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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데이-63화 (63/120)

치팅데이 63화

14. 찍먹(5)

나도 묵은지도 밥맛을 객관적으로 보긴 힘들지만 둘 다 맛있게 먹었다는 내용으로 영상을 마무리했다.

“만족하십니까?”

묵은지가 저당밥솥이 어떠냐고 물었다.

“네. 내일 일반 밥솥으로 지은 밥이랑 비교해 봐야겠지만 괜찮네요.”

혈당 차이가 적어도 20 이상 난다면 광고를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내일 확인해 보고 결과 나오면 연락해 보죠. 느낌으로는 광고해도 될 것 같아요.”

“진행하실 계획이라면 업체측이 좀 더 관심을 보일 만한 일이 있습니다.”

“관심이요?”

“준비하고 계신 도시락 사업에 이 밥솥을 사용한다는 조건이라면 광고비를 더 높일 수 있습니다. 대표님뿐만 아니라 짐꾼, 우지니, 반야식경이 함께하는 일이니까요.”

“맞다.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어차피 다이어트 도시락이니까.”

“의논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럴게요.”

내가 사람을 정말 잘 들이긴 했다.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툭툭 던지는데 모두 그럴듯한 이야기다.

어제는 도시락 사업을 준비한다고 하니 홍당무 엔터테인먼트를 다닐 적에 연락하던 기자들을 통해서 적당한 시기에 기사를 배포하겠다고 했다.

정말 가능하냐고 물으니, 무엇이든 기사화되길 바랄 순 없지만 조회 수가 보장되는 일이라면 기자들도 반긴단다.

“그럼.”

묵은지가 본인 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편집 프로그램을 다뤘다.

책과 유튜브 강의 영상을 번갈아 보면서 따라하는데, 여러모로 믿음직스럽다.

“나도.”

리뷰 과정을 모두 담았지만 광고 영상이라면 그럴듯한 장면이 필요하다.

조명을 설치하고 책상 가운데에 밥솥을 올려둔 뒤 여러 각도에서 인서트를 땄다.1)

그런 뒤에는 2시간 뒤로 예정된 백반토론을 준비했다.

저번 주 토론에서 진 백우진이 주제와 입장을 정했는데, 빅맥 VS 와퍼라서 만만치 않다.

* * *

“나 왔어.”

백우진이 사무실을 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돌아 보니 녀석이 묵은지에게도 인사했다.

“누나, 잘 지냈어?”

저번 주 목요일에 처음 만나고 오늘 세 번 봤으면서 다짜고짜 누나라고 한다.

묵은지 성격상 저걸 곱게 받아들일 리 없다.

역시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백우진이 종이가방에서 작은 보노보노 인형을 꺼내니 묵은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나 카톡 프사 보니까 보노보노 좋아하는 거 같아서. 입사 위로 선물.”

위로라니.

“정말 받아도 됩니까?”

“그럼. 악덕 사장 도와주느라 힘들지?”

“감사합니다.”

“엄청 힘들었나 보다. 볼 때마다 힘이 없어 보여. 찬용이 형이 괴롭혀?”

“대표님은 항상 잘해주십니다. 힘들어 보이는 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아파 보이는 건 아프기 때문입니다. 기분 좋아 보이는 건 기쁘기 때문입니다. 아내와는 결혼기념일이 같습니다 같이 어디서 많이 듣던 발화법이다.

“진짜? 왜? 어디 아파? 못 잤어? 배고파?”

“괜찮습니다.”

“형, 누나 맛있는 것 좀 사 드려.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월급을 충분히 받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살 적습니다.”

백우진이 묵은지를 등지고 날 향한 채 입을 쩍 벌렸다.

동공이 떨리더니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돌아섰다.

“진짜 미안해요. 나 원래 철딱서니 없어서 보는 사람마다 일단 형, 누나라고 하거든요. 진짜 몰랐어요. 미안해요.”

자기보다 누나라고 생각할 때는 반말하더니 어리다고 하니 존대한다.

이상한 놈이다.

“괜찮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

묵은지가 자리로 돌아가 보노보노 인형을 키보드 옆에 놓았다.

백우진은 그녀와 내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왜 말 안 해줬어.”

“뭘?”

“묵은지 PD님 나보다 어리다고.”

“물어봤어야 알지.”

“친해지고 싶었는데 어색해졌잖아.”

“네가 왜 PD님하고 친해져.”

“모자른 우리 형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니까.”

“모자라?”

“생각해 봐. 대체 여기가 뭐가 좋다고 대기업 마다하고 들어오는데. 일 잘한다고 소문난 사람이.”

뭔가 반박하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PD님 도망 가기 전에 잘해. 워커홀릭으로 듣긴 했는데 너무 피곤해 보이더라.”

다른 이유가 있지만 개인적인 일이니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진짜 형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직원 괴롭히면 나중에 크게 돌아와. 다 업보야.”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그럼 됐고.”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았다.

“우리 일 잘하는 PD님이 괜찮은 제안을 했는데. 나 지금 저당밥솥 업체랑 광고 얘기하고 있거든?”

“오~”

백우진이 두 손을 휘적이며 좋아했다.

“근데 우리 도시락에 밥 넣잖아. 그 업체 밥솥으로 지어서 팔면 어떠냐고 하더라고?”

“영상 하나 올리는 게 아니네. 광고비 책정할 때 좀 더 받을 수 있겠네.”

“그치. 게다가 너랑 지승이 형, 지찬이 형 이름도 빌리는 거니까.”

“우리한테도 뭐 좀 떨어져?”

“그렇게 하려고.”

“그럼 완전 좋지. 근데 진짜 혈당이 안 올라?”

