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66화 (66/120)

치팅데이 66화

15. 진주(3)

직원이 상을 차려주었다.

깻잎, 상추 같은 쌈채소와 잡채, 샐러드, 나물, 순두부가 그릇에 정갈히 담겨 나왔다.

“이제 좀 괜찮아?”

백우진이 저혈당 증상이 나아졌는지 걱정스레 물었다.

“어. 괜찮은 것 같은데?”

냉면 먹기 직전에는 정말 몸이 떨리고 약간 어지럽기도 했는데 식사를 하고 나니 많이 좋아졌다.

이래서 의사가 주스처럼 흡수가 빠른 당분을 항상 챙겨 다니라고 한 듯싶다.

“장어 나왔습니다.”

이 집은 장어를 구워서 가져다 주는데, 생김새가 보통이 아니다.

“비주얼 장난 아니다.”

백우진도 감탄했다.

양념 구이 한 마리, 간장 구이 한 마리를 주문했는데 간장 구이가 특히나 맛있어 보인다.

“잘 먹겠습니다.”

맛을 제대로 느끼고자 다른 야채 없이 장어만 한 점 집어 먹었다.

간장 양념이라서 간이 셀 줄 알았는데 슴슴한 편이다.

“맛있다…….”

슴슴한 양념은 어떻게 조리했는지 놀랍도록 부드러운 식감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장어가 약간 부담스럽지 않나? 이건 진짜 부드럽다.”

“그치?”

장어는 많이 먹으면 느끼하고 기름기가 많이 부담스러운 면이 어느 정도 있는데.

이 집 간장 구이는 느끼하지 않다.

계속 먹고 싶어진다.

“양념도 맛있는데 진짜 잘 구웠다.”

“진주는 구워서 준대.”

차지찬에게 들은 내용을 백우진에게 알려주었다.

“그러게? 보통 직접 구워 먹잖아.”

“진주에선 그렇대.”

“어떻게 알았어?”

“지찬이 형이 알려주더라. 여기 사람이잖아.”

“아. 그래서 맛집도 잘 알았구나.”

장어는 이곳 Y식당과 상봉동에 있는 S식당을 가르쳐 주었는데, 가까운 곳이 낫겠다 싶어서 이쪽으로 왔다.

여기도 맛있으니 그쪽도 기대해 볼만하다고 생각하며 깻잎과 상추를 겹쳤다.

양념 구이를 한 점 넣고 양파절임과 마늘을 곁들여 한 입에 넣었다.

간장구이뿐만 아니라 양념구이도 간이 세지 않다.

맵지도 않아서 부담없이 매콤함과 장어맛을 즐길 수 있다.

“양념도 맛있다.”

“매울까 봐 걱정했는데.”

“그니까. 난 왜 그렇게 다들 매운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맞아. 매운 걸 먹고 싶으면 캡사이신 먹으면 되지. 뭐 하러 비싼 음식에 버무려 먹어.”

“그치. 그치.”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먹다보니 두 마리를 금세 다 먹고 말았다.

백우진을 쳐다보니 녀석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더 먹고 싶지?”

“응. 형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래도 가격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여기서 추가 주문을 하면 다른 집에 가기 어려워질 수 있다.

목적지가 두 곳이나 남았으니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 육회비빔밥이랑 스페인 음식도 먹어야 하는데.”

“……으으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서, 검증되지 않은 식당을 선택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일어나자. 맛은 봤잖아.”

“한 마리만?”

“……안 돼. 한 마리만 더가 가능할 리 없어.”

“지찬이 형이 알려준 데가 여기보다 더 맛있다는 보장이 없잖아.”

“우진아. 돼지는 도전에서 시작되는 거야. 아무리 맛있는 곳이 있어도 내일은 또 다른 곳을 찾아가는 용기가 있어야 진짜 돼지가 될 수 있는 거라고.”

“돼지 되고 싶지 않은데.”

백우진의 배를 콕 찔렀다.

살이 쑥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아주 잘 먹은 고급 보디다.

