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71화 (71/120)

치팅데이 71화

17. 메뉴 개발(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숟가락을 든 채 죽었어!

└아닠ㅋㅋㅋ 피곤하면 그냥 휴방하라곸ㅋㅋㅋ 왜 그렇게까지 먹어야 하는 건뎈ㅋㅋㅋ

└눈 감고 오물오물 먹는 거 진짜 킹받넼ㅋㅋㅋㅋㅋ

└요새 피곤해 보이긴 하더라

└죽었나?

도시락을 다 먹지 못한 미련 때문에 반찬용은 숟가락을 든 채 눈을 감았다.

채팅창을 확인하며 방송을 지켜보던 묵은지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여러 크리에이터를 관리해 온 그녀로서도 겪어보지 못한 생소한 상황이었다.

“대표님?”

묵은지가 조심스레 반찬용을 깨웠지만 이제 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턱 아래 경동맥을 짚으니 맥박은 뛰고 있었다.

└이 누나는 누구얔ㅋㅋㅋㅋㅋㅋ

└거긴 왜 확인햌ㅋㅋㅋㅋㅋ

└살아 있음?

└아저씨가 말하던 직원인가?

└반찬용 향년 35세. 끝까지 먹다 죽었다.

└죽이지 맠ㅋㅋ

└방종임?

└아닠ㅋㅋㅋㅋ 숟가락은 어떻게 들고 있는 건뎈ㅋㅋㅋ

└그니깤ㅋㅋㅋㅋ 왜 팔이 고정되었엌ㅋㅋㅋㅋㅋ

채팅창이 소란스러웠지만 묵은지의 신경은 오직 반찬용을 향해 있었다.

때려서라도 깨워야 하나 싶었지만, 그동안 피로가 얼마나 쌓였으면 방송 도중에 잠들었을까 싶었다.

숟가락을 든 채 잠든 모습이 안쓰러웠다.

한 회사를 짊어진 책임과 방송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가 싶었다.

묵은지는 본인이 쓰려고 가져다 둔 담요를 챙겨와 반찬용에게 덮어주고 의자를 조심스레 뒤로 젖혔다.

반찬용이 최대한 편한 자세로 잘 수 있도록 도운 뒤 얼굴이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웃는 사람, 방송이 끝나냐고 묻는 사람, 반찬용을 걱정하는 사람 등 여럿이었다.

“대표님이 잠드셨습니다. 최근 업무가 과하여 피로가 쌓인 모양입니다.”

└방송 끝이에요?

└안 돼 나 이 방송 없으면 밥 못 먹어

└도시락 리뷰 마저 해주세요

└월급 얼마 받음?

└깨우세요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묵은지의 눈에 몇몇 채팅이 띄었다.

도시락 리뷰를 계속해 달라는 요청, 방송 종료를 아쉬워하는 글도 보였지만 그녀의 마음을 흔든 채팅은 하나였다.

└도대체 얼마나 먹고 싶었던 거얔ㅋㅋㅋㅋㅋㅋ 봐도 봐도 웃기넼ㅋㅋ

“…….”

묵은지가 고개를 돌렸다.

반찬용의 팔은 여전히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댄 채 고정되어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단순히 도시락을 먹고 싶어서 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음식 섭취를 극도로 꺼리는 그녀로서는 반찬용의 행동이 책임감에 기인했다고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믿는 반찬용의 의지를 저버릴 순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묵은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가릴 만한 물건을 찾았는데 마침 종이 가방이 눈에 띄었다.

가위로 눈 부분만 적당히 잘라내 뒤집어쓰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건 또 뭐얔ㅋㅋㅋㅋㅋㅋㅋ

└누나 안 부끄러워요?

└아닠ㅋㅋㅋㅋㅋㅋ 그냥 방종하라곸ㅋㅋㅋㅋㅋ

└오? 방종 안 함?

└일단 재밌어 보이니까 가만 있자

“부끄러워서 쓴 겁니다. 방송은 오늘 예정된 6시까지 진행하겠습니다.”

반찬용이 어떻게든 계속하려던 방송을 어떻게 마쳐보고자 나섰지만, 막상 카메라를 앞에 두니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 채팅창만 지켜보게 되었다.

시청자들이 여러 일을 요구했다.

