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47화 (47/120)

치팅데이 47화

11. 대기업(2)

백반 토론을 마치고 요새 자주 다니는 오리고기집을 찾았다.

오리고기는 닭, 정확히는 닭가슴살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맛있어서 소중한 단백질 보충원으로 애용 중이다.

백우진은 방실방실 웃으며 불판 위에서 자글자글 익기 시작한 생오리로스를 바라보았다.

백반 토론에서 첫 승을 거두어 여간 기쁜 모양이다.

이럴 때는 한번 추켜세워 줘야 한다.

“아, 거기서 그렇게 말리네.”

“속았죠?”

“뭘?”

“우레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이제 보니 우레기를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우레기를 우럭 더하기 쓰레기로 말할 거라고 예상하고, 반격을 준비한 것이었다.

확실히 그런 함정까지 준비할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완전 속았네.”

피식 웃으며 고기를 뒤집었다.

“나 오늘 완전 많이 먹을 거야. 각오해.”

“그래. 많이 먹어.”

노릇노릇하게 익은 오리 고기를 백우진이 앉은 방향으로 밀어주었다.

녀석은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쌈을 쌌다.

“오리 먹은 내 눈은 희번DUCK. 우리 형이 사 준 오리 꿀꺼DUCK.”

신났다. 신났어.

백우진은 되도 않는 랩을 하며 상추 쌈을 싸 먹었다.

“으음~”

잘도 먹는다.

“이리 와서 빌지 좀 봐 무릎이 털퍼DUCK. 저리 가서 계산하는 찬용 맘이 덜커DUCK.”

역시 오리 구이엔 부추랑 마늘이 찰DUCK이다.

“음해 모함하던 찬용은 악DUCK. 정의를 지킨 나는 천연DUCK스럽게 먹지. 좋아요. 알림 설정. 구DUCK 필수.”

듣다 보니 리듬이 제법 덩기DUCK 쿵 더러러러 쿵기DUCK 쿵 더러러러스럽다.

아이보오리 색깔의 오리 껍질은 칼로오리가 높긴 해도 포기할 수 없다.

“야. 우진아.”

“응. 말리지 마. 오늘 여기 거덜낼 거야.”

백우진이 열심히 쌈을 싸며 답했다.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러든가. 그게 아니라 너 법인 만들 때 임원 두고 만들었어?”

“응.”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법인 만들게?”

“세금 문제도 있고. 아무래도 혼자 운영하기 슬슬 빡세더라고. 다음 달이면 우리 백반따라 녹화도 해야 하잖아.”

반찬가게가 성장함에 따라 일을 혼자 처리하기 벅찼다.

외주로 받던 편집 일은 전부 정리했지만, 내 방송 편집하기에 급급한데다 방송 콘텐츠도 준비해야 하니 하루라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또 광고, 합방, 강의 등 업무 관련 연락을 읽고 답하다 보니 요새는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는데.

그 와중에 다음 달부터는 박상철 PD와 ‘백반따라’를 촬영하게 되니 이젠 한계다.

회사를 설립해 직원을 둬야 한다.

편집이든 콘텐츠 기획이든 잡무든 나 대신 처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치. 혼자 감당하긴 힘들지.”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으니 여러모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거다.

“임원 두는 게 나아? 혼자서도 법인 만들 순 있던데.”

“만들 수야 있는데 조사보고자가 필요해. 주주가 아닌 임원 또는 공증변호사한테 맡겨야 하는데 변호사 선임하면 돈이 많이 나가.”

“얼마나?”

“내가 알아봤을 땐 80~100만 원 정도더라.”

“음.”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러지?”

“그치. 내가 같이 일하던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님한테 부탁하는 게 제일 나아. 나도 처음엔 부모님하고 만들었어.”

과연 그렇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임원 자리에 앉힐 순 없다.

가족을 임원으로 세우는 편이 마음 편하다.

“근데 형, 법인 만들면 좀 편해질 것 같지? 아니야.”

“왜?”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사람 쓰는 일이야. 솔직히 이력서, 자소서, 면접 가지고 그 사람이 일을 잘할지 못할지 어떻게 알아.”

그건 그렇다.

사람의 능력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알기 힘들다.

“게다가 일은 잘해도 결이 안 맞는 사람 있잖아.”

“그치.”

“또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연봉도 많이 챙겨줘야 하고. 솔직히 일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은 최저시급으로 쓸 수 있어도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

“그치.”

“나도 지금 있는 사람들 잡아두려고 매년 연봉 올려주고 있어. 휴가도 많이 주고.”

백우진이 내가 편집 외주를 그만한다고 할 때 왜 그리 붙잡았는지 알 것 같다.

그 입장이 돼보니 새로운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어쩌지.”

“면접 때 첫인상도 중요하고. 실무 경력이 있는지도 파악해야지. 이제 시작이니까 난 어느 정도 경험 있는 사람하고 합 맞추는 게 좋아 보여.”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리가 없다.

“넌 어땠는데?”

“난 지혜. 대학 동기잖아. 지혜가 자기랑 진한 후배도 데려왔고. 근데 처음부터 가르치니까 돌겠더라. 바빠서 사람 뽑았는데 교육 때문에 더 바빠.”