“지방이 많고 살이 부드러운 걸 봐서 이미 훌륭한 돼지야.”

“지는.”

“난 베요타. 도토리 먹고 자란 순종 이베리코지.”

“프핳!”

백우진이 크게 웃었다.

내 고오급 유우머를 알아 듣는 걸 보니 이 녀석도 어쩔 수 없는 아재다.

“아 근데 진짜 아쉽다.”

“그러게.”

나도 백우진도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들었다.

“한 마리만 더 먹을까?”

“딱 한 마리?”

“진짜 한 마리. 더 이상은 안 돼.”

“민물로?”

“간장?”

“쓰읍. 난 양념도 맛있던데.”

“어떻게 할까.”

* * *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영수증에 96,000원이 찍혀 있다.

“……우리 이렇게 많이 먹었어?”

멍하니 영수증을 보고 있으니 백우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58,500원에 96,000원. 20만 원이었으니까…… 45,500원.”

“겨우 두 끼 먹었는데 15만 원을 썼다고?”

“형이 냉면 먹자고 해서 그렇잖아!”

“너도 좋다며! 장어 한 마리만 더 먹자고 해놓고선.”

“냉면은 장어가 아니잖아!”

“그건 그래.”

“어쩌지? 두 곳 다 갈 수 있나?”

육회비빔밥 전문점과 스페인 식당을 검색해 메뉴를 확인했다.

“다 가는 건 무린데.”

“어디 가지?”

확실히 고민이다.

“C식당은 100년 넘었대. 진주 맛집하면 제일 먼저 얘기 나오던데.”

“난 스페인 음식 궁금해. 한 번도 안 먹어봤어.”

“나도.”

10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킨 육회비빔밥이냐,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스페인 음식이냐 쉽게 정할 수 없다.

“스페인 음식점은 서울에도 많지 않을까?”

백우진에게 물었다.

“육회비빔밥 하는 데도 많잖아.”

“100년 넘게 장사한 육회비빔밥 집은 못 들어봤어.”

“그건 그러네.”

“……근데 지찬이 형이 추천한 거니까 궁금하긴 하다.”

“그치? 내 말이. 그 형 은근히 맛집 잘 아니까.”

여의도에 있는 M식당을 알려준 사람도 차지찬이었다.

“아, 몰라. 가까운 데로 가.”

“가까운 곳이면 C식당이네. 근데 배 괜찮냐?”

“응. 더 먹을 수 있어.”

얘도 역시 훌륭한 몸을 가질 재능이 차고 넘친다.

쭉 내려가니 큰길이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대로 발을 옮기다 보니 시장이 나왔다.

양쪽으로 2층 건물이 쭉 연결된 이곳이 진주중앙유등시장인 모양이다.

“시장이다.”

“이대로 쭉 직진이네.”

“깔끔해.”

백우진의 감상대로 시장이 상당히 깨끗하다. 바닥에 깔린 것 하나 없이 모두 좌판에 놓려져 있고 간판도 통일되어 정돈된 느낌을 준다.

“어.”

족발 파는 곳 한쪽에 처음 보는 음식이 놓여 있다.

빨간 양념으로 버무린 무엇인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게 뭐예요?”

“껍데기.”

여기서는 돼지 껍데기를 이렇게 먹는구나 싶다.

길쭉하게 썰어서 빨간 양념에 버무려 익혀 먹는 것 같다.

“쫀득하고 맛있어.”

“맛있어 보여요. 많이 매워요?”

“하나도 안 매워. 어때. 좀 줄까?”

“에이. 안 맵다고 하시면서 엄청 매운 거 아니에요?”

“허허. 먹어 봐. 그럼. 자.”

사장님이 이쑤시개로 껍데기를 한 점 집어 주셨다.

낼름 받아먹었는데 역시나 엄청나게 맵다.

“하. 하으아아.”

“흐흐흫흫.”

“엄청 맵잖아요, 사장님.”

“젊은 사람이 그것도 못 먹어서 어떡해?”