└뭐라도 해봐요

└당뇨 아저씨가 월급 많이 줌?

└아닠ㅋㅋㅋㅋㅋㅋ 왜 가만있엌ㅋㅋㅋㅋ

└극한직업 ㄷㄷ

└이름이 뭐예요?

“묵은지입니다. 저번 달부터 반찬가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

└어떻게 사람 이름이 묵은짘ㅋㅋㅋㅋㅋㅋㅋ

└이 방에도 묵은지란 닉네임 있는뎈ㅋㅋㅋㅋ

└진짜 묵은지임? 김치찜할 때?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찬용 묵은짘ㅋㅋㅋㅋㅋㅋㅋ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불쾌해진 묵은지가 차갑게 대응했다.

└어쩐지 친근하더라. 좋은 이름이네.

└한 번 들으면 절대 안 잊을 좋은 이름이네요.

└사람 이름 같지가 않았어.

└반찬 이름ㅋㅋㅋㅋㅋㅋ

└쟤들이 님 놀림.

묵은지가 피식 웃었다.

반찬가게를 처음부터 구독해 왔기에 눈에 익은 닉네임이 많았다.

반찬용이 처음 본명을 알렸을 때와 똑같이 반응하는 이들이 조금 귀엽게 보이기도 했다.

└근데 방송 어떻게 함?

└도시락 맛 어떤지 말해줘요

└먹방 이어서 ㄱㄱ

도시락 리뷰를 이어가라는 요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말할 뿐이었는데 채팅을 본 사람들이 금세 동조하여 여론을 형성했다.

시청자 대부분이 도시락 리뷰라도 이어가라고 요청하니 묵은지로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의 음식을 뺏어 먹을 순 없습니다.”

섭식 장애가 있음을 알리고 싶진 않아 필사적으로 생각해낸 핑계였다.

└일어나서 없으면 화낼 것 같긴 해

└그치 남의 거 뺏어 먹으면 안 되지.

└그래. 남이 먹던 걸 먹는 건 아니지.

└ㅇㅇ 저걸 누가 먹어. 당뇨 아재가 밥을 좀 지저분하게 먹잖아.

└그럼 딴 거 먹어요

└ㅇㅇ 다른 거라도.

다른 음식을 먹으라는 요청도 예상 밖이었다.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되었지만 방송을 이어가라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당장에라도 방송을 끄고 싶었다.

숟가락을 든 채 눈감은 반찬용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을 뿐이었다.

‘어쩌지.’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의 시야에 냉장고가 들어왔고, 묵은지는 미리 사둔 500㎖ 생수 한 병을 꺼냈다.

반찬용이 먹던 도시락을 옆으로 치우고 그 자리에 생수를 놓자 시청자들이 물음표를 반복해 올렸다.

“생수를 리뷰하겠습니다.”

물음표가 계속 올라왔지만 물러날 곳이 없었다.

“라벨이 없는 제품입니다. ……분리수거하기에 편리합니다.”

다음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4,000명이 보고 있는 앞에서 뭔가를 즉석해서 말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뭐라는 거얔ㅋㅋㅋㅋㅋㅋ

└이 누나도 정상은 아니네

└반찬용 데려와!

시청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묵은지가 아무 말이나 뱉었다.

“칼슘은 리터당 2.5mg에서 4.0mg이 들어 있습니다. 칼륨은 1.5에서 3.4.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24개월이나 됩니다. ……맛있습니다.”

묵은지가 물병을 땄다.

입에 가져가 마시려는데 입과 닿는 부분은 뚫어놓지 않아 종이 가방이 젖고 말았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해욬ㅋㅋㅋㅋㅋㅋㅋ

└이 사람 좀 재밌다

└긴장했나 보넼ㅋㅋㅋㅋㅋㅋ

└진짜 챙피하겠닼ㅋㅋㅋㅋ

└생수 리뷰라니 이건 귀하네요

└다른 거랑 비교라도 해봐요

└물 소믈리에도 있다던데 생수 리뷰 할 수 있짘ㅋㅋㅋㅋ

물을 쏟으면서 기분이 상했지만 시청자가 빠져나가는 상황이 멈추었다.

다른 제품과 비교해 달라는 말에 묵은지는 한숨을 내쉬고 방을 나섰다.

