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44화 (44/120)

치팅데이 44화

10. 홍당무 엔터테인먼트(4)

“끄으으으으.”

소리를 크게 낸다든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라스트!”

“지금 다리가 엄청 떨리죠? 안정근이 부족해서 그런데, 이 자체가 반찬이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한단 뜻이에요. 잘하고 있어! 가자!”

주변에 과장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불편하기도 해서 항상 조용히 지냈는데.

양 옆에서 소리를 쳐대니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흐읍!”

정말 더는 못 일어날 것 같은데.

주지승과 차지찬이 성질을 돋은 덕인지 그 힘으로 겨우 일어섰다.

반찬용이 손바닥으로 등을 쳤다.

아프고 화가 나 고개를 홱 돌리니 싱글벙글 웃고 있다.

“왜 때려!”

“반찬 남자네. 어? 진짜 했어.”

“하라며!”

“하란다고 다 하면 몸 안 좋은 사람이 있겠냐? 굿. 굿.”

“찬용이 좋았다.”

주지승이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묘한 기분이다.

고작 빈 봉으로 스쿼트 5세트를 했을 뿐인데 뭔가 해냈단 성취감을 느끼는 게 유난스럽지 않나?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듯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자랑스럽게 대하는 저들 덕에 조금씩 들뜨게 된다.

“좋아.”

이번에는 주지승이 자세를 잡았다.

워밍업으로 60㎏을 들어올렸던 그는 80㎏로 1세트(5회)를 진행했고 다음 세트에서는 100㎏(5회), 그다음 세트는 120㎏(5회), 140㎏(3회), 마지막 세트에는 160㎏(3회)으로 무게를 맞추었다.

세트가 진행됨에 따라 주지승이 운동하는 모습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마와 목에 핏줄이 돋아났고 온갖 인상을 다 썼으며.

마지막 세트를 진행할 땐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하는 등 힘에 부친 모습을 보였다.

저 탄탄하고 비대한 근육을 가진 사람조차 운동을 할 때는 필사적이란 사실에 한 번 놀랐고.

평소 그렇게 꺼려 했던 과장된 행동과 큰 목소리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고 체면이고 없이 오직 일어서는 데 집중하는 그를 응원하고 싶을 뿐이었다.

“셋! 좋아!”

“끄으으으윽!”

차지찬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주지승에게도 소리를 쳤다.

이젠 정말 힘들지 않나 싶었지만 그 목소리를 들은 주지승은 다시 한번 스쿼트를 시도했고 기어이 일어섰다.

숨을 한 번 고른 그는 천천히 다시 앉았고.

이번에야말로 다시 못 일어날 것 같았다.

“할 수 있어!”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싫어하던 큰 목소리가 자연스레 나왔다.

“2개 남았어요!”

차지찬이 날 슬쩍 보곤 미소 짓더니 계속해서 소리쳤다.

“라스트 투! 배에 힘 딱 주고. 스쾃!”

“흐읍!”

주지승이 오만상을 지었다.

주름이 잔뜩 진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지만 주지승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차지찬이 주지승 뒤로 갔다.

양팔을 주지승의 겨드랑이 사이로 넣어 혹시나 벌어질 상황을 대비했다.

“스쾃!”

“스쾃!”

차지찬이 마지막으로 소리쳤고 나 또한 따라서 응원했다.

“흐으으으읍!”

괴상한 소리와 함께 기어이 일어난 주지승은 곧장 바로 앞에 놓인 파워랙에 바벨을 올렸다.

“와! 형! 멘탈.”

차지찬이 두 손을 들어 주지승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했고.

주지승은 힘없이 그것을 받았다.

“어우. 이거 하나 더 못 해서 민망한데.”

“아니야. 아니야. 마지막 하나까지 하는 거 봤잖아. 멘탈 너무 좋다, 형. 진짜 리스펙.”

└진짜 저건 아무도 뭐라 못 하지

└ㅇㅇ 진짜 끝까지 갔던 거임

└주지승 평체가 얼마임?

└90은 돼 보이는데

└일반인이 160㎏ 저렇게 하면 괴물이지

└멋있네.