사장님이 실실 웃으며 물을 한 잔 주셨다.

“아니 근데 뭐. 촬영 나왔어?”

사장님이 제작진을 둘러보곤 물었다.

“네. WTV에서 하는데 꼭 봐주세요.”

“아이 그럼 이거 챙겨 가. 진주에서 우리집 족발이 제일이야.”

“에이. 어떻게 공짜로 받아요. 근데 진주가 족발로도 유명해요?”

“아, 그럼!”

“냉면이 더 유명하지 않아요?”

“아, 진주하면 족발이지.”

“에이. 이렇게 매운데 어떻게 먹어요.”

“껍데기는 맵지. 족발은 하나도 안 매워.”

“아깐 맵다고 하셨잖아요.”

“아이. 팔려고 그랬지.”

“하하하핳핫!”

족발집 사장님 넉살이 너무 좋아 웃고 말았다.

“그럼 많이 파세요.”

한참을 웃은 뒤에 걸으니 백우진이 날 빤히 본다.

“왜?”

“왜 이렇게 사교성이 좋아?”

“뭐가?”

“형 낯 많이 가리는 거 아니었어?”

“어르신들은 괜찮아.”

“왜?”

“몰라. 나랑 비슷하거나 어리면 좀 대하기 어렵더라고. 너도 PD님한테 그러잖아.”

백우진이 눈을 감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와. 도너츠.”

시장을 지나치다 보니 온갖 음식이 다 눈에 밟힌다.

설탕을 가득 뿌린 찹쌀 도너츠와 앙금빵, 꽈배기를 파는 집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 하나씩 손에 들었고.

시장에서 파는 순대와 떡볶이는 간신히 참았다.

“난 프랜차이즈 떡볶이보다 시장 떡볶이가 더 좋더라.”

“나도. 뭐가 다르지?”

“일단 별로 안 매워.”

“뭔가 맛이 깊기도 해. 오래 끓여서 그런가?”

“먼지맛이야.”

“일리 있어.”

시장 떡볶이가 왜 맛있는지 토론을 하다 보니 오후 4시쯤 C식당 앞에 이르렀다.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아닌데 내부에 사람이 꽤 차 있었다.

식탁에 앉고 싶었지만 빈곳이 없어서 좌식 테이블에 자리잡았다.

“어떻게 드릴까요?”

“저희 육회비빔밥 2개랑.”

육회비빔밥이 하나에 10,000원이니 두 개를 시키면 수중에 24,500원이 남는다.

30,000원하는 육회도 먹어보고 싶지만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석쇠불고기도 주세요.”

“네.”

주문을 하고 매장 안을 둘러보았다.

외관부터 느꼈지만 노포답게 확실히 오래된 건물이란 느낌이 든다.

음식이 나오는 곳 아래는 붉은벽돌로 벽이 쳐져 있고, 바깥쪽 식탁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다.

“여기 식탁이 집 짓고 남은 나무로 만들었대.”

백우진이 매장 안에 걸려 있는 글을 보고 말했다.

“그럼 저게 100년 넘은 거네?”

“대박이다.”

가게 이곳저곳을 살피며 얘기를 나누던 중 백우진이 살짝 인상을 썼다.

“형.”

“어?”

“나 배불러.”

“뭐?”

“어떡하지? 못 먹을 것 같은데.”

“아깐 더 먹을 수 있다며.”

“도너츠 먹어서 그런 거 같아.”

“그럼 그전부터 배가 불렀었네. 에휴. 넌 돼지 되기 글렀다.”

“꼭 돼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쯧쯧쯧. 입이 그렇게 짧아서 어디 큰 돼지 될 수 있겠냐?”

“근데 진짜 어쩌지.”

“몰라. 남기면 악플 달아야지.”

“뭐?”

“식사 나왔습니다.”

옥신각신하던 중 직원이 음식을 내놓았다.

“나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육회비빔밥과 석쇠불고기를 눈앞에 두자 백우진이 기특한 말을 꺼냈다.

이런 음식을 남기면 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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