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데이 72화
17. 메뉴 개발(3)
짐꾼 헬스장을 찾았다.
너무 졸립고 피곤해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뭐야. 얼굴이 왜 거적때기가 됐어?”
차지찬이 날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람한테 거적때기가 뭐야.”
“맞아. 거적때기.”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럴 힘도 없어서 캐비닛룸으로 향했다.
“어디 안 좋냐?”
“말도 마. 피곤해 죽겠어.”
차지찬이 날 살피더니 등을 때렸다.
“아파!”
“엄살은 아닌 것 같고.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
“할 건 해야지.”
“휴식 없는 건강 없다. 이 상태로 하는 운동은 독이야. 건강하려고 하는 거잖냐.”
옷을 다시 입을 힘도 없어서 멍하니 있다가 캐비닛에 몸을 기대니 차지찬이 턱을 매만졌다.
“너 저기 가서 누워 봐.”
“왜?”
“만져줄게.”
“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황급히 몸을 가리니 차지찬이 있는 대로 인상을 썼다.
“이 자식은 틈만 나면 염병이야. 마사지해 준다고.”
“됐어. 마사지는 무슨.”
“누워.”
차지찬이 수건을 깔아주길래 못 이기는 척하고 누웠더니.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경계선의 한가운데 위를 꾹 누르기 시작했다.
“여기가 신정혈이야. 눈피로에 좋아. 가끔씩 만져줘.”
“끄으으으윽.”
힘이 어찌나 센지 이마가 찌그러지는 듯하다.
한동안 힘을 주던 차지찬이 양 귀를 끝을 잇는 선 가운데를 꾹 누르기 시작했다.
“여긴 백회혈. 두통에 좋아.”
“아파! 아파!”
“아프니까 아픈 거야.”
“뭔 소리야! 아악! 부서져! 부서진다고!”
신정혈과 백회혈을 동시에 누르니 머리가 바스라질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
“거 봐. 괜찮아지잖아.”
“아프게 해서 다른 데 안 아프게 한 거 아니야?”
“헛소리 그만 하고 숨이나 고르게 쉬어.”
이번에는 귀 뒤쪽에 손을 댔다.
“여기 아래. 딱딱하지?”
“만지는 형이나 알지 딱딱한지 물렁한지 내가 어떻게 알아.”
“여기가 경추 1번. 목을 돌릴 수 있는 건 얘 덕분인데 그래서 디스크가 없어.”
“뭔 소리야?”
“모르면 됐고. 아무튼 디스크가 없다 보니까 인대로만 작동한단 말이야. 그래서 피로가 쉽게 쌓여.”
차지찬이 경추 1번이란 곳을 천천히 문질렀다.
“아. 아!”
“힘 안 줬어.”
“내 목 뽑아내려는 거 같은데.”
“넌 이 형이 그렇게 못 미덥냐?”
그렇다고 말하면 목을 꺽어버릴 것 같아서 가만있었다.
“아프다는 건 네 몸이 그만큼 안 좋단 소리야. 내일 병원 가서 물리치료부터 받아.”
차지찬이 손 위치를 조금 뒤로 옮겼다.
“여기 머리뼈 있지.”
“응.”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힘줄 같은 게 느껴지는데. 여기.”
“아파. 하지 마.”
“힘 안 줬어, 인마.”
“줄 것 같아서 미리 말한 거야.”
“여기가 흉쇄유돌근. 우리처럼 컴퓨터 많이 하는 사람이 거북목이 생기는 이유가 이 근육 때문이야. 평소에 살살 만져서 풀어줘.”
“오.”
이건 바로 효과가 온다.
뭔가 머리가 개운해지는 기분이 드는데 차지찬이 조금씩 흉쇄유돌근을 꼬집듯이 쥐었다.
턱 아래에서 쇄골까지 천천히 내려오는데, 꼭 목 힘줄이 뜯길 것만 같다.
“끄으으으윽.”
“힘 주지 마.”
“형이야말로 힘 주지 마. 아악!”
“크하핫핳핳.”
“웃어? 웃었어?”
“니가 웃기니까 그러잖아. 가만 있어.”
“거짓말 마. 지금 나 괴롭히는 거지. 맞지.”
“이 자식이 뻑 하면 괴롭힌대. 나만큼 너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는 줄 알아?”