└저 멘탈이 진짜 대단한 거지. 나였으면 그 전에 이미 내려놨다

채팅창에서도 감탄과 칭찬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왜 운동을 같이 하려는지 알 것도 같다.

헬스장에 나가면 뚱뚱하다고 욕하거나 무안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던 내게.

차지찬은 운동 제대로 한 사람치고 그런 사람 없다고 말한 적 있었다.

이제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겠다.

힘든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뿐만 아니라.

같은 일을 겪었다는 공감대, 그렇기에 자연스레 피어오르는 유대감.

지금껏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감정 때문이지 않을까.

“어우. 좋아. 어우. 맛있다.”

어쩌면 단순히 고통을 즐기는 변태일지도 모르겠다.

* * *

스쿼트와 워킹 런지까지 마친 뒤에야 방송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주지승과 차지찬도 다리가 정상이 아니라 식당까지 가는 길이 아주 볼만했다.

자리를 잡고 오리주물럭을 주문하자 주지승이 입을 열었다.

“찬용아, 혹시 홍당무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무슨 말인지 짐작조차 안 되어 되물었다.

차지찬도 관심을 보였다.

“복분자라고 홍당무랑 계약한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앞으로 우대 조건을 삭제할 수도 있단 말이 돈다고 하더라고.”

“왜?”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나, 당장은 급하지 않으니 반찬가게가 성장한 뒤에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자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부적인 일이라 자세한 내용은 모른대. 복분자도 아는 동생한테 들었다고 하더라.”

“나도 들었어.”

차지찬이 나섰다.

“샘솔이라고 우리 헬스장 다니는 친구 있는데 아마 그 친구 얘기일걸? 최근에 홍당무랑 계약 얘기 나누고 있었거든. 지승이 형이 방금 얘기한 복분자랑 친하기도 하고.”

어느 한 쪽에서만 나온 얘기가 아닌 듯하다.

“샘솔이는 채널 좀 더 키워서 우대 조건으로 계약하고 싶었는데 당담자가 안 된다고 하더래. 누구더라. 김. 김…….”

“김서진?”

주지승이 이름을 대자 차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김서진 대리. 그 사람이 나중에 우대 조건이 사라질 수 있으니까 계약 진행해서 채널 성장하는 데 도움 받으라고 했대. 어제 운동 나왔는데 표정이 별로 안 좋더라고.”

“그렇겠지. 자기가 원하던 방향이랑 다르니까. 아니, 근데 묵은지 대리한테 들은 내용이랑 너무 다른데?”

묵은지와 김서진의 안내 내용이 정반대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같은 회사 소속 직원이 이렇게 상반되는 내용을 말하는 게 의아하다.

“그래서 이상한 거지.”

“넌 홍당무한테 별 얘기 못 들었어?”

주지승이 물었다.

“응.”

생각해 보니 미팅 이후로 몇 번 나누던 대화가 며칠간 끊겼다.

아직 계약 관계도 아니고 계속 연락할 필요는 없긴 한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뭔 일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차지찬이 팔짱을 꼈다.

“회사 방침이 달라진 걸 수도 있고. 아무튼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형밖에 없다. 난 진짜 몰랐어.”

주문한 오리주물럭이 나왔다.

빨간 양념을 잔뜩 머금은 오리고기가 양파, 부추, 깻잎과 어우러져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모습이 어찌나 기특한지 모른다.

* * *

“대리님, 오늘도 야근 하시나요?”

“네.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어느 날을 기점으로 사무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꽉꽉 채널 구독자 감소 요인 확인하셨습니까?”

“아뇨. 아직.”

“이번 주 회의까지 맞추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네~”

뭐라 콕 짚어 말할 순 없었지만 팀원들의 태도가 시원치 않았다.

저들끼리 웃다가도 묵은지 대리가 들어서면 조용해지고, 가끔 눈이 마주치면 서둘러 고개를 돌리는 일도 잦아졌다.

묵은지 대리가 이상함을 느낄 즈음 오형만 팀장이 그녀를 따로 불렀다.

“그래. 은지 대리. 앉아.”

