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69화 (69/120)

치팅데이 69화

16. 첫 광고(3)

세수를 하고 돌아오자 때마침 쿡쿡이에서 나온 사람들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한 사람은 40대 중반으로 보이고 또 한 사람은 내 또래 정도 같다.

처음 연락했던 김용우 대리가 젊은 사람 같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묵은지가 나서서 찾아온 이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쿡쿡이 마케팅 팀장 박석호입니다. 반찬가게 반찬용 씨와 광고 계약 건으로 방문했습니다.”

묵은지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반찬가게 PD 묵은지입니다. 처음 뵙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나섰다.

박석호, 김용우와도 눈이 마주쳐 인사하려던 차, 묵은지가 끼어들었다.

“대표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 주십시오.”

자연스레 인사하며 다가가려고 했는데 뭔가 상황이 애매해졌다.

묵은지가 돌아서서 날 보더니 태연히 쿡쿡이 측에서 방문했음을 알려주었다.

“대표님, 쿡쿡이 박석호 팀장, 김용우 대리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아. 고마워요.”

어색하게 웃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박석호가 묵은지가 했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표님. 쿡쿡이 마케팅 팀장 박석호입니다.”

박석호가 명함을 꺼내 내게 주자 김용우도 행동을 함께했다.

편하게 인사 나눌 수도 있었다.

고작 두 명뿐인 회사라 대표님 소리 듣기도 민망한데, 묵은지가 굳이 날 대표로 소개하고 보고하는 절차를 거친 이유를 알 것 같다.

박석호가 나를 지칭하는 단어가 반찬용 씨에서 대표님으로 바뀌었다.

묵은지는 내가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엄연히 한 단체의 대표임을 알렸고 박석호도 그 의도를 이해한 것이다.

역시 믿음직스럽다.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시는 데 불편하진 않으셨고요?”

박석호와 김용우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전혀요. 위치가 좋던데요?”

“월세가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하하.”

우리도 쿡쿡이도 서로 바쁜 입장이니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저희 제품은 어떠셨나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일반밥솥으로 지은 밥 먹었을 때와 혈당 차이가 보였고 이미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아. 혹시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PD님.”

신호를 주자 묵은지가 태블릿을 박석호 김용우를 향해 돌려 영상을 재생했다.

박석호 팀장은 11분짜리 영상을 보면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고 김용우 대리는 뭔가를 메모했다.

영상이 끝나자 묵은지가 설명을 시작했다.

“김용우 대리님을 통해 받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제작했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던 저당밥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내용을 영상 앞부분에 배치했고. 이후 내용은 쿡쿡이 CR1으로 지은 밥과 일반 밥솥으로 지은 밥의 혈당 상승 추이를 비교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기존에 연락을 나누며 쿡쿡이가 어떤 방향으로 광고해 주길 바라는지 충분히 소통해 왔다.

의견을 조율하면서 영상을 찍고 편집을 마쳤으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판단했고.

박석호 팀장과 김용우 대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마지막 제품 조명하는 장면까지. 좋네요. 김 대리는 어때.”

“좋습니다. 음. 밥맛에 대한 평이 좀 더 자세하게 나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용우 대리의 의견에 박석호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CR1이 타사 대비 밥맛이 좋습니다. 그 점을 좀 더 강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타사 제품을 사용해 보지 않아서 더 맛있다는 내용을 삽입하긴 곤란합니다.”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던 차에 묵은지가 나섰다.

“다만 CR1으로 지은 밥이 맛있다는 내용은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박석호 팀장이 고민하는 듯하자 김용우 대리가 나섰다.

“타사 제품과 비교가 걸리신다면 저희가 제공해 드리는 자료를 사용하시는 건 어떨까요? 업체명은 가리고 진행한다면 반찬가게에도 크게 부담은 안 될 겁니다.”

“대표님께서는 확인된 사항만 다뤄오셨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광고가 없었던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진행하길 바라신다면 그 자료가 쿡쿡이 측에서 제시한 것임을 명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본인이 알아서 미팅을 진행하겠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게 자신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맞이하고 영상을 소개하고 멘트 조율까지 정말 내가 나설 필요가 없다.

