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58화 (58/120)

치팅데이 58화

13. 신호(3)

“그래서. 뭐가 문제야?”

차지찬이 물었다.

“뭐가?”

“부족한 영양소 있으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었잖아. 근데 왜 또 탄수화물 제한하는 식단을 했냐고.”

“힘드니까.”

차지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야, 탄수화물 참는 게 더 힘들겠다.”

“그게 아니라 밥을 계속 해 먹는 게 힘들다고.”

방송과 편집으로만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보내고 1~2시간씩은 꼭 운동을 하고 있다.

항상 필요하진 않지만 대본 작성하는 날도 있고, 최근에는 묵은지에게 편집도 가르치고 있다.

묵은지가 방송 소재 찾는 일과 대본 작성, 회사 업무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과로사했을 거다.

오죽하면 집 청소할 시간도 없을까. 삼시세끼 차려 먹고 치울 힘도 시간도 없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니 시청자들 대다수가 공감했다.

└그렇긴 하지.

└나도 퇴근하고 운동하고 돌아오면 뭐 할 수가 없더라. 그냥 쓰러져 자게 되던데.

└퇴근하고 운동하는 것도 대단한 거짘ㅋㅋㅋㅋ 난 퇴근하면 유튜브 틀어놓고 멍 때리고 있음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만ㅋㅋㅋ

└아니 여기 헬창들만 있는 곳 아니었어?

└습관이 들면 괜찮아지는데 익숙해지기가 어렵지.

└근데 진짜 7~8시쯤 퇴근해서 집에 오면 1시간 운동하는 것도 빡셈. 그 와중에 청소, 빨래, 밥 차려 먹는다고? 난 못 함 ㅇㅇ

└ㅋㅋㅋㅋ나처럼 출근 안 하면 되는데 취직해서 운동도 못 하넼ㅋㅋㅋㅋ 어라? 왜 눈물이?

차지찬도 고민되는지 주먹을 입술에 대고 한동안 고민했다.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긴 하지. 나처럼 생계랑 직결되는 일이 아니니까.”

보디빌더 같은 사람은 운동과 식단이 업무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나 다른 사람들은 달리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

일과 운동, 식단을 함께하기에는 현실적인 무리가 따르고, 그러다 보니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것이 정답과 다소 거리가 있다 해도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직접 해 먹었지. 근데 도저히 시간이 안 되니까 다이어트 도시락 팔더라고. 키토제닉 방식으로 매일 배달해 주는 게 있는데 그거 먹고 있어.”

“답답하네.”

차지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어트 방법이 워낙 잘못 알려진 게 많으니 그런 업체도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한단 말이잖아.”

“그치.”

대화를 나누던 차.

오늘 방송이 겹쳐 늦게 도착한 주지승이 손을 흔들었다.

“형.”

주지승이 씩 웃으며 등을 툭 쳤다.

원래도 서로 믿고 의지했지만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 이외에 ‘언제까지 뚱할 거야?’도 함께하면서 부쩍 친해졌다.

“형, 지금 아주 심각한 얘기 나누고 있었거든.”

차지찬이 주지승에게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요약해 전달했다.

주지승도 공감하는 모양이다.

“그치. 나도 직접 음식을 하는 사람이니까 식단 관리가 어느 정도 되는데, 관련 없으신 분들이 운동도 하고 식단도 직접 하긴 힘들지.”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까지 있으니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어디서 봤는데 요새 1인 가구 비만률이 엄청 높대.”1)

“이런 이유 때문인가?”

“그치? 퇴근하고 돌아오면 힘이 없으니까 배달 음식 주로 먹고. 그러다가 살찌고.”

“와. 이거 심각하네.”

차지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의지도 중요하지만 환경이 이래 버리면…….”

나도 차지찬도 주지승도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자!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오늘은 3대 운동 중 하나. 전신 근육을 사용해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드는 운동. 시간이 없으면 이것만 해도 된다는 그 운동! 데드리프트입니다.”

난 죽었다.

* * *

‘언제까지 뚱할 거야?’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쑤셔서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대로 자도 좋을 것 같은데, 내일이 목요일이라 백반 토론을 준비해야 한다.

묵은지가 정리해 준 자료 덕분에 자료 찾을 시간은 아낄 수 있지만, 재료만 있다고 말이 나오는 건 아니다.

몇 가지 상황을 상정해서 멘트를 준비하는 편이 토론을 매끄럽게 진행하기 유리하다.

특히 내일은 질 수 없는데.

한 번 이긴 걸로 콧대가 높아진 백우진을 단단히 혼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끄으응.”

정리된 문서를 한 번 읽고 필요한 정보를 찾은 뒤 멘트를 정리하니 어느덧 12시가 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허기가 밀려들었다.

저녁을 6시에 먹었으니 배가 고플 시간이긴 한데, 지금 뭘 먹었다간 자는 시간이 늦어질 테고 내일 컨디션에 문제가 생긴다.