“네.”

“다른 건 아니고 요새 별일 없나 싶어서.”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팀장이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곤 커피 잔을 들었다.

“다른 말씀 없으시면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팀장이 무슨 이야기를 꺼낼까 기다리던 묵은지 대리가 시간을 확인하곤 양해를 구했다.

오늘 내로 처리할 일이 있었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쯥. 기다려 봐.”

“네.”

“은지 대리가 열심히 하는 거 내가 잘 알아. 실적도 많이 냈고.”

“…….”

“그런데 팀원들하고 좀 잘 어울려 보는 건 어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자네 이번에 과장 승진 대상자인 건 알지?”

“네.”

“본인 업무 잘하는 거야 당연히 인정받아야 하는데. 관리직으로 올라오려면 그것만 가지고는 안 돼. 사람들을 이끌 수 있어야지.”

묵은지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들과 함께 일을 처리하려면 그들과의 소통도 중요했다.

이해 못 할 말은 아니었다.

“근데 요새 은지 대리한테 불만 있는 사람이 좀 있더라고.”

“어떤 문제인지 알려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팀장이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한숨을 쉬었다.

“혹시 계약하러 다닐 때 지금 당장 계약하지 않아도 된다. 성장한 뒤에 우대 조건을 받자. 그런 식으로 설명한 적 있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설명했지?”

“지금 당장 홍당무와 계약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리하게 계약을 권하기보다는 관계를 이어가고 신뢰를 주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채널이 성장하면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처럼 MCN과 매니지먼트를 겸하는 회사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때 계약을 체결하면 홍당무로서는 대형 인플루언서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니 양쪽 모두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래. 근데 너무 많은 사람한테 그렇게 권하니 요즘 팀원들이 계약하기 너무 어렵대.”

“…….”

“묵은지 대리랑 얘기하면 천천히 우대 조건 받을 수 있는데, 다른 직원들하고 얘기하면 당장 계약하자고 하니까. 유튜버들이 자네만 찾는다는 거야.”

“그렇습니까.”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의 미래를 보고 일하는 것도 좋아. 근데 당장의 성과를 보이는 것도 우리 일이야. 그리고 알다시피 우리 기본급보단 성과급이 크잖나. 다른 직원들하고 호흡 맞춰가면서. 음?”

묵은지 대리는 팀장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단기적 성과를 거두는 일 역시 중요하지만, 회사의 미래와 비교할 순 없는 법이었다.

당장 홍당무의 도움이 필요없는 사람과 계약했다가 홍당무의 시스템에 장점을 느끼지 못하여 계약 만료 이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홍당무의 미래는 없었다.

“말씀하신 내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장의 성과를 위해서 홍당무의 미래를 팔 순 없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야?”

“지금 당장 홍당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우리 회사의 장점을 어필해 계약을 진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홍당무에게 얻을 게 없는 사람을 무리해서 계약하면, 유튜버 입장에선 돈은 돈대로 나가고 얻는 것은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재계약을 할 리 없습니다. 그런 경우가 많아질수록 홍당무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신뢰를 없어질 겁니다.”

“그러니까 그거 다 은지 대리 예상이잖아.”

“…….”

“그런 일이 지금 실제로 벌어졌냐고. 아니잖아.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해서 지금 분란을 만드느냐 이 말이야.”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걸 알면서 눈을 가릴 순 없습니다.”

“묵은지.”

팀장이 목소리를 깔았다.

“네가 팀장이야? 아니면 뭐 사장이야? 왜 주제 넘게 그런 일을 신경 써?”

“…….”

“내가 팀장이잖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가타부타 무슨 말이 많아? 너만 생각 있어?”

묵은지 대리는 팀장이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말하는 건 나중의 문제잖아. 어? 내가 말하는 건 지금 문제야. 팀원들이 너 때문에 매일 같이 찾아 와. 그거 알아?”

“조금 전 말씀하신 문제 때문입니까?”

“그래.”

“그렇다면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서 사업파트너에게 감언이설도 마다하지 않는 팀원을 불러다 말씀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뭐?”

“저는 제가 왜 행동을 고쳐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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