“우리 엄마.”
“…….”
“악!”
차지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 *
차지찬에게 받은 마사지가 효과가 있는지 오랜만에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다.
“어디 보자.”
오늘 일정은 두 개다.
하나는 오후에 주지승과 함께 도시락 메뉴를 연구하기로 했고 둘은 저녁 방송이다.
원래는 백반 토론과 음식 이야기를 함께하는 날인데 백반 토론이 워낙 인기를 얻다 보니 음식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는 꼭 다루고 싶은 이야기도 있어서 자료만 수집해 놓는 중인데.
우선 할 일이 있으니 그마저도 잠시 중단해야겠다.
휴식은 중요하니까.
어제 방송 도중에 잠든 게 조금 충격이었다.
아침으로 당뇨 도시락을 먹고 30분 정도 산책한 뒤에는 가능한 늘어져 유튜브를 보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묵은지에게 부천 다녀온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놓고 반야식경 스튜디오로 발을 옮겼다.
“당뇨 아저씨 아니에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 둘이 날 살피며 물었다.
세상에나.
언젠가는 구독자를 만나는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오늘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맞아요. 사인해 줄까요?”
“아니요.”
“……받아주면 안 돼?”
“그럼 해주세요.”
이게 맞나 싶다.
학생이 꺼낸 공책 맨 뒤에 반찬가게라고 적었다. 그 와중에 한 녀석은 끝까지 안 받겠다고 했다.
“이름이 뭐예요?”
“왜요?”
“왜긴. 적어 주려고 하지.”
“괜찮아요. 이거 당근할 거라서 이름 적으면 안 팔려요.”
“……어?”
“맞다. 아저씨, 저도 해주세요.”
“야, 왜 따라해.”
“뭐! 하면 어때!”
“야, 너희 나 구독은 했어?”
“네.”
“전 몰라요. 얘가 아저씨 안다고 해서 왔어요.”
“이 아저씨 개웃김.”
웃기다고 하니 좋긴 한데 뭔가 표현이 거슬린다.
“닉네임 뭔데. 핸드폰 꺼내 봐.”
“저요? 71돼지요.”
“뭐?”
녀석이 유튜브에 접속해 내 채널을 구독했음을 보여주었다.
구독한 건 알겠는데 닉네임이 충격이다.
71년생 돼지띠인 줄 알고 방송에서 보이면 형님이라 말해줬던 사람이 17살도 안 된 꼬맹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너 아이디가 왜 이래?”
“이렇게 쓰면 사람들이 형님 형님 해요.”
“뭐?”
“아저씨도 그랬잖아요.”
말문이 턱 막힌다.
누구랑 대화하든 밀리는 법이 없었는데 중학생 앞에서 이럴 줄이야.
“저 박재민이요.”
“근데?”
“이름이요. 빨리 적어주세요.”
“안 줘. 가져다 팔 거라며.”
사인한 페이지를 찢어서 구긴 뒤 공책과 펜을 돌려주었다.
“아. 농담이죠. 빨리 적어주세요.”
“내가 뭘 믿고 줘?”
“저 저번 달에 5,000원 슈퍼챗 쐈는데.
“그럼 해줘야지.”
공책을 다시 뺏어서 이름을 적어 주었다.
“아, 잼민이 아니고 재민이요.”
“아니야. 잼민이 맞아.”
같이 있던 녀석이 재민이를 놀리며 킥킥댄다. 결국 이름을 다시 적어 주었다.
“아저씨 근데 어디 가요?”
“몰라도 돼.”
“저희 따라가면 안 돼요?”
“안 돼. 집에 가.”
“갈 데 없나 봐.”
“그런 것 같지?”
목소리가 다 들리는데 신경도 안 쓰는지 저들끼리 키득거린다.
“아저씨 유튜버가 왜 차도 없어요?”
“난 가난하니까.”
“왜요? 아저씨 돈 잘 벌잖아요.”
“얼마 벌어요?”
얘들이랑 대화를 이어가면 진이 빠진다. 애써 무시하면 지하철을 기다리니 이상한 대화를 이어간다.
“이 아저씨 한 달에 10억 번대.”
“우와.”
“저번에 생방 보는데 채팅창에서 누가 그랬음.”
