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치팅데이-73화 (73/120)

치팅데이 73화

17. 메뉴 개발(4)

“근데 저염식이 건강에 좋다는 건 상식이잖아.”

주지승이 조회 수에 미친 유튜버가 아니라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짜게 먹으면 안 좋다는 말은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와 같이 너무나 당연한 진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건강이 안 좋은 게 김치, 젓갈, 국물 요리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그 상식이 잘못된 거라면?”

주지승이 되물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니 태블릿을 꺼내 뭔가를 보여 주었다.

영어다.

눈을 껌뻑이며 태블릿과 주지승을 번갈아 보았다.

“작년 11월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공동연구진이 영양학 최저선이란 잡지에 한 연구 자료를 발표했어. 제목은 식이성 나트륨과 칼륨의 연관성 그리고 나트륨 대 칼륨 비율 및 사망률.”1)

“하나도 모르겠어.”

“나트륨과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의 연관성을 분석했단 말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라서 관심이 생기더라고.”

알 만하다.

외국에서 진행된 연구는 그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신체 구조가 다른 우리나라 사람에게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을 조사한 내용이라면 결과를 신뢰해 볼 수 있다.

“또 10년 동안 무려 14만 명 이상을 추적 관찰했다는 거야.”

“오.”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숫자만 들어도 믿음이 생긴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14만 명이나 추적 관찰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분명 어마어마한 예산과 인적 자원이 소모되었을 터다.

“내용이 어려우니 결론만 말하면 나트륨 과잉 섭취와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은 연관성이 없대.”

“엥? 정말?”

주지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깐만.”

“나도 놀랐어.”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든가. 면도하면 털이 굵어진다든가.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인다든가 하는 것하고 차원이 다른데?”

잘못 알려진 상식은 많다.

뇌를 10%만 사용한다든가, 혀 부위에 따라 느끼는 맛이 다르다든가 등등.

그런데 소금이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는 일과 연관성이 없다니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근데 고혈압이면 저염식 하라고 하잖아. 병원에서도.”

“칼륨 문제였어.”

포타슘이다.

“연구 대상자들은 나트륨을 하루 평균 2.5g 섭취했어. WHO의 권장량이 2g인데 비해 0.5g이나 많이 섭취했지.”

“응.”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칼륨 섭취량은 권장량의 절반 수준이었어.”

칼륨이 많이 든 음식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주지승의 설명을 들었다.

“나트륨과 무관하게 칼륨을 충분히 섭취한 사람들은 전체 사망률이 21% 낮았고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은 32%나 낮았어. 나트륨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칼륨이 부족해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지.”

“음.”

“실제로 나트륨 농도는 급격히 변하지 않는 이상 큰 문제가 발생하진 않아. 근데 칼륨은 정상치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부정맥이 생겨.”

“나트륨보다 예민하다는 말이네?”

“그렇지.”

“근데 칼륨이 어디 들어 있어?”

“다시마, 시금치, 토마토. 대체적으로 식물에는 대부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아.”

칼륨을 많이 포함한 음식을 들으니 느낌이 온다.

다시마, 시금치, 토마토 모두 건강에 좋은 음식이지만 즐기지 않는 사람이 많다.

“칼륨이 식물에 많이 들어 있으면 결국에 심혈관계 문제는 육류나 탄수화물 위주 식단이 문제였네.”

“그치. 고혈압이나 심혈관계 질환은 나트륨 문제가 아니라 고탄수, 포화지방, 저칼륨 문제야.”

“좀 충격인데.”

“내 말이. 그러니까 우리 도시락도 저염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처음에도 말했지만 음식 맛은 간이 90%니까.”

“맛있는 다이어트식을 만드는 거니까.”

“그치.”

멀리 돌아 왔지만 결론은 언제나 하나다.

여러 음식을 골고루, 과하지 않게 섭취하는 것이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니까 야채, 고기 비율을 정하고 그 안에서 변화를 주면 좋을 것 같아.”