“그런 거 같더라. 오늘 밥 해먹으니까 평소보다 혈당이 덜 오르더라고. 내일 일반 밥이랑 비교해 보고 진행하게.”

백우진이 입술을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다는 의사 표현이다.

“그건 그렇게 하면 좋은데. 아, 나 너무 떨려.”

“백반따라?”

오늘 8시 45분에 ‘백반따라’ 첫 회가 방영된다.

뉴스가 끝나고 드라마가 나오기 전 15분 동안 짧게 나오는데.

나름 황금시간대라 할 수 있으나 WTV에서도 새롭게 시도하는 방식이라 성공 여부는 아무도 예측 못 하고 있다.

“응. 오늘 반응이 좀 있어야 이번 촬영도 힘낼 수 있을 텐데.”

“그러게. 뭐, 잘 되겠지.”

“오늘 토론 끝나면 홍보하는 거 잊지 말구.”

“일찍 끝내고 다 TV 틀라고 해야지.”

“아니야. 8시 45분까지 하다가 바로 TV로 유도하는 게 맞아. 귀찮거나 잊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가?”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우진이 하는 말이니 신뢰가 생긴다.

오늘 방송은 평소보다 길게 해야겠다.

“야, 근데 오늘 뭐 준비했어?”

“그거 알려주면 또 나 물 먹이려고.”

“야, 내가 언제 그랬냐?”

“웃기시네! 뭐? 촉수를 좋아해? 내가 진짜 형이 형만 아니었으면 어?”

“동생이었으면 내가 져줬지. 네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알긴 해?”

“그럼. 그럼.”

백우진이 가슴을 내밀고 어깨를 폈다.

매번 느끼지만 다루기 쉬운 녀석이다.

* * *

“다들 8시 45분 WTV 잊지 말고 꼭 보세요.”

백반토론을 마치고 곧장 WTV를 틀었다.

“으으. 떨려.”

백우진이 몸서리를 쳤다.

“너 TV 많이 나갔잖아.”

“할 때마다 다르지. 나 물. 형도 마실래?”

“응.”

백우진이 물을 가지고 와서는 내 팔을 찰싹 때렸다.

“형, PD님 잘해드리라니까?”

“어?”

“아직도 계시잖아. 이거 다 노동법 위반이고 나중에 형한테 안 좋다니까?”

“알아. 나도 몇 번을 말했는데 고집이 얼마나 센지. 이 회사 망하면 자기도 실업자 된다고 신경 쓰지 말래.”

“정말 그렇게 말해?”

“응.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아예 오후 출근하기로 했어. 오전에 처리할 일 많이 없으니까.”

백우진이 밖을 한 번 살피고 목소리를 낮췄다.

“형도 걱정이고 PD님도 걱정이다. 둘 다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그 점은 나도 걱정이다.

묵은지는 본인이 얼마나 심각한 병을 가졌는지 모른다.

자각을 해야 병원을 알아봐 주든 휴가를 주든 도울 수 있는데,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걱정만 쌓일 뿐이다.

“아, 시작한다.”

백반따라가 시작되었다.

강릉에서 먹었던 장칼국수와 짬뽕빵 생각도 나지만, 여러모로 프로의 손이 닿았단 느낌이 강하게 든다.

“와. 이걸 이렇게 편집하네.”

“그니까. 자막도 잘 달고.”

반나절 촬영본이 15분 안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다.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고, 흥미를 끌 만한 요소만 추려서 이보다 깔끔할 수 없다.

편집 일을 꽤 했지만 역시 방송국은 다르다 싶다.

“괜찮다. 그치.”

“어. 재밌는데?”

첫 회를 본 감상은 매우 긍정적이다.

우리가 직접 촬영한 프로그램인데도 재밌게 느껴지니 다른 사람들한테도 분명 먹히리란 확신이 든다.

박상철 PD가 괜히 방송계에서 인정받는 게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반응 좀 볼까?”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며 백반따라를 검색했다.

이 정도면 분명 반응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시청자들의 의견을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글이 생각보다 없다.

[강릉은 칼국수 하나에 3000원밖에 안 함?] [+1]

[짬뽕빵 특이하네]

[백우진하고 같이 나온 애 왤케 부하냐ㅋㅋㅋ] [+3]

그나마 올라온 글에 댓글도 몇 안 달린다.

나도 백우진도 당황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여러 사이트를 다닐 뿐이었다.

“우리 게시판 말곤 언급이 거의 안 되는데?”

한참 뒤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잘 안 됐나?”

“PD님한테 물어볼까?”

“아. 아니.”

박상철 PD에게 물어보면 확실한 답이 나오겠지만, 이렇게나 반응이 없는데 괜한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렵다.

“처음에는 원래 이러지?”

첫 회부터 잘 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될까 싶어 물었는데 백우진의 표정이 좋지 않다.

“상철이 형 신작이라서 홍보 크게 했잖아.”

“미치겠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에이. 밥이나 먹으러 가자.”

마음이 싱숭생숭할 땐 맛있는 게 최고다.

일어서는데 나와 백우진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깜짝 놀라 확인하니 박상철 PD가 보낸 메시지다.

“아. 어떡해. 확인해? 말아?”

“뭐 평생 안 볼 거야? 열어 봐.”

“네가 열어 봐.”

“형이 봐 봐.”

“못 봐. 나 못 봐.”

“나도 못 봐. 어떡해.”

백우진과 서로 먼저 확인하라가 투닥거리는데 문이 열렸다.

묵은지가 들어와 내 핸드폰을 가져갔다.

“……뭐래요?”

“다음 촬영 잘해보자는 내용입니다.”

“아.”

역시 성적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음에 더 잘해보자는 말로 돌려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첫 회 시청률이 잘 나왔으니 다음 촬영 용돈은 넉넉히 드리겠다고 하십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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