“그 부분은 그대로 진행하지요.”

박석호 팀장이 한 발 물러섰다.

광고주가 이렇게까지 배려하는 이유는 두 가지일 텐데 하나는 최근 광고 트렌드일 것이다.

업체가 자사 제품을 PR한다고 해서 믿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제삼자가 장점과 단점을 투명하게 진행할수록 신뢰를 얻는다.

예전처럼 단점을 감추고 장점만 보인다고 해서 효과를 얻는 게 아니라, 어떤 단점이 있지만 이런 장점 때문에 사야 한다는 주장이 먹히는 시대다.

또 하나는 광고 효과.

현재 반찬가게는 평균 조회 수 30만을 기록하는 대형 채널이다.

거기에 차지찬, 백우진, 주지승 같은 거대 유튜버도 한 발 걸치고 있으니 쿡쿡이 입장에서는 반드시 광고를 진행하고 싶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박석호 팀장이 도시락 사업 이야기를 꺼냈다.

“영상은 이걸로 마무리 짓고. 도시락 사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CR1으로 지은 밥을 도시락에 넣어 건강식으로 소개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PPL이죠.”

박석호 팀장이 깍지를 끼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내부 회의에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다만?

“PPL이 아니라 적극적인 방식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마케팅하실 때 저희 제품을 전면에 세우는 거죠.”

“어디까지를 바라시는지 확실히 해야 답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CR1으로 만든 저당 도시락 같은 느낌이죠.”

잠시 고민하는데 박석호 팀장이 김용우 대리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김용우 대리가 계약서를 꺼내 보이며 설득을 이어갔다.

“CR1 리뷰 광고건으로 3,000만 원. 도시락 광고 진행시에는 별도 계약으로 진행하여 1억 원 제안드립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오늘 미팅을 준비하면서 묵은지에게 광고 단가를 들은 바 있었다.

뷰티, 게임, 음식 등 여러 카테고리가 있고 시청연령대와 조회 수, 구독자 수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기준이 필요했고.

홍당무 같은 대형 MCN, 매니지먼트에서 만든 광고 단가 테이블이 있었다.

홍당무 내부 기준으로 판단하면 나는 제품 리뷰 영상 하나에 대략 2,000만 원을 요구할 수 있었고.

보통 MCN 소속이 아닌 유튜버들의 단가는 그보다 낮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해서 오늘 협상 목표치는 1,500만 원 정도로 잡고 있었는데 그 두 배를 준단다.

거기에 도시락 사업 광고 진행에는 따로 1억 원을 준다니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다.

“……어렵겠습니다.”

말 한 마디 꺼내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대표님.”

김용우 대리가 나서기에 미리 선수를 쳤다.

“정말 좋은 조건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락은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이 함께다.

아마 그 때문에 쿡쿡이 측에서도 거절하기 힘든 금액을 제시했을 터다.

“이 자리를 가지기 전에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도시락 사업을 해도 한 달 동안만 하자고.”

“아.”

박석호 팀장과 김용우 대리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또 장사긴 하지만 저희 구독자들에게 이득을 드리기 위한 일종의 헌정 느낌의 이벤트입니다. 혹시나 오해를 살 요소는 줄이고 싶습니다.”

박석호 팀장과 김용우 대리가 시선을 교환하다가 잠시 의논하고 와도 되겠냐고 물어 흔쾌히 수락했다.

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서는 걸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는데 묵은지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대표님, 차라리 전면 광고가 오해를 덜 삽니다.”

“네?”

“PPL은 기본적으로 간접광고입니다. 어차피 저당밥솥을 사용해서 살이 덜 찌는 밥이라고 소개할 거라면 차라리 업체의 지원을 받아서 그 돈으로 더 좋은 품질의 도시락을 더욱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알리는 편이 낫습니다.”

“…….”

듣고 보니 그렇다.

“유튜브가 대중화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여러 크리에이터가 본인의 광고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해 왔습니다. 도중에 뒷광고 논란도 있으면서 유튜브 이용자들이 광고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계속 들을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본인들이 구독하는 유튜버가 광고를 하길 바랍니다. 대표님처럼 광고 하나 없이 진행하는 사람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용자들이 경멸하는 행동은 광고임에도 그를 숨기는 겁니다. 공정하고 투명히 진행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채널이 존속하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추가 수단이 필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묵은지의 말대로다.