“음.”

처음 저염식이 도리어 안 좋단 말만 들었을 때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의외로 상식적이다.

“근데 짜게 먹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지?”

“엄청나게 짜게 먹지 않는 이상 괜찮단 말이지.”

“이거 도시락 홍보할 때 나트륨 관련해서 얘기 잘해야겠다. 조금 짜게 먹어도 괜찮다는 걸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길 수 있으니까.”

의사들이 제로 콜라가 괜찮다는 말을 했다가, 몇몇이 제로 콜라를 물처럼 혹은 물 이상으로 마셔대는 바람에 말을 정정한 사례가 있다.

도시락 홍보를 할 때 이를 간과하면 분명 문제가 생길 거다.

“그러게. 네가 그랬잖아. 제로 콜라 하루에 3L씩 먹고.”

“……반찬은 몇 종류 할까?”

* * *

메뉴 개발 외에도 반찬은 몇 종류로 할지, 포장용기는 무엇으로 할지 등 생각할 거리가 너무나 많았다.

하루로는 안 될 것 같아 적당히 마무리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묵은지가 편집한 영상을 같이 보면서 이것저것 알려주다 보니 백우진이 찾아왔다.

주지승과 나눈 이야기를 공유한 뒤 백반 토론을 진행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부먹이냐. 찍먹이냐.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논쟁을 맛만 봅니다. 백반 토론의 반찬용.”

“백우진입니다.”

앞서 토론을 여러번 진행하면서 조금씩 바뀐 점이 있는데.

오프닝 멘트는 3화 부근부터 고정되었고 8화 우럭 VS 광어 편부터는 격식을 차리기 위해 정장을 입고 진행해 왔다.

그리고 지금은 둘 다 정장에 불편함을 느껴 상의만 셔츠에 재킷,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다.

“오늘 주제는 조금 특별하죠?”

“그렇죠. 데이트할 때 먹기 좋은 음식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뭐 해보고나 말함?

└이게 의미가 있냨ㅋㅋㅋㅋ 모태솔로 두 명이 데이트할 때 먹기 좋은 음식 말하는 겤ㅋㅋㅋㅋ

└???: 나 32살이에요! 32살이면 여자친구 있어야죠.

└ㅋㅋㅋㅋㅋ이 방에 있는 사람 대부분 없을 텐데 아군 사격 그만 좀 해랔ㅋㅋㅋㅋ

“시작에 앞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진중한 목소리를 냈다.

“예. 저랑 우진이 둘 다 모태솔로입니다. 그래도 상상은 해볼 수 있잖아요.”

“너넨 뭐 축구 잘해서 월드컵 보면서 훈수해요?”

채팅창을 보던 백우진이 울컥한 나머지 소리쳤다.

그 마음을 백번 이해하기에 어깨를 다독이며 달랬다.

“또 저와 백우진은 여성을 좋아해서 데이트 상대를 여성으로 가정할 뿐. 저희와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분들을 무시할 의도는 전혀 없으니 이 점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차피 우리한테는 연애 자체가 판타지예요.”

“이 영상 유튜브 올릴 때도 키워드에 판타지 설정할 겁니다.”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제파악이 빠른 편

└혀가 왜 이리 길어! 빨리 시작해!

“그럼 시작해 보죠. 오늘은 서로 어떤 음식을 가져왔는지 모르는데. 백우진 위원은 데이트할 때 어떤 음식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데이트라는 게 무엇인지 정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습니다.”

“사전에서는 교제를 위하여 만나는 일. 그렇게 하기로 한 약속으로 데이트를 소개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죠.”

“중요한 점은 교제가 목표라는 점입니다.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기 위한 약속이란 뜻이죠.”

“네.”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 불편하지 않아야 합니다. 동의하시나요?”

“동의합니다.”

“불편하지 않다. 즉, 편안하다. 친숙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데이트의 핵심입니다.”

그럴 듯하다.