“아저씨, 진짜예요?”
“누가 그래. 내가 한 달에 10억을 벌면 지하철 타고 다니겠냐?”
“근데 아저씨 진짜 당뇨예요?”
“당뇨가 뭔데?”
얘들은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되먹었는지 한 문장마다 주제가 바뀐다.
“왜. 누가 나 당뇨 있는 것도 주작이라고 하냐?”
“네. 당뇨 걸리면 치킨 같은 거 못 먹는대요.”
“먹을 순 있어. 건강이 안 좋아져서 그렇지.”
혈당이 좀 오를 뿐이고 심혈관계 질환이 심각해질 뿐이다.
“아저씨 짐꾼이랑 진짜 친해요? 나 짐꾼 보는데.”
내 채널을 훑던 녀석이 물었다.
“아니야. 이 아저씨 친구 없댔어.”
“진짜? 왜요?”
멘탈이 흔들린다.
“잼민아. 아무개야. 아저씨가 좀 피곤해서 그런데 따로 있으면 안 될까?”
“아무개가 뭐예요?”
“네 이름을 모르니까.”
“근데 저한테는 왜 사인 안 해주세요?”
“넌 5,000원 안 줬잖아.”
아무개가 친구 박잼민을 보더니 날 올려다봤다.
“아저씨 근데 키 진짜 크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흐힝힛힣힛.”
“흐항항항핳.”
조금 목소리를 키웠더니 좋다고 웃는다.
그냥 말 걸어보고 싶은 건가 싶어서 델리만쥬 한 봉지를 사서 들려주니 감사합니다 하고 꾸벅 인사하고 돌아간다.
유명인이란 이렇게나 힘들다.
* * *
“그랬다니까?”
지하철에서 만난 꼬맹이들 이야기를 꺼내니 주지승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어떤 영상을 틀었다.
반야식경에 업로드된 영상인데 아이들이 주지승에게 떼거지로 달려들었다.
-아저씨 궁예예요?
-궁예 맞죠.
-사달라 아저씨예요?
-근데 왤케 젊어졌어요?
-아저씨 서요?
-머리카락 어디 있어요?
“크흠. 뭐. 자랑하자고 보여준 건 아니고. 내가 이 정도다. 뭐, 그런 거지. 하하핳하!”
“……이건 형 인기가 아니라 궁예랑 김두한 인기 아니야?”
“나운하, 주용필 같은 모창가수도 인기 있어. 그런 느낌이지.”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방금 이상한 말 들었는데?”
꼬맹이가 어디서 이상한 드립을 배웠는지 잔인한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그러게? 미카엘, 그거 우리 묵음 처리 하자고 안 했나?”
“깜빡했네요.”
주지승이 확인하듯 물으니 최미카엘이 싱긋 웃으며 편집실로 들어갔다.
이 회사도 확실히 제대로 된 곳은 아닌 듯싶다.
“아무튼 메뉴. 좀 알아봤어?”
“응. 요즘 이것저것 사 먹으면서 조사 좀 해봤는데. 전체적으로 저염, 저당 콘셉트가 많더라고.”
“먹어 보니 어때?”
“먹을 만하긴 한데 계속 먹긴 좀 힘들더라. 맛있는 건강식이라고 해도 결국 먹다 보면 질리더라고.”
“아마 대부분의 다이어트 식이 그럴 거야.”
주지승이 턱을 쓸었다.
“사실 음식 맛의 90%는 간이거든.”
아무래도 저염식이 건강에 좋다 보니까, 음식 맛을 좌우하는 간을 충분히 못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소금도 대체품이 있나?”
“사실 저염은 크게 메리트 있는 건 아니야.”
“음?”
“마케팅으로는 이득일지 몰라도 건강이나 맛에서는 손해지.”
“……건강에서 손해를 본다고?”
주지승이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콜라에 삼겹살을 빠뜨리고 버터에 치토스 가루를 묻혀 튀겼던 과거 영상이 떠오른다.
“형 이거 예능으로 하면 안 돼. 진짜 다이어트 건강식이어야 한다니까?”
“정말이야. 나트륨은 충분히. 아니, 좀 더 먹어도 돼.”
“이 형 스님 아니라 마귀 같은데.”
“스님 아니라고.”
마귀는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