무엇보다 다이어트에 방해가 된다.

“에휴.”

물이나 한 잔 마실 생각으로 일어나 집을 둘러보는데 정말 돼지우리가 따로 없다.

빨래 바구니와 쓰레기통은 넘쳐 흐르고 택배 박스는 현관 앞에 쌓여 있다.

바닥 청소를 안 한 지 오래라 먼지가 깔려 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데 정말 피곤해서 더는 못 움직인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청소하자고 마음먹고 물을 마신 뒤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 보니 이불 빨래도 해야 한다.

나는 분명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집안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일도 하는지, 나만 이렇게 힘든지 의문이다.

‘의지도 중요하지만 환경이 이래 버리면…….’

문득 오늘 저녁에 차지찬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계속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 언젠가 봤던 기사 때문일 것이다.

비만이 가난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소득과 재산이 반영된 건강보험료 분위와 비만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논제를 제시하고.

그 원인이 식단 차이에서 온다는 결론이었다.

좋은 영양소가 들어 있고 열량이 낮은 건강 식품이 정크푸드에 비해 비싼 탓에.

주머니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정제 음식, 영양소가 편중된 음식을 먹게 된다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부족한 만큼 운동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때문에 비만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당시에도 나는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았는데.

이제는 좀 더 피부에 와닿는다.

“밥이라도 좀 편하게 먹으면 좋겠는데.”

요즘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먹방 콘텐츠를 찍으러 식당을 알아보면, 불과 몇 달 전에 올라온 가격 정보가 틀린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만큼 짧은 기간에 음식값이 올랐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한 그릇에 5,000원 하는 국밥집도 많았는데 요새는 10,000원 하는 곳이 일반적이고.

김밥이 예전 국밥 가격만큼 올랐다.

내가 정기 배달로 받아 먹는 키토제닉 도시락도 하나에 10,000원 꼴이다.

언젠가 뉴스에서 직장인들도 점심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고 하던데.2)

편의점 도시락은 식이섬유와 비타민 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야채가 없고 가공육으로 이루어진 반찬이 주를 이루다 보니 영양 불균형이 와 비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지승과 차지찬의 논리에 따르면 그렇게 영양 불균형이 오면, 몸에서 부족한 영양소를 확보하기 위해 음식 흡수율을 높여 살찌기 쉬운 체질이 되고 식욕이 늘어난다고 한다.

몸이 신호를 보내는 거다.

우리 지금 위험하다고 말이다.

“…….”

일어나 침대에 바로 앉았다.

당뇨병 판정을 받고 위기의식이 생겨 노력하고 있지만, 이대로 얼마나 더 싸워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저번에 빵으로 폭식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마음이 무겁다.

이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부담도 무겁다.

“아니지. 아니지.”

생각을 안 좋은 방향으로 해서 좋을 것 없다.

내일 할 일도 있으니 잠이나 자자.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그래도 생각을 떨쳐내지 못해 오늘 달린 댓글이나 볼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켰다.

└당뇨 아저씨 살 많이 빠졌는데 누가 뭐라 함?

└3달 만에 35㎏ 빼고도 욕 먹넼ㅋㅋㅋ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키토제닉 식단이 문제가 있다는 내용에는 의문이 드네요. 실제로 탄수화물을 제한해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이 있는데, 부정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아닠ㅋㅋㅋ 예전 영상 보고 오라고. 지금은 턱이 보이잖앜ㅋㅋ

오늘 방송을 본 사람들이 힘이 나는 댓글을 달아주었다.

키토제닉 식단이 잘못되었다는 차지찬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왜 운동 더 빡세게 안 시키냐는 사탄도 있다.

└근데 나도 고민이긴 함.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퇴근을 걸어서 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아무 생각도 안 듦.

└애초에 회사생활 하면서 식단하는 게 말이 안 됨. 피곤해 죽겠는데 누가 아침 차려 먹고 도시락 싸서 점심 먹어.

└ㄹㅇ 저녁 시간 되면 힘들게 일했으니 저녁이라도 맛있는 거 먹을 생각 들던데.

“…….”

역시 다들 생각이 비슷하다.

나도 스트레스를 받고 힘드니까 맛있는 거라도 먹어서 삶의 낙을 찾았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몸이 망가지는데, 지식으로는 알고 있어도 올바른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건강하고 맛있고 합리적인 가격의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식당이 있다면 매일 갈 텐데.

“어?”

문득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당뇨환자가 갈 수 있는 식당이 적어서 항상 불편을 느꼈다.

주지승에게 요리를 배워서 한동안 직접 해먹었지만 그마저도 시간과 힘이 부족해 오래 가지 못했다.

대체품으로 다이어트 도시락을 사 먹었지만 그마저도 잘못된 식단이라 영양 불균형이 왔다.

“내가 차릴까?”

당장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영양사처럼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요리 실력도 안 되며 자본도 없다.

하지만 영양사보다는 못해도 지식을 갖춘 사람, 요리 잘하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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