내 채널만 해도 숙제 좀 하라고.

그렇게 돈 벌어서 직원 들여서 방송 시간 늘리라는 사람이 꽤 많다.

장난 삼아 건강 따위 살피지 말고 영상에 신경 써 달라는 글도 올라오지만 본심은 아니다.

“그럼.”

“쿡쿡이 측에서 요구한 대로 진행하긴 어렵습니다. 그렇게 되면 쿡쿡이가 연 도시락 매장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대표님과 친구분들의 좋은 의도가 퇴색됩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홍보에 CR1에 대한 내용은 삽입하되 어디까지 여러 음식 중 하나로 소개해야 합니다. 대표님이 만들 도시락이 저당 햇반은 아니잖습니까.”

“흐흣. 그쵸. 밥만 넣어 파는 건 아니니까.”

“그 점을 들어 쿡쿡이를 설득해서 진행한다면 친구분들도 만족하시고 사업 자체의 의도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광고비 일부를 좀 더 투자해 퀄리티를 높일 수도 있는 건 덤입니다.”

“그래야겠어요.”

이렇게 든든할 수 있을까.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납득이 되어 포기할 수도 있었던 돈을 챙기게 되었다.

“그리고.”

“네.”

“광고 단가가 저희 예측보다 훨씬 높습니다. 아마 짐꾼, 우지니, 반야식경, 반찬가게를 아우른 그룹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같이 하는 일이니 틀린 것도 아니고.”

묵은지가 뭐라 말하려던 차, 박석호 팀장과 김용우 대리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말씀 나누셨습니까.”

묵은지가 나섰다.

“네. 전면 광고가 부담스럽다고 하시니.”

“그 부분은 정정하겠습니다. 조금 전 대표님께서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묵은지가 날 보았다.

박석호와 김용우가 따라서 날 보는데 뭐라도 얘기해야 하는 분위기다.

아마 묵은지는 본인의 설득으로 대표가 의견을 바꿨다는 이미지보다는 나 스스로 생각을 달리 먹었다고 보이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저당 밥을 넣은 도시락으로 소개할 거면 CR1 내용을 뺄 순 없을 것 같더라고요.”

박석호 팀장과 김용우 대리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그래서 고민이었는데 우리 PD님이 좋은 아이디어를 주시더라고요. 도시락에는 여러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니 밥만 강조할 순 없다고. 다만 CR1을 사용해서 확실히 혈당이 덜 올라가는 사실은 명시하는 방향은 어떠냐고. 예를 들어 매장 운영하는 영상도 업로드할 건데, 거기서 잠깐 소개할 순 있으니까요.”

“그 영상도 반찬가게에서.”

“짐꾼, 반야식경에도 업로드될 거예요. 각자 따로 촬영이 들어가서요.”

“그러니.”

판을 깔아주고 잠시 뒤로 빠져 있던 묵은지가 나섰다.

“광고비 책정을 다시 해주셨으면 합니다.”

너무 놀라 고개를 돌릴 뻔했다.

1억 원이나 제시받았는데 여기서 돈을 더 받아낼 생각이라니.

“그러면. 차라리 다른 분도 함께 자리를 만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도시락 사업은 따로 사업자를 낼 겁니다. 네 분이 공동 대표로 나설 거고 대표님께서는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에게 위임을 받았습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묵은지가 세 사람에게 받은 위임장을 보여주었다.

미팅 전에 이걸 굳이 왜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었는데, 말보다 문서로 보여주는 편이 설득력이 강함을 알 수 있었다.

박석호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그러면 얼마나 인상을 원하시는지.”

CR1만을 조명하는 건 아니나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는 조건이다.

쿡쿡이 측도 간절해 보이니 10%, 어쩌면 20% 정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1억 6,000만 원입니다.”

너무 놀라서 입이 벌어졌는데 박석호 팀장이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상상 이상으로 큰 금액이라 놀랐는데 이 자리에서 입을 벌린 사람은 나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