백우진이 이렇게 데이트에 대해 잘 알 거라곤 미처 생각 못 했다.

“그래서 저는 친숙한 분위기에 가장 적합한 음식을 골랐습니다. 바로 떡볶이입니다.”

“……데이트하는데 떡볶이를 드신다고요?”

“네.”

└반찬용이 뭘 말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이김.

└ㅋㅋㅋㅋㅋㅋ미친 거 아님?

└뭔 데이트에 떡볶이얔ㅋㅋㅋㅋ

└백우진 나름 귀엽고 능력도 있으면서 모태솔로인 이유가 있었네

└저 정도면 병임.

“많이들 의아해하시는데 자료 1번을 보여드리면서 설명 시작하겠습니다.”

백우진이 남자와 여자의 소울 푸드란 제목으로 선정된 그림 파일을 열었다.

조사기관이 어딘지 적혀 있지 않으니 선동용 자료가 분명하다.

“남자의 소울 푸드 1위는 제육볶음입니다. 2위 돈가스, 3위 국밥이죠.”

“……출처가 없는 것 주제에 설득력이 있네요.”

“확실합니다. 반면 여자의 소울 푸드 1위는 떡볶이. 2위 파스타, 3위 닭발 순입니다.”

“여성이 좋아하는 음식 1위가 떡볶이니까 데이트할 때 떡볶이를 먹겠다는 주장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어디 계속해 보세요.”

이번 토론은 입이 꼬매지지 않는 이상 이긴 듯하다.

깍지를 껴 뒤통수를 받치고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반찬용 위원께서는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몰라요.”

“과거에 경험했던 특정 냄새를 맡으면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요?”

“후각은 시각, 청각에 비해 장기 기억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헤어진 애인의 향수나 샴프 냄새를 맡으면 금세 그와 관련된 기억에 빠지게 되죠.”

“너 없잖아요.”

딴지를 거니 백우진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떡볶이는 우리 학창 시절에 가장 즐겨 먹던 음식입니다. 매콤달콤한 냄새를 맡으면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 감정을 떠올리게 되죠.”

편안하고 친숙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데이트 이론과 연결된다.

“의외로 논지가 이어지네요.”

“떡볶이 냄새로 상대를 학창 시절의 순수했던 마음.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미롭던 시절로 되돌린 뒤 매력을 어필한다면 반드시 교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흠.”

“게다가 떡볶이는 달달합니다. 단 음식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죠. 맛도 냄새도 모두 사람을 즐겁게 하는 훌륭한 음식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백우진이 주장을 마쳤다.

“잘 들었습니다. 근데 백우진 위원의 주장은 탁상공론일 뿐입니다.”

“왜죠?”

“이성에게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요.”

“저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떡볶이가 싫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스마트폰을 꺼내 카카오톡을 열었다. 채팅창을 한참 내려 6년 전에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방을 열어 백우진에게 보여주었다.

“일요일 점심에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정중하게 요청했지만 보시다시피 명백히 거절당했습니다.”

“말도 안 돼…….”

“애초에 여성의 소울푸드 순위도 잘못되었습니다.”

키읔으로 도배되는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제가 좋아했던 여성은 모두 떡볶이를 싫어했습니다. 2위로 선정된 파스타도 싫어했고 3위 닭발도 싫어했고 마라탕, 마카롱, 케이크 모두 싫어했습니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 나트륨이 건강에 안 좋다와 같이 잘못 알려진 상식이죠.”

백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이 그렁그렁하다.

채팅창에서는 빗물이 쏟아진다.

“형……. 혀어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눈물 난다.

└아니야. 아니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개웃기넼ㅋㅋㅋㅋㅋㅋ다 싫댘ㅋㅋㅋㅋ

└마카롱 싫어하는 인간이 어딨음ㅋㅋㅋㅋㅋ여자고 남자고 인간이면 무조건이짘ㅋㅋㅋㅋㅋ

└찬용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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