지금 내겐 그럴 시간이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보통 1년은 해야 자리잡지? 근데 1년 동안 다니잖아? 안 그러던 사람도 슬슬 대충대충하게 되더라. 거진 다 아니까 가라치는 일도 생기고. 어휴. 진짜 내가 그놈 생각하면 지금도 열이 뻗쳐.”

백우진이 쌈을 우적우적 씹었다.

“하. 쉽지 않네.”

음식을 가득 머금은 백우진은 고개만 끄덕였다.

“차라리 홍당무 같은 곳 찾아볼까 싶기도 해.”

“으음? 으으으읍.”

“그래. 홍당무랑은 안 할 건데 비슷한 업무 해주는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지승이 형한테 물어 보니까 토마토는 아니더라고. 거긴 완전 그냥 콘텐츠 제작에 집중한다더라.”

“으흠. 으흠.”

지금 내게 간절한 역할은 매니지먼트다.

내가 방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내게 오는 연락을 대신 받아주고, 일정을 조율하고, 방송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조사하면서 채널 관리도 맡길 수 있는 기업이 필요하다.

그걸 직접 만들려고 하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부담스럽고.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를 찾으니 큰 규모는 홍당무뿐이다.

선택지가 없다.

묵은지가 홍당무 엔터테인먼트를 계속 다녔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텐데 정말 아쉽다.

“……묵은지.”

“역시 맛잘알. 사장님, 묵은지 있어요?”

“네. 가져다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많이 알진 못하지만, 아니, 묵은지 한 사람만 알지만 확신한다.

그 사람이라면 반찬가게를 훌륭히 관리해 줄 거다.

스마트폰을 꺼내니 벌써 오후 8시다. 연락을 하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다 싶지만 마음이 급하다.

묵은지가 홍당무 엔터테인먼트를 그만둔 지 벌써 한 달이 흘렀고 그런 인재를 다른 회사에서 마다할 리 없다.

“쯧.”

이미 다른 회사에 취직했겠지.

생각해 보면 대기업 다니던 사람의 연봉을 내가 맞춰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니지. 다른 회사 다니면 거기선 매니지 업무할 수도 있잖아.”

연락해서 나쁠 것 없다.

“악.”

백우진이 소리를 질러서 고개를 드니 황망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바닥에 오리고기 한 점이 떨어져 있었다.

쌈을 싸다가 흘린 모양이다.

촐싹거리며 먹더니 기어이 소중한 고기 한 점을 놓친 것이다.

동족을 3인분이나 먹어 치운 악독한 조랭이떡으로부터 도망친 가련한 오리고기를 추모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탈DUCK.”

“오?”

* * *

“그래서 대리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잠깐이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서요. 조건은 최대한.”

“안 됩니다.”

“맞춰서. 예?”

한 달 만에 만난 묵은지는 다행히 직장을 구하지 않은 상태였다.

기쁜 마음에 내 상황을 설명했는데 조건을 제안하기도 전에 거절당했다.

다른 말도 아니고 싫다는 말로 거절당하니 당황스럽다.

“반찬용 씨가 말씀하신 바는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 그 일을 감당할 순 없습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그런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던 건 홍당무라는 기업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반찬용 씨는 현재 저를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아는 사람이 있고, 관련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있긴 해도 그건 홍당무 기획지원팀 대리였기에 가능한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솔직하다.

그리고 본인을 철저하게 객관화시킨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줄 알고, 무엇을 못 하는지 경계가 명확하니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그렇게 오만하지 않았던 거다.

“환경 차이는 인지하고 있어요. 저는 대리님, 아니, 은지 씨랑 함께 처음부터 시작할 생각이에요. 홍당무에 계실 때 말씀하셨던 걸 바라진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묵은지가 날 빤히 바라보았다.

관찰인지 의심인지 몰라도 피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무리해서 시선을 맞추니 인상을 쓴다.

뭐가 잘못됐나 싶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신뢰를 주려면 눈을 똑바로 보라고 하잖아요.”

“부담스럽습니다.”

정말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머쓱해져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묵은지가 속내를 보였다.

“반찬용 씨의 시선도 처음부터 회사를 세우는 일도 모두 부담스럽습니다.”

어쩔 수 없다.

사실 몇 번 만나고 연락한 걸 제외하면 그녀와 나는 접점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한 달 동안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믿어 달라고 하면 나 같아도 난감할 것이다.

그래도 아쉬우니 준비한 조건만 제시하고 더는 고집부리지 말자.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 이상 설득하려고 들면 실례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부탁드릴게요.”

준비해 둔 연봉 계약서를 꺼냈다.

“홍당무 같은 대기업에 다니시던 분이라 연봉을 얼마나 받으시는지 모르겠어요. 턱없이 부족할 수 있지만, 저로서는 최선입니다. 제가 얼마나 간절한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묵은지는 고개도 숙이지 않고 눈동자만 움직여 계약서를 확인했다.

이렇게 단호한 사람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찾아왔는데,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한 조건이었는데 턱없이 부족했나 보다.

역시 대기업 다니던 사람은 다른 모양이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묵은지가 고개를 들었다.

“네?”

“하겠습니다. 사장님.”

“예?”

묵은지는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 물었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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