루 섭취 단백질량이 살짝 부족하니까. 조금씩 5~6번 먹어. 그래야 또 영상 찍고 남은 거 먹을 수 있으니까.”
요리 영상을 업로드하다 보니 자연스레 식사량 자체는 줄이고 횟수는 늘리는 방식을 채택한 모양이다.
확실히 그쪽이 건강에 더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자, 이제 찬용이 차례. 너도 이걸로 해볼래?”
차지찬이 본인과 주지승이 사용했던 봉을 그대로 들길 권했다.
“아니.”
큰 원판 하나에 20㎏이니까 두 사람이 워밍업으로 사용한 바벨의 무게는 총 60㎏다.
애초에 들어올리지도 못할 테고 얹어준다 해도 서 있기조차 힘들 거다.
차지찬이 원판 빼는 걸 도와줬다.
빈 봉을 들고 자세를 잡으니 차지찬이 박수를 쳤다.
“좋아! 가자!”
“엉덩이 조이고! 스쾃!”
주지승도 옆에서 소리 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나! 둘! 중심 잡고! 엉덩이 집어 넣어!”
“셋! 넷! 시선 정면! 허리 곧게! 배에 힘 딱 주고! 스쾃!”
“다…… 서엇! 그렇지! 앉을 수 있는 데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는 힘 주면서 빡! 좋아! 여섯!”
그러지 않아도 힘든데 옆에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스쾃스쾃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