냉장고 안에는 한 제품뿐이라 편의점에 다녀와야 하나 고민하던 차, 싱크대가 보였다.

컵에 물을 받은 뒤 종이 가방을 벗어 입부분을 잘라낸 뒤 다시 대표실로 들어섰다.

└어디 가나 했는데 잘라 왔넼ㅋㅋ

└괜찮음?

└컵?

“아리수를 받아 왔습니다. 생수와 맛을 비교하겠습니다.”

* * *

문득 정신이 들었다.

팔이 뻐근해서 눈을 떠 보니 숟가락을 들고 있다.

이걸 내가 왜 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묵은지가 카메라 앞에 생수병을 두고 얘기하고 있다.

“S사 상품은 물맛이 부드럽습니다. I는 묵직한 편이고 가장 맛있는 건 E제품이었습니다. 성분 차이 때문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뭐 하는 거지?

“S사보다 칼슘 함량이 높고 칼륨은 낮습니다. 마그네슘도 적고 불소가 소량 포함된 점이 차별됩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담요를 조심스레 의자에 놓고 다가가니 묵은지가 화들짝 놀랐다.

“깨셨습니까.”

“뭐 하세요?”

“……생수를 리뷰하고 있었습니다.”

묵은지가 고개를 숙였다.

항상 당당하고 태연하던 목소리가 쥐구멍에 기어들어가듯 작아졌다.

└방해하지 말고 나가

└한창 재밌었는데

└뭐 하다가 지금 옴?

└살아 있었어?

└살아 있었넄ㅋㅋㅋㅋㅋㅋ

└중요한 부분이니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채팅창을 보니 내가 자던 사이에 저들끼리 친해진 모양이다.

재밌게 놀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라고 한다.

묵은지가 일어나길래 어깨를 잡았다.

“아니에요. 계속하세요.”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저보고 방해하지 말래요. 계속해도 돼요.”

“배 부릅니다.”

묵은지가 생수병을 보며 말했다.

하나는 온전하고 4개는 조금씩 비워져 있다. 700~800㎖는 마신 듯 보인다.

묵은지가 하루에 물을 얼마나 마시는지는 몰라도 내가 잠든지 1시간 정도 흐른 듯하니 분명 무리가 되었을 거다.

“아니, 누가 이렇게 많이 마시라고 했어요?”

시청자들에게 따졌다.

“이거 물고문이야. 당신들 제정신이야? 왜 우리 PD님 괴롭혀요?”

└직원한테 방송까지 시키는 니가 더 나빠

└아저씨 코고는 소리 너무 크더라

└안 괴롭힘

└너야말로 우리 누나 괴롭히지 마

└아닠ㅋㅋㅋㅋ 난 이해가 안 됔ㅋㅋㅋ 갑자기 왜 생수 리뷰를 하는 건뎈ㅋㅋ

└생수 맛이 구분이 되긴 함?

└이제 좀 괜찮음?

└더 자

묵은지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

1시간 만에 우리방 시청자들과 친해진 모양이다.

기분이 좋다.

“아무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피곤했나 봐. 도시락 리뷰는 다음에 다시 할 거고. 생수 리뷰 유튜브에 올려달라고? 아니, 뭘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재밌었어요?”

채팅창에 이응이 도배되었다.

재주도 좋지.

누구는 비싸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가서 먹어야 조회 수를 챙기는데 편의점에서 생수 사다가 먹는 걸로 시청자를 만족시켰으니 대단하다.

“그래. 뭐, 오늘 건질 것도 없는데 올릴게요.”

“안 됩니다.”

묵은지가 고개를 휙 돌렸다.

하관과 눈동자만 보인다.

“그건 왜 쓰고 있어요?”

“……얼굴을 가리려 했습니다.”

종이 가방을 잘라다 뒤집어 쓴 게 더 부끄럽지 않을까 싶은데, 굳이 말하진 않았다.

방송을 종료하고 묵은지에게 상황 설명을 요청하니 내가 방송을 이어가려는 모습이 안타까워 정해진 시간만이라도 떼우려 했단다.

정말 이성적인 사람으로 봤는데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한다.

“아무튼 고마워요. 오늘 방송 분량도 챙겼고 반응도 나쁘지 않던데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겁니다.”

묵은지가 종이 가방을 벗어내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신경질을 내는 것 같기도 한